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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無比) 큰스님 妙法蓮華經 문수원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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妙法蓮華經 卷 第五 · 安樂行品 第十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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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내용 ******
39.
不生不出하고 不動不退하야
불생불출 부동불퇴
常住一相이 是名近處니라
상주일상 시명근처
..한 바가 없는 텅 빈 그 한 모양에 항상 머무는 것, 시명근처(是名近處)니라, 이것이 친근처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그러한 상식, 그러한 마음에 머물러 있다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그렇게 봐야죠.
그렇게 볼 줄 알면은 참 어지간히 세상을 바로 본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
若有比丘이 於我滅後에
약유비구 어아멸후
入是行處와 及親近處하면
입시행처 급친근처
說斯經時에 無有劫弱이니라
설사경시 무유겁약
약유비구(若有比丘)가 어아멸후(於我滅後)에, 만약에 어떤 비구가 내가 멸도한 후에, 내가 죽은 뒤에,
내가 열반한 뒤에 이 말이여, 부처님이.
입시행처(入是行處)와 급친근처(及親近處)하면, 이러한 행동지침과 행동범위, 그리고 친근범위,
교섭, 교제 범위에 들어갈 것 같으면은, 들어간다는 말은 그런 것을 실천한다면은,
설사경시(說斯經時)에 이 경전을 설할 때 무유겁약(無有劫弱)이니라, 겁낼 게 없다. 당당하다.
아주 떳떳하고 당당하고 아무 겁 없이 부처님의 말씀을 잘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겁니다.
이 법화경이 결집될 무렵에 그 시대적인 상황이 상당히 어려웠던 그런 상황을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법화경을 비판하는 소승무리들이 아직도 많았고 또 다른 사견 외도들, 다른 주의 주장을 펴는
외도들도 많았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41.
菩薩有時에 入於靜室하야
보살유시 입어정실
以正憶念으로 隨義觀法하고
이정억념 수의관법
從禪定起하야 爲諸國王과
종선정기 위제국왕
王子臣民과 婆羅門等하야
왕자신민 바라문등
開化演暢하야 說斯經典하면
개화연창 설사경전
其心安隱하야 無有怯弱이니
기심안은 무유겁약
보살유시(菩薩有時)에 보살이 어떤 때, 입어정실(入於靜室)하야 조용한 방안에 들어가 가지고서
이정역념(以正憶念)으로 바른 기억, 정억념이라고 하는 것은 바른 기억입니다. 바른 기억으로,
수의관법(隨義觀法)하고, 뜻을 따라서 법을 관하고, 경전의 가르친 도리에 알맞게, 이 말입니다.
경전에서 가르친 도리를 그대로 정확하게 기억해서 거기에 딱 맞게,
종선정기(從禪定起)하야, 선정으로부터 일어나서, 위제국왕(爲諸國王)과, 여기는 국왕(國王)이나 왕자(王子),
신민(臣民), 바라문(婆羅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설법해주라 라고 하는 그런 뜻으로서,
보살이 정실에 들어가 가지고 바르게, 도리에 맞게만 하면 괜찮다 이겁니다.
아까 이야기도 이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고 한 것은 보통 사람들은 이 사람들을 만나면
거기에 맞게 하고 이 사람들에 맞게 하지 도리에 맞게 하지를 못하거든요.
도리에 맞게 당당하게만 한다면은 사실은, 그래서 그 사람들을 교화할 수만 있으면 좋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의관법해서, 뜻을 따라 법을 관해서, 선정으로부터 일어나가지고
국왕과 왕자와 신민과 바라문들을 위해서,
개화연창(開化演暢)해서 개화(開化), 열어서 교화한다, 그리고 연창(演暢), 잘 가르친다 이겁니다, 연창해서,
설사경(說斯經)하면, 이 경전, 이 법화경을 설하게 될 것 같으면은
기심(其心)이 안은(安隱)하여 무유겁약(無有怯弱)이니, 그 마음이 편안해 가지고서,
왕을 두고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절대 마음에 두려웁거나 갈등하거나 어려움을 느끼거나 그런 게 없이 전혀
편안한 마음으로 법화경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게 참 중요한 말이죠. 무유겁약이니라.
그런 자세로 한다면은 왕이 저 맘에 안드는 소릴 설사 한다 하더라도 그걸 이해하게 된다고요.
너무나도 이 말하는 사람이 당당할 것 같으면은, 당당할 정도로 그런 법력이 있으면은 그건 통하죠.
무유겁약이니, 겁낼 것이 없음이니.
42.
