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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론] 살사 음악 (5) - 역사 ㊥
6.3. '살사'와 쿠바 대중음악의 결별 (1970년대)
아이러니한 점은 1970년대 쿠바(Cuba)의 대중음악이 북미의 재즈(jazz), 락(rock), 펑크(funk: '펑키'[funky]라고도 불림)의 요소를 (정작 미국에서 발전한) '살사'보다 훨씬 더 많이 포용했다는 점이다. '살사'의 경우 여타 장르나 비-살사 스타일을 어떤 곡의 브릿지(bridge: 연결부) 부분 정도에서만 겹쳐두는 정도였지만, 1970년대 이후 쿠바 대중음악은 미국의 '재즈'와 '펑크'를 참다운 의미의 결합이라고 할 정도로 완전하게 통합시켰다. 쿠바 음악의 이러한 변화는 후안 포르멜(Juan Formell: 1942~2014)에서 시작됐다. 포르멜은 '오르퀘스타 레베'(Orquesta Revé)(1968년 창단)의 단장 출신으로서, [쿠바 혁명(Cuban Revolution: 1953~1959) 이후 세대에서 쿠바 최고의 음악 그룹으로 일컬어지는] '로스 반 반'(Los Van Van)(1969년 창단)의 창립자이자 2014년 사망 당시까지도 단장이었던 인물이다. 포르멜은 미국의 대중음악을 '클라베'(clave) 리듬을 토대로 하는 쿠바의 음악적 요소와 접목시켰다. 이에 관해 케빈 무어(Kevin Moore)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이전의 쿠바 음악에선 들어볼 수 없던 화음으로서, 미국 대중음악에서 차용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쿠바 대중음악이 그때까지 충실하게 고수해왔던 화음에 관한 도식적 제한을 산산히 부셔놓았다."(주91)
[라틴 재즈(Latin jazz)의 슈퍼 밴드] '이라케레'(Irakere)는 '비밥'(bebop)과 '펑크'(funk) 장르를 바타 드럼(batá drums) 및 여타 아프로 큐반(Afro-Cuban: 서-아프리카계 쿠바인) 민속음악적 요소들과 퓨전시켰다. 1970년대 쿠바는 '송고'(songo)의 시대였다. '로스 반 반'이나 '오르퀘스타 리뜨모 오리엔딸'(Orquesta Ritmo Oriental: 동부 리듬 밴드) 같은 그룹들이 싱코페이션(syncopation: 당김음. 속칭 '엇박자')이 많이 걸리고, '룸바'(rumba)의 영향을 받은 차랑가(charanga: 현악기 기반 편성 악단) 형식의 음악을 연주했다.
1970년대의 '살사' 음악은 쿠바 대중음악의 발전에서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주목할만한 예외가 있다면 밴드 '티피카 73'(Típica 73)의 소니 브라보(Sonny Bravo: 1936년생) 정도가 있다. 브라보는 당시 동시대의 쿠바 차랑가 밴드들이 연주하던 곡들을 '살사'로 편곡했다. 1979년 '티피카 73'은 <티피카 73 엔 꾸바>(Típica '73 en Cuba) 앨범의 레코딩을 위해 쿠바의 수도 하바나(Havana: 아바나)를 방문했는데, 이 앨범은 '티피카 73'과 쿠바 뮤지션들의 콜라보로 이뤄졌다.
주91: Moore, Kevin (2011). "The Roots of Timba, Part II; Juan Formell y Los Van Van." Timba.com. Web. http://www.timba.com/encyclopedia_pages/juan-formell-y-los-van-van.
(동영상) '쿠바의 비틀즈'로 불리기도 하는 음악 그룹 '로스 반 반'은 창립자 후안 페르멜이 사망한 후에도 꾸준한 활동과 새로운 곡들을 발표하고 있다.
(동영상) '이라케레'는 바타 드럼을 자주 활용하면서 사이키델릭한 재즈를 들려준다.
