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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시는 마음(겔 11:19-20)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마음은 가지각색입니다. 금방 금방 달라집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러운 사람이 있고, 마음이 온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강퍅한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마음이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해 있습니까?
전쟁 중에 한 여인이, 군인인 남편을 따라, 캘리포니아 사막 끝까지 왔습니다. 남편은 그녀가 오는 것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과 어려움을 함께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인디언 마을 근처의 쓰러져 가는 오두막집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그곳 생활은 생각한 것보다,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환경이 사막인지라, 온도가 40도를 오르는 날씨가 계속되었습니다. 바람은 쉴새 없이 불어, 모래가 쌓이곤 하였습니다. 또한 인디언들과 영어가 통하지 않았고, 근처에 이웃도 없어, 그녀에게 하루하루는 지겨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한번은 남편이 작전 명령을 받고, 2주 동안, 사막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외로움과 두려움은 극에 달했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해,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편지를 남편에게 보냈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짤막한 두 줄의 답장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이 감옥 창살을 통해 바깥을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땅을 보고, 다른 사람은 별을 보았단다”
그녀는 편지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땅을 보지 않고, 하늘의 별을 보기로 했습니다. 인디언들을 사귀기 시작했고, 그들에게서 옷감 짜는 법과 도자기 굽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녀는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 친숙해지기 시작했으며, 그들과 정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사막은 더 이상 황량하고, 쓸쓸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아름답고, 기묘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선인장과 유카와 조수아 나무를 연구했습니다. 그녀는 그곳의 태초 생태계에 관한 연구로,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변했습니까? 사막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디언들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이 여인의 마음만이 바뀐 것입니다. 여인의 마음이 바뀌자 세상이 바뀐 것입니다. 마음을 바꾸니, 운명이 바뀐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은 크게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가 달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를 원하실까요?
악한 마음을 품으면, 악한 사람이 됩니다.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됩니다.
현대인들은 예전에 비해,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여, 편리한 생활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보다 더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잠언 18:14절을 보면,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마음 먹기에 따라, 병이 생기기도 하고, 병이 낫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마음에 따라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벨론에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바벨론의 침략을 당하기 전, 예레미야 선지자를 비롯한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며, 우상 숭배에 빠져있던 백성들에게, 빨리 회개하라고 외쳤지만, 그들은 전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외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만 믿다가, 결국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폐허가 된 정든 고향 산천을 뒤로 하고, 낯선 이국 땅으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가 되어 하루하루를 고된 노역 가운데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때,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와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발 강가에서, 통곡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예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마음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이며,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 잡혀 끌려와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스겔 선지자의 선포는 참으로 소중한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들이 가져야할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마음을 주실까요?
첫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한 마음입니다.
1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아멘.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라는 선교단체가 있습니다. 이곳의 선교사들은 신앙이 투철할 뿐 아니라, 어학의 재능으로 봉사합니다. 남미나 아프리카의 소 부족들이 모여 사는 곳, 쓰는 말은 있어도, 글이 없는 곳에, 직접 언어를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그 언어로 성경을 번역합니다. 한 선교사가 마태복음을 번역하다 죽으면, 다른 선교사가 다시 그 곳에 가서 마가복음을 번역하고, 또 죽으면 다음 선교사가 누가복음을 번역합니다.
한번은 그 곳에 들어간 선교사가 성경을 번역하다 “순종”이라는 단어의 번역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떤 말을 순종이라는 단어로 번역할까, 고민하던 중, 마을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심부름을 꼭 해야 된다는 뜻으로, 한 가지 말을 계속 아들에게 강조합니다.