文殊師利야 是名菩薩이
문수사리 시명보살
安住初法하야 能於後世에
안주초법 능어후세
說法華經이니라
설법화경
문수사리(文殊師利)야, 시명보살(是名菩薩)의 안주초법(安住初法)하야, 문수사리여, 이것이 이름이
보살이 초법에 안주해서, 처음 법이라고 하는 것은 신(身)안락행, 이 몸으로서 실천해야 할 실천지침,
거기에 안주해서,
능어후세(能於後世)에 설법화경(說法華經)이니라. 능히 후세에 법화경을 설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말하자면 신(身),구(口),의(意),서원(誓願), 네 가지 안락행 중에 몸의 안락행을 모두 마친 것이고
그 다음엔 구안락행(口安樂行)입니다. 입으로, 그러면 법화경을 전하는 사람들은 입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문제를 사십 삼 번부터 이야기할려고 하는 거죠. 이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거의 다 담겨 있습니다.
여하튼 남을 누구처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그런 소리 하지 마라 하는 그런 내용도 있어요.
43.
又文殊師利야 如來滅後於末法中에 欲說是經인댄 應住安樂行이니라
우문수사리 여래멸후어말법중 욕설시경 응주안락행
또 문수사리(文殊師利)야, 여래(如來)가 열반(滅)하신 후(後)에 말법(末法) 가운데, 말법, 말세죠,
말세법 가운데, 이 경을 설하고자 할진댄(욕설시경欲說是經), 이 법화경을 이야기할려고 하거든
응주안락행(應住安樂行)하여, 응당히 안락행에 머물러서 편안하게, 설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에 아무 갈등없고 또 당당하고 떳떳하고. 이게 안락행입니다. 편안한 것. 안락행에 머물러서,
44.
若口宣說하며 若讀經時엔 不樂說人及經典過하고 亦不輕慢諸餘法師하며 不說他人好惡長短하며
약구선설 약독경시 불락설인급경전과 역불경만제여법사 불설타인 호오장단
약구선설(若口宣說)하며 만약에 입으로 설명을 하게 되며 또 만약에 독경시(若讀經時) 경전을 읽게 되거든,
불락설(不樂說), 즐겨 이야기하지 말라. 무엇을, 다른 사람과 그리고 경전의 허물(人及經典過)을. 경전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즐겨 말하지 말라 이거요. 경전에도 지 맘에 안 드는 것 많잖아요. 뭐 여기도 이상한 이야기들
많이 나왔고, 무슨 오종불남이 어떻고 저 앞에는 무슨 뭐 여자들은 다섯 가지 허물이 있다라고 하는
그게 소승들의 잘못된 소견이지마는 잘못 들으면 그게
‘어이구, 부처님은 여자들에게는 다섯 가지 결점이 있다고 그런 이야기를 했는가보다’ 하고
이렇게 또 오해를 한다고요. 고것만 듣고는 또 오해를 하고 그래서 법화경 마음에 안 든다고, 그런 것만 가지고.
또 마음에 드는 것 많은 것은 싹 빼 버리고 마음에 안 드는 것 한 두 가지 가지고
‘ 아이, 법화경이 뭐 그러냐고, 이상하다’고, 이런 식으로 해서 법화경 허물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는 거예요.
법화경을 말하는 사람과 그리고 법화경 그 자체에 대한 허물을 말하지 마라 이거요. 제일 중요한 게 그거고,
그 다음에
역불경만 제어법사(亦不輕慢 諸餘法師)며 또 다른 여러 법사들을 가벼히 여기지 마라. 가벼히 여기고
업신 여기지 마라 이거요.
또 불설타인호오장단(不說他人好惡長短), 다른 사람의 좋은 점, 미운 점, 장점, 단점, 이런 것을 또 말하지 마라.
만약 경을 읽는 사람이나 또 경을 입으로 강의하는 사람이, 이건 뭐 법화경을 강의하고 법화경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건 안 좋은 일이죠, 사실은. 그런데 하물며 부처님 경전을 설하고 부처님 경전을
입으로 읽는 사람이라면은 실컷 입으로 경 읽어놓고 경 읽는 것만 끝나면은 그저 남의 이야기하고
남의 허물 이야기하고 뭐가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하고 .. 계속 이야기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동안 경 읽은 거 다 까먹고 더 마이너스가 되는 거야. 실컷 까먹고는 다 까먹고는 더 이제 모자라지.
구업(口業)이 더 남아 있어요. 그러면 또 경 읽으면 어느 정도 구업 또 소멸하긴 하겠지. ㅎㅎㅎ
또 이제 구업 지으면은 그러면 또 하나 마나야. ㅎㅎㅎ 그러니까 그런 손해 보게 하지 마라는 거예요.
