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점성술로 세상 이치를 설파했던 고려 초 책사 최지몽...18과 81의 불가분 관계를 낳다
고려 개국원훈의 천문 점성술 사상으로 태조부터 성종까지 6명의 임금을 모셨던
영암 구림출신 최지몽
최총진을 알 지(知)와 꿈 몽(夢)자를 써 지몽(知夢)이라고 부르게 했던
꿈풀이를 잘 했던 그가
태조 왕건의 총애와 성종 임금에 이르기까지 천수를 누렸던 이 세상의 진정한 공신
저별은 나의 별 저별은 너의 별하며 미래를 살펴줬던
별이 오늘 밤에도 떠오르고 빛난다
별밤지기 소년이 별밤밝기 성인(聖人)으로 세상을 비추다
18세에 태조 왕건의 부름을 받아 성종 대에 8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18에 81을 더하니 99가 되고 구구는 비들기 울음소리다
그가 태어난 곳이 구림인데 그 구자가 비들기 구(鳩)자이니
구구는 81이 아니던가
9와 9를 더하니 18이 됨이라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 200회(2년)
최지몽 일대기는 6300회(63년)
여봐라! 어서 해몽하는 자를 불러들이거라!
“전하! 오늘 일진은 좋은 신수(身數)가 아니옵니다.”
“정사(政事)를 봐야하나 서쪽 방향을 조심하시옵소서!”
“전하! 유성(流星)이 자미원(紫微垣)을 침범했사옵니다.”
“나라에 반드시 역적(逆賊)이 있을 것이옵니다.”
“전하! 장차 반란(叛亂)이 있을 것이오니 침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전하! 객성(客星.유성)이 제좌(帝座.자미원)를 범했사옵니다.”
“숙위군(宿衛軍)을 강화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시옵소서!”
“전하! 닭은 계림을 말하며 오리는 압록강을 뜻합니다.”
“장차 삼한을 통합한다는 의미입니다.”
꿈 해몽을 잘했던 최지몽, 천문 점성술에 조예가 깊었던 최지몽
고려 태조부터 6대 성종까지 왕을 보좌한 그는 누구인가?
후고구려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이 있었다면 고려 초 책사(策士)였던 최지몽(崔知夢.907~987)의‘천심법(天心法)’이 있었다.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최지몽 대역으로 출연한 정동환
별(星)을 보고 점(占)을 치며 세상일을 보게 했던 점술(占術)에 따라 나라와 인생의 진로를 바로 잡아주었던 사천공봉(司天供奉).역술인(曆術人).천문관(天文官)인 최지몽을 2021년으로 다시 모셔본다.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에 별을 좋아하는 별 바라기의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별을 보고 밥을 먹을 정도로 잠에서 별 꿈을 많이 꿀 정도로 땅에 별의 위치를 그려 놓을 정도로 별을 보고자 산에 오를 정도로 오로지 자나 깨나 별을 생각했던
그는 별에 미친 사람인양 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는 또한 꿈 해몽에 관심이 많아 왜 꿈을 꿀까? 꿈은 어떤 의미일까? 꿈에 대한 궁금한 점을 풀어보려고 애를 썼다.
최지몽이 태어난 구림(鳩林)은 역사적으로 천문지리에 능통한 인물들을 배출한 고장이며 마을이 1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 문화의 꽃을 활짝 피어오고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구림하면 별 박사‘최지몽’과 풍수지리 대가‘도선 국사’를 꼽는다. 두 인물들이 이곳 구림에서 태어나 최지몽은 유학적(儒學的) 지식인의 관료로서 도선 국사는 풍수지리(風水地理)의 대가로서 고장은 물론 우리나라의 천문학(天文學)과 불교문화(佛敎文化)를 보급시켰다. 또한 군서 구림마을 부근에 있는 성기동에는 일본 아스카문화를 꽃피운 왕인 박사가 태어난 고장이다. 이 세 인물이 영암의 대표적인 인물로서의 고장을 빛내주고 있다. 왕인 박사는 백제시대(百濟時代)의 인물로서 천자문(千字文)과 논어(論語) 등의 학문에 조예가 깊었으며 도선 국사는 신라(新羅) 말과 고려(高麗) 초의 인물로서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을 통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인물이며 최지몽은 고려 초의 인물로서 별을 통한 천문(天文) 점성술(占星術)에 능통한 훌륭한 인물이다.
한 지역에서 이 세 인물이 배출될 정도로 전남 영암군 군서면 구림 일대는 예사스럽지 않다 싶을 정도로 다른 고장에서 느낄 수 없는 신비스러움을 갖게 한다.
구림마을은 월출산의 산의 기운이 문필봉(文筆峰)으로 모아지면서 영산강(바다)으로 흘러갔다. 산의 기운(氣運)과 바다의 기운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성기동과 구림마을이다.
월출산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다. 바위가 많아 산세의 기운도 그만큼 세다. 산의 정기가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 이 기운의 터에서 나고 자란 분들은 탁월한 기량을 뽐내고 있다. 학자, 기술자, 예술가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체육, 의학 등 여러 방면에서 전문가들이 나오고 있다.
백제의 인물인 왕인 박사는 일본으로 들어가 일본사회를 선진화시켰고 신라와 고려의 인물인 도선 국사는 전국을 돌면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또한 고려의 인물인 최지몽은 천문 점성술가라는 직으로 왕국(王國)과 왕실(王室)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하였다.
저별은 나의 별하며 점을 쳤던 최지몽, 원래 이름은‘최총진(崔聰進)’이다. 그는 원보(元甫.향직 4품)의 휘(諱) 상흔(崔相昕)의 아들이다. 신라 효공왕(孝恭王) 10년 정묘(丁卯)에 태어났다. 그는 대호족의 자손임에도 항상 청렴(淸廉) 검소(儉素)하고 성품 또한 인자(仁者)하고 온화(溫和)한 천성(天性)이 뛰어나는 등 총명(聰明)하여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효성(孝廉誠)이 지극하고 학문(學文)을 좋아했다. 고려 초 대학자인 대광(大匡.향직(鄕職) 2품 이상의 품계) 현일(玄一)에게 천문(天文)과 역술(易術)과 유교의 오경(역경.서경.시경.예기.춘추)인 경서(經書)와 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中庸)의 사서(四書) 등을 사사(師事) 받았다.
대광 현일은 별에 관심이 많은 어린 소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제자로 키우려고 마음먹고 있는 참에 때마침 최총진(지몽)의 아버지 최상흔이 찾아와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제자로 삼아줄 것을 원하자 흔쾌히 천문 점성술에 관한 공부를 하게 했다.
최총진이 별에 미친 사람처럼 관심을 갖자 아버지 최상흔은
“저애가 커서 뭐가 되려고 저렇게 넋 나간 사람처럼 별만 쳐다보고 있을 고!”
“참 희한한 애야!”
“보통 애들하고는 달라!”
“다른 애들은 유교에 관심이 많은데 총진은 다르니!”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일세!”
총진의 행동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던 아버지는 실성한 사람으로 보여 걱정을 했다. 아버지는 총진에게
“총진아!”
“넌 별이 그렇게도 좋으냐!”
“넌 도대체 뭐가 되려고 밤만 되면 나가 별을 관찰하고 그러는 것이야!”
“별이 아름답기는 하다만은 별을 보면 뭐라도 생기는 거란 말이냐!”
“넋 나간 사람처럼 별만 쳐다보는 너를 보니 걱정이 되는 구나!”
아버지는 별에 빠진 총진이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애를 썼다. 말리고 말려봤다.
“별만 쳐다보지 말고 제발 공부 좀 하도록 해라!”
“별은 오늘 못 보면 내일 보면 될 것이야!”
“그러니 그만 보고 집에 들어가거라!”
하자 총진은 어버지의 말이 안중에도 없는 듯 들리지 않았단 듯이
“아버지! 오늘 서쪽 하늘에 유난히 밝은 별을 보았습니다.”
“샛별이라고 하기도 하고 금성이라고 합니다.”
“북쪽 하늘을 보면 일곱 개의 별들이 마치 국자처럼 형성하고 있습니다.”
“칠성(七星)이라고 합니다.”
“칠성은 북쪽 하늘에 떠 있는 별입니다.”
“칠성을 보고 북쪽 방향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일곱 개의 별을 보고 북두칠성(北斗七星)이라고 합니다.”
총진은
“아버지 북두칠성은 에로부터 향해 할 때 길잡이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북두칠성은 인간의 수명(壽命)을 관장하는 별자리라고 본다지요.”
“북두칠성은 모두 2등 내외의 밝은 별입니다.”
북두칠성이 하늘의 목구멍과 혀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총진은 아버지한테 각 별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알고자 하거나 말해주고자 했다.
그리고 아뢰기를
“아버지! 제 꿈은 별 등의 천체를 연구하는 일입니다.”
“천문학을 공부해 천문을 통해 점을 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천체우주기원론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습니다.”
“제가 꿈꾸는 일이옵니다.”
“저의 희망사항입니다.”
“저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저의 마음을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제 생각을 두루 미치게 해주고 싶습니다.”
“반드시 천문 점성술을 공부해 이 나라에 제일가는 천문 점성술사가 되고자합니다.”
그런 총진을 보고 아버지는
“그래 총진아!”
“총진아! 이제 그만 집에 들어 가자구나!”
“네 뜻을 잘 알아들었으니 어서 들어가자!”
“네! 아버지 조금만 더 관찰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총진은 그러면서도 한참동안 별에 눈을 떼지 않았다.
“북쪽 하늘에 일곱 개의 별은 알겠는데!”
“서쪽 편에 반짝이는 저 별은 어떤 별일까?”
“남쪽 하늘에 빛난 저 무리지어 있는 별들은 어떤 의미로 떴을까?”
유심히 관찰을 한 총진은 별의 의미에 대해 궁금 점을 던지며 풀어보고자 아버지의 들어가라는 부탁에도 한참동안 발걸음을 서성이면 생각에 잠겼다.
매일 별만 쳐다보고 있는 최총진에 대해 마을사람들이
“저 애가 커서 점술가가 되려고 한 것 같소!”
하자 아버지는 알고 지낸 천문(天文)과 복서(卜筮)에 정통한‘대광(大匡.향직 2품) 현일(玄一)’을 찾아갔다. 아들에 대한 사실을 알리고 우리 아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를 여쭈었다.
그러자 대광 현일은
“사람은 자기만의 천성을 갖고 태어난 법입니다.”
“노력해서 그 분야에서 뒤늦게 두각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원래 천성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총진은 후자가 아닌가합니다.”
“어쩜 총진이가 별에 관심을 많은 것은 가정환경 탓도 있을 것입니다.”
“원보 어르신께서는 천문에 대해 관심은 없으신지요?”
“별을 보면 궁금한 점이 없으신지요?”
“아름다운 별을 보면 감정이 안 생기는 것인지요?”
“아마 별을 보고 저 별이 어떻다는 것을 생각을 해볼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총진도 그런 마음으로 관찰하게 되고 그 궁금 점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별을 관찰하는 일도 철학을 배우는입니다.”
“과학이기도 하구요?”
“총진은 예사스럽지 않는 애입니다.”
“보통 애들과는 다른 생각과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예시 능력을 갖췄다할까요?”
“총진은 사상과 이념이 남과 다르게 갖춘 애입니다.”
“총진은 분명 천문 점성술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보일 것입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소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천성을 지낸다고 한 말에 공감합니다.”
“제 자식이 천문학적 소질을 타고 났다고 생각하니 이해가 갑니다.”
“이 길로 나아가게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 자식을 대광 어르신께서 가르쳐주면 어떻겠습니까?”
하자 대광 현일은
“네! 원보 어르신 여부가 있겠습니까?”
“총진을 데려오시길 바랍니다.”
하자 총진의 아비지는 집에 돌아가 총진에게
“총진아!”
“네! 아버님!”
“오늘 천문 점성술에 조예가 깊은 대광 현일 어르신을 찾아뵀고 왔구나!”
“너의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너를 대리고 오라했다.”
“그러니 천문 점성술을 그 분한테 배워볼 생각은 없느냐?”
하자 총진은
“네! 아버지!”
"기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저를 가르쳐준 스승님이 계신다니 행복할 따름입니다.”
“별에 대한 학문을 배운다면 기꺼이 가르침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자 아버지는
“그럼 내일 떠날 준비를 하려구나!”
총진의 꿈을 듣고 그 꿈을 이루게 해주기 위해 희망을 키우기 위해 날이 세자 아버지는 총진을 데리고 천문(天文)과 역술(易術)에 조예가 깊고 유교의 오경(역경.서경.시경.예기.춘추)인 경서(經書)와 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中庸)의 사서(四書)에 능한 대학자인 대광 현일을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총진을 인사시키고 총진을 잘 부탁한다며 맡기고 돌아갔다.
총진은 아버지를 배웅하고서 대광 현일 스승에게 큰 절을 올리고
“소자 총진은 희망하는 천문학에 정진하고 싶습니다.”
“이 분야에서 성장하도록 해주십시오.”
“스승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잘 따르겠습니다.”
“잘 배워서 훌륭한 인물로서의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스승님!”
“저는 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집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별은 저의 영혼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별이 제 마음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별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안 듯 합니다.”
“만물을 보는 듯합니다.”
“나라를 생각하게 하고 국왕과 왕실과 백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저 별은 어떤 별일까?”
“이 별은 어떤 의미로 그 자리에서 빛날까?”
“천문학을 깊이 배워 점(占)을 쳐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스승님!”
“그러하오니 천문 점성술을 가르쳐주시길 바랍니다.”
하자 대광 현일은 최총진에게
“듣고 보니 별에 관심이 많은 애로구나!”
“밤하늘의 별을 보면 신비스럽지!”
“별마다 다르게 밝기를 다르게 하며 반짝이고 그러니 말이야!”
“별의 위치도 밝기도 색깔도 다르고 하지!”
“심지어 별똥이 떨어지기도 하지 않는가?”
“별의 신비를 풀고 싶은 마음이 어찌 안 들겠어!”
“총진이 마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럴 걸세!”
“이해가 됨이야!”
“별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천체우주를 품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주의 신비를 풀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 걸세!”
“그것도 점으로 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지!”
“별이나 달은 분명 이 지구에 보이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천체우주는 기(氣)를 우리에게 미치게 하고 있어!”
“기를 뿜어내고 있는 별과 달의 우주이야!”
“별의 위치와 밝기와 흐름에 따라서 만물도 변화를 하고 있지!”
“인간에게도 정신적 영향을 끼치고 있고!”
“인간 등 모든 만물이 그 영향을 받고 기운을 차리고 있어!”