“그 일을 꼭 해야 된다. 네 모든 마음으로”
심부름을 가는 아들의 뒤에서, 아버지는 계속 말합니다. “네 마음을 나누지 말라”
그 모습을 보고, 선교사는 순종이라는 단어를 “마음을 나누지 않고, 모든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마음을 나누지 않고, 모든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나누지 않는 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한 마음”은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입니다. 하나로 뭉쳐진 마음입니다. 여러 마음이 아니라, 하나로 똘똘 뭉쳐진 마음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속한 믿음의 권속들은, 그 마음이 하나가 되고, 일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마음이 하나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한 마음이 되려면, 다른 이에게 맞추는 희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올바른 일군이 되려면, 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한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의견이 분분하고, 주장이 많으면, 일치되지 못합니다. 한 마음이 되지 못합니다. 한 마음, 일치하는 마음이 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분열이 있고, 미움과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역사 하시지 않습니다.
옛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각자의 의견이 분분하고, 주장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가 되고, 일치한 마음이 이루어질 때, 기적의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회복의 역사, 부흥의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전도서 4:12절을 보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너와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될 때,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43-47절을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아멘.
마음을 같이 한다는 것은, 마음이 하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하나된 마음입니다. 나누어지지 않는 일치된 마음, 하나된 마음입니다. 마음이 모아질 때,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마음껏 헌신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먼저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된 교회는, 사랑이 넘칩니다. 평안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하나가 된 교회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하고, 힘쓰고, 애를 쓴다고 해도, 분열이 있고, 미움과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서는, 주님이 역사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된 마음을 우리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받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것을 뿌리치면 안되겠지요. 당연히 받아야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한 마음, 하나된 마음, 일치한 마음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새 영이 함께 하는 마음입니다.
19절 말씀입니다. 함께 다시 읽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아멘.
“내가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새 영”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의 심령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나를 주관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들은, 주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전혀 기도에만 힘쓰고 있었습니다. 그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주의 약속은 그 말씀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법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역사하시길 원하십니다. 우리 심령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새 영을 주시겠다고, 성령님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의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성령을 받은 후의 베드로는, 주의 말씀을 전하되 담대히 전하였고, 그 말씀을 듣던 무리들은 삼천 명씩이나 회심하고,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능력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우리의 삶에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모든 질병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은 약속된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통해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성령충만을 통해서 진정한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1:13절을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못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받지 못하는 이유는, 구하지 않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18절을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는 이미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이 계시므로, 우리는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성령충만함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마 약속하신 것을 뿌리치면 안되겠지요. 당연히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함을 구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마 약속하신 것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19절 말씀입니다. 함께 다시 읽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아멘.
간디의 전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종차별이 심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도시에서, 간디와 장로교 선교사 찰리가 함께 길을 걸어갑니다. 갑자기 불량배가 나타나, 그들의 길을 가로 막습니다. 찰리 목사는 도망갈 궁리를 합니다. 이때 간디는 묻습니다.
“성경에 원수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찰리는 그것은 비유적인 표현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간디가 다시 말합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이 용기를 보여야 한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리는 사람을 향해 기꺼이 한 대, 아니 여러 번이라도 얻어 맞을 용기 말입니다. 그렇게 행동한다면, 인간 본연의 성품에서, 미움이 줄어들고, 대신 존경심을 키우는 무언가를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것을 찾아내신 것 같아요. 나도 그 무언가 살아 움직이는 걸 보았습니다”
결국 영국은 간디의 온유함과 부드러움 앞에 손을 들었습니다. 물론 간디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가르침, 특히 산상수훈을, 도덕적 차원에서 받아들여, 삶 속에 실천한 인물이었습니다. 훗날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을, 미국에 그대로 적용한 인물이 마틴 루터 킹 목사입니다. 온유한 투쟁을 통해 간디는 인도의 땅을 돌려 받았고, 킹 목사와 흑인들은 미국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실 때, 우리의 마음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돌 같은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부드러운 마음의 사람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마치 대패질을 잘한 나무 표면과 같은 성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딱딱한 길바닥처럼 굳은 땅에, 농사를 짓기 위하여, 농부는 그 밭을 갈아야 합니다.
