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그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마태복음 13:45-46)
좋은 진주는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닙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살만한 가치가 있는 진주를 발견한 사람,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이 말씀 뿐 아니라 성서에 나오는 비유이야기는 모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입니다.-은 하나님 나라를 진주로 비유하며, 모든 것을 다 팔아(전 생애를 다 걸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만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도 읽어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 그것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현재에 맛 본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질 것이요,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교회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미래의 것으로, 사후에 가는 것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삶에 하나님 나라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살 때에는 철저하게 이 세상의 법칙대로 살고, 죽어서나 하나님 나라의 계명대로 살겠다고 합니다.
'진주'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도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이 볼 때에는 손해보는 것 같고, 바보처럼 보여도 그 삶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삶이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지요.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삶을 위해서 과감하게 현재의 경쟁구도 밖으로 뛰어나간 사람들도 많습니다. 불편한 삶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행복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한 때는 그런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철저하게 도시적인 너무나 도시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도시의 삶이 가치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아니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밀려가는 느낌...그런 느낌을 받을 때 삶이 힘들지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견딜만한 아픔을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여전히 꿈을 꿉니다.
그냥 밀려살아가는 것 같아도 내 의식 속에 끊임없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이 꿈꾸고 있음에 감사를 하며, 언젠가는 그런 삶을 꼭 살아가리라 다짐을 합니다.
화원에서 카네이션을 사려다가 원예종 '으아리'꽃을 만났습니다.
외국이름으로 뭐라하는데 저에게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으아리꽃일 뿐입니다.
으아리는 덩굴식물입니다. 덩굴식물의 특징을 끊임없이 위를 향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보면서 '하늘을 향하는 마음'이라는 꽃말을 붙여주었습니다.
상인, 그는 좋은 진주를 구하러 나섯습니다.
좋은 진주에 대한 관심이 좋은 진주를 만날 수 있는 단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좋은 진주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만났지만 전 재산을 다 팔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내 안에 계속 꿈을 꾸려고 합니다.
좋은 진주, 그것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에게 발견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구하십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는 지금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요?
저마다 구하는 것들, 찾는 것들이 아름다운 것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첫댓글 지금 내가 사려고 하는것이 과연 아름다운것인가 생각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