“별이 어떤 상태이냐에 따라서 상황을 점쳐보기도 하고!”
“유성이 떨어지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법!”
“별을 보고 미리 예측이 가능하고 있어!”
“별을 보고 점치는 것이 바로 천문(天文) 점성술(占星術)일세!
“천문이란 무엇인가?”
“하늘에 대한 연구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점성술은 하늘에 있는 별 등 우주를 보고 점을 치며 방법이나 일을 알아낸다는 것이고!”
“천문을 통한 점복과 꿈 해몽, 학문을 배워보겠다는 총진이가 대견스러워!”
“자! 그럼 오늘부터 천문 점성술에 공부하자구나!”
“별을 함께 보면서 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하며 대광 현일은 배우고자 찾아온 최총진에게 해와 달, 별 등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해 인간의 운명과 미래를 예측하는 천문 점성술에 대해 깨닫게 하려고 주역(周易)과 역법(曆法)을 가르쳤다. 스승으로서의 가르침에 아끼지 않고 신경을 썼다. 총진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알았다. 원치 총명한 아이였기에 배움의 진도가 빨랐다. 그동안의 별을 보고도 공식과 이름을 몰라 풀지 못했는데 스승의 가르침으로 이별 저별에 대한 모든 것들을 척척 알게 됐고 해석해냈다. 총진은 철학적 관점에 과학적 관점을 적용해 체계화시켰다.
최총진을 가르친 천문(天文)과 복서(卜筮)에 정통한 스승‘대광(大匡.향직 2품) 현일(玄一)은 당나라 때의 승려, 적관(籍貫)이다. 신라 사람이다. 법상학(法相學)에 정통했고 저술에 전념했다.
저서에는 무량수경기(無量壽經紀) 2권, 관무량수경기(觀無量壽經紀) 1권, 법화경소(法華經疏) 8권, 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 1권, 열반경료간(涅槃經料簡) 2권, 우가론소(瑜伽論疏) 17권, 중변론료간(中邊料簡) 1권, 범망경소(梵網經疏) 3권, 유식추요사기(唯識樞要私記) 1권 등이 있다.
최지몽은 천문(天文)과 복서(卜筮)에 정통한 스승‘대광(大匡.향직 2품) 현일(玄一)’에게서 천문 점성술을 전수받았으며 유학(儒學)과 역사(歷史)를 배워 하늘에 대한 문학(文學)과 천문(天文)과 길흉(吉凶)을 점치는 점복(占卜)에도 능통(能通)하는 등 성현(聖賢)이 전하는 학문의 깊은 뜻을 모두 통달(通達)하였다.
천문과 길흉을 점치는 점복에 최지몽은 더욱 복서(卜筮)에 힘쓰니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이치와 천체변화의 까닭을 막힘없이 다 알정도로 도인(道人) 또는 도사(道師)의 경지에 올랐어도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영암 월출산 아래 은거(隱居)하면서 그는 더욱 학문에 정진했다.
대광 현일 스승께 학문을 배운 최총진은 은거 생활을 하면서 별점과 해몽을 해주는 등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방향을 등을 잡아주는 등 길흉에 점을 쳐줬다.
간밤에 꿈을 꾼 것이 예사스럽지가 않아 찾아온 한 젊은 청년이
"며칠 전에 꿈에 유난히 많은 별 중에 유독 하나의 별이 반짝거린 걸 봤습니다".
"이 꿈은 어떤 의미인지요?"
묻자 최총진 도인은
"많은 별들은 사람들이 집합됐다는 의미옵니다".
"그 중에 한 별이 유난히 밝았다면 그 많은 사람 중에서도 가장 돋보인다는 것입니다."
"돋보인다는 것은 뛰어나다는 뜻이며 고로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들한테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의 해석으로 곧 출세할 길이 열릴 것이라는 암시지요!"
"필시 빛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최총진이 꿈 해몽을 잘 한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이때의 시기에는 불교 같은 신앙심과 토속신앙이 발달되어 있는 시기여서 그런 것에 대한 믿고 알고자하는 사람들이 많아 최총진 도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주민이 찾아와 꿈 꾼 것에 말해줬다.
“도인님!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산에 오르는 중에 호랑이를 봤습니다.”
“근데 그 호랑이가 사람으로 변신한 것이었습니다.”
“이 꿈은 어떤 의미인지요?”
"또 산과 바위를 오르면서 바위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하자 최총진 도인은
“호랑이는 용맹과 영물을 상징합니다.”
“수호신으로서의 액막이를 뜻하기도 하구요?”
“학은 문관을 상징하지만 호랑이는 무관을 상징합니다.”
“호랑이는 권세나 명예를 겸비한 인품이나 능력이 출중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가 사람으로 변신했다는 것은 좋은 의미가 아닌가합니다.”
“다시 말하면 만약 당신이 사업가라면 크게 성공하거나 영향력이 막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산에 오른 다는 것은 신선(神仙)이 된다는 뜻입니다.”
“신선 선(仙)자를 보면‘산에 사람이 있다’는 표현입니다.”
“즉 산에 들어가면 신선이 된다는 뜻이지요?”
“중국의 설해문자에 의하면 선(仙)의 뜻은‘늙어도 죽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산에 들어가 수행하면 불로장생(不老長生) 한다는 뜻입니다.”
“산에 올라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것은 자신의 이름에 대한 확실한 표현을 나타내 보이는 일입니다.”
“과시라고 할까요?”
“자신의 존재를 남겨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표현된 일입니다.”
“고로 부귀영화를 누릴 큰 성공을 거두거나 사회적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직장이라면 막중한 큰 보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정치에 꿈을 두고 있다면 분명 당선이 될 것입니다.”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 반드시 합격할 것입니다.”
“바위에 올라가는 것은 명예가 드높아지고 자위 역시 상승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는 일마다 잘 풀릴 것이며 주위에서 우러러 볼만큼 존경을 얻을 것입니다.”
“바위에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니 좋은 일을 기대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최종진 도인의 해몽은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철학적으로 풀어보고자 했다. 꿈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말한 것으로 잠재된 마음의 상태가 꿈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 봤다. 무의식적이든 아니든 꿈은 정신세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최총진 도인은 설파하고 풀어갔다. 최총진 도인은 수면 중의 정신세계가 그날의 기억들에 대한 잠결에 일어난 작업과정에서 이것들을 포착해낸 뒤 영상적인 이야기로 표현해낸 것이라고 봤다.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고 정신분석학을 나름대로의 설파하고 또 정립하면서부터 꿈은 개인의 내면세계를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삼고 해몽을 해줬다. 그는 천문 점성술이라는 분야에서 별점을 쳐보기도 했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천문학을 통해 하루의 일상과 미래를 예측하려 했다.
해몽이든 미래 예측이든“이 꿈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궁금해 물어보면 최총진 도인은 천문학 관점에서 풀어줬고 예언.예견.예시해 줬다.
어느 부인이 찾아와 자신이 꿈꾸었다는 별 꿈을 말하기에 최총진 도인은
“도인님! 간밤에 밤하늘의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집안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저는 그 별이 집안에 가득하여 빛나는 것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별을 주어 버구니에 담아 보려고 했는데 그만 꿈을 깨고 말았습니다.”
“이 꿈은 어떤 꿈인지요?”
묻자 최총진 도인은
“별은 우주의 꽃입니다. 빛나기 때문입니다.”
“꽃을 보면‘화사하다. 멋지다. 아름답다’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우주의 별도‘화려하다. 멋지다. 아름답다’라고 표현합니다."
“별은 꽃을 말한 것이며 별이 집안에 쏟아졌다는 것은 당신이 축복을 받을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집은 안식처입니다. 가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 구요?”
“별이 집안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빛나는 일이 생길 것이라는 뜻입니다.”
“집안에 경사가 생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유성(流星)이 집안으로 떨어지면 좋지 않는 일이 생긴다는 의미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집안으로 쏟아졌다니 생각지 못한 기쁜 일로 축하받을 일을 기대해 보시길 바랍니다.”
최총진 도인은
별이 빛나는 밤에 새가 날아다닌 꿈을 꾼 것에 대해서도 해몽해줬다. 그 꿈에 대해‘공로와 업적이 드러나 이름을 날릴 것입니다’라는 풀이를 해줘 해몽해주기를 바라는 분에게 궁금증을 풀어줬다. 별은‘밝힌다. 드러난다’는 뜻으로 새는‘자신과 이름’으로 풀어 새가 밝은 별빛을 받아 그동안 어둠 속에 감추어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일이 이제는 세상에 드러나 만인이 우러러볼 정도로 이름을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별점(-占)과 해몽(解夢)을 잘하는 사람으로 입에서 입을 전해지고 널리 소문이 날 정도로 최총진은 신통(神通)하고 용한 도사로 보고 그를 세상의 가장 특출한 도인으로 생각했다.
스승의 가르침으로 총진은 스승 못 지 않는 별 박사가 되어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사람으로 알려지게 됐고 결국은 개성에까지도 이 소문이 전해졌다.
최총진은 대광 현일 선생으로 인해 장차 큰 인물이 되었다. 아버지와 스승의 배경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부친과 스승 모두 고위 향직(鄕職)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영암 낭주(朗州) 최씨(崔氏) 일족은 이 지역의 유력(有力) 층이었다. 이들은 서남해 해상 교통로라는 이점을 이용해‘해상무역(海商貿易)’에 종사했다. 이로 인해 부(富)를 축적하여 유력 가문(家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 계기로 오늘날까지 최씨 가문은 크게 번창하여 구림하면 최씨라고 할 정도로 가장 유명한 낭주 최씨 가문의 집성촌이 됐다. 구림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 고장이다. 최지몽을 낳은 최상흔이 있었기에 구림은 유서 깊은 고장으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최총진은 대광 현일 스승한테 열심히 배운 덕택(德澤)으로 보다 더 지식을 갖춰 모든 별에 대해 꿰뚫어 봤다. 이제는 막연한 추측에 의한 점(占)을 치는 것이 아닌 과학적(科學的)으로 분석해 철학적(哲學的)으로 풀어냈다. 마을사람들이 꿈 이야기를 하면 최총진은 주역(周易)과 역법(曆法) 그리고 과학(科學)과 상식(常識)을 종합한 천체천문학(天體天文學)을 적용해 풀어줬다. 마을사람들은 총진의 해몽에 놀라워했다.
“맞아! 어쩜 저렇게 잘도 맞추는 거야!”
“이 애가 맨 날 별만 쳐다보더니만 별 박사가 됐네!”
“천문 점성술사라든가? 암튼 그 분야에서 도인이 됐으니!”
“총진아! 신통하고 기특하구나!”
“네가 예사스럽지 않다고 봤는데!”
“별에 대해 척척박사가 되다니!”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마을사람들은 신통(神通)한 총진에 대해 대견스럽게 생각했다. 마을의 경사가 난 듯이 총진의 미래를 기대했다.
그런 최지몽의 능통함에 대한 소문이 송악(지금의 개성)까지 알려지게 됐고 고려 태조(太祖) 왕건(877~943)재직 7년(924) 해에 18세였던 최지몽을 궁궐로 불러들었다.
최총진이가 월출산에서 은거(隱居)하며 별점과 해몽을 해주고 있을 이때에 신라(新羅)의 국력이 점점 쇠약해지고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이 완산(完山)에 나라를 세우고 고려 또한 송악(松嶽)에 나라를 세워 신라(新羅), 후백제(後百濟), 고려(高麗) 이렇게 나라가 갈라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서로 싸워 민심(民心)이 불안해지고 어지러워지니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민심을 걱정하고 천하(天下)를 평정하고자 널리 훌륭한 인재(人才)를 구하던 중‘닭과 오리가 한집에 있는 꿈’을 꾸었다. 간밤에 꾼 이 꿈이 어떤 꿈일까 몹시 궁금하게 생각했던 태조 왕건은 이 꿈에 대해 알고자 남도의 유명한 꿈 풀이를 잘 하는 해몽가(解夢家)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신하를 시켜 꿈을 잘 푸는 최총진을 궁궐로 오게 했다.
KBS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왕건 대역으로 출연한 최수종
태조 왕건은 사자(使者)를 불러
“해몽을 잘하는 자를 불러 들여라!”
신하들이 해몽을 잘하는 이를 찾던 가운데 전라남도 영암에 별을 보고 꿈 풀이를 하는 유명한 점성술사가 있다는 알게 되고 이 사실을 신하들은 왕에게 아뢰었다. 그러자 태조 왕건은 명을 내린다.
사자를 불러
“여봐라!”
“별을 보고 해몽을 하는 자가 전라도에 있다는데 어서 가서 데리고 오거라!”
“3일 내외로 불러 들이 거라!”
하자 사자는
“네! 전하!”
“급히 찾아 모시겠습니다.”
하며 최총진이가 있는 전라도 영암 구림으로 급히 내려갔다.
태조 왕건의 3일 안으로 그를 데려오라고 지시를 받고 말고삐를 당긴 사자는 쉼 틈도 없이 영암으로 달려갔다. 물어 물어서 영암 구림에 사는 최총진의 집에 도착하여 그를 찾았으나 최총진은 안 보였다. 어제 새벽에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나갔다고 했다.
사자는 이 말을 듣고 난처하며“이걸 어쩜 담 임금께서 불호령 내릴 텐데 이걸 어쩌나 난감한 일일세!”하며 당황하며 온 동네를 찾아 다녔다. 기다릴 수밖에 기다려도 최총진은 오지 않았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최총진은 어떤 용문인지 이미 송도(松都. 지금의 개성)에 도착하여 궁궐의 수문장(守門將)에게 급히 임금에게 알현하게 해달라고 청하고 있었다. 사자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최총진 집에서만 기다라고 있었으니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어이가 없어했다. 암튼 찾던 사람이 송악으로 갔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최총진이가 수문장에게 당부하자 수문장은 시골뜨기가 무슨 일로 배알(拜謁)하려냐며 최총진에게
“네가 어디서 온 애인데 겁 대가리 없이 임금을 뵈려하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도 말고 썩 꺼져라!”
“어서 저리가지 못해!”
그러자 최총진은
“임금을 꼭 만나야합니다.”
“제발 안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제발! 제발이요?”
그러면서 최총진은 수문장한테 사정을 했다.
“저는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점성술사입니다.”
“태조 임금께서 저를 찾는다는 얘기를 듣고 급히 저 전라도에서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상경했습니다.”
“그러하오니 제발 임금을 뵙도록 해주십시오!”
하며 최종진이가 사정사정하며 애걸복걸한 말로
“전하께서 꿈을 꾸시고 해몽을 기다리신다는 얘기를 듣고 이렇게 급히 달려왔습니다.”