45.
於聲聞人에 亦不稱名하야 說其過惡하고 亦不稱名하야 讚歎其美하며 又亦不生怨嫌之心이니라
어성문인 역불칭명 설기과오 역불칭명 찬탄기미 우역불생원혐지심
어성문인(於聲聞人)에 역불칭명(亦不稱名)하여, 성문은 소승입니다. 아주 소견머리 없고, 소승,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또한 이름을 딱 누구다 라고 이렇게 이름을 지적해 가지고서
설기과오(說其過惡)이며 그 사람의 과오를 말하지 마라 이거요. 아무리 소견머리 없는 소승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해서 이름을 딱 들먹거려 가지고 그 사람 과오를 이야기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봤자 자기 구업만 쌓는 거죠. 그 사람은 안 바뀌어. 누구 말마따나 그 사람은 더 잘 살아.
그러니까 그렇게 할 필요가 없더라 이거지.
역불칭명(亦不稱名) 찬탄기미(讚歎其美),
또한 이름을 일컬어 가지고 그 사람의 좋은 점도 찬탄하고 그래 하지 마라. 찬탄하던 그 입이 금방
돌아서면 미워하고 욕하는 거요. 욕하는 거하고 찬탄하는 거하고 둘이 아니야. 그러니까 찬탄도 하지 마라.
아주 무게있게 그리고 담담하게 딴 사람들의 잘 잘못에 대해 아무리 세상이 시끄럽더라도 법화행자는,
법화경을 신봉하고 법화경 공부나 하는 사람은 아주 담담하게 무게 있게 누가 와서 뭐라고 칭찬하든지
누가 와서 누구의 욕을 하든지 나한테는 그런 이야기하지 마라고, 나 한테 그런 이야기할려면 오지 마라고
정중하게 그래버려 그냥. 그렇게 해 버리면은 감히 그런 말 못해요. 다음부터는 조심하지 이제 와서.
저 사람한테 남의 욕하러 왔다가는 안되겠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게 좋습니다.
우역불생(又亦不生) 원혐지심(怨嫌之心)이라, 또 원(怨), 원망하거나 혐오하는 미워하는 마음,
그게 嫌(혐) 자예요, 혐오할 혐 자. 미워하는 마음을 내지 마라. 남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 내 봐야
그 사람은 아무 털끝 하나 안 다치니까 괜히 그럴 필요없이 내 손해까지 볼 거 없죠.
너는 아예 그런 생각하지 말고 법화경이나 잘 읽어라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오늘 그 얘기 하고 딱 맞는 내용이네요.
46.
善修如是安樂心故로 諸有聽者에 不逆其意하며 有所難問이면 不以小乘法答하고
선수여시안락심고 제유청자 불역기의 유소난문 불이소승법답
但以大乘으로 而爲解說하야 令得一切種智니라
단이대승 이위해설 영득일체종지
선수여시안락심고(善修如是安樂心故)로, 이와 같은 안락한 마음, 편안한 마음이거든요.
이게 다 이렇게 안 하는게 편안한 마음입니다. 온갖 들떠 가지고 남의 칭찬하는 것도 흥분해서 좋지 않고
남을 미워하고 남 욕하는 거, 그것도 또 흥분해서 좋지 않고 편안한 마음,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은 아니예요.
이와 같은 안락한 마음을 잘 수행, 선수(善修), 잘 닦은 고로,
제유청자(諸有聽者)에, 모든 법화경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불교를 듣는 사람에게,
불역기의(不逆其意)라, 그 뜻을 어기지 아니한다. 그 뜻을 어기지 아니한다.
실컷 입으로 뭐 그냥,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가 욕했다가 그래 가지고 그 입으로 또
법화경을 읽고 이야기하면은 그거 어떻게 되겠어요. 아무래도 모양새가 좀 그렇죠.
그럼 딴 사람들이 잘 믿어 주지도 않는 거야.
유소난문(有所難問)커든, 혹 어떤 사람이, 有 자는 어떤 사람이, 난문(難問), 따지고 묻는 사람이 있거든,
또 법화경에 대해서 또는 불교에 대해서 묻는 사람이, ‘아, 너 절에 다닌다면서 이거 하나 물어보자’
이런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거든 소승법으로서 답하지 마라(불이소승법답不以小乘法答) 그랬습니다.
소승법으로서. 소승법은 뭔고 하니 방편이죠. 방편으로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그런 법입니다.
