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크메르의 세계 2011-7-22
[심층분석] 태국-캄보디아 분쟁 : "국제법원 판결의 의미?"
집필 : '크메르의 세계' 언론분석팀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월요일(7.18) 태국과 캄보디아에 대해, '쁘레아위히어 사원'(Preah Vihear temple) 주변의 '4.6 ㎢ 면적의 분쟁지역'에서 양국 모두 자국 군대들을 철수시키고 '임시 비무장지대'(provisional DMZ)를 설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후, 양국은 원칙적으로는 ICJ의 판결을 수용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의 진행절차에 대해서는 상당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어서, 지난 2008년 7월 이후 지속되고 있는 양국의 국경분쟁은 유엔의 최고 사법기구가 구체적 해법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해결까지는 아직도 많은 과정을 거쳐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캄보디아는 ICJ의 판결 직후 <정부의 공식 성명서>를 발표하여, ICJ의 판결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분쟁구역에 휴전감시를 위한 인도네시아 업저버 배치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환영의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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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KP) 7월20일 프놈펜 국제공항에서 기자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호 남홍 외무부장관. |
"캄보디아 국영 <AKP 통신> 7월21일자 보도"에 따르면, 해이그의 ICJ 법정에 출석했던 캄보디아의 호 남홍(Hor Namhong) 외무부장관은 7월 20일 '프놈펜 국제공항'에서 진행된 귀국 기자회견을 통해, 캄보디아는 "인도네시아 업저버들이 분쟁지역에 도착하면 군대를 철수 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호 남홍 장관은 그간 국경분쟁에 관해서 캄보디아는 더 이상 양자간 틀 속에서의 대화를 하지 않을 것이며, '아세안'(ASEAN) 등 다자간 틀 속에서 논의해나가겠다던 입장에서 한발 후퇴한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군대철수를 위해 캄보디아-태국 사이의 "'일반 국경위원회'(General Border Committee: GBC)나 '공동 국경위원회'(Joint Border Committee: JBC) 회담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태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곧 구성될 것이기 때문에, 아피싯 웻차치와(Abhisit Vejjajiva) 총리가 이끄는 과도 내각이 이 문제를 다루기엔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며, 본격적인 협상은 태국의 차기 정부와 해나갈 방침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크메라이제이션'(Khmerization)이 영역한 "'자유아시아방송'(RFA) 크메르어판의 7월21일자 보도"에 따르면, 캄보디아 정부의 기본적 입장은 "국경분쟁 문제에 관해 어떠한 양자간 대화도 없다"는 것을 여전히 확고하게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보도에 따르면, '쁘레아위히어 사원' 문제에 관한 '캄보디아 정부 자문위원'인 호주인 헬렌 자르비스(Helen Jarvis) 박사는 ICJ의 결정은 너무도 명확하고 '임시 비무장지대'의 경계 역시 분명하게 확정시켜 놓아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다면서, "캄보디아 입장에서 보면 협상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캄보디아 '관방부' 대변인인 파이 시판(Phay Siphan) 차관도, 태국이 군대 철수 이전에 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이 문제를 양자간 틀로 회귀시키는 동시에 ICJ 명령의 실행을 늦추려는 책략이라고 말했다.
한편 태국의 까싯 삐롬야(Kasit Piromya) 외무부장관은 해이그 현지에서, ICJ가 캄보디아가 심의를 요청한 내용을 더욱 확장시켜 "양국 모두에 철수명령을 내린 데"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또한 아피싯 총리 역시 이번 판결이 "태국의 주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기본적인 만족감을 표한 바 있다.
그러나 "<방콕포스트> 7월21일자 보도"에 따르면, 아피싯 태국 총리는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에 이 문제를 두고 이견이 존재하므로, 양측 간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캄보디아가 군대를 철수시킨 후 인도네시아 업저버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선(先)-업저버 배치, 후(後)-군대철수"를 주장하는 캄보디아의 입장과는 정반대의 견해를 제시했다.
한편 태국은 군사적 동향에서도 상징적 행보를 계속해나가고 있다.
왕립 태국 경찰청장 위치얀 폿포시(Wichian Potephosree, วิเชียร พจน์โพธิ์ศรี) 경찰 대장은 목요일(7.21), 국경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경찰 헬기를 이용하여 시사껫(Sisaket) 도, 깐타랄락(Kantharalak) 군에 주둔 중인, '태국경찰 국경순찰대'(Border Patrol Police: BPP) 예하 '제224대대'를 순시했다. 민간 공권력인 경찰 총수의 이번 방문길에는 현재 이 지역 방위를 담당하고 있는 '왕립 태국육군'(RTA) '제2군구 사령관 타왓차이 사뭇사콘(Thawatchai Samutsakorn) 중장도 동행하여, 군사적 의미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위치얀 경찰청장은 현지에서의 발언을 통해, 아직 상황이 변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ICJ의 명령에 따라 이 지역에서 군대가 철수할 경우, '경찰 국경순찰대'가 국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동행한 타왓차이 제2군구 사령관 역시 이 지역의 군대는 아직까지 철수할 계획이 없다면서, 차기 정부의 명령만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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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Bangkok Post / TAWATCHAIKEMGUMNERD) 위치얀 폿포시 태국 경찰청장(좌)이 7월21일 캄보디아 국경 인근의 '경찰 국경순찰대' 예하 부대를 방문하여, 도열해있는 병력들을 살펴보고 있다.