6.4. 1980년대 : 쿠바 음악의 재발견과 '살사'의 국제적 확산, 그리고 '살사 로만티카'
[1980년 4월 15일부터 같은 해 10월 31일 사이에 있었던] 마리엘 보트리프트(Mariel boatlift: 쿠바 정부가 정치적 망명자들의 출국을 일시적으로 허용하면서 마리엘 항구를 개방했던 사건)로 총 12만5천명의 쿠바인 난민들이 미국 땅(주로 플로리다[Florida])을 밟았다. 난민 중에는 뮤지션도 많았는데, 그들은 미국에서 1950년대 쿠바 음악처럼 생각되는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마치 1960년대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쿠바 출신 콩가연주자(conguero) 다니엘 폰세(Daniel Ponce: 1953년생)는 당시의 느낌을 이렇게 요약했다.
"쿠바인들은 뉴욕에 도착했을 때, 모두들 '이거 뭐야, 이렇게 올드한 음악이라니!'라고 말했다. [1950년대와 비교해서] 음악적 감성과 편곡에 전혀 변화가 없었다."(주92)
근본적 측면들에서 '살사' 음악은 1950년대 말 쿠바 음악 사운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쿠바 뮤지션들의 유입은 '살사'보다 '재즈'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마리엘 보트리프트' 이후 보다 현대적인 쿠바 음악 스타일에 대한 인식도 더욱 명확해졌다. [뉴욕 출생의] 티토 푸엔테(Tito Puente: 1923~2000)는 '이라케레'가 작곡한 <바깔로 꼰 빤>(Bacalao con pan)을 녹음했고(1980년), [파나마(Panama) 출신 싱어 송라이터] 루벤 블라데스(Rubén Blades: 1948년생)는 '로스 반 반'의 <무에 베 테>(Muevete)를 리메이크했다(1985년). '바타쿰벨레'(Batacumbele)나 '자페로코'(Zaperoko) 같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출신 밴드들은 '송고' 장르를 완벽하게 흡수했다. '바타쿰벨레'의 리더는 앤젤 '카체테' 말도나도(Angel "Cachete" Maldonado)였고, 젊은 지오바니 히달고(Giovanni Hidalgo: 1963년생)도 함께 했는데, 강력한 '재즈'의 영향 하에서 '송고' 음악을 관악기 기반 편성으로 재해석했다.
(동영상) '바타쿰벨레'의 1980년작 <셀 레 베>(Se le ve)
1980년대 초반의 뉴욕에는 '살사' 댄스음악과 '재즈' 모두를 연주할 수 있는 신세대 뮤지션들이 출현하고 있었다. 이 시기는 '재즈'와 쿠바 리듬의 통합이 새로운 차원에서 진행된 시대였다. 매니 오퀜도(Manny Oquendo: 1931~2009)의 밴드 '꼰훈또 리브레'(Conjunto Libre)에서 콩가와 트럼펫을 연주했던 제리 곤잘레스(Jerry González: 1949년생)와 베이스를 연주했던 앤디 곤잘레스(Andy González: 1951년생) 형제는 이 시대의 창의력과 활력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제리 곤잘레스는 1979년 동생 앤디와 더불어 자신의 그룹 '포트 아파치 밴드'(Fort Apache Band)를 결성했는데, 이 밴드는 '라틴 재즈'의 새로운 스탠다드를 수립시켰다. 티토 푸엔테도 같은 시기에 '라틴 재즈' 쪽으로 활동을 전환하여 그의 여생 전체를 바쳤다. 에디 팔미에리(Eddie Palmieri: 1936년생)도 1989년 무렵부터는 주로 '라틴 재즈'만 연주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동영상) 제리 곤잘레스의 1988년 앨범 <룸바 파라 몽크>(Rumba Para Monk) 수록곡 "몽크스 무드"(Monk's mood).
[초창기부터 확산됐던 푸에르토리코, 콜롬비아(Colombia), 베네수엘라(Venezuela) 외에도] 1980년대에 '살사' 음악은 니콰라과(Nicaragua), 아르헨티나(Argentina), 페루(Peru), 그리고 유럽과 일본 등지로도 확산돼나갔고, 새로운 해석의 스타일들을 만들면서 다양성도 확대됐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오스카 드레온(Oscar D'León: 1943년생, 우측사진)은 '살사' 장르의 대스타가 됐다.
