‘사실’을 전하는 다큐멘터리는 때로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극적이어서 우리는 놀라고 감동하고 때로 분노하며 몰입한다. 이처럼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전달’이 아닌 ‘소통’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은 소통의 길을 내는 사람. 시청자는 감독의 시선을 따라 걸으면서 생각하며 깨닫고, 때로는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를 내기도 한다.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자백>은 지금 한국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많은 것을 알려주고 생각하게 한다.
“언론인이 아닌 나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백>의 연출가 최승호 PD를 만났다. 30여 년 동안 언론인으로 살면서 그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취재 김지민 리포터 sally0602@naeil.com 사진 전호성
편집부가 독자에게 ...
한 언론인의 소망 지난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박상영 선수가 경기 전 “할 수 있다”라고 되뇌는 모습은 온국민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더 큰 감동은 그것이 박 선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박 선수를 응원하는 모든 이의 마음이 모여서 만든 긍정의 힘이었다는 것이죠. 최승호 PD를 만나고 그때의감동이 되살아났습니다. 우리가 모이면 힘이 됩니다. 최승호 PD의 말처럼 ‘우리’가 바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합니다. _ 김지민 리포터 |
프롤로그
그가 만든 프로그램은 집요하고 치열하다. 어둡고 미심쩍은 것들을 기가 막히게 짚어내는 날카로운 촉이 있으니 그 촉에 찔릴까 봐 만나기 전 살짝 두려웠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그의 마음은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의 마지막 문장처럼 따듯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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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다큐멘터리의 비밀, 공부보다 연극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로 유학하고 싶었고 고시에 관심도 없었지만, 법대 진학을 원하신 아버지의 바람과 경제적 이유로 경북대 법대에 진학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대학 다니는 내내 연극에 빠져 죽어라고 연극만 했다. 그 경험이 프로그램 속에 녹아드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키운 것 같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무조건 ‘사실’만을 나열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스토리텔링은 무척 중요한 요소다.
연극을 좋아했지만 ‘밥’은 연극보다 힘이 셌다. 연극만 해서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 언론사 기자 시험을 준비하는 동료를 만났다. ‘시험 쳐야 기자 된다’는 얘기를 군대에서 처음 들었다. 그때는 ‘땡’ 하는 시간 알림과 동시에 당시 대통령 이름으로 시작하는 기사가 제일 먼저 나오는 시절이었다. 그런 기사를 취재하고 싶지 않았다. 연극을 오래 했으니 기자보다는 드라마 프로듀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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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아닌 나는 행복하지 않아
방송국 입사 뒤 교양 프로그램 제작팀에서 연수를 받는데 ‘이거다’ 싶었다. 내가 아이템을 정하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었다. 세상을 많이 알고 배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처음엔 이 과정을 통해 더 깊이 있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보도 프로그램의 매력에 빠져 드라마 PD는 잠시 스쳐간 생각으로 남았다.
30여 년 동안 언론인으로 살아왔지만 한 번도 언론인이 아닌 최승호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언론인이 아닌 최승호는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제대로 된 보도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도 취재의 벽에 부딪혀 길이 막혀도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사명감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원동력이 된다. 언론인은 정말 흥미진진하고 즐거운 직업이라고 여긴다. 생각해보라. 언론은 ‘세상의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다.
언론의 힘?
건전한 시민 정신이 우선‘거대한 악’과 당당히 맞서 싸우려면 자신이 깨끗해야 한다. 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건전하고 성실한 시민이 되는 것이 우선이다. 사심이 없어야 불의한 권력이나 악과 당당히 맞설 수 있다. 수신제가(修身齊家) 해야 소신 있는 언론인이 될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흠잡힐 일을 하면 안 된다. 김영란법이 생기기 전에도 김영란법을 지키며 살았다. 남에게 뭔가를 받으며 궁금한 것을 깊이 캘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나?간혹 보도 프로그램을 만들며 ‘위협’을 받은 적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누군가는 ‘목숨 걸고’ 취재했다 공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런 사회는 아니다. 언론인은 보도를 통해 대중을 겁에 질리게 해서는 안 된다. 겁에 질린 대중은 악을 보아도 행동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진실을 밝히려는 진정한 보도는 대중을 움직인다. 광화문을 밝힌 100만 개의 촛불이 그것을 증명한다.최근의 사태를 겪고 국민의 촛불을 보며 언론인으로서 충격을 받고 많이 반성했다. ‘좀 더 일찍 깊게 생각지 못한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지금 우리 주변의 믿지 못할 ‘사실’들을 언론이 앞서 캐내고 밝혀주었더라면 지금의 상황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
나는 대한민국을 위대한 나라라고 믿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에서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나라만큼 큰 성장을 이뤄낸 나라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국민의 힘으로 이뤄냈다는 것. 독재를 뒤집어 정권을 바꾸고 맨손으로 총칼 앞에 맞섰으며, 촛불로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는 멋진 국민이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자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는다. 비록 뒷걸음질 치거나 넘어지는 시간을 지나더라도 그것을 경험으로 교훈을 얻으며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간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일 것이고 정의로운 국가로 성장하는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라 믿으니까. 은근과 끈기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광화문에서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눈이 빛나더라. 그 학생들은 2016년 겨울을 ‘시대의 참고서’ 삼아 다시는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이 학생을 ‘아이’ 취급하는 것은 아쉽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학생들은 그들의 생각과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지식인으로 대접을 받았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생각을 펼치고 자기주장을 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여건을 많이 줬으면 한다. 나는 세 아이의 아빠다. 두 아이는 이미 장성한 어른이고 늦둥이 막내가 이제 고2다. 되도록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놀려고 한다. 밥도 자주 같이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더라. 내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저 함께 나누는 대화가 생각으로 쌓여가는 것이라 믿는다. 밥상머리 교육이 별거 있겠나? 같이 밥 먹으며 수다 떠는 일이 밥상머리 교육이다.
?공영방송이 자신의 역할을 하도록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다. 당연히 국민을 위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보도할 뿐 아니라 국민이 원하지 않아도 꼭 알아야 할 중요한 뉴스를 보도하는 게 공영방송의 역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2012년 26년 동안 몸담았던 MBC에서 해고된 이후 복직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돌아갈 기회가 된다면 공영방송이 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힘이 되고 싶다.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여건에 있는 사람들도 많다. 다 같이 힘을 모아 바른 소리를 내는 공영방송을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리하여 누구도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 부패가 힘을 쓰지 못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모퉁이 돌이 되고 싶다.
이 역할들을 기꺼이 해내고 싶은, 나는 언론인이다.
에필로그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렸던 재일 교포 김승효 할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채 평생을 보냈다. 어눌한 말로 “대한민국은 나쁜 나라입니다”라 말하는 <자백>의 한 장면은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미안할 만큼 시렸다. 하지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희망하는 최승호 PD의 말은 큰 위로가 됐다. 돌아오는 길, 무겁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