“지금 저를 그냥 돌려보내신다면 큰 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간절하게 말하자 수문장은
“그럼 여기서 기다려라!”
하자 최총진은 애타는 마음으로 임금의 부름을 받기를 고대했다.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수문장이 말하기를
“아까는 미친 사람인줄 알고 출입을 막았던 것 같소이다.”
“큰 결례를 한 것 같은데 너그러이 봐주시구려!”
“어서 안으로 들어가지오!”
하자 최총진은
“수문장님! 감사합니다.”
“꼭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하며 수문장의 안내를 받아 임금이 계신 편전(便殿)으로 갔다. 그리고 대신(大臣)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전하! 해몽을 잘하는 자를 모셔왔습니다.”
하자 태조 왕건은 대신에게
“여봐라! 그자를 편전으로 모시 거라!”
하자 대신은 최총진에게
“임금이 찾으니 어서 편전 안으로 들어 가시지오!”
하자 최총진은
“네! 알겠습니다.”
하며 최총진을 떨리는 몸으로 대신에게 거듭 인사를 하고 임금의 편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임금 앞에서 무릎을 끊고 큰 절을 올렸다.
태조 왕건은 최총진을 보고
“어서 오거라!”
“반갑도다.”
“그대가 최총진인가?”
“네! 전하! 최자 총자 진자 최총진이라고 합니다.”
“네가 별에 관심이 많다면서 점성술에 능통하다고 들었도다.”
“그대가 꿈을 잘 푼 해몽에 능통하다고 들었노라!”
하자 최총진은
“전하! 소인은 별점과 해몽을 하는 천문 점성술을 배웠습니다.”
“고장의 월출산에서 은거하면서 천체우주를 통해 점과 해몽을 해주고 있습니다.”
“천체학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전하!”
하자 태조 왕건은
“그래 총명하고 기특한 아이구나!”
최총진이를 칭찬하면서 태조 왕건은 자신이 꾼 꿈에 대해
“하룻밤 꿈에 닭과 오리가 한집에 있는 것을 보았노라!”
“이 꿈이 무슨 의미인지를 해몽해 보거라!”
하지 최총진은
“네! 전하!”
망설여 하면서 잠시 눈을 감고 나서 뭔가 주문을 외운 듯하더니
“전하!”
“그 꿈에서 봤던 닭은‘계림(鷄林)’을 뜻하고 오리는‘압록강’을 뜻합니다.”
“신라에는 계림(鷄林)이 있고 고려에는 압록강이 있지 않습니까?”
“닭과 오리가 한집에서 함께 한다는 뜻이오니 곧 삼국이 통합할 조짐입니다.”
하자 태조 왕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허! 그러는 고, 듣고 보니 일리가 있도다!”
“닭은 계림이고 오리는 압록강으로 보는 너의 해몽이 그럴듯하구나!”
“태조 왕건은 최총진의 해몽에 매우 놀라워하면서 기뻐했다.”
최총진은 닭을 계림이라고 본 것은 계림의 계가‘닭 계(鷄)’이어서 신라의‘계림(鷄林)’으로 봤고 또 오리를 압록강으로 본 것은 압록강의 압자가‘오리 압(鴨)’자이어서 후고구려가 있는‘압록강(鴨綠江)’을 연상했다. 닭과 오리를 신라와 후고구려로 본 것이다. 닭과 오리가 한집에 있으니 필시 언젠가는 두 나라가 한 집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예시를 해줬다.
또한 태조 왕건은 닭과 오리를 잘 풀어줘 감탄하며 크게 웃었다. 좋은 징조로 해몽을 해줘 만면의 미소를 띤 태조 왕건은 최총진에게
“그럼 이 꿈은 어떤 꿈인가를 해몽해 보거라!”
하며 태조 왕건은 또 다른 꾸었던 꿈을 말해줬다.
“짐이 얼마 전에 산중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도중에 나도 모르게 궁궐보다 큰 벌집에 들어가 버렸다.”
“짐이 벌집을 건들었으니 무슨 난(亂)이라도 있을 흉조가 아닌지 걱정스럽구나!”
하자 최총진은 잠시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가
“전하! 그것은 천하제일로 아주 대길(大吉)하고 형통(亨通)할 징조입니다.”
“보통 사람이 벌집을 건드려 벌떼를 뒤집어쓰면 흉몽이지만 전하께서는 길몽이옵니다.”
“왜냐하면 왕씨(王氏)이시고 또 실제로 왕(王)이십니다.”
“벌이 소리를 내기를‘왕! 왕!’소리를 내지 않사옵니까?”
“왕 소리를 내니 왕중왕(王中王)이란 뜻입니다.”
“그러하오니 머지않아 삼국통일의 위업을 성취하게 될 것이옵니다.”
하자 태조 왕건은 무릎을 치며
“어허! 이 놀라움이 있는 고!”
“그렇지 그래! 벌이 왕 왕 거리지!”
“그걸 몰랐구나!”
“신통도 하지! 보는 눈이 달라!”
“이 기특한 자(者)의 해몽이 기기 막히도다!”
“그럼 그렇지 맞고말고!”
“벌이 왕하며 소리를 내지!”
“벌집을 건드려 벌들이 모두 나와 왕! 왕! 거렸으니!”
“필시 나를 두고 그런단 말인가?”
“신통한지고 어쩜 그리도 일리 있게 해몽을 하는 고!”
“과연 너의 예리함이 놀랐도다!”
하며 지켜본 산하들에게
“다들 들었소!”
“짐의 꿈이 어떤 꿈인지를!”
“참으로 기특하고 대단한 자이다.”
“짐이 꾼 꿈이 대단한 일을 암시한다니 기분 좋구려!”
“왕 중 왕이라! 내가 왕 중에 제왕(帝王)이 된다는 말인가?”
태조 왕건은 크게 웃어보였다. 어! 허! 허! 하며 그러면서 임금은 신하를 통해
“오늘 짐은 길몽이라는 해몽에 기분이 너무나 좋소이다!”
“주안상을 준비하시오!”
하며 해몽을 기가 막히게 한 최총진에게 말하기를
“잘 들의 거라!”
“그대는 과연 듣던 대로 해몽에 능통하구나! 신통하도다!”
“유명한 천문 점성술사라고 소문만 들었는데!”
“실제 그자가 해몽하는 것을 보니 비상함을 알게 되도다.”
“그대를 신뢰하게 하는구나!”
“닭을 계림으로 보고 오리를 압록강으로 보다니!”
“벌의 왕 하는 소리를 왕(王)을 부르는 소리도 풀다니!”
“신통해! 참으로 신통함이야!”
“너의 예지능력이 참으로 대단하고도 놀랐도다!”
“짐을 보거라!”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최총진은 고개를 쳐들고 용안을 쳐다보며
“네가 꿈에 대해 잘 아니 너의 이름을 새로 지어주고 싶구나!
“알 지(知), 꿈 몽(夢)자를 써서 지몽(知夢)이라 하여 거라!”
그러자 최총진은 뜻밖의 이름을 지어주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임금의 용안을 한 번 더 쳐다보고는 약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붉힌 채 왕에게 아뢰기를
“전하! 소인 총진은 부모님께서 지어준 값진 이름입니다만 임금께서 새로 이름을 지어주시니 이 어찌 영광이 아니옵나이까?”
“기쁘기 한량이 없사옵니다.”
“이름 뜻 또한 소인의 성격과 취향과 직업에 맞게 그 뜻을 알고 지어주셨으니 명예스럽게 쓰겠습니다.”
“전하! 황공하옵나이다.”
태조 왕건은 최총진의 이름을 최지몽(崔知夢)으로 새로 지어 부르게 했다. 최지몽은 그런 연유와 인연으로 뒤의 여러 왕에게도 총애를 받고 승승장구하며 출세가도(出世街道)를 걷게 된다.
태조 왕건을 최지몽으로 이름을 새로 지어주며 비단옷을 내리고 사천대(司天臺.지금의 국립천문대)를 관장하는 사천공봉(司天供奉)의 벼슬을 내려주어 늘 곁에서 보좌를 하게 했다. 태조 왕건은 해박한 뛰어난 지혜와 탁월한 역량을 다하게 하여 삼한(三韓)을 통합하는데 돕도록 했다. 최지몽은 태조 임금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충성을 다해 신하로서의 본분을 다하여 보좌를 하며 고려왕국의 안정과 번영에 크게 기여를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그런 총진이가 왕의 부름을 받고 송악(개성)에서 일을 하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한 번 놀라워하며
“저 애는 분명 이 나라에 훌륭한 일을 해낼 것이야!”
“어릴 때부터 알아봤는데 결국 천문 점성술사로서 임금을 보좌 하게 되다니!”
“잘 할 수 있을 것이야!”
“유명한 점성술사로서 이 나라를 융성하게 하리라봐!”
하며 총진이가 송악에서 머물게 됐다는 것에 매우 기뻐하며 마을 잔치를 벌이게 했다. 모두모두 축하해주며 잘 되기를 기원했다.
최총진은 태조 왕건의 부름을 받고 송악에 와 왕에게 아뢰었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네가 별에 관심이 많다면서 점성술에 능통하다고 들었도다.”
“너의 능통함으로 천문을 연구하여 보도록 하여라!”
“천문을 통해 이 나라와 왕실과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번영토록 하여 거라!”
그러면서 천체를 관장한 사천공봉(司天供奉)으로 임명받은 것을 기쁘고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젠 영암 구림이 아닌 송악(개성)임을 엄중히 여기고 무거워진 어께에 기를 불어넣었다. 기지개를 펴며 고향 쪽을 바라보면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잘 해보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최총진은 태조 임금에게서 꿈에 장차 삼한(三韓)을 통일 하게 될 징조(徵兆)라고 해몽(解夢)하여‘지몽(知夢)’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았으니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천문학 분야에서 충실히 임했다.
태조 임금한테 지몽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너무나 감격스럽고 꿈인지 생시인지 보자마자 총애를 받아 어쩔 줄을 몰라 한 최지몽은 이후 태조의 측근에서 보좌(保佐)하며 정치적 자문(諮問)에 응하는 등의‘책사(策士)’를 맡아 태조 임금을 일거수일투족을 살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최지몽은 사천공봉, 역술인, 천문관으로서 활동을 하며 왕을 보좌했다.
최지몽은 태조 왕건뿐만 아니라 혜종(惠宗) 대에도 하늘의 천체(天體)를 살펴보는 관청인 사천대(司天臺) 공봉(供奉)의 직으로서 혜종의 시해(弑害) 음모(陰謀)를 예측하여 혜종으로 하여금 여러 차례 암살(暗殺)의 위기를 모면하게 하는 등 예언자(預言者)로서의 두각을 보여줬다.
또한 정종(定宗)과 광종(光宗)으로부터 후대(厚待)를 받았으나 왕권강화를 적극 촉구하던 광종 말년에는 미움을 받아 한동안 다른 신하들의 질투와 시기로 궁궐에서 쫓겨나는 등 폄출(貶黜)되기도 하였다. 최지몽은 11년간의 유배생활을 했다. 최지몽이 황해북도 개풍군 영남면에 위치한 귀법사(歸法寺.964년 창건, 광종 14) 행차에 광종을 수행했다가 지나친 행동을 했다고 꾸중을 들었다. 다시 수습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런데다가 같이 수행한 간신(奸臣)들의 말에 귀담아 들은 광종 임금은 더 화가 나 바로 좌천(左遷)을 시키는 등 그만 11년간 유배생활을 하게 만들었다.
최지몽은 본인의 실수를 인정했지만 간신(奸臣)들이 미웠다. 간신들은 자신이 잘 되는 꼴을 못 봐줬기 때문이다. 몹시 시기(猜忌)를 하며 견제를 해왔던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이 너무 얄미웠다. 귀법사로 행차하는 날 전날 밤에 다른 대신들과 술을 과하게 들었던 게 큰 화근이 됐지만 최지몽은 간신들의 꾀에 그만 당하게 말았다. 자꾸 술을 마시게 하여 실수를 범하도록 유인한 것도 모르고 술을 주는 대로 마셨던 게 원인이 되어 버렸다. 아침이 되도 술이 깨지 않고 술기운이 남아있었다. 취기가 가시지 않아 임금님 앞에서 본의 아니게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는 일이기에 애석하고 분하지만 인정하고 외걸현에서 묵묵히 천문연구에 몰두하며 지냈다.
최지몽이 광종 임금한테는 최지몽의 철학이 맘에 썩 들지도 않기도 했다. 중국의 선진 문물인 과거제도(科擧制度)와 관료제도(官僚制度)를 도입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중국의 문장에 뛰어난 스승의 문사(文師)들을 적극 유치했던 광종이었다. 그런 임금에게는 점성술과 같은 고려의 토속신앙(土俗信仰)과 전통을 중시한 최지몽의 존재는 걸림돌이 됐다.
귀법사로 가는 길에 뜻하지 않는 불찰로 복합적인 작용으로 책임을 물어 그만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여 유배(流配)를 보냈다. 유배는 간신들이 영향이 컸다. 간신들은 최지몽이 왕들의 총애를 독차지 한 것에 대해 매우 못 마땅하게 여길 정도로 질투심과 시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를 경종(景宗) 5년(980) 내의령(內議令.중시문하성 전신인 내의성 장관, 종 1품)의 직으로 복귀하고 성종(成宗) 원년‘좌집정(左執政) 수내사령(守內史令)’의 직위와‘홍문숭화치리공신(弘文崇化致理功臣)’의 호와 함께 왕의 지극한 존대(尊待)와 승상(繩床)을 받았다. 11년간의 공직에서 떠난 최지몽은 광종 때 유배를 당하는 것을 반성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제대로 보좌를 해야겠다는 정신을 갖추었다. 최지몽은 혹시 다른 신하들한테 시기(猜忌)를 받지 않도록 신하들과의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유지되도록 친화적인 유화정책(宥和政策)으로 처신에 신경을 썼다.
여러 왕들을 모셨던 최지몽은 왕의 화를 모면한 것을 안 성종은 성종 원년 임오(壬午)에 최지몽에게 내사령(內司領)을 더하여 홍문숭화처리공신(홍문숭화처리공신) 작호를 내리고 최지몽의 부모에게도 벼슬을 내렸다. 이때 나이가 76세이다. 안타깝게도 갑신년에 부모상을 당하여 사직하고자 세 번에 걸쳐 사직원(辭職願)을 청하였으나 성종 임금은 허락을 하지 아니하였고 받지 못하여 또 다시 글을 올려 사직을 청함에 성종 임금은 최지몽의 마음을 헤아리고 조참(朝參)에서가 아닌 내사방(內司房)에서 예전과 같이 일을 보라고 하였다. 내사방에서 근무를 한 6년 정해(丁亥)에 최지몽이 병상에 누우니 왕이 의원에게 명하여 약을 내리고 몸소 가서 문병(問病)하고 말 두필을 귀법사와 해안사에 주고 스님 3천명에게 빌도록 했다. 병을 치료하는데 온갖 것 신경을 쓰도록 했다.