콜롬비아에서는 신세대 뮤지션들이 자국 고유의 '쿰비아'(cumbia) 및 '바예나또'(vallenato) 장르를 '살사'와 접목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콜롬비아의 이러한 퓨전 전통은 1960년대 '뻬레고요와 꼼보 바까나'(Peregoyo y su Combo Vacana)의 음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부터 콜롬비아 '살사'를 대중화시킨 것은 호에 아로요(Joe Arroyo: 1955~2011)와 그의 밴드 '라 베르다드'(La Verdad)였다.(주93) 콜롬비아의 가수 겸 작곡가 호에 아로요가 유명해진 것은 1970년대였지만, '콜롬비아 살사'(Colombian salsa)의 대표 주자가 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아로요는 콜롬비아의 편곡자 '프루코' 에스트라다(Julio Ernesto "Fruko" Estrada Rincón) 및 그의 밴드 '프루코 이 수수 떼소스'(Fruko y sus Tesos: 프루코와 '로스 떼소스')와도 오랜 기간 함께 했다.(주94) 콜롬비아의 지방도시 칼리(Cali, 깔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살사' 밴드 '그루뽀 니체'(Grupo Niche)는 라틴 아메리카(Latin American) 전역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루뽀 니체'의 히트곡 중 하나인 <깔리 빠창궤로>(Cali Pachanguero: 흥겨운 칼리)(1989년)는 분명하게 '클라베' 리듬으로 편곡됐다.(주95)
(동영상) '그루뽀 니체'의 <깔리 빠창궤로>.
(사진) 콜롬비아 서부의 중심도시 칼리의 야경. 칼리에서 '살사'는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살사'가 다른 나라들에서 성장하고 번성하면서, '살사' 뉴욕이 갖고 있던 '진앙지'로서의 위상은 시대적, 공간적 의미 모두에서 상실돼갔고, 그에 따라 뉴욕의 '살사' 음악은 지역적 감수성을 채택하면서 아프로-큐반적 토대에서 이탈했다.
1980년대는 다양화의 시대였다. '살사'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보다 달콤하고 감미로운 '살사 로만티카'(salsa romantica) 및 그 사촌 장르인 '살사 에로티카'(salsa erotica)로 진화했다. '살사 로만티카' 장르는 사랑과 로맨스에 관한 노랫말만 다뤘는데, '살사 에로티카'는 그보다도 더욱 노골적이었다. '살사 로만티카'의 원조는 도미니카 공화국(Dominican Republic) 출신의 호세 알베르토(José Alberto: 1958년생)가 1984년 루이 라미레스(Louie Ramirez: 1938~1993)를 프로듀서로 발표한 앨범 <노체스 깔리엔떼스>(Noches Calientes)로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살사 로만티카'가 낭만적인 가사, 리듬보다 멜로디의 강조, 타악기의 브레이크(break)와 코드 변화를 자주 사용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나가자, 이 장르에서 일군의 가수들이 등장하여 더욱 폭이 넓어진 청중들을 가질 수 있었다.(주99) 일각에서는 '살사 로만티카'가 '살사'를 리듬 측면에서 보다 희석시킨 버전으로 보기도 한다. 비평가들은 특히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의 '살사 로만티카'를 보다 상업화되고 희석된 형태의 라틴 팝(Latin pop)이라고 보았다. 즉, 도식적이고 감성적인 러브 발라드에 단순히 아프로-큐반 리듬을 곁들인 것이라서, 고전적 '살사'에서 보여줬던 화려한 즉흥연주라든지, 일상생활과 사회, 정치적 메세지를 전하던 전통적인 가사 형식 같은 요소들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살사 로만티카' 가수들의 홍보 전략은 음악적 자질보다는 젊음과 섹스 어필에 더욱 치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살사 로만티카'는 '살사 몽가'(salsa monga: 축 늘어진 살사[limp salsa])라는 비하적 명칭으로도 불렸다. 반면, 정통 '살사'는 '살사 고르다'(salsa gorda: 기름진 살사)나 '살사 두라'(salsa dura: 단단한 살사[hard salsa])라고 불렀다. 아마도 '살사 로만티카' 장르에서 가장 다작을 내놓은 작곡가는 파나마 출신의 오마르 알판노(Omar Alfanno)일 것이다. 그는 '살사 두라' 작곡가 조니 오리츠(Johnny Ortiz)를 통해 음반업계로 진출했다. 그 밖에 중요한 작곡가로는 팔머 헤르만데스(Palmer Hernandez)와 조르제 루이스 필로토(Jorge Luis Piloto)가 있다. '살사 로만티카' 장르의 가장 유명한 프로듀서로는 안토니오 '토니' 모레노(Antonio "Tony" Moreno), 치노 로드리궤스(Chino Rodriguez: 1954년생), 세르지오 조르제(Sergio George: 1961년생), 훌리오 '군다' 메르세드(Julio "Gunda" Merced) 등이 있다.