그런 걸로서 이야기하지 말고,
단이대승(但以大乘)으로 이위해설(而爲解說)하여, 다만 대승으로서, 큰 가르침, 큰 가르침으로서
그 사람을 위해서 해설해서 영득일체종지(令得一切種智)니라, 일체 종지, 좋은 지혜를, 정말 훌륭한 지혜를
얻도록 그렇게 해 줘야된다 하는 것입니다.
소승법 가지고, 이 소승법이라고 하는 것이 참 한 두 가지가 물론 아니겠습니다마는
그런 어떤 소소한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불교를 묻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 놓으면은
그러면은 그거는 안 맞는 데가 많거든. 안 맞는 데가 많다고요. 여기에는 맞지만 저기 가면 안 맞는 거야.
대승법은 뭔고 하니 어디든지 맞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다 통하는 거. 공통되는 법. 그런 좋은 법,
최상승의 그런 법을 가지고 대답을 해야 모순이 없습니다. 소승법은 모순이 있게 돼 있어요.
그래서 모순이 없는 큰 법을 가지고 불교를 이야기해서 일체종지를 얻게 할지니라.
예를 들어서 무슨 기도처가.. ‘기도는 어떻게 할까’ 하면 ‘어느 장소에 가라. 갓바위면 갓바위에 가야 잘된다’.
그러면 그 사람은 갓바위 안 가면 기도 안되는 줄 아는 거야. 그럼 잘못 가르치는 거예요, 그거는.
기도하는 것은 뭐 마음에 달려있지 어느 장소가 아니거든. 그러면 갓바위 부근은 전부 기도 잘 되겠네.
뭐 바위도 기도 잘 되고 무슨 나무도 기도 잘 되고 다 잘 돼야 될 거 아냐. 그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고요.
그러면 그런 것은, 어디에 가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은 꼭 그런 사람이 있어. 그건 그런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딴 사람에게 해당이 안돼. 딴 사람은, 남해 보리암 가서 잘 되는 사람은 그럼 어떻게 돼. 영 기분이 찝찝한 거야.
그 다음부터는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보리암 가도 기도가 안되네. 갓바위 가야 기도 잘 된다는 소리 듣고는
보리암 가도 그 다음부터 기도 안 돼. 안 그렇겠어요. 그런 게 다 소승법이라. 어디 한 곳에만 적용되는 그런 법.
어디든지 네 마음이 기도 잘 되는 데서 하면 된다. 그럼 뭐 화장실에서 해도 좋고 이불 속에서 해도 좋고
부엌에서 해도 좋고 어디서 하든지 네 마음 하나만 골똘하게 잘 하면은 상관 없다, 장소가 무슨 문제냐.
장소가 기도해 주더냐. 이렇게 시원하게 이야기해 주면은 ‘아 참, 그렇겠다’ 고. 그러면은 자기 상황이
어떻든 할 수 있는 거예요, 기도를. 그런데 그 소견 좁게 대답을 해 놓으면은 그만 그 사람은 그 외에는
기도가 안되니까 곤란하죠. 오히려 그런 걸 안 듣는 것만 못하지. 그러니까 그런 거 일일히 다 들어서
설명할 순 없고 그래서 대충 소승법으로서는 답하지 말고 대승법으로서 해설해 줘라. 그래갖고 지혜가
툭 터지게,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도록 그렇게 해라 라고 부처님이 당부를 하고 계십니다. 그 다음,
47.
爾時世尊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니라
이시세존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이시(爾時)에 세존(世尊)이 욕중선차의(欲重宣此義) 하사 이설게언 (而說偈言)하사대,
??? 이 뜻을 요약해서 다시 이야기하는 거예요. 입으로는, 다시 정리하면 별 거 아닙니다.
사람과 경전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 하지 마라.
또 법사에 대해서 업신여기거나 가벼이 여기지 마라 이거여, 법사에 대해서.
또 딴 사람의 장단점, 좋은 점, 미운 점, 이런 것도 너무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고
또 좋은 점이라고 해서 자꾸 칭찬하는 사람, 그것도 안 좋고
누구 이름을 딱 꼬집어 가지고 이야기하면 그건 정말 금물이죠. 이름을 딱 들어가지고.
엇비슷하게 이야기해도 다 알아 듣거든요 . 아까 나처럼.
다 알아 들으니까 누구 이름을 딱 꼬집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요. 나중에 문제가 생기니까.
그런 등등이 입으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점입니다. 입으로 실천해야 할 점.
이거 뭐 법화경 공부하는 것 말고도 우리가 지켜야 할 사항이예요, 일상 생활에서.
48.