춘삼월 갑자(甲子)에 별세하니 향수 81이다. 이 부음(訃音)을 받음에 깜짝 놀란 성종은 슬퍼하며 포1000필과 쌀 300석, 보리 200석, 차 300각, 향 20근을 부의(賻儀)하고 국가에서 장례(葬禮)를 주관하게 하고 태자태부(太子太傅)를 증직하고 총명(聰明)함은 민(敏)이요 진선진미(盡善盡美) 함은 휴(休)라는 뜻의‘민휴공(敏休公)’의 시호를 내리었다. 뒤에 태사(太師)를 더 추가하고 경종(經宗) 묘(墓)에 배향(配享) 하였다.
민휴공 최지몽에 대한 대한민국 광복 후에 사람들이 사당(祠堂) 세워 재사(祭祀)하고자 나주 왕곡면 덕산리에 '동산사(東山祠);와 영암 군서면 서구림리에 '국암사(國岩祠)' 의 두 곳에서 최지몽의 뜻을 기리고 있다.
태조 왕건을 시작으로 2대 혜종, 3대 정종, 4대 광종, 5대 경종, 6대 성종 임금에 이르기까지 여섯 분의 임금을 모신 최지몽은 성종 6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가 사망하자 태자의 스승.후견.시중의 큰 아들 큰 스승으로 모신‘태자태부(太子太傅.고려시대 동궁에 속한 종 1품 벼슬, 태사는 고려시대 왕의 고문을 맡은 정1품 벼슬)’를 중직(重職)하고 시호를 그동안 왕국과 왕실을 위해 애를 썼으나 편히 쉬라는 뜻에서‘민휴(敏休)’라 하였다.
최지몽은 고려 초기 지방출신의 대표적 문신관료(文臣官僚)이며 주로 국왕(國王)의 측근에서 정치적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비서실장, 수석보좌관, 의전실장 등의 참모 역할을 했던 왕의 최측근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꿈을 잘 풀어주는데 일가견이 있었던 해몽(解夢)으로 출세를 한 최지몽은 점성술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해(日)와 달(月), 별(星) 등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해 인간의 운명(運命)과 연결해 삶에 대한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판단했고 다가올 미래(未來)를 예측했다. 천문(天文) 점성술(占星術)로 세상을 꿰뚫어봤던 최지몽이었다. 그는 이 분야에 조예가 깊어 천체를 관장한 사천대(司天臺)의 사천공봉(司天供奉)으로 근무하게 했다.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최지몽 대역으로 출연한 정동환
최지몽은 이 관청(官廳) 관원으로 출발해 최고위직 재상(宰相)의 자리에 오르는 등 고려 역사상 유일한 인물이었다. 최지몽은 궁예가 관심법으로 정사를 봤다면 최지몽은 별 등의 천체(天體)를 통한 판단케 한‘천심법(天心法)’으로 정사를 보게 했다.
그는 태조 왕건을 비롯해 6명의 국왕을 보좌하면서 때로는 위기에 빠진 왕을 빼어난 천문 점성술로 구해내기도 했던 요즘에 찾아볼 수 없는 정치를 과학으로 연관시키거나 풀어 해결하게 했던 과학적(科學的) 정치(政治)를 구현한 새로운 지혜(知慧)와 사상(思想)을 발휘한 보기두문 역사적 인물이었다.
최지몽이 태어난 고장은‘월출산(月出山)’이라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정기(精氣)가 서린 곳이다. 월출산은‘달이 난다’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신라 때는‘월나산(月奈山)’, 고려 때는‘월생산(月生山)’이라고 했다. 월출산은 달이 날뿐만 아니라 수많은 별들이 월출산 위를 수놓았다. 별을 보고 점을 칠만큼 저 별은 이 별은 어떤 별이다. 별이 우리 인간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최지몽은 알아냈다.
월출산은 기(氣)가 많이 분출한 곳이다. 하늘의 우주에서 쏟아 내린 기와 월출산에서 분출한 기가 상충(上衝)해 묘한 조화로움을 부린다. 신비스러운 광경이 이루어지는데 월출산 주변으로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어 세상을 이롭게 한다. 만물이 생성되고 인간 등 동식물은 그 기를 받아 살아간다.
월출산위로 또오른 별을 보고 점을 치려했던 최지몽은 월출산의 기가 어떤 기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지(地)와 천(天)을 하나로 보고 일치점을 찾아 자연의 현상을 철학적(哲學的) 관점으로 풀어보려고 했다. 천문 점성술이다.
별의 위치, 별의 방향, 별의 흐름, 별의 밝기와 해.달 등을 보고 이치(理致)를 깨달았던 어떤 상황이라는 것을 암시적인 상황에서‘실제적인 상황’으로 풀어냈던 그였다.
심지어 꿈에 대해서도 해몽을 하는 철학적인 소질도 갖춘 예사스럽지 않는 최지몽이었다.
별 박사, 천체과학자(天體科學者)란 별명과 꿈을 잘 풀어내 해몽가(解夢家)란 별명도 붙는‘도인(道人)’이었다.
별을 통한 점성술은‘별점’이다. 별점은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일이다. 영어로는 horoscope라 한다. 동야에서는 예로부터 해가 바뀌면 올해는 무슨 띠의 해인지를 따져 보며 그 띠에 해당하는 동물이 상징하는 내용에 따라 한 해의 운세(運勢)를 점쳐 보곤 했다.
이렇게 동양에 띠가 있다면 서양에는 자신이 태어났을 당시의 별자리와 오늘날 별자리를 비교하여 그 관계를 풀이하는‘별점(星占)’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동양의 열두 띠(Year of Animal), 즉 통일신라시대부터 받아들었던 12지(十二支)는 우리 조상들은 연말에 새해를 맞이하면서 그 해의 수호(守護) 동물인 12지 동물(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들을 통해 그 해의 운수(運數)를 점쳐 보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난 해의 동물과 연관시켜 아이의 미래를 예지해 보기도 하고 또는 결혼할 때도 결혼 상대의 띠를 맞춰 보며 그 결혼의 길흉(吉凶)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서양의 별자리(Horoscope), 즉 서양에서는 하늘을 대우주(大宇宙) 인간을 소우주(小宇宙)라고 생각하여 사람이 태어난 날짜와 시간에 해당하는 천체의 위치에 의해 개인의 장래나 성격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태어난 날에 해당하는 별자리를 찾아 개인의 성격이나 운세를 추축하는 별자리 점이 사용되고 있다. 별자리에는‘양자리(Aries), 황소자리(Taurus), 쌍둥이자리(Gemini), 게자리(Cancer), 사자자리(Leo), 처녀자리(Virgo), 천칭자리(Libra), 전갈자리(Scorpio), 궁수자리(Sagittarius), 염소자리(Capricorn), 물병자리(Aquarius), 물고기자리(Pisces)’가 있다.
양자리는‘멈출 수 없는 정열의 소유자’, 황소자리는‘완고하지만 올곧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쾌락주의자’, 쌍둥이자리는‘천재적인 두뇌 회전 그 자신감과 뒤에 숨겨진 외로움’, 게자리는‘강인한 모성애를 갖고 있으나 정신력이 약한 주의’, 사자자리는‘밝고 화려하여 천성적으로 타고난 아이돌’, 처녀자리는‘가슴에 품은 이상을 위해 고결한 정의감으로 자신을 지킴’, 천칭자리는‘아름다우면서도 냉정하게 결단을 내리는 재판관’, 전갈자리는‘인내하는 모습에 이끌려 다가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 궁수자리는‘신속하게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자’. 염소자리는‘포기하지 않고 주저앉지 않는 강한 마음을 가진 고고한 사람’, 물병자리는‘상식이나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나아가는 자유로운 개혁자’, 물고기자리는‘적응력이 강한 현실주의자’를 뜻한다.
점술은 천체를 보고 미래의 길흉을 점치거나 현세의 추축하는 점성술은 중국.인도를 비롯해 대부분의 전근대 사회에서 나타난다. 이들은 작게는‘개인의 일상사’에 대한 조언에서부터 크게는‘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의지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특히 몇몇 사회에서는 점상술사들의 발언이 큰 관심을 지니기도 했다.
별을 연구하여 하나의 일상사와 정책으로 풀어보려 했던 최지몽은 서구의 별점처럼 하늘을 일종의 지도(地圖)로 보고 이를 구성하는 천체들의 특정한 배치가 현실의 지상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개념은 전근대적인 천동설(天動說)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해와 달, 황도 12궁(十二宮)을 비롯한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어떤 상징적인 형태를 만들어낸다고 봤다.
별로 매겨지는 점수를 보면 별 개수로 매겨지는 점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통 별 5개가 꽉 차있으면 이를‘만점(滿點)’으로 취급하며 한 개 또는 반개씩 채워지는 걸로 단계를 나눈다. 인물이나 물건과 같은 보편적인 것부터 영화, 드라마, 만화, 음식 등 미디어 매체에 이르기까지 평가를 내릴 수 있어 어디든지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1000년 전에 이미 최지몽은 천문 점성술을 설파해 이런 방법으로 별점을 쳤다.
오늘날의 별점은 예를 들어보면 물병자리(1월 20일~2월 18일)
전체운
노력이 중요한 열쇠가 되는 시기이다. 갈림길에 서있게 되는 시기인데 무엇보다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한다. 대체적으로 좋고 나쁨이 동시에 겹쳐지게 되는데 그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하는 것이 중요하고 할 일은 당장 시작해야만 후회하지 않게 된다.
별점 ★ ★ ★ ★
연애운
기혼
배우자와의 관계는 큰 문제가 없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게 된다. 다른 것을 준비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있는데 너무 멀리 보지 말자. 이런 부분이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경직되게 만들고 오해를 만들게 된다.
미혼
사귀는 사람이 잇는 경우는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너무 빠른 결정을 내리게 되는 시기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대응하게 된다. 당장 큰 결정을 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
별점 ★ ★
금전운
때로는 투자도 필요한 법이다. 너무 작은 부분까지 계산을 하지 말고 이익이 생기는 일이라면 도전해 볼 것이다.
별점 ★ ★ ★ ★
별의 빛깔이나 자리를 보고 점을 친 별점이다. 별 모양의 표로 표시하는 점수, 별의 숫자 또는 별 모양의 안쪽을 진하게 채운 정도로 점수를 매긴다. 별점을 치는 사람을‘별점쟁이’, 별의 빛깔이나 자리를 보고 나라나 사람의 길흉을 점치는 술법을‘별점치기’라고 부르고 있다.
천체를 보고 세상을 바라봤던 천체에 모든 것을 걸었던 시대에는 최지몽 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불교가 성행했지만 천체에 조예(造詣)가 깊은 인물이 필요했던 시절, 마치 그런 인물이 있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매일 옆에서 자문(諮問)을 하게 했던 그 일로 인하여 나라와 백성이 평온과 번영을 누리게 했던, 정사(政事)를 보는데 탈 없이 보게 했던, 천문 점성술로 이롭게 하였던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인물이 아닌가한다.
천문 점성술에 능한 최지몽은 영암 구림에서 천리 길 송악(松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왕의 부름을 받고 보름 남짓 걸어서 개성 땅에 당도해 왕이 내린 천체를 관장하도록 한다. 정사(政事)나 생활(生活)을 하기에 앞서 먼저 천체(天體)를 살펴보고 난 후 일을 봐야했기에 천체에 조예가 깊은 최지몽에게 그 일을 맡겨 최지몽이 말해준대로 하루 일과를 봤다.
그런 그를 아예 궁궐(宮闕)로 불러들여 집사(執事) 노릇을 하게 하여 매일 옆에서 보좌하며 일을 돕도록 했다.
영암 구림에서 별 등 천체 우주를 꿰뚫어봤던 최지몽은 그가 태어난 영암(靈巖)이라는 곳이 상생(相生)의 기(氣)가 많이 분출한 곳이어서 최지몽도 정기(精氣)를 받은 몸인지라 그 정신으로 천체를 통한 점을 쳐보는데 일가견(一家見)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영암 구림에서의 정기를 개성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를 하는 그는 6명의 왕들한테 총애(寵愛)를 받으면서 천문을 통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종교 등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했다.
천문 점성술로 인한 첫 인연이 된 태조 왕건은 최총진이라는 사람에게‘최지몽(崔知夢)’이라고 이름을 지어주면서 그를 신뢰하며 옆에서 하루 일정(日程)과 생활(生活)에 대해 길(吉)한지 흉(凶)한지를 살펴주는 일을 도맡았던 최지몽
장차 이 나라에 큰 인물이 될 사람이라고 예견으로 고려를 건국하여 왕좌에 올랐던 태조 왕건(王建)은 예시를 하는 사람들의 말을 잘 경청하고 따랐으니, 그런 태조 임금은 지몽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줄 만큼 최지몽의 철학(哲學)과 혜안(慧眼)에 대해 신뢰를 했을 만큼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최지몽 대역으로 출연한 정동환
최지몽은 천체를 관장한 사천대(司天臺)의 사천공봉(司天供奉)으로 재직하며 천체물리학자(天體物理學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천체물리학자가 아니었나한다. 또한 천체(天體)란 과학을 통해 정치를 풀어보는 과학정치(科學政治)를 편 인물로 유일하다.
최지몽이 고려 태조 때부터 6대 성종 때까지 왕을 보좌하며 정사에 도움을 준 사례는 보기두문 흔치 않은 유일독보적(唯一獨步的)인 현상이다.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여섯 왕을 거쳐 책사로서의 일을 해왔다는 것은 그만큼 최지몽이라는 인물이 대단했다는 증표(證票)요 그에 대한 상징성(象徵性)이 아닌가한다. 훌륭한 인물로서의 고려왕국을 융성(隆盛)하게 했다.
고려 태조 왕건을 총애를 받고 옆에서 보좌를 했던 최지몽은 태조 왕건이 호족(豪族)들을 찾아 포용정책(包容政策)을 펴려고 지방을 순회하였기에 또는 외적들과 싸워 이기고 막아야했기에 책사(策士)로서의 임무가 막중했다.