(동영상) '살사 에로티카' 장르의 대표곡 중 하나인 랄로 로드리궤스(Lalo Rodríguez: 1958년생)의 <Ven, Devórame Otra Vez>.
한편 많은 수의 라티노(Latino) 젊은이들이 미국의 '락' 음악에 매료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살사'는 인기를 잃어갔고, 뉴욕과 푸에르토리코의 라티노 사이에선 도미니카 공화국의 '메렝게'(merengue) 장르가 인기를 얻으면서 '살사'의 세력은 더욱 약화됐다.(주100)
1980년대에는 '살사 로만티카' 같은 '살사'와 '팝'(pop)의 퓨전 뿐만 아니라 '소울'(soul), '알앤비'(R&B, RnB), '힙합'(hip hop) 음악 등과의 접목도 활발했다. 아프로-큐반 리듬의 원칙이 희석된 것은 일부 문제들을 유발시켰다. 크리스토퍼 워시본(Christopher Washburne)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편곡자들은 이런 음악 스타일들을 '살사'의 포맷에 맞추고자 악전고투하면서, '클라베의 불일치'(clave discrepancies)나 충돌이 다양하게 발생했고, <깔리 빠창궤로>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살사' 스타일이 문화적으로 도욱 다양성을 띄면서 뉴요리칸(Nuyorican: 뉴욕의 푸에르토리코인)과 푸에르토리코의 전통주의자들은 종종 '클라베'를 푸에르토리코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요소나 본질적인 요소로 강조하는 방식으로 반응하곤 했다."(주101)
주92: Gerard 1989 p. 6에 인용된 Daniel Ponce의 말.
주93: Steward 2000, pp. 379, 502.
주94: Steward 2000, pp. 493–497.
주95: Washburne 2008 p. 182-183..
주96: "Metrocuadrado.com".
주97: "Cali: Capital Mundial de la Salsa". salsa.ch.
주98: "Cali ratificó ser la capital mundial de la salsa"(스페인어). HSB Noticias. 2017-05-13.
주99: Steward 2000, p. 493에 나타난 스튜워드의 주장에서 핵심을 Leymarie 2003, p. 287도 재확인했다. 그렇지만 레이마리는 <Noches Calientes>를 'Ray de la Paz'를 보컬로 하는 Ramirez의 곡으로 묘사하면서, Alberto는 언급하지 않았다.
주100: Manuel 1990, p. 49.
주101: Washburne 2008 p. 190.