菩薩常樂 安隱說法하대
보살상락 안은설법
於淸淨地에 爾時牀座하며
어청정지 이시상좌
보살상락 안은설법(菩薩常樂安隱說法)하대,
보살이 항상 안은하게 편안한 자세로 설법하기를 즐겨하대,
청정지에서(於淸淨地) 이시상좌(爾時牀座)하며, 청정지, 좋은 땅, 좋은 환경, 좋은 장소,
그걸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 청정지(淸淨地)라고 하는 것은 그래도 이렇게 법화경을 읽거나
또는 법화경을 설할려고 하려면은 뭔가 장소가 모양새가 갖춰져야 될 것 아닙니까.
아무리 법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아무데서나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죠.
이시상좌(爾時牀座)라, 상과 자리를 베풀어 놓고, 펴 놓고 하라. 이 중생들은요 어떤 환경과 장소를
잘 조성해 놓으면은요 저절로 마음이 그 어떤 분위기에 젖어들고 안될 공부도 되게 돼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49.
以油塗身하야 澡浴塵穢하며
이유도신 조욕진예
著新淨衣하야 內外俱淨하고
착신정의 내외구정
安處法座하야 隨問爲說하며
안처법좌 수문위설
이유도신(以油塗身)하여 기름으로서 몸에 발라서, 이건 향유입니다. 향기를 몸에 뿌리고,
또 조욕진예(澡浴塵穢), 진예(塵穢)는 때, 먼지. 이런 것을 목욕을 해서 깨끗이 씻고.
착신정의(著新淨衣), 새로 깨끗하게 씻은 그런 옷을 입고, 새로 지은 옷이 아니예요.
신정의(新淨衣), 깨끗하게 한 옷이니까 빨래한 옷이라는 뜻입니다. 새로 빨래한 옷을 입고.
내외구정(內外俱淨)하고, 안과 밖이, 몸도 깨끗하고 또 입은 옷도 정갈하게 딱 해 가지고.
안처법좌 (安處法座)하여, 법좌에, 법의 자리에 편안하게 앉아서,
수문위설 (隨問爲說)하며, 묻는 데 따라서 이야기를 해 주라. 이야기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조건들이죠.
하며. 뭐 관광가다가 사찰 순례하다가 심심하니까 법문 좀 해 주십시오 한다고 덮어놓고 그렇게
그런 자리에서 해선 안된다는 그런 의미도 있죠.
50.
若有比丘 及比丘尼와
약유비구 급비구니
諸優婆塞 及優婆夷와
제우바새 급우바이
國王王子와 羣(君)臣士民이어든
국왕왕자 군신사민
以微妙義로 和顔爲說하며
이미묘의 화안위설
若有難問이면 隨義而答하대
약유난문 수의이답
因緣譬喩로 敷演分別하야
인연비유 부연분별
以是方便으로 皆使發心하고
이시방편 개사발심
漸漸增益하야 入於佛道하며
점점증익 입어불도
만약에 어떤 비구(比丘)와 비구니(比丘尼)와 우바새(優婆塞)와 우바이(優婆夷), 국왕(國王), 왕자(王子),
또 군신사민(君 臣 士 民), 신하나, 군은 예를 들어서 소왕을 君(군)이라 그래요. 작은 왕.
또 신하(臣), 선비(士), 벼슬하는 사람, 보통 백성(民), 이런 이들이 있어서.
미묘의(微妙義)로서, 미묘의, 법화경의 어떤 깊은 도리, 그것으로서. 화안위설(和顔爲說)하라. 화안(和顔),
아주, 아주 평화로운 그런 얼굴로서 그들을 위해서 이야기해주라. 법사가 아주 찡그린 얼굴로 말이지
또 흉악한 얼굴로 아주 싫어하는 그런 얼굴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는지 아니면 너무 히히덕 거리는 얼굴로
또 부처님 말씀을 전한다든지 이게 다 안 맞는 거예요. 화안(和顔)이라고 하는 것은 참 좋은 말인데요.
아주 평화로운 그런 얼굴 모습입니다. 아주 편안하고 평화로운 그런 얼굴 모습. 그게 아주 좋은 얼굴이예요.
뭐라고 할까. 모나리자의 미소라고나 할까, (ㅎㅎㅎ) 그런 얼굴이란 거죠.
화안과 또 연관되는 말로서 사랑스러울 애(愛) 자 말씀 어(語) 자. 그러니까 얼굴 모습은 화안이라야 되고
말은 아주 친절하고 사랑에 넘치는 그런 말, 화안애어(和顔愛語).
그 일본에 가서 조그마한 식당에 들어갔더니 화안애어(和顔愛語)라고 딱 이렇게 써 붙혀 놨어.
종업원들보고 꼭 손님들에게 이런 태도로 손님을 맞이하란 거죠, 화안애어.