왕이 궁궐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출이 잦음으로 인하여 그럴수록 왕에 대해 보필을 잘해야만 했다. 본인의 주특기인 천문 점성술로 왕의 행동을 하게 해야 했고 왕에게 하루일진에 대해 이상이 있을까 없을까하는 보고(報告)를 수시로 전해 일을 보게 했다.
왕은 최지몽의 말에 따라 움직이면서 지방을 나들이 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말과 행동을 보여줬다.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최지몽 대역으로 출연한 정동환
사천공봉, 역술인, 천문관인 최지몽의 천문 점성술은 기(氣)의 원리를 적용한 천심법(天心法)이었다. 다시 말하면‘천체우주기원론(天體宇宙起源論)’으로 사물을 관찰하며 마음을 꿰뚫어보거나 움직이게 했다.
최지몽이 주장한 기는 모든‘만물(萬物)’에서부터 나온다고 봤다. 기에 의해 사물이 싹트고 자랐다고 봤다. 기를 얻어 기에 의해 삶이 이루어지고 영위(榮位)한다고 생각했다.
기가 강하면 넘치는 기로 보다 더 튼튼해지기도 하고 기가 약하면 약한 기로 인해 부실해지는 등의 어떤 기의 상태냐에 따라 몸 상태나 마음이 변화가 생기고 생성된다고 판단했다.
기는 우주에서 발원이 되어 인간이나 어떠한 사물에 미친다고 봤다. 기가 있기에 생명이 꿈틀거리고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여겼다.
최지몽은 그런 기는 주로 천체(天體)에서 발동해진다고 보고 천체를 보고 어떠한 기인가 그 기는 어떻게 미칠 것이라는 예측.예단을 했다.
최지몽은 기에 대해 어떤 기가 좋고 어떤 기가 나쁘고 기도 나름대로의 여러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설파(說破)하고 기를 관점으로 천체인 우주를 바라봤고 그 천체의 기를 적용해 점을 봤다.
기(氣)는 활동하는 힘을 말한다. 만물 또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 물질의 근원 및 본질을 뜻한다. 기는 중국의 철학 용어로 모든 존재현상은 기의 취산(聚散), 즉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데 따라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생명 및 생명의 근원으로 보기도 한다.
원래는 호흡을 하는 숨(息), 공기가 움직이는 바람(風)을 뜻하는 가벼운 의미에서 시작하였으나 도가(道家)인 노자.장자가 우주(宇宙)의 생성 변화를 기의 현상이라고 하는 데서부터 여러 가지 어려운 뜻을 가지는 철학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한(韓) 시대에는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기의 이론이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우주 자연의 운행 천문지리 그리고 양생(養生) 의학 및 길흉화복(吉凶禍福)과 관련되는 일상생활에까지 기를 적용하여 모든 것을 설명해 나갔다.
송(宋) 대에 와서는 유가(儒家)에서 이(理)의 존재를 생각하게 됨으로써 그 이와 대치되는 개념으로 기를 다루어 나간다. 모든 존재의 원인은 또는 이치로써 형이상(形而上)의 보편적자를 이(理)라고 하였다. 기는 형이하(形而下)의 구체적인 개체의 존재 현상으로 생각하여 이기(理氣) 철학의 중요 개념으로 다루었다.
이 이기철학이 한국에 들어와서는 주요 심성론(心性論)으로 전게되는데 도덕적 근거가 되는 선악(善惡)의 문제를 마음속의 성정(性情)에서 찾고 있어 이(理)와 기(氣)를 주로 가치론적으로 다루는 것이 그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사칠(四七) 논변과 인물성(人物性) 논쟁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체로 성(性)을 이, 정(情)을 기로 보는데 그치고 있으나 한국 철학에서는 성론(性論)을 다시 이기(理氣) 문제로 그리고 정론(情論) 또한 이기와 관련하여 문제 삼으면서 선악(善惡) 및 모든 가치의 도덕적(道德的) 가치에 근거를 마련하는데서 이와 기를 가치론적(價値論的)으로 보려는 특색이 있다.
이(理)는 선(善)의 근거, 기(氣)는 악(惡)의 근거로 삼았다. 이는 언제나 선(善)한 존재요 기는 선(善)한 것도 악(惡)한 것도 아니라고 하는가 하면 선과 악을 함께하는 것이라고도 하여 어려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理)의 선도 기(氣)를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이므로 실질적인 것에서 진리를 찾아 들어가는 조선 후기의 실학(實學)은 바로 이 기(氣)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 가지는 일반적인 기의 의미는 이 산세(山勢)는 기가 세다 라고 할 때와 같은 형세, 기운, 조짐 그리고 양생(養生)과 관련하여 신체상의 생명력, 힘, 정기 및 생체에너지 등의 뜻으로도 쓰인다.
점성술은 하나의‘주역(周易)’이다. 유교 경전(經典)의 하나인‘역경(易經)’이라고도 한다. 점복(占卜)을 위한 원전(原典)과도 같은 주역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흉운(凶運)을 물리치고 길운(吉運)을 잡느냐하는 처세상의 지혜이며 우주론적 찰학(哲學)이다. 주역은 상경(上經), 하경(下經) 및 십익(十翼)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역이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 때의 역(易)이란 말이며 주역이 나오기 전에도 하(夏)나라 때에 연산역(連山易), 상(商)나라의 귀장역(歸藏易)이라는 역서(易書)가 있었다. 역이란 말은 변역(變易), 즉‘바뀐다, 변환한다’는 뜻이다. 천지만물(天地萬物)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역에는 이간(易簡), 변역(變易), 불역(不易) 세 가지가 있는데 이간은 천지의 자연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간단하고 평이하다는 뜻이다. 변역은 천지만물이 멈추어 있는 것 같으나 항상 변하고 바뀐다는 뜻으로 양(陽)과 음(陰)의 기운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불역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그 변화는 것은 일정한 항구불변(恒久不變)의 법칙을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법칙 그 자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은 양(陽)과 음(陰)의 이원론(二元論)으로 이루어진다. 즉 천지만물은 모두 양과 음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강한 것은 양, 약한 것은 음, 높은 것은 양, 낮은 것은 음 등으로 상대되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양.음 두 가리로 구분하고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주역의 원리이다.
달은 차면 기울기 시작하고 여름이 가면 다시 가울.겨울이 오는 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그 원칙은 영원불변한 것이며 이 원칙을 인간사에 적용시켜 비교 연구하면서 풀이한 것이 역(易)이다.
주역은 8괘(八卦)와 64(六十四괘)가 있다.
태극(태극)이 변하여 음.양으로, 음.양은 다시 변해 8괘, 즉 건(乾).태(兌).이(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의 괘가 있다.
건은 하늘.부친(父親).건강을 뜻한다. 태(兌)는 못(池).소녀(小女).기쁨을 뜻한다. 이(離)는 불(火).중녀(中女).아름다움을 뜻한다. 진(震)은 우레.장남(長男).움직임을 뜻한다. 손(巽)은 바람.장녀(長女)를 뜻한다. 감(坎)은 물.중남(中男).함정을 뜻한다. 간(艮)은 산.소남(小男).그침을 뜻한다. 곤(坤)은 땅.모친(母親).순(順)을 뜻한다.
주역이 우주철학(宇宙哲學)을 논하고 있어 유가사상(儒家思想)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점복술(占卜術)의 원전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다.
동양 고전의 하나인 역경(易經) 또는 역(易)라고 한 주역, 고대 중국의 농경사회에서 농사(農事)를 재배하는 신(神)은 천(天)이었으며 땅의 생산력(生産力)과 곡식(穀食)의 신 및 천문지리(天文地理)와 역법(曆法)에 관한 지식 등은 농경사회의 풍요(豊饒)를 도모하는 자원(資源)이었다. 이처럼 하늘의 이법(理法)과 땅의 이치(理致)를 밝게 열려준 것이 주역(周易)이다.
최지몽이 별을 보고 점을 치는 것 또한 주역의 원리를 두고 천문 점성술을 실천했다. 최지몽은 개물성무(開物成務), 즉 우주 만물을 개발하며 그 임무를 완성하는 것으로 천하사(天下士)를 결정하였고 인간사(人間事)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미리 알게 해주었다. 이는 우주론으로 풀었으며 별 등 우주(宇宙)의 변화와 찬지(天地)의 운행질서를 통해 인도(人道)를 따르는 것으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災)를 하나로 보는 주역철학(周易哲學)으로 풀어냈다. 인간은 천인합덕(天人合德)의 정신으로 우주와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져 천인 조화(天人調和)를 지향하는 자연철학의 성격을 지녀 이를 따랐다.
천체운행에는 역법(曆法)을 깨달아야한다. 역법은 천체의 주기적 운행을 시간 단위로 구분하는 계산법으로 천체운행에 있어서 산출되는 날짜와 천체의 출몰시간 등을 정하는 방법, 즉 천체의 주기적 현상에 따라 시간 단위를 정해 나가는 체계를 역(易)이라고 하고 역을 편찬하는 원리를 역법이라고 한다. 역법에는 태양의 운행에 기반 한 태양력(太陽曆), 달의 운행에 기반 한 태음력(太陰曆) 그리고 테음력에 태양력의 요소를 고려한 태음양력(太陰陽曆)으로 구분한다.
지구의 자전주기(自轉週期)는 하루(1일)라는 시간 단위이고 지구의 공간주기(空間週期)와 달의 삭망주기(朔望週期)는 한 해(1년)와 한 달(1월)이다. 이들의 천체운동은 매우 규칙적이고 모든 사람이 함께 관측할 수 있으며 또 그 주기는 사람들이 임으로 고쳐 쓸 수 없다.
천문 점성술의 대가가 되기 위해 주역과 역법을 배운 최지몽, 별만 보고 나름대로의 점을 쳐봤던 막연한 일에서 이제는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전문가한테 체계적으로 배워 천문 점성술에 능통한 자로서 사천공봉, 역술인, 천문관으로 자신만의 학문연구에 힘을 쏟아 정립했다. 최지몽은 실용적 학문을 추구했다. 그는 학문연구에 몰두해 후학 양성에도 심혈을 기우렸다.
그는 60년 넘게 한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며 천문학이 뭔지, 주역이 뭔지, 역법이 뭔지, 이원론이 뭔지, 철학이 뭔지, 사상이 뭔지, 천문 점성술이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이롭게 하는지를 몸소 실천해 여러 사람들한테 미치게 하고 느끼게 하고 깨닫게 해줬다. 신라, 백제, 고려가 불교를 국교로 삼으며 정신적인 지주가 됐듯이 천문 점성술 또한 국가에 정신적 사상으로써 큰 힘이 되어주었다.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최지몽 대역으로 출연한 정동환
최지몽의 사상적 사고가 6명의 왕을 모실 정도로 60년 넘는 세월을 보내면서 오직 본인의 사상이 나라와 백성이 평온하고 변영하기를 바랐던 최지몽의 헌신(獻身)은 그의 나이 18세에 관직에 입문해 81세의 나이로 모든 생활을 마감하는 그의 일대기(一代記)는 한편의 드라마(KBS 태조 왕건) 그 이상의 스토리이다.
18과 81, 81을 앞뒤로 바꾸면 다시 '18' 이 되고 18은 다시 '81' 이 되는 묘한 이치의 수로 최지몽은 자신의 마지막 생의 숫자를 이미 18세에 그의 운명이 결정됐다. 예단을 한 것 같다.
“난 18세 나이로 시작했으니 81세까지 왕을 모시겠노라!”
예시라도 한 것인지 현실이 됐고 '18과 81' 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가 됐다. 18과 81을 더하면‘99’다. 99란 숫자는 '구(求=9)' 하고 또 '구(求=9)' 해냈다는 의미다. 9와 9는‘9X2=18, 9X9=81, 99-81=18, 99-18=81’이다. 함수관계(函數關係)의 불가사의한 숫자, 신비의 최지몽이었음을 보여준 18과 81은 '신(神)의 수(數)' 이다. 또한 99는 구구, 즉 구구는 '비들기의 울음소리' 다. 영암군 군서면의 구림은 사생아인 도선 국사를 '비들기가 품어서 살려 냈다' 하여 비들기 구(鳩)자와 수풀 림(林)자를 써 '구림(鳩林)' 이라고 일컬었다. 최지몽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일대기의 관직에 입문한 18과 생을 마친 81을 합친 숫자가 '99' 다. 최지몽이 이 숫자를 낳은 것은 그가 태어나 곳이 비들기가 우는 구림이어서 '구구' 했지 않는가 한다.
100이 목적지라면 99는 그 목적지를 가기 위해 마지막 힘을 써야할 지점이다.
고대에서는 아멘 대신‘99’로 표시했다고 한다. 헬라어‘A=1, M=40, H=8, N=50’따라서 다 합하면 99이다.
99는‘리더십과 지혜’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또한‘관대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봉사’의 삶을 격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99는‘리더십과 공감, 카리스마’의 축복을 받았다.
18의 1+8=9, 81의 8+1=9로 풀어진 9는‘완성, 성취, 달성, 처음과 끝, 전체’를 의미하며 천개와‘천사(天使)’의 숫자이다. 9는‘지상낙원(地上樂園)’을 뜻한다. 9는‘불후(不朽)’의 숫자다. 또한 9는‘원주(圓柱)’를 나타내는 숫자다.
불교에서는 지고(至高)의‘영적(靈的)인 힘’을 상징하며‘구천(九天)’의 의미가 있다.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생각된 아홉 개의 천체(天體)인‘일천(日天), 월천(月天), 수성천(水星天), 화성천(火星天), 목성천(木星天), 금성천(金星天), 토성천(土星天), 항성천(恒星天), 종동찬(宗動天)’이 있다. 중국에서는‘하늘의 힘(力)’을 나타낸다. 9의 제곱은 81개의 사각형으로 이루어지는 만다라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우주(宇宙)’를 형성하고 우주를 포함한다.
99의 숫자를 만들어낸 18과 81의 조합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 '신(神)의 일치' 다. 어쩜 그가 주역과 역법을 배웠고 그 학문을 토대로 천문 점성술을 통한 해몽이나 일상을 예측하는 등의 신기(神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역법은 수를 계산해 통계학적으로 풀이하는 학문이다. 최지몽의 첫 발을 디딘 나이와 그가 오랜 세월동안 몸을 담았던 일에서 마치는 해까지의 나이의 수(數)도 '역법(曆法)' 이나 다름이 없다.
천체우주의 기운을 입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런 연유에서 우연의 일치처럼 불가의사의 하게 18과 81의 수의 조합(調合)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더하고 곱하고 빼고 하면 18이 되고 81이 되고 99가 되는 이런 현상은 그가 진정한 천문 점성술사였기에 가능하다. 천문은 정확한 수의 계산으로 측정하고 현상을 파악해 낸다.
