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체는 단순히 '죽어 있는 형체'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도 쓸 수 있고, 동물에게도 쓸 수 있습니다. 반면 시체는 사람에게만 한정되지요. 시체라는 용어는 두 가지 뉘앙스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주검이고, 둘째는 송장입니다. 주검은 시체보다 가치중립적이고 완곡한 표현이지만, 송장은 다소 혐오적인 느낌을 주지요. 또 시체의 시(屍)도 '송장'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 '사(死)'에 비해 상대적으로 입에 올리기 꺼려지는 단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체에 이처럼 '주검'이라는 중립적인 뉘앙스 외에 '송장'이라는, 다소 혐오스런 뉘앙스도 담겨 있다 보니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단순 용어인 사체를 쓰는 것 아닌가 합니다. '사체'에는 '송장'의 뉘앙스가 거의 들어 있지 않거든요. 시체의 점잖은 말로 시신이 있군요.
한편 훈민정음 국어사전을 보니까 시체가 비교적 중립적인 어감을 가지는 데 비해, 사체는 법률적인 문맥에서 좀 더 쓰이며, 송장은 구어적인 문맥에서 혐오의 어감을 가지고 쓴다고 되어 있군요. 현재 병원에서는 '시체'를 많이 쓰고(시체 해부실, 시체실 등), 법률적으로는 '사체'를 많이 씁니다.
변사체와 변시체는 변사-체, 변-시체의 결합구조를 띱니다. 따라서 '변시체'는 변사시체'의 줄임꼴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체'와 '시체'가 구별없이 혼용되는 상황인 만큼 '변사체'와 '변사시체'도 서로 구별해서 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 때의 초점은 '변사(變死)'이기 때문에 그냥 변사체 정도로 쓰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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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가하자면, 시신과 유해의 구별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볼 때 유해는 뼈만 남은 상태(=유골)이므로 시신과는 엄밀히 구별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얼마전 김선일씨가 피살되어 시신이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유해냐 시신이냐 하는 문제로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임시로 설치된 기구가 '김선일씨 유해 송환대책반'이었거든요. 여기서 '유해'라는 용어가 쓰이고, 연합뉴스에서도 '유해 운구'라고 표현하더군요. 시신이 도착한 그날 석간 문화일보가 '유해 송환'이라고 제목과 본문에 나갔습니다.
두 경우를 감안해서 우리도 '유해 운구'라는 표현을 썼지요. 그날 저녁 다른 조간 신문들을 보니까 '시신'과 '유해'가 고루 쓰였더군요.
저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유해라는 말이 유골이라는 뜻에 한정되지만 현실에서는 어의가 확대돼서 시신(시신)이라는 단어와도 갈마들여 쓰인다, 그 확대된 이유는 아마도 언중이 시신이나 시체, 사체보다는 유해가 더 망자를 기릴 만한 고급한 표현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적확한 단어를 선택해 쓴다'라는 원칙을 실천해야 할 교열인들로서는 이 경우에 '시신'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좋겠지요. 저는 비겁하게도 현실을 좇았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