너무 반색을 해도 그거 보기 그렇잖아요. 화안이라야 돼. 아주 화평하고 편안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그런 얼굴. 그런 얼굴로 위해서 설해줄 것이며.
약유난문(若有難問)커든, 만약 어떤 이가 또 질문할 수가 있거든요. 질문하거든 수의이답(隨義而答)하대,
뜻을 따라서 답하대.
인연(因緣)과 비유(譬喩)로서 부연분별(敷演分別)해라. 이런 저런 인연도리를 이야기하고 또 못 알아들으면
비유를 들어서, 예컨대 이와 같다, 하면서 다른 그,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비유를 들어서 예문을 들어가지고 비유를 들어서 또 그것을 부연해서 설명을 해 주고 말이죠.
그게 참 좋은 방법이거든요. 부연분별해서.
이시방편(以是方便)으로, 이러한 방편으로서, 개사발심(皆使發心)하고, 다 하여금 발심하게 한다. 발심하게 하고,
점점증익(漸漸增益)하야, 점점, 더욱 더, 이익하게 해 가지고서 입어불도(入於佛道)하며, 불도에, 정말
부처님의 도(道)에 가깝게, 떠억 거기 가깝게, 그렇게 까지 해 준다 이거죠.
51.
除懶惰意와 及懈怠想하고
제나타의 급해태상
離諸憂惱하야 慈心說法하며
이제우뇌 자심설법
晝夜常說 無上道敎하대
주야상설 무상도교
以諸因緣과 無量譬喩로
이제인연 무량비유
開示衆生하야 咸令歡喜하며
개시중생 함령환희
제나타의(除懶惰意)와 급해태상(及懈怠想), 나타의(懶惰意), 해태상(懈怠想), 이게 다 게으를 나(懶) 자고
게으를 해(懈), 게으를 타(惰), 전부 게으르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게으른 게 제일 못 쓰는 거죠.
부지런한 게 제일 복이예요, 사실은. 뭐 유교에도 있지마는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어떤 가난도
이겨낼 수가 없는 거요. 가난이 그 사람을 아무리 가난하게 할려고 해도 부지런한 사람에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거요. 그래서 근면을 제일 덕으로 칩니다. 그래서 이 게으른 생각,
마음, 게으른 생각을 모두 제거해 버려라. 그리고,
이제우뇌(離諸憂惱), 근심과 번뇌, 시름, 고뇌, 이런 것도 떠나서,
자심설법(慈心說法)하여, 자비한 마음으로 설법하며,
주야상설(晝夜常說) 무상도교(無上道敎)하대, 밤이면 밤, 낮이면 낮, 설할 기회가 되거든 항상
이 최후의 가르침, 무상도, 무상도의 가르침을 늘 이야기하대,
제인연(諸因緣)과 한량없는 비유(無量譬喩), 뭐 한 가지 이치에도 비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 비유가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여러 가지 비유로서
개시중생(開示衆生), 중생들에게 열어 보여서 함령환희(咸令歡喜)하며, 다 하여금, 그 사람들로 하여금
기쁘게, 환희하게 그렇게 만들어 주고,
52.
衣服臥具와 飮食醫藥으로
의복와구 음식의약
而於其中에 無所希望하고
이어기중 무소희망
但一心念 說法因緣하야
단일심념 설법인연
願成佛道하대 令衆亦爾하면
원성불도 영중역이
是則大利라 安樂供養이니라
시즉대리 안락공양
의복와구(衣服臥具), 옷과 침구, 잠자리 같은 데 필요한 그런 것과 음식의약(飮食醫藥), 의약, 이런 것으로서,
이어기중(而於其中)에, 그 가운데서, 무소희망(無所希望)하고, 뭐 법문 좀 해준다고,
법화경 좀 이야기해 준다고 그 사람들에게 옷 한 벌 해 주라 하고 그러면 곤란하다 이거지. ㅎㅎㅎ
내가 방석이 다 됐는데 해대고 그것도 곤란하고, ㅎㅎㅎ 무슨 보약 한 재 지어달라고 조른다든지
이런 거 다 안된다는 말이예요. 이어기중에 무소희망, 희망하지 말라 이거여. 희망하지 말고,
단일심념(但一心念)으로 설법인연(說法因緣)하여 다만 한결같은 마음, 일심념(一心念)이라고 하는 것은
한결같은 마음, 그저~ 부처님 말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 하는 그 마음 하나 가지고서
설법인연을 삼아라 이거야. 설법인연 삼아서,
원성불도(願成佛道)하대, 불도 이루기를 원하대, 어떻게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듣고 저 사람 마음이
좀 밝아지고 불도에 향하는 그런 마음이 좀 생겼으면 하는 그런 소원을 할 것이지 다른 생각하지 마라 그거지.