6.5. '살사 쿠바나', 그리고 '팀바'의 탄생
1980년대 중반, 마침내 '살사'가 쿠바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살사 쿠바나'(Salsa Cubana: 쿠바 살사)의 발전과정은 완전히 달랐다. 케빈 무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이 문제에 관해 인터뷰해본 쿠바 사람들 모두가 베네수엘라의 '살사' 스타 오스카 드레온의 1983년 쿠바 공연을 중요하게 말했다. 1980년대 중반 쿠바에서는 루벤 블라데스의 앨범 <시엠브라>(Siembra: 파종)를 쿠바 섬 전역에서 들을 수 있었고, '로스 반 반'의 마이토 리베라(Mayito Rivera)에서부터 마놀린 '엘 메디꼬 데 라 살사'(Manolín "El Médico de la salsa")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연주(guías)과 노래(coros)에 그 곡을 참조했다. 마이토 리베라는 1997년에 발표한 곡전적인 곡 <레발라 아 뚜 바실론>(Llévala a tu vacilón)에서 자신의 연주에 블라데스의 <플라스티코>(Plástico)를 차용했고, '엘 메디꼬 데 라 살사'도 쿠바를 떠나기 전에 남긴 마지막 걸작 <디오스 사베>(Diós sabe)에서 <플라스티코>의 주요 부분, 즉 ' 'se ven en la cara, se ven en la cara, nunca en el corazón' 부분을 차용했다."(주102)
드레온의 순회 공연 이전의 쿠바 뮤지션들은 대부분 '살사'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살사'가 쿠바 음악의 부정적 모방품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레온의 공연 이후 무언가가 변했다. 그 무렵 쿠바의 대중음악은 '살사'가 기반으로 하고 있던 구시대 쿠바 음악을 넘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쿠바에서 짧은 기간 존속한 "살사 열풍"(salsa craze)은 그러한 구시대 음악적 기반을 일부 복원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오르퀘스타 리뜨모 오리엔딸'은 '살사'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봉고(Bongos)와 팀발레(timbales: 팀발레스)의 벨 패턴(bell pattern: 타악기의 기본 연주패턴) 조합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타악기 편곡은 1980년대 말에 출현한 '팀바'(timba: 띰바) 장르의 표준이 됐다.
그룹 'NG 라 반다'(NG La Banda: 엔졔 라 반다)의 앨범 <엔 라 까예>(En la calle)(1989년)는 '포스트-송고 시대'(post-songo era: '송고' 장르 이후의 시대)의 시작으로 기록된다. 이 새로운 음악은 그 이전 10여년간의 쿠바 음악에 비해 '살사'적 특징을 더욱 많이 공유했다. 이전의 '송고' 시대에 타악기 파트들은 '룸바' 장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NG 라 반다'의 곡 <라 엑스프레시바>(La expresiva)는 그와 달리 전형적인 '살사' 벨 패턴을 쿠바 스타일의 팀발레/드럼 킷(drum kit: 세트 드럼) 조합으로 창조적으로 접목시켰다. '툼바도라'(tumbadora: =콩가[conga]) 연주는 '송고' 스타일보다는 '손 몬뚜노'(son montuno) 음악에 기반한 툼바오(tumbao: 아프로-큐반 음악에서 베이스 라인의 진행)의 정교한 변주들로 연주했다. 하지만 '살사'와는 대조적으로, 'NG 라 반다'의 베이스(bass) 툼바오는 전형적인 '살사' 툼바오보다는 리듬적으로나 화음적으로 보다 복잡하고 정교하다. <엔 라 까예>의 브레이크 섹션들은 '살사'보다는 당시의 전통 장르 '와왕꼬'(guaguancó)나 '힙합' 장르와 더욱 공통점이 많다.
(동영상) 'NG 라 반다'의 1989년 앨범 <엔 라 까예>.