1950년대에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지원을 받아 창설된 태국경찰 국경순찰대는, 편제상 경찰청 산하 조직이지만 실제로는 준-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왕실의 후견을 받고 있다. 국경순찰대는 총 4개 사단 규모에, 자체 내에 대테러 특수부대와 항공수송 지원부대까지 두고 있고, 모든 병력이 기본적인 공수훈련까지도 받는 등 사실상 정규군 경보병 수준의 전투력을 갖고 있다. 이들이 가진 왕실과의 유대관계로 인해 시위진압 등 민사작전 시에도 신뢰받고 있는데, 작년에 발생한 '레드셔츠'(UDD) 시위 진압 시에도, 다른 경찰 조직들과 달리 상당히 강경한 움직임을 보여준 바 있다. [크세] |
복잡한 국내정치의 여운들
국경분쟁의 조속한 안정화를 희망하는 캄보디아의 입장에서 보면, ICJ가 내린 이번 명령은 이 문제의 국제화 시도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 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캄보디아의 제1야당인 '삼랑시당'(SRP)은 ICJ 결정 당일에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이번 판결이 침략자(태국)와 그 피해자(캄보디아)를 동일한 선상에 놓은 것"이라면서, 이번 사태는 "훈센(Hun Sen) 정권의 부끄러운 패배"이며 "영토 통합성을 수호함에 있어서 그들이 보여준 무능함은 뻔뻔하기 그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캄보디아는 2013년 총선이 예정되어 있고, 최근 2-3년간의 야당 탄압을 통해 세력 면에서 상당히 위축된 야권이 투쟁의 강도를 더욱 강경하게 몰고나올 경우, 이 문제 역시 약간의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잔존하고 있다.
하지만 태국에서 민족주의와 관련된 이 문제는 국내정치의 진행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주요한 위협요소가 된다.
태국의 보수층은 지난 7월3일 총선에서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 잉럭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잉락 친나왓)이 이끄는 대중주의 정당 '프어타이 당'(Puea Thai Party)이 압승을 거둔 상태에서 정치적 반전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프어타이 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상황에서, 이전과 같이 또다시 쿠테타나 사법부를 이용한 정당해산 같은 선택을 할 경우, '내전의 위험성'까지 감수해야 할 정도의 큰 모험이 될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왕실을 구심점으로 하는 군부나 사법부, 그리고 선거관리위원회 등의 헌법기관들은 그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캄보디아와의 국경분쟁은 태국 보수층의 숨통을 열어주는 활력제가 될 수도 있다. 민족주의적 정서와 결합하는 이 민감한 문제를 주요한 이슈로 끌어낼수록, 태국의 보수층은 잉럭이 이끄는 새로운 정부의 발목을 잡아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가장 먼저 선봉에 나서게 될 세력은 방콕 및 도시 중산층을 대변하는 극우 왕당파 '옐로셔츠'(PAD) 운동이 될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친-탁신 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들이 가두로 나가 투쟁할 수 있는 명분만 바라고 있는 것이다.
"태국 국영 <MCOT 통신>의 7월20일자 보도"에 따르면, PAD는 수요일(7.20) 성명서를 발표하여, '쁘레아위히어 사원'에서 군대철수를 명령한 ICJ의 판결을 전면적으로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PAD의 대표적 지도자인 언론거물 손티 림텅꾼(Sondhi Limthongkul)이 읽어내려간 성명서는, "태국 영토 내"(사원 주변 지역을 지칭)에서 캄보디아 주민들이 생활하고 도로를 건설하는 상황에서 태국 군이 자국 영내 안쪽으로 더욱 후퇴해야 한다는 것은 국익을 해치는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국은 ICJ의 명령, 즉 군대의 철수를 거부하고,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들과 더불어 캄보디아 군대를 자신들의 국가로 돌아가게 만들어 양국간 관계를 복원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게다가 PAD의 또 다른 주요 지도자인 짬렁 시므앙(Chamlong Srimuang) 예비역 육군 소장 역시 태국 군을 비난했다. 그는 군이 조국의 주권을 수호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면서, 군대가 ICJ의 명령에 순응하여 철수를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태국 사회의 극우 사이코패스들이 이번 ICJ 명령을 기회로 삼아 또 다시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나타내려 하고 있다. [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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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Bangkok Post) 태국 언론 재벌로 "옐로셔츠"(PAD) 운동의 핵심 지도자인 손티 림텅꾼. 태국의 "옐로우셔츠" 운동은 <우리는 국왕 폐하를 위해 싸운다>는 구호 겸 결론 하에 --- 심지어는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않는 자국민들의 목숨조차 희생시킬 수 있다든가, 자격을 갖춘 국민들에게만 투표권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 어떠한 주장도 서슴지 않으며, "2008년 국제공항 점거사태"와 같은 준-테러행위도 감행하는 극단적 프린지 성향을 갖고 있다. 과거 '청렴한 방콕시장'으로 유명했던 예비역 육군 소장 짬렁 시므앙과 함께 손티 림텅꾼은 옐로셔츠 세력을 대표하는 지도자이다. 하지만 옐로셔츠 세력이 가진 운동의 실제적인 원동력은, 태국 사회가 오랜 기간 보호해왔던 자신들(왕실, 군부, 임명직 관료와 사법부, 중산층, 보수 민족주의 이념층)의 봉권적(=왕권적) 기득권 구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크세] |
* 안내: 본 정보는 '크메르의 세계'가 선정하는 <한국 언론인을 위한 실증적 방법론에 따른 기사쓰기의 모범사례집>에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이례적으로 태국 상황에 대한 왜곡된 논조의 기사를 남발 중인 <조선일보> 소속 기자들에게는 더욱 좋은 교재가 될 것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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