영중역이(令衆亦爾)하면, 대중들로 하여금, 듣는 대중들로 하여금 또한 그렇게 하도록 한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하고 다른 사람들도, 듣는 사람들 또한 그런 자세가 되도록 그렇게 할 것 같으면은
시즉대리(是則大利)라, 이것이야말로 큰 이익이다 이거야. 안락공양(安樂供養)이야, 그냥 공양,
보통 음식 공양, 뭐 그런 공양이 아니고 안락공양이야. 안락으로 공양하는 거라 이거여. 안락으로 공양.
그보다 더 좋은 공양이 어디 있습니까. 편안하고 즐거움으로서 사람들에게 공양하는 것이다.
그 뭐 좀 한다고 대개 바라고 그러면은 듣는 사람이 편치가 않죠. 그 다음이 걱정이 되니까.
그 다음 걱정이 되니까 들어도 귀에 안들어 가는 거야. 아이 이거 참, 그냥 들어서는 안되는데 해갖고
이렇게 마음에 부담을 주면 그건 딴 사람으로 하여금, 뭐죠, 불안공양이야, 불안공양. ㅎㅎㅎ
안락공양이 아니고 불안공양이야. 불안을 가지고 공양을 올리면 되겠습니까. 안락으로 공양 올려야죠.
편안하게 공양 올리는, 편안함으로서 공양 올리는. 참 좋은 공양이죠. 안락공양.
공양이 여러 가지예요. 우리가 그냥 부처님께 올리는 돈이나 음식이나 초나 향이나 이런 거라고만 생각을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어떤 환경으로서 또는 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줌으로 해서 그 사람에게는
그 어떤 물질 보다도 더 우선하는 그런 공양이 될 수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것이 큰 이익이고, 이것이야말로
안락공양이다.
이건 뭐 꼭 불법을 이야기하고 경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를 듣고 하는 이런 관계 뿐만 아닙니다.
친구가 하나 집에 와도 그렇고요,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우리가 정말 이건 활용할 좋은 이야기예요. 활용해야 할.
거 괜히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주는 것도 없이 괜히 사람 불편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그러면 자기도 그런 과보 받거든요. 그러니까 불편하게 불안하게 하지 말고 어쨌든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여러 가지를 배려를 해서. 안 하겠다고 하는데 자꾸 뭘 대접을 한다든지 그것도 좋은 거 아니예요.
어느 정도 되면 받는다고요. 받을 만 하면. 체면상 그저 한 두 번 거절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싫어서 거절하는지
그걸 눈치 못채고 그냥 덮어놓고 막 밀어붙히면은 그건 곤란하죠. 편케 해 줘야 돼요.
53.
我滅度後에 若有比丘가
아멸도후 약유비구
能演說斯 妙法華經하대
능연설사 묘법화경
心無嫉恚와 諸惱障礙하고
심무질에 제뇌장애
亦無憂愁와 及罵詈者하며
역무우수 급매리자
又無怖畏와 加刀杖等하고
우무포외 가도장등
亦無擯出은 安住忍故니라
역무빈출 안주인고
아멸도후(我滅度後)에,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만약에 어떤 비구가(若有比丘)
연설사묘법화경(演說斯妙法華經 )하대, 이 묘법 연화경을 연설하대
심무질에(心無嫉恚)와, 마음에 없다, 무엇이, 질투와 분노, 에(恚) 자는 화내는 거예요. 질투하고 화내고
그리고 또 온갖 번뇌의 장애(제뇌장애諸惱障礙)가 없고,
역무우수(亦無憂愁), 우수도 없어, 근심과 걱정 이런 것들도 없고 또 매리(罵詈) 남을 꾸짖고 남을 욕하고 하는 게
매리입니다. 꾸짖을 매(罵), 꾸짖을 리(詈) 자요. 욕하고 꾸짖는 이런 것들도 없으며(급매리자及罵詈者),
우무포외(又無怖畏), 또 두려워하는 것도 없어. 아주 떳떳하고 당당하게 또 가도장등(加刀杖等), 도장등을,
말하자면 칼이나 막대기 이런 것을 가지고 위협하거나 때리거나 하는 그런 일도 없고
역무빈출(亦無擯出), 또한 쫓기는 일도 없어. 빈출은 막 누가 위협을 한다든지 쫓아낸다든지 하는
그런 일도 또한 없는 것은, 안주인고(安住忍故)니라. 인(忍)에 안주한 까닭이다. 참는 데, 잘 참는 데
안주한 까닭이니라. 그러니까 인욕행을 잘 닦아놓으면은 이런 것이 삭~ 없어진다 이거여.