18과 81의 조합 그리고 이치, 최지몽이 18세의 나이로 입문하여 81세의 나이로 퇴직을 하는 기간의 해수는‘63’년이다. 6과 3을 더하면 9가 된다. 이 또한 묘한 수(數)의 일치이다. 9라는 수를 낳은 최지몽, 그는 어릴 적부터 이미 수를 통한 그 수에는 역법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그였기에 고려 초기를 화려하게 알차게 힘차게 열게 하였고 고려가 한 시대를 평정(平靜)하여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반도는 남(南)과 북(北)으로 나누어져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신라(新羅)가 그랬고 고려(高麗)가 그랬듯이 또 다시 하나가 되는 평화통일(平和統一)이 될 날이 머지않아 다가 올 것으로 본다. 최지몽의 그 사상(思想)이 해와 달과 별로 흐르고 있고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지몽은 어떤 사람인가? 고려의 안정(安定)과 번영(繁榮)을 기했던, 왕국과 왕실 그리고 백성을 위해 헌신(獻身)했던 천문 점성술이라는 사상으로 정사(政事)에 도움을 줬던 인물이 아니던가? 그는 죽어서 별로 환생(還生)됐다. 그는 사라졌어도 그의 분신(分身)인 별을 언제나 지지 않고 반짝이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고려의 진정한 개국원훈(開國元勳) 최지몽, 우주의 원리로 세상을 열었던 최지몽 그는 별을 바라보는 '별밤지기 소년(小年)' 에서 별빛을 비춰주는 감각(感覺)이나 지각(知覺)의 능력이 뛰어난 '별밤주(朱)기' 또는 '별밤밝기 성인(聖人)' 으로 반짝인다.
참고로 밝다는 고어 'ㅂ.ㄺ다' . 밝다는'뛰어나다' 뜻으로 '붉다' 와 어원이 같으며'밝다=붉다' 는 '어떤 일에 가장 뛰어난 가장 으뜸인 사람의 상태가 시작되다'를 문자로 표현해서 이것을 '밝다(어떤 능력이 뛰어나다)' 의 뜻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나아가 밝다와 다의어(多義語) 관계에 있는 조선 고어(古語) 'ㅂ.ㄺ다(=붉다)' 의 뜻을 표현한 문자로 활용한 것으로 붉은 '주(朱)' 의 갑골문(甲骨文)에 숨어 있는 비밀이자 순수 우리말임을 말해주고자 한다.
밝다의 뜻을 지닌 붉은 주(朱)의 갑골문은 나무(木)의 '줄기' 부분에 점을 찍은 모습이다. 이 지형이 '밝다' 는 뜻이다. 붉은 주(朱)의 갑골은 웃듬, '줄기' 와 '구루' 를 표시하고 가지를 들고 서 있는 나무로 그려내서 '위 ㅁ.ㅅ(=가장), 우두머리(=어던 일에 으뜸인 사람), 웃듬(=으뜸=가장 뚜아난 것), 들어서다(=어떤 상태나 시기가 시작되다)' 의 뜻을 표현하여 어떤 일에 가장 뛰어난 가장 으뜸인 사람의 상태가 시작되다를 '밝다(=능력이 뛰어나다)' 의 뜻으로 정의하고 나아가 이와 다의어 관계에 있는 'ㅂ.ㄺ다(=붉다)' 의 뜻으로 활용하였다.
으뜸(웃듬)은 '구루' 또는 '줄기' 이며 다의어인 '웃듬(=으뜸)' 의 뜻을 표현한 것이다. 가지를 위로 들고 서있는 나무를 그러내면 '들다' 와 '서다' 로써 '들어서다' 를 표현한 것이 되어 다의어인 '들어서다(=어떤 상태나 시기가 시작되다)' 의 뜻으로 활용되며 붉은 주의 갑골문은 '나무' 와 '줄기' 를 그려내서 가장 뛰어난 상태가 시작되다가 '밝다(=어떤 능력이 뛰어나다)' 의 뜻이다. 붉은 주(朱)의 갑골문은 '들다' 및 '서다' 와 더불어 '위, 맞, 우두머리' 를 그려냈다.
따라서 붉은 주(朱)의 갑골문은 'ㅁ.ㅅ(=가장), 우두머리(=어떤 일에 으뜸인 사람), 웃듬(=으뜸)=가장 뛰어난 것), 들어서다(어떤 상태나 시기가 시작되)' 의 뜻으로 활용하면 '어떤 일에 가장 뛰어난 가장 으뜸인 사람의 상태가 시작되다' 를 문자로 표현해서 이것을 '밝다(=어떤 능력이 뛰어나다)' 의 뜻으로 정의할 수 있다. 밝다와 다의어 관계에 있는 조선 고어 'ㅂ.ㄺ다(=붉다)' 의 뜻을 표현한 문자로 활용한 것이다. 붉은 주(朱)는 붉다, 즉 '밝다' 또는 '으뜸' 이라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하자면 최지몽의 사상이 옳았고 밤하늘의 별처럼 밝게 빛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별을 바라봤던 별밤지기에서 별빛을 비춰주는 '별밤주(朱)기' 로 반짝이며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고로 최지몽이 태어난 곳은 낭주이다. 낭주는 밝을 '낭(朗)' , 고을 '주(州)' 자를 써 '낭주(朗州)' 라 했다. 별빛을 비추고 있는 최지몽임을 봐 낭주라는 지명이 어쩜 그를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닌가한다. '밝은 고을' 이라는 뜻을 지닌 낭주, 고을 주(州)자를 '밝다' , '으뜸' 의 의미를 지닌 '붉은 주(朱)' 자로 하여 최지몽도 밝은 사람, 즉 '가장 뛰어난 가장 으뜸인 가장 능력을 갖춘 사람' 으로 표현하고 싶고 최지몽의 사상이 낭주인 영암(靈岩)을 빛내주고 있다.
따라서 '별(=聖人=최지몽), 밝다(=朱=낭주)' 은 18(입문)과 81(별세)이 또는 99(조합)가 63(재임기간)이 그러듯이 '등식(等式)' 이 성립되는 최지몽의 생애(生涯)다.
최지몽은 907년에 태어났다. 987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또 그가 태어난 해의 907년의 0은 그가 떠날 해를 0으로 남겨 뒀다. 0의 숫자는 사망하는 해에 그 0을 8로 채웠다. 이것은 그가 관직에 입문한 나이가 18의 8과 그가 사망한 81의 8을 987이라는 수를 만들었다. 이것은 907년과 987년의 9는 숫자 구(九)이기도 하지만 구가 천문의 역법과 주역등으로 앞날을 예시하는 등 미리 알고 대비를 하게 했던 '구할 구(求)' 자이다. 또한 7은 행운(幸運)의 숫자로 그가 말해준 대로 모든 만사가 불행이 아닌 '행운(幸運)' 이 따랐다는 것이다. 9는 또 그가 태어난 고향이 '구림(鳩林)' 이다. 태어난 해도 첫 숫자가 9이고 세상을 떠난 해의 첫 숫자도 9이다. 이것은 99, 즉 비들기가 '구구' 하는 울음소리를 말함이다. 고로 최지몽에게 있어서 숫자 0과 1과 7과 8과 9가 그에게는 의미 있는 숫자로써 '천운(天運)의 숫자' 로 여겨짐이다. 숫자 0은 '비존재, 무(無), 비현현, 무한정한, 것 영원한 것, 질이나 양을 초월한 것' 을 나타낸다. '신의 수, 영원한 수' 를 의미한다. 1의 숫자는 모든 것의 '우두머리'를 나타낸다. 최초로 의미하는 수로 '행복의 수, 축복의 수' 라고 한다. '원초의 통일, 태초의 시작, 창조자, 주동자, 모든 가능성의 총합, 본질, 중심, 나눌 수 없는 불가분의 것, 배아(胚牙), 고립과 융기, 상승' 을 나타낸다. 7은 '대우주' 를 나타내는 숫자이다. '완전, 전체성' 을 뜻하며 '명예, 승리, 개선, 행운' 을 나타낸다. 또한 '완성, 보증, 무사, 안식, 풍부, 재통합, 종합' 등을 나타낸다. 8은 '넉넉함과 조화' 를 의미하며 '횡재' 를 불러 온다고 한다. 또한 '낙원의 회복, 재생, 부활, 지복, 완전한 리듬' 의 상징이다. 9는 강력한 숫자인 3의 가듭 제곱(3X3)이고 3조의 3배다. '완성, 성취, 달성, 처음과 끝, 전체' 를 의미하며 '천계와 천사' 의 숫자이다.
최지몽이 태어난 해인 907년 0은 '우주정신' 이 분화해 쓰임으로 나타나 자리 잡음으로 '모든 땅의 변화가 일어난다' 는 개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주정신이 나온 '본체' 를 의미한다. 즉 그 본체는 8이였으며 8은 곧 넉넉함이요 조화를 이룸이다.
하나 더 풀이한다면 최지몽이 재임 기간이 '63' 년이다. 6은 인간의 미적인 완전함을 갖는 '6각형, 정6각 기둥, 6각수' 등처럼 '완전함의 수' 이다. '평형, 조화' 를 상징한다. 3은 '안정과 조화' 그리고 '창조력, 성장, 통합의 수' 로써 '과거.현재.미래' 의 3가지로 나누는 수이며 '하늘.땅.사람' 을 3이란 수로 구분할 때 쓰인다.
정리해보면 '생명체이든 무생명체이든 인간과 만물과 세상을 구하고자 했던 최지몽이 우주의 정신으로 영원한 모든 것들을 위해 낙원의 회복을 위해 재생과 부활을 시키면서 완전한 생체의 리듬을 추구하며 필시 명예와 행운이 있기를 바랐다. 최지몽이 태어난 해도 행운(幸運)이있고 그가 세상을 떠난 해도 축복(祝福)이었다' 는 '907년과 987' 년이다.
학문(學文)의 본질은‘합리성(合理性)과 실증성(實證性)’에 있고 학문의 목적은‘진리탐구(眞探究)’에 있다고 했다. 진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학문을 하는 것뿐이다. 탐구에 몰두한 최지몽은 상아탑(象牙塔) 속에서 노고(勞苦)가 앞서 있었다.
최지몽은 고려 초기 태조 왕건 대에 천문관측을 담당하던 관서(官署)인 사천대(司天臺) 사천공봉(司天供奉)리는 직으로 첫 부임했다. 천문관측과 주역의 역법(曆法), 기상의 현상을 관측한 측후(測候), 성곽의 치인 각루(刻漏) 등의 일도 관장하였다.
천문관측은 군주(君主)로서 끊임없이 천문현상을 관찰하여 하늘의 의지를 파악하고 이에 따른 선정(善政)을 베풀어야한다는 천인합일사상(天人合一思想)에 입각한 유교의 도덕사상(道德思想)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천문관측(天文觀測)은 국가의 중대사의 하나가 되어 일찍부터 천문대(天文臺)가 설립되었으며 천문(天文)과 역법(曆法)을 관장하는 제도가 정비되었는데 고려 초 사천대(司天臺)를 관장하는 일에 최지몽이 맡았던 것이다.
사천대는 요즘으로 말하면‘국립천문대(國立天文臺)’이며 국립천문대는 1974년 9월 13일 대전시 대덕연구단지 내에 설치되어 천문학(天文學)에 관한 연구와 천상관측(天上觀測).역서편찬 및 표준시의 결정과 시보(時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과학기술처 산하 천문연구기관이다. 연구 활동으로‘행성.태양.항성.은하계.외부은하.우주’등에 관한 관측과‘이론연구, 우주전파연구, 인공위성의 궤도와 천체역학연구, 천문기기 개발연구’등이 있으며 대민업무로는‘일력자료 발표, 역서편찬, 표준시의 결정, 음.양력 대조증명 발급과천문지식의 홍보’등이 있다.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최지몽 대역으로 출연한 정동환
고려 초 천문 점성술사인 최지몽은 기(氣)를 뿌리를 두고 모든 사물을 기와 연관시켜 풀어보려고 했다. 어떤 사물이 생긴 근원에 대한 이론인‘기원론(起源論)’으로 별의‘밝기.색깔과 위치.방향과 흐름.세기와 거리,기간’등으로 별점을 치려했다.
최지몽은 이런 근거를 두며 하나의 과학적(科學的) 관점에서 풀어 철학사상(哲學思想)을 통해 현실적으로 적용하고자 했다. 한 예로‘유성(流星)이 자미원(慈微垣)에 침범했습니다’라는 말은 악의(惡意)를 품은 자들이 궁궐 담장 안으로 침범하려한다고 보았다. 유성의 나쁜 기운(氣運)이 궁궐 담장 안으로 뻗었다는 의미의 과학적으로 해석하여 그 유성의 악(惡)한 마음을 품는 자(者)로서의 철학적으로 풀었다.
그런 유성이 궁궐 안으로 지나갔으니 그 유성의 징조(徵兆)를 파악하고 대비(對備)하게 하여 피하도록 한 최지몽은‘과학적(科學的) 관점과 철학적(哲學的) 관점’으로 별을 보고 느낀 관찰능력에 따른 예지능력(銳智能力)을 갖춘 천문(天文) 점성술(占星術)이다.
기를 뿜어내는 유성 흐름의 방향을 놓고 상태를 판단했다. 유성이 흐르른 방향과 위치를 보고 그 쪽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심지어 시간이나 밝기와 색깔까지 계산을 하여 닥칠 상황에 대해 알아봤다.
유성은‘별똥’이다. 별의 일부가 떼어져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현상을‘유성(流星)’이라고 한다. 유성이 나타나면 좋지 않는 일이 생긴다고 봤다. 심지어 유성을 두고 혼(魂)이 날아간다고 여겼다. 유성은 불길(不吉)한 징조로 봤던 우리 조상들이다.
유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안 좋은 기(氣)가 다가오고 있거나 빠져나가고 있다는 암시(暗示)다.
유성이 궁궐의 담장 안으로 들어오는 광경이라면 필시 궁궐에서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봤던 최지몽은 그런 근거와 기준으로 판단했다. 역학(曆學)을 적용한 천문 점성술이지만 과학적인 혜안(慧眼)이 있는, 근거가 확실한 예지력(豫知力)이다.
천체의 기가 어떤 세기이며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확인에 따라서 행동을 취하게 했다.
“전하! 유성(流星)이 자미원(紫微垣)을 침범했습니다.”
“나라에 반드시 역적(逆賊)이 있을 것입니다.”
“전하! 장차 반란(叛亂)이 있을 것이오니 침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전하! 객성(客星.유성)이 제좌(帝座.자미원)를 범했습니다.”
“숙위군(宿衛軍)을 강화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십시오.”
밤하늘의 유성을 보고 왕을 피하게 했던 최지몽, 최지몽의 판단대로 반란자들이 궁궐로 몰래 들어와 왕이 잠자는 틈을 타 목을 치려했지만 이미 왕은 최지몽의 말을 듣고 다른 침실로 피해 그들은 허탕을 치고 말았다.
최지몽의 예리한 판단이 없었다면 왕은 그만 변란(變亂)을 쾌한 자들로 죽고 말았을 것이다.
최지몽의 이런 예측적인 점성술은 고려왕국을 안정적으로 유지해나가게 했다. 태조 왕건은 외적들과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전과(戰果)가 컸다. 또한 호족(豪族)들을 포용하는데도 점성술(占星術)을 이용했다. 궁예가 관심법(觀心法)으로 사람을 꿰뚫어보고 대했듯이 최지몽의 말에 따라 왕건도‘천문 점성술에 의한 천심법(天心法)’으로 기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고 번성시키는데 훌륭한 인물로 추앙(推仰)을 받고 있다. 그런 왕으로 만드는 데는 최지몽이 있었다. 최지몽은 왕건이 죽고 나서도 그의 공적은 이후에도 인정받아 2대 혜종 때도 최지몽을 신뢰하고 항상 곁에서 일을 보게 했다. 자문을 최지몽에게 주로 얻었다. 최지몽이 왕건을 924년(태조 7)부터 후삼국이 통합되는 936년(태조 19)까지 12년간 태조를 수행(隨行)했고 이후 재위기간이 끝날 때(943년. 태조 26)까지 각종 현안 문제를 조언(助言)하는 역할을 옆에서 해오면서 고려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데 크게 기여를 한 공을 높이 사 2대 혜종, 3대, 정종, 4대 광종, 5대 경종, 6대 성종은 그를 다시 임명해 보좌하도록 했다.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최지몽 대역으로 출연한 정동환
최지몽의 성품이 원치 온순하고 총명한지라 왕은 최지몽을 총애(寵愛)할 수밖에 없었다. 최지몽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고 믿었다.
혜종(惠宗,912~945, 재위 943~945)은 즉위하자마자 병(病)을 앓는다. 이렇게 되자 경기도 광주(廣州)에 근거지를 둔 호족인 왕규(王規.?~945)는 이 틈을 타서 태조의 16비가 낳은 광주원군(廣州院君)을 왕위에 앉히려는 음모(陰謀)를 꾸민다.
태조 왕건에게 제15비와 제16비를 출가시키고 즉위한 혜종에게도 딸을 출가를 시킴으로 인하여 살아있는 권력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권세(權勢)가 된 왕규는 945년(혜종 2) 혜종의 배다른 형제인 왕요(王堯.고려 3대 국왕 정종, 923~949, 재위 945~949)와 왕소(王昭.고려 4대 국왕 광종 925~975, 재위 949~975)가 외손의 왕위 등극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왕규는 혜종에게 이들을 헐뜯다.
그러자 사천공봉(司天供奉)이라는 천문 관측 관직을 맡고 있던 최지몽이 혜종에게 이렇게 말한다.
최지몽 왈“유성(流星)이 자미원(紫微垣, 천재의 궁궐 담장)을 침범하였습니다. 나라에 반드시 역적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
최지몽이 별자리를 관측해 왕규가 변란(變亂)을 일으킬 것을 헤아려 혜종에게 알린 것이다. 왕규는 혜종이 자신의 딸을 왕소와 혼인시켜 형제들과 유대를 강화하자 이게 불만을 삼아 혜종을 제거하고 광주원군을 왕위에 앉히려 했다.
최지몽이 혜종에게 장차 변란이 있을 것이니 침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라고 건의하자 혜종은 최지몽의 말을 듣고 다른 침실로 피했다. 이를 모른 왕규가 어두운 밤에 일당과 벽을 뚫고 왕의 침실에 침입했으나 혜종이 거처를 이미 옭긴 뒤라 뜻대로 왕을 죽이지 못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980년에 최지몽은 경종(景宗.고려 5대 국왕, 955~981, 재위 975~981)에게도 이렇게 말했다.
최지몽 왈“객성(客星.유성)이 제좌(帝座.자미원)를 범했습니다. 숙위군을 강화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십시오”라고 왕에게 아뢰었다.
이 조언을 들은 경종은 신하들한테 지시를 내렸고 조언해준 최지몽의 덕분에 왕승(王承)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
왕을 잘 보필하였던 최지몽은 광종에게 무례를 범해 그만 11년간의 유배생활을 했었다. 그런 그가 광종의 아들인 경종은 고려 5대 임금으로 즉위하자 유배 중인 최지몽을 불러들여 다시 보좌를 하게 했다. 최지몽을 곁에 둠으로 인하여 화(禍)를 면하는 등 경종에게는 최지몽이 은인(恩人)이었다.
경종은 자신의 화를 면하게 해준 최지몽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반란을 예견해 왕권과 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그의 공을 높이 사고 감사히 여겨 경종은 최지몽에게 최고 관직인‘내의령(內議令.중서문하성 전신인 내의성 장관, 종 1품)’벼슬을 내렸다.
대한민국의 천문 점성술 대가였던 최지몽은 뛰어난 재능으로 고려 초기 왕권(王權)과 왕실(王室)을 안정시킨 인물이다. 여섯 임금을 모신 그런 그는 987년(성종 6)에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수(天數)를 누리며 왕의 총애(寵愛)를 한 몸에 받았다.
최지몽의 일생일대에 가장 두각을 보인 시기는 고려 태조 왕건 때였다.
왕건의 천하통일 예견할 정도로 최지몽의 재능은 태조 왕건 때 빛을 드러냈고 이 업적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최지몽은 고려 개국공신(開國功臣)인 왕건(王建)의 책사(策士)로서 훌륭한 임무를 수행했다.
태조 왕건이 해몽을 잘 한다하여 최총진에게 지몽(知夢)이라는 이름은 지어줄 정도로 그를 매우 신뢰를 했고 것이다. 삼한(신라.후백제.후고구려)을 통합해 통치할(必將統御三韓) 것이라는 말을 듣고 더욱 그를 최측근으로 두며 총애를 했다.
“그대는 참으로 해몽(解夢)을 잘하는구나!”
“그대의 이름을 꿈에 대해 잘 안 것이 많으니 지몽(知夢)으로 하거라!”
이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최지몽은 고려의 한 시대를 영화롭게 만드는데 크게 기여를 했다.
태조 왕건은 이름을 바꾸어주면서까지 최지몽을 천문 관측을 담당하는 사천공봉(司天供奉)이라는 관직을 내려 고려의 천문학 연구 힘쓰게 했다는 사실은 오늘 날에도 그런 역사적인 스토리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최지몽과 태조 왕건의 만남의 첫 드라마는 최지몽이 18세 때(924년 태조 7)의 일이다.
태조 왕건의 총애를 받은 최지몽은 후삼국(後三國)이 통합되는 936년(태조 19)까지 12년간 태조를 수행했고 이루 재위기간이 끝날 때까지 각종 현안문제를 조언(助言)하는 역할을 했으니 대하드라마‘태조 왕건(2000.04.01~2002.02.24)’이 총 200회까지 방영(放映)했다. 하지만 최지몽의 일생일대기(一生一代記)는 태조 왕건의 2년의 방영보다 무려 63년간 동안 스토리가 이어졌다. KBS 대하드라마가 1년에 100로 계산한다면 최지몽의 일생일대기는 장장 6300회가 방영됐다고 볼 수 있다.
최지몽과 같이 꿈을 잘 풀이한 유명한 인물로는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요셉(joseph)’을 들 수 있다. 요셉은 수천 년 전 인물로 그는 시기심 많은 형들에 의해 상인(商人)에게 팔려 노예(奴隸) 신분으로 애급(埃及.이집트)에 끌려와 이집트(Egypt)에 있으면서 여러 차례 기막힌 해몽(解夢)을 해‘요셉’은 마침내 왕의 꿈을 풀이해 애급(이집트)을 위기에서 구(求)하고 총리대신(總理大臣)에 오른다. 최지몽이 그런 일로 고위직에 올랐다는 점에서‘한국판 요셉’이라 할 수 있다. 요셉은 신(神)의 뜻과 섭리(攝理)를 잘 따르면 반드시 신의 선택과 축복을 받는다는 기독교(基督敎) 신앙원리에 가장 충실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요셉의 이야기는 성경(聖經)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야사(野史)에나 나올법한 최지몽에 관한 이이야기는‘고려사(高麗史)’라는 정사(正史)에 당당하게 실렸다.
최지몽이 고려사에 실린 까닭은 이렇다.
최지몽이 출생하기 전 태조 왕건이 꾼 꿈 이아기 하나가 전해진다. 906년 궁예의 부하로 있던 서른 살 왕건은 바다 위에 세워진 금(金)으로 만든 9층탑에 직접 올라간 꿈을 꾸었다.(고려사 권1 태조 총서)
고려 무신정권(武臣政權) 최고 권력자인 이의민(李義旼)이 어렸을 적에 그의 아버지 이선(李善)은 꿈속에서 아들이 푸른 옷을 입고 황룡사(黃龍寺) 9층탑을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아들이 귀한 사람이 될 것이라 예견했다고 한다.(고려사 권128, 이의민 열전)
황룡사 9층탑은 귀한 신분 외에 천하통일(天下統一)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황룡사 9층탑이 만들어진 계기를 설명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한 대목을 보면 자장(慈藏.590~658)은 당나라에서 만난 보살(菩薩)에게서 신라에 9층탑을 세우면 이웃나라가 항복(降伏)하고 9한(韓)이 조공(朝貢)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신라로 돌아온 자장은 선덕여왕(선덕여왕)에게 보살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고 9층탑 건축을 청했고 선덕여왕은“알겠습니다”하며 지시를 내려 645년(선덕여왕 14)에 황룡사 9층탑이 세워진다.(삼국유사 권3) 이후 신라는 삼국(三國)을 통일하게 된다.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김영철), 왕건(최수종), 견훤(서인석)
이런 황룡사 9층탑에 오르는 꿈을 꾸었던 꿈이 길몽(吉夢)이라는 말은 들은 왕건(王建)은 9층탑에 오르는 꿈을 꾸고 난 후 대망(大望)을 품었다. 그리고 924년(태조 7) 후삼국 통합을 예언한 최지몽과 만남으로 왕건은 천마(天馬)처럼 날개를 달게 되었다. 최지몽을 만나 천명의 군사와 만 마리의 말로 대단히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천군만마(千軍萬馬)’를 이루어 삼국을 통합했다.
최지몽은 천문에만 조예가 깊은 것이 아니라 별 박사를 넘어 의학(醫學)과 기술(技術)에도 능했다. 그는 왕의 몸 상태를 보고 어디가 어떠해서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냈다. 천체의 기와 주변의 기를 보고 상태를 진단했다. 심지어 마음과 정신까지도 알아볼 정도였다. 건강 상태를 우주를 통해 계산하여 어디가 좋고 나쁘고 마음과 정신이 어떠해질 것인지를 꿰뚫어봤다.
최지몽은 왕의 침실이나 정사를 본 편전(便殿)에 오늘은 어떤 기가 흐를 것이라는 느낌을 감지하고 왕에게 알리고 왕이 행동하게 했다. 심지어 말까지도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최지몽이 기의 흐름을 알기 위해 항상 그는 별을 관찰했다. 별의 위치, 별의 밝기, 별의 색깔, 별의 흐름, 별의 세기 등을 파악하고서 어떤 기운(氣運)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연관시켜 적용했다.
매일 별을 관찰하면서 항상 임금의 몸과 기분상태 또는 왕실 가족과 궁궐 기운, 음식, 건강과 연회.행차 등 행사까지도 꼼꼼히 체크하여 그 기운과 천체의 기운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통계학적으로 풀어 알리는 일에 소홀함에 없게 했다.
“전하! 몸 상태가 매우 약해졌사오니 보양을 하시옵소서!”
“오늘은 닭보다 오리가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전하! 오늘은 음의 기운이 많으니 양기의 음식을 드시옵소서!”한다든지
“전하! 오늘 밤은 다른 침실에서 지내시길 바라옵니다.”
“안 좋은 기운이 스며들어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사옵니다.”한다든지
“전하! 이번 연회는 너무 화려하게 펼치지 말아주옵소서!”
“백성들의 원성이 있을 수 있고 화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한다든지
“전하! 오늘 궁외보다 궁내애서 산책하는 일이 좋을 듯싶습니다.”
“궁외는 외침의 기운이 넘쳐난 듯합니다.”한다든지
“전하! 훈요십조 발표는 3일 뒤에 하는 것이 더 환영받을 것 같습니다.”
“별의 기운이 기울어져 있사오니 이틀만 참고 하심이 나을 듯하옵니다.”한다든지
“전하! 적을 치려거든 동쪽의 방향에서 유인하여 치십시오.”
“적들은 양기가 가득 차있습니다.”
“양기에는 양기로 대결하여야합니다.”
“동쪽의 태양의 기운을 받아 적을 공격하십시오.”한다든지
모든 일에 있어서 매일 매일 체크를 하여 별점을 쳐보아 판단을 하고 아뢰었다.
정치사에서 천문을 통한 정치를 보게 하는 일은 없었다. 요즘 정치인들은 자신이 정치계에 발을 디딜 것인지 출세를 할 것인지를 미리 판단해보는 사주를 보기는 하지만 예전의 왕들처럼 그런 일은 없었다. 최지몽이 과학정치(科學政治)를 구현해 그동안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을 획기적으로 실시했던 일로 독보적인 정치사(政治史)를 남겼다.
견훤과 왕건의 추앙(推仰)을 받은 도선(道詵)과 최지몽(崔知夢)은 고려 초기 국왕과 왕실에 영향을 끼친 영암 출신 인물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최지몽 대역으로 출연한 정동환
최지몽은 18세인 924년(태조 7)네 천하통일을 예언하여 태조 왕건에게 발탁된 뒤 81세인 987년(성종 6)에 사망할 때까지 태조,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에 걸치는 등 63년(11년 유배 포함)간 6명의 국왕을 보좌했다.
최지몽의 역할은 국왕을 단순히 보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왕규의 모반(謀叛)을 막아 혜종과 그의 형제인 정종, 광종의 목숨은 물론 광종의 아들인 경종의 목숨도 구했다. 최지몽은 왕실의 참모(參謀)이자 조력자(助力者)로서의 역할을 죽을 때까지 수행했다. 최지몽은 살아서 충신, 죽어서도 충신으로서 오로지 일생일대를 왕에게 바친 진정한 충신(忠臣)이었다.
최지몽은 6명의 왕을 모셨지만 순탄치는 않았다. 왕조 창업과 전쟁, 반란 등 험난한 시기일수록 온전히 관료로서의 삶을 마치는 일은 쉽지가 않다. 더욱이 왕실과 국왕을 위태롭게 하는 꽤.술책.계락.권모의 조짐을 예견하고 조언하는 천문 점성술사들은 주변의 시기와 견제로 일반 관료(官僚)와 같이 순조롭고 평탄한 삶을 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자칫 잘못을 범함으로 인하여 목이 달아났거나 유배생활을 해야 했던 시대였다. 여러 왕을 모시다는 게 쉽지 않은 운이 좋았다고 할까? 최지몽은 임금을 모시는데 있어서 성격이 원만해 왕의 사랑을 많이 받을 만큼 그가 없어서는 안 될 참모다운 훌륭한 참모(參謀)가 아니었나한다.
최지몽이 황해북도 개풍군 영남면에 위치한‘귀법사(歸法寺.964년 창건, 광종 14)’행차에 광종을 수행했다가 무례한 행동으로 11년간 유배를 당한 것도 그러한 예이다.
중국의 선진 문물인 과거제(科擧制)와 관료제(官僚制)를 도입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중국의 문사(文師)들을 적극 유치했던 광종에게 점성술과 같은 고려의 토속(土俗)과 전통을 중시한 최지몽의 존재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최지몽의 유배(流配)는 그러한 사상과 이념의 갈등 때문에 빚어진 측면이 없지 않았다. 같은 신하(臣下)라도 백성(百姓)들 또한 생각이 같을 수가 없고 파벌(派閥)로 인한 기 싸움이 심했다.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했기에 총애를 받고 출세를 하고자하는 마음들이어서 남이 잘 된 꼴을 못 봤다. 각자 사상과 이념이 달랐으니 간사한 신하의 무리인 간신배(奸臣輩)들은 메인(main)으로 등판하여 주자로 있는 최지몽에게 견제구(牽制球)를 날렸던 것이다.
그러나 유배까지 당했던 최지몽이 다시 복권(復權)되어 관료로서 장수(長壽)한 사실은‘천문 점성술’이 당시 사상(思想)은 물론 정치(政治)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출신 도선 국사의 존재도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최지몽은 광종 21년 경오(景午)에 왕이 귀법사에 행차할 때 최지몽도 함께 수행원로 동행했는데 술이 취해 왕에게 큰 실수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좌천(左遷)되어 외걸현(隈傑縣)에서 11년을 지냈다. 최지몽은 11년 간 왕을 곁을 떠나 있으면서 그 계기로 천문학에 더 깊이 연구를 할 수 있게 한 시간이 돼서 위안을 삼았다.
11년간의 유배생활 중에 광종 사후 왕이 바뀌어 5대 경종이 즉위하고 경종 5년 경진(庚辰)에 다시 중앙으로 소환되는 등 최지몽이 개국원훈(開國元勳)이요 네 임금을 모신 옛 신하라 하여 그를 불러 내의령(內議令.내의성을 담당한 중앙행정의 최고 기관으로서 조직에 관한 사무를 처리한 종1품 장관), 제후(諸侯)를 높여 부른 동래군후(東來君侯) 상주국(上柱國.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자에게 부여되는 훈직)으로 하고 식읍일천호(食邑一千戶.국가에서 오아족.공신.봉작자에게 수조자.수조호를 지급한 일정한 지역)를 내렸다.
“대신은 들으시오!”
“유배를 간 최지몽에게 명하라!”
“다시 궁궐로 들어와 왕을 보좌하라고 전해라!”
“네 임금을 모신 개국원훈 최지몽을 다시 궁궐로 불러 들이 거라!”
하며 다시 궁궐로 복귀하라는 교지(敎旨)를 내렸다.
최지몽은 경종 임금의 명을 받고 유배생활을 접고 다시 개성으로 올라갔다. 궁궐에 들어와 왕을 찾아뵙고
“전하! 소인 최지몽이옵니다.”
“소인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어 유배생활을 하면서 참회하며 살고자했습니다.”
“그런 불찰이 많은 못난 저를 다시 불러줘 감개가 무량하옵니다.”
“소인은 전하의 부름에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전하! 전하의 마음이 하해와 같습니다."
하자 경종은
“그대 최지몽은 들의 거라!”
“그대가 무례한 일을 했다고 하지만 그대가 기여한 공은 크도다.”
“개국원훈인 그대인데 이 어찌 하나의 일로 평생 죄인으로 취급할 수 있겠는가?”
“네 임금을 모셨듯이 왕국과 왕실을 잘 보필하도록 하라!”
하자 최지몽은 엎드리며
“전하! 황공하나이다.”
“전하! 이 어찌 마다할 할 수가 있겠나이까?”
“부족함이 많은 소인을 잘 헤아려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분부대로 충실히 본분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의 뜻이 하해와 같습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최지몽은 경종 임금에게 엎드려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며 왕의 너그러운 마음에 다시 궁궐로 들어와 보좌에 충실히 임했다.
최지몽은 왕승(王承) 등이 반역(叛逆)을 꾀하고 있음을“객성(유성)이 자미원에 침범하였습니다”라고 임금께 아뢰옵고 화(禍)를 면하려 면은 경계를 강화하라고 했다. 왕은 최지몽의 말을 듣고 왕승 등 반역자들이 행동하기 전에 궁궐 경계에 빈틈없이 나섰다. 반역사실을 알게 된 경종은 궁궐로 쳐들어오려고 했던 모역자(謀逆者) 왕승을 죽이고 그의 일당을 모조리 잡아들이거나 처형했다. 경종 임금은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아차려 화를 모면하게 한 최지몽에게 어의(御衣)와 금대(金帶)를 하사했다.
별점으로 봉사하여 높은 지위에 오른 최지몽은 경종 임금 후에도 성종 임금을 보좌했다. 성종 2년(983)에 좌집정(左執政)이 되었다.
그런 최지몽은 갑신년에 부모상을 당하여 사직하고자 세 번에 걸쳐 사직원을 청하였으나 성종 임금은 허락을 하지 아니하였다. 또 다시 글을 올려 사직을 청함에 결구 성종 임금은 최지몽의 마음을 헤아려줬다. 조정 일에 대해서 조참(朝參)에서가 아닌 내사방(內司房)에서 예전과 같이 일을 보라고 하였다. 내사방에서 근무를 한 6년 정해(丁亥)에 최지몽이 병상에 누우니 왕이 의원에게 명하여 약을 내리고 몸소 가서 문병(問病)하고 말 두필을 귀법사와 해안사에 주고 스님 3천명에게 빌도록 했다. 병을 치료하는데 온갖 것 신경을 쓰도록 했을 만큼 성종 임금은 배려심, 최지몽을 향한 총애가 얼마 만큼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왕국과 왕실 일에 충실하며 헌신했던 최지몽은 부모가 사망하지 심정은 예전 같이가 않아 그는 그만 이제는 조정에서 있을 것이 아니라 고향으로 내려가 남은 여생을 보내야 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최지몽은 고민 끝에 심정을 굳히고 품고 있던 마음을 임금에게 말했다.
“전하! 소인이 좌집정 자리를 그만 둘까하옵나이다.”
“오랜 세월동안 조정에서 몸을 담았으니 이젠 고향으로 돌아가 집안을 살펴야 봐야될 것 같사옵니다.”
“남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고자 하옵니다"
“소인의 심정을 잘 헤아려 주셨으면 하나이다.”
"그러하오니 저의 사직원을 받아 주시옵소서!"
하자 성종 임금은 한참 동안 망설이며
"대신의 마음이 정 그렇다면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그럼 조참으로 조정에 출근보다는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고려전기 최고 중앙의정관청인 중서문하성 전신)에서 자유롭게 일하도록 하여라!”
하자 최지몽은
“전하! 황공하옵나이다.”
“부족한 소인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심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부모를 봉양하도록 베풀어주신 마음 잊지 않고 명령대로 따르겠사옵니다.”
최지몽은 그러면서 내사문하성에 출입하면서 생각대로 고향을 내려 가 살지는 못했지만 사무를 보면서 주어진 일에 충실했다.
왕의 충성심과 부모에게 효심도 깊었던 최지몽은 4년 후 병(病)을 얻어 그만 거동을 못하고 자리에 눕게 되었다. 성종 임금은 이 사실을 듣고 귀법사(歸法寺)와 해안사(海岸寺) 두 절에 각 말 한필을 보내면서 스님 3000명으로 하여금 수복(壽福)을 비는 성대한 기원제(祈願祭)를 올려주었다. 그러나 최지몽은 987년 3월 20일 아직 따스한 봄볕이 기다려지는 날 결국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성종 임금은 부고를 접하고 이를 깊이 애도(哀悼)하여 부의(賻儀)로 배 1000필, 쌀 300석, 보리 200석, 차 200각, 향 20근을 내려주는 등 최지몽에 대한 총애(寵愛)가 깊었음이요 그의 별세가 매우 안타깝고 슬퍼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지몽은 18세에 관직에 임해 81세(987년 성종 6)의 일기로 모든 생을 마감했다. 최지몽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혼은 그가 별 바라기 했던 그 별로 환생(還生)했다.
풍수지리설로 의한 사찰(寺刹) 건립에 나선 도선 국사는 전국을 돌며 나라와 백성을 이롭게 한 통합(統合)과 단합(團合) 그리고 안정(安定)과 번영(繁榮)을 가져다주는 일로써의 불심(佛心)을 불어넣게 한 것은 그만큼 도선 국사의 사상이 옳다고 봤고 높이 샀던 것이다. 최지몽의 사상도 국운(國運)을 융성(隆盛)케 하는 일로써 그의 사상론(思想論)은 부정할 수 없는 찬사(讚辭)를 받을 만한 일이었고 역사가 증명(證明)해주고 있다.
중세에서 고대로 시기를 거슬러 올라갈수록‘천문(天文) 점성술(占星術)’은 왕실의 운명(運命)을 예언하고 보호하며 제왕(帝王)의 통치(通治)와 교화(敎化) 능력을 향상시키는 제왕학(帝王學)의 지위를 갖게 했고 왕권안정(王權安定)과 강화(强化)를 불러들인다.
도선과 최지몽의 활약은 천문 점성술이 고려 초기 사상문화(思想文化)의 측면에서 특별한 지위(地位)를 누렸음을 상징적(象徵的)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정치적인 수완(手腕)을 발휘하게 한 정신지주(精神支柱)가 되었다.
최지몽과 같이 태조 때 발탁하여 성종 때까지 6명의 국왕(國王)을 보좌한 인물인, 신라 6두품집안에서 태어나 고려의 재상(宰相)까지 오른‘최승로(崔承老.927~989)’다, 그는 최지몽이 천문 점성술에 능했다면 최승로는‘경전(經典)과 유학(儒學)’의 문장에 뛰어났다.
최지몽은 천문 점성술로 최승로는 유학과 문장의 재능으로 각각 태조 왕건에게 발탁되어 천수(天數)를 누리면서 관료로서 성공의 길을 걸었다. 승승장구한 두 인물은 사상적으로는 다르지만 왕권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했다는 점에 있어서 높이 살만한 일로 그들의 공(功)은 한 시대를 영화(榮華)롭게 했다.
천문 점성술에 밝은 최지몽이 역사 속 인물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은 사상적 통합과 상생적 공존의 다원성을 추구한 고려시대 사상(思想)과 이념(理念)의 특성 때문이다.
왕건이 전쟁 후 유교 이념으로 백성을 교화하려 했던, 불교와 풍수지리 사상도 수용하며 하나의 존재로 여기고‘훈요십조(訓要十條)’를 남기며 불교, 유교, 풍수지리, 도교 등 다양한 사상의 수용과 공존을 강조했기에 최지몽은 천수를 누릴 수밖에 없었다.
훌륭한 최지몽을 낳은 영암 구림은‘낭주(朗州) 최씨(崔氏)’들의 집성촌이다. 고려 초 이전에부터 이곳에서 터를 잡고 해양무역(海洋貿易)으로 부(富)를 축적하며 고을을 번영시키며 자손 대대로 낭주 최씨라는 전통가문을 오래도록 유지해오고 있다.
최지몽이 태어난 고장, 구림은 최지몽도 천문점성술(天文占星術)에 밝았지만 도선 국사도‘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에 조예가 깊었다. 두 인물이 역학(易學)과 지리학(地理學)에 능통한 그런 사상과 이념을 가진 분을 배출한 고장으로서 역사와 문화를 꽃피워왔던 것을 자랑으로 여긴 채 자손들은 고향 영암은 천문점성술(天文占星術)은 영암에서 풍수지리(風水地理)도 영암에서 그 분야에 능통하도록 기(氣)를 받아가길 바라고 있다. 월출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최지몽, 그는 월출산의 기운에 의해 대한민국 최초 최고의 천문 점성술사가 되었다.
894년 왕건이 17세 되던 해 도선은 그에게 군사 출동과 군진(軍陣) 배치 방법 그리고 천시(天時)와 지리(地理)의 법을 알려줬다.
도선은 왕건의 아버지 용건(龍建)과 함께 송악산에 올라가 산수(山水)를 들러본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년에 성스러운 아들을 낳을 것입니다.”
“이름은 왕건이라고 지으시오.”
도선은 용건에게 길봉(吉峰.황해남도 신천군 호암리 남쪽에 있는 봉우리)에 백번 절하며‘삼한을 통합한 군주(未來統合三韓之主)이신 대원군자(大原君子)께 삼가 글월을 바칩니다’라고 적은 봉투를 주었다. 도선은 왕건이 후삼국 통합 군주가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렇듯 영암 출신들이 예언자(預言者)로서의 일을 해왔다.
민휴공 최지몽은 영암 서구림리 서호정에‘국암사(國岩祠)’에 위패를 모시고 비문을 세워 그를 기리고 있다. 또한 왕인 박사 유적지에 세워진‘고려태사민휴공 낭주최선생휘지몽생찬유허비’가 있다.
구림에서는 천 점성술 대가‘최지몽’을 비롯해 풍수지리 대가, 태조 왕건의 미래를 예언한‘도선(827~898) 국사’를 가장 큰 인물로 추앙하고 있다. 또한 군서 구림 부근에 있는 성기동에는 일본 아스카문화를 꽃피운‘왕인(미상~미상) 박사’탄생지여서 그를 기리는 유적지를 조성해났다.
최지몽이 태어난 서구림는 낭주(郎州) 최씨