굳은 땅을 갈아 엎어서, 고랑을 내고, 돌맹이는 골라서 밖으로 던져 내고, 굳은 땅, 뭉쳐진 흙은 잘게 잘게 부수어서, 부드럽게 갈아냅니다. 거름도 주고, 비료도 주고, 골고루 갈아서,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심령도 굳은 것을 제하고 부드럽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의 사람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감싸줍니다. 부드러운 사람의 말과 행동 속에는 상대방을 찌르는 가시가 없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의 사람은 따뜻한 용서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상대방의 나와 다른 모습, 나와 다른 행동,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하려 합니다. 부드러운 마음의 사람은 강압적으로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깨닫도록, 가르치고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부드러운 마음의 사람과 함께 멍에를 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개혁이 필요하다고 모두가 말을 합니다. 그러나 고쳐야할 부분은, 제도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 속에 계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을 변화시켜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고,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51:10절에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내가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
주님이 주시겠다고 하시므로, 받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이 주시겠다는데, 못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마 약속하신 것을 뿌리치면 안되겠지요. 당연히 받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7절을 보면, “예수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능력의 주님, 권능의 주님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 막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주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을 못 받는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받아 능력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멘.
한 청년이, 교통사고로 큰 충격을 받아, 두 눈의 안구를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받을 때, 의사 선생님이 말합니다. “출혈이 심하여 수술은 하지만, 안구가 빠져 앞으로는 볼 수 없을 것일세”
이때 청년은 소리를 버럭 지릅니다.
“장님으로 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지요. 수술하지 마시오. 이대로 죽을 것이요”
그러나 의사 선생님은 말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생명은 소중한 것이야. 어려움을 극복해야지”
그리고 강제로 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습니다. 며칠 후 붕대를 풀면서, 의사 선생님은 말합니다.
“축하하네. 실명은 했지만 자네를 위해 안구를 기증해 주신 분이 있어 눈 하나는 볼 수 있을 것 같네”
청년은 또 소리를 지릅니다.
“애꾸로 살기보다는 죽는 게 낫지”
의사 선생님이 청년을 크게 책망을 합니다.
“자네를 위해서 멀쩡한 눈을 빼준 고마운 분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네. 무슨 망령된 행동인가?”
의사 선생님이 청년의 붕대를 풀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뿌옇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점점 환하게 보이는데, 눈앞에는 서 있는 어머니가 보입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눈 하나가 없습니다. 청년은 자신을 위해, 안구를 빼어준 어머니의 사랑에 큰 감격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한평생 절대로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그는 순종하지 못했던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여러분! 불평하는 마음으로 사십니까? 순종하는 마음으로 사십니까?
20절 말씀입니다.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여기의 “따르며”와 “행하게 하리니”는 순종하는 마음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 있는 까닭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는데,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의 손에 붙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마음을 가질 때, 다시 자유를 허락하시겠다고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았습니다. 힘스고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를 빌려, 따라온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신 후, 베드로를 보시더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았더니,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랐습니다. 세베대의 아들로서 베드로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습니다. 그들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밤이 맞도록, 애쓰고 힘쓰며, 수고하여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물을 내렸더니, 배에 고기가 가득 채워지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순종하였더니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구약 학자 베이커의 고백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돌담을 뛰어 넘으라 하시면 나는 그대로 순종할 것입니다. 뛰는 것은 내가 할 일이고 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홍해를 건너는 순종이 모세의 의무라면,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루터는 “이적을 행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건강하고 희망 있는 교회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한 마음으로, 성령 충만한 마음으로, 부드러운 마음으로, 순종의 마음으로, 아름다운 교회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힘쓰고 노력한다고, 우리의 마음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지식을 우리의 머리에 가득 채운다고, 우리의 마음이 금방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 나누어져 있던 우리의 마음이, 한 마음이 될 것입니다.
돌 같은 딱딱한 마음, 굳어버린 마음이, 살처럼, 피부처럼 부드러운 마음이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불신앙과 불순종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한 마음, 성령충만한 마음, 부드러운 마음, 순종하는 마음을 소유함으로,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셔서,
분리된 마음이, 하나되게 하시고, 나누어진 마음이 일치되게 하여 주옵소서.
딱딱한 마음이 부드러워지게 하시고, 불순종의 마음이 순종의 마음으로 변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