또 법화경을 이야기할려면 법화경에 전할려면은 최소한도 어떤 인욕, 그것은 잘 마음에
간직을 해야된다 하는 그런 이야기도 됩니다.
54.
智者如是 善修其心하야
지자여시 선수기심
能住安樂하대 如我上說이면
능주안락 여아상설
其人功德은 千萬億劫에
기인공덕 천만억겁
算數譬喩로 說不能盡이니라
산수비유 설불능진
지자여시(智者如是) 선수기심(善修其心)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이와 같이 그 마음을 잘 닦아서,
선수(善修), 좋은 말이죠. 저 앞에도 한번 나왔는데. 우리가 살아가는데 슬기로와야 돼요.
지혜로와야 됩니다. 이 지혜가 꼭 부처님이나 무슨 도를 많이 닦은 사람들만이 있을 수 있는
그런 지혜라고 생각하지 말고 조금만 우리가 생각을 하면은 좀 지혜롭게 살 수가 있는 거죠.
지혜로운 사람이 이와 같이 그 마음을 잘 수행해서,
능주안락(能住安樂)하대, (책 내용: 한글은 주 자인데 한문은 주 자가 아니예요. 왕 자입니다.
저것이 두 인변이 아니고 그냥 인 변이라야 되죠). 능히 안락한대, 이런 편안한 자세에 머물대,
여아상설(如我上說)하면 내가 저 위에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과 같이 그렇게 한다면은
기인공덕(其人功德)은, 그 사람의 공덕은, 천만억겁(千萬億劫)에, 천겁, 만겁, 억만겁에
산수비유(算數譬喩)로도 설불능진(說不能盡)하리라. 다 이야기할 수가 없다 이거예요. 아무리 오랫동안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공덕을 다 이야기할 수가 없다. 이렇게 자기도 편안하고 남도 편안하게
그런 편안한 자세로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법화경을 이야기할 수 있고
또 법화경을 들을 수 있다면은 그 보다 더 좋은 조건이 있느냐.
그래서 문제들을, 그리고 갈등을 느껴야 할, 그래서 상대에 따라서 부처님 뜻하고는 달리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가능하면 피해라 이거예요. 가능하면 피하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또 왕과 왕자들에게 이야기하라 라고 하는 것은 법력이 있어가지고
그 사람들을 충분히 교화하고 또 그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부처님 뜻을 전할 수 있을 때 그 때는
상관없다 이거죠. 그럼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란 말도 있고
그런 사람들을 피하라는 말고 있고. 그 사람들 친근하지 말라 그랬거든요.
친근하지 말라는 뜻의 말도 있고 그렇습니다.
사실 부처님의 근본 정신에서 보면요, 어떤 사람도 배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극악무도한 사람도 배척해선 안되고 그 어떤 벼슬 높다고 하는 사람도 배척해선 안되고
아~무리 형편없는 직업을, 하루에 뭐 예를 들어서 사람을 수십 명 죽이는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실은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해야 되죠. 부처님 근본 정신에서 본다면은.
그러니까 어떤 사람도 부처님 마음에서 배척하는 사람은 없어요. 다 수용하고 다 받아들이고
다 바로 잡아 가려고 하는 것이 부처님의 정신이고 그러나 섣불리 법력도 없으면서 흉내 내서는 안되는 거죠.
자기 힘에 맞춰서 문제가 될 때는 아예 그런 사람들과 교섭을 안하고 피하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력이 되면은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해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 놓는 것이,
그게 이제 사실은 부처님 뜻에 더 맞는 거고.
이렇게 해서 두 가지 좀 이율배반적인 이론이 있었지마는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는 그런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사십 사회 법화경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첫댓글 安樂行_()()()_
고맙습니다 ()()()
有所難問이면 不以小乘法答하고 但以大乘으로 而爲解說하야 令得一切種智니라...어떤 사람이 따지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소승법으로서 답하지 말고 다만 대승으로서 그 사람을 위해서 해설해서 일체 종지(훌륭한 지혜)를 얻도록 해 줘야 되느니라...mary 님! 수고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네 가지 안락행 (身安樂行,口安樂行,意安樂行,誓願安樂行),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지자여시(智者如是) 선수기심(善修其心)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이와 같이 그 마음을 잘 닦아서, 선수(善修), 좋은 말이죠~~~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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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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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但一心念 說法因緣 하야 願成佛道 하대 令衆亦爾 하면 是則大利 라 安樂供養 이니라 .............
다른 사람의 好惡 長短을 말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