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서면 거리. 부산지하철 1호선 서면역과 범내골역 사이 이면도로 왕복 4차선 900m 길은 말 그대로 '쓰레기장'이었다. 담배꽁초가 곳곳에 널려 있었고, 인도엔 쓰레기를 담은 검정 비닐봉지 수십 개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곳곳에 방치된 토사물과 음식 쓰레기엔 비둘기들이 날아들었다. 바람이 불자 성인 업소·대부업체 전단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위로 '부산의 중심 거리가 이렇게 더러워서야 되겠습니까?' '청소 안 하겠습니다'라고 적힌 구청 현수막이 나부꼈다. 상인 이경애(66)씨는 "구청이 오늘로 3일째 거리 청소를 안 해주고 있다. 죽을 맛이다"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쓰레기 처리 선진국'이다. 2013년 기준 전국 3488개 읍·면·동 중 99.9%가 쓰레기종량제 봉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OECD는 한국의 쓰레기 재활용률(2006년 기준)이 49%로 회원국 중 1위라고 밝혔다. 2위권보다 15% 포인트나 높았다. 영국 BBC는 이를 '재활용 혁명'이라고 했다. 이렇게 쓰레기를 잘 치우는 나라에서 부산진구 같은 쓰레기 파동은 왜 일어난 것일까. 전문가들은 시민들이 자칫 무관심하고 행정력이 제 기능을 못할 경우, 이런 사태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지난 17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 거리에 ‘청소 안 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위). 부산의 대표적 번화가인 서면 거리의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지자 부산진구는 지난 14~16일 거리 청소를 전면 중단했다. 아래 사진은 사흘 동안 거리에 방치된 쓰레기들이다. /원선우 기자
시민의식 부족인가 지자체의 오만인가
'부산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서면 거리. 유명 호텔과 백화점을 비롯해 성형외과·안과·피부과 병원, 음식점·유흥주점 등이 몰려 있어 부산 최대 상권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하루 유동 인구 36만여명으로 관광 1번지로도 불린다. 하지만 이곳은 몇 년째 불법 전단 등 쓰레기 무단 투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참다 못한 부산진구는 이달 14~16일 사흘간 청소 중단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놨다. 하계열 구청장은 "계속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면 거리가 어떻게 되는지 시민들이 직접 느끼고 경각심을 갖게 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부산진구는 2012년 9월에도 하루 동안 서면 일대 청소를 중단한 적이 있다. 청소 중단 나흘째인 17일 오전 10시, 부산진구는 공무원과 시민단체 회원 300여명을 동원해 대청소를 벌였다. 혼돈 그 자체였던 이 거리가 질서를 되찾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0분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지자체가 '청소 파업'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지난 2~6일엔 서울시 양천구 목동 한 공터에 2.5m 높이 쓰레기산이 생겨났다. 닷새 동안 양천구 전역에서 발생한 쓰레기 500t이 이곳에 집결했고, 인근 주민은 악취에 시달렸다. 서울시가 양천구에서 발생한 쓰레기에 대해 '소각장 반입 정지'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달부터 각 구에서 나오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검사해 재활용품이 3% 이상 나오는 구에 대해 소각장·매립지 반입을 금지하는 벌칙을 내린다.
지자체들은 이런 충격요법이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산진구 관계자는 "서면에서 나오는 하루 평균 쓰레기 수거량이 4t인데, 3일 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다가 수거를 해보니 쓰레기는 3t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청소 파업을 한 결과 쓰레기가 3분의 1로 줄었다는 것이다. 서울시 역시 "앞으로도 분리수거를 잘 하지 않는 구의 쓰레기는 받지 않고,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는 개인에게도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들은 "지자체가 일단 쓰레기는 치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옥연(49)씨는 "사람들이 '이왕 더러워졌으니 상관없다'는 식으로 침을 뱉고 꽁초를 내던진다"며 "쓰레기가 줄었다는데 그건 내놔도 안 가져가니 상인들이 아예 안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양천구에 내린 벌칙 역시 어설픈 시행으로 애꿎은 목동 공터 인근 주민들만 악취에 시달렸다. 서울시는 애초 양천구 전역의 집 앞 쓰레기를 닷새 동안 치우지 않음으로써 구민 전체가 고통을 분담하도록 했다. 하지만 양천구가 임시방편으로 구내 쓰레기를 모두 한곳에 모아놓자 공터 인근 주민들만 피해를 본 것이다. 목동 주민들은 "쓰레기 가지고 주민과 전쟁을 하자는 거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신상철 박사는 "충격요법은 단기간 반짝 홍보 효과는 거둘지 몰라도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모두의 책임이다인천 수도권 매립지는 당초 2016년 쓰레기 매립이 완료될 예정이었다. 분리수거가 잘 이뤄지면서 현재 매립 면적의 40% 정도가 남아 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면 어떤 성과가 나오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지자체가 청소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기보다 할 일은 하되 강력한 단속과 시민 참여 유도를 진정성 있게 밀고 나갔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광진구 건국대 앞 거리는 2012년까지 부산 서면 거리와 다름없는 쓰레기 천국이었다. 광진구는 청소 파업 대신 불법 전단과의 전쟁을 선언하고 경찰과 협력해 전단 인쇄 업자까지 검거하며 문제의 뿌리를 뽑았다. 책임을 시민에게 돌리지 않고, 문제의 원점(原點)을 찾아 철저하게 해결하려 한 결과다.세종대 기후변화센터 김광임 박사는 "가정집이 많은 곳과 유흥주점이 모인 곳은 쓰레기가 나오는 양상도 다르고,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의 의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지역 특성을 잘 분석한 뒤 맞춤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