일부 쿠바 뮤지션들은 1980년대 말의 '살사 쿠바나'를 언급하는데, 이 용어는 쿠바 음악을 '살사'의 일부로 포용한 최초의 표현이기도 하다.(주24) 1990년대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벰베 레코드사'(Bembe Records)는 자사의 "살사 쿠바나 시리즈"(salsa cubana series)의 일환으로 몇몇 쿠바 밴드들의 CD를 발매했다. 여기에는 '마놀리또 이 수 뜨라부꼬'(Manolito y su Trabuco), '오르퀘스타 서브라임'(Orquesta Sublime), '이라케레' 등이 포함됐는데, 특히 '이라케레'의 CD는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됐다. '크바딕 레코드사'(Qbadic Records)나 '제노파일 레코드사'(Xenophile Records) 같은 여타 북미의 음반회사들도 동시대 쿠바 밴드들의 CD를 발매했다. 그리고 마침내 '살사'라고 홍보될 수도 있는 쿠바 대중음악이 등장할 것처럼 보였다. 1997년 [기타리스트로도 유명한] 라이 크루더(Ry Cooder: 1947년생)가 프로듀싱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BVSC)의 CD가 미국에서 크게 히트했다. 미국은 다시 한번 쿠바 음악을 "발견"했다. 그러나 BVSC 및 그 파생 밴드들의 음악은 대부분 '맘보'(mambo) 이전의 요소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살사'를 연주하지 않았다. BVSC의 파생 밴드로서 예외적인 경우는 '아프로-큐반 올 스타즈'(Afro-Cuban All Stars)였다. '아프로-큐반 올 스타즈'는 미국 투어를 하면서 '살사'와 매우 유사한 사운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절반 정도 브레이크 스타일을 차용했다. BVSC 및 그 파생 밴드는 쿠바에서는 현역 밴드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쿠바 바깥에서만 투어 공연을 하기 위해 모였다.
그 사이 하바나에서 연주하던 밴드들은 '살사'와 덜 유사하면서도 기존의 쿠바 음악과는 확연되는 음악을 확고하게 진화시켜나갔다. 쿠바의 재즈 피아니스트 곤잘로 루발카바(Gonzalo Rubalcaba: 1963년생)는 1980년대에 화성적 이동 패턴의 테크닉을 발전시켰는데, 이것이 1990년대 '팀바' 음악의 피아노 와헤이요(guajeo: 반복적인 멜로디 패턴)들에 차용됐다. 아이작 델가도(Issac Delgado: 1962년생)가 1997년에 발표한 <라 떼마띠까>(La temática)는 '팀바' 피아노의 혁신된 측면들을 보여준다. 일련의 옥타브 연주의 반복은 특징적인 운율적 모호성을 촉발시킨다. 와헤이요 패턴 이동 같은 테크닉들은 비-쿠바인들이 춤을 추려고 할 때 음악적 어려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살사 쿠바나'란 용어는 거의 유지되지 못했고, 결국 선택되지 못했다. 대신 '팀바'라는 용어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여타 주요 '팀바' 아티스트로는 '아수까르 네그라'(Azúcar Negra), '밤볼레오'(Bamboleo), 마놀린 '엘 메디꼬 데 라 살사', '하바나 드프리메로'(Havana d'Primera), 파울리또 FG(Paulito FG), '클리막스'(Klimax),
'푸피 이 로스 퀘 손 손'(Pupy y Los Que Son, Son), '살사 마요르'(Salsa Mayor), '띠엠뽀 리브레'(Tiempo Libre) 등이 있다. 쿠바의 '팀바' 뮤지션들과 뉴욕의 '살사' 뮤지션들은 여러 해 동안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교섭을 했다. 하지만 두 장르는 각기 다른 상태로 남아 있고, 각기 다른 청중에게 호소력을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쿠바 그룹들을 '살사'라는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주102: Moore, Kevin 2011 p. 73. Beyond Salsa Piano v. 11. César “Pupy” Pedroso: The Music of Los Van Van, Part 2. Santa Cruz, CA: Moore Music/Timba.com.
* 시리즈물 바로가기 :
- "[개론] 살사 음악 (1) - 뉴욕에서 탄생한 범-라틴 문화권의 음악"
- "[개론] 살사 음악 (4) - 역사 ㊤ (1940~1970년대)"
- "[개론] 살사 음악 (5) - 역사 ㊥ (1980년대: 쿠바음악과의 이별과 재회)"
- "[개론] 살사 음악 (6) - 역사 ㊦ (아프리카 살사, 최근의 동향)"
- "[개론] '클라베' 패턴 : 아프로-큐반 음악의 핵심 리듬 개념 (1)"
- "[개론] '클라베' 패턴 : 아프로-큐반 음악의 핵심 리듬 개념 (2)"
- "[개론] '클라베' 패턴 : 아프로-큐반 음악의 핵심 리듬 개념 (3)"
- "[개론] '클라베' 패턴 : 아프로-큐반 음악의 핵심 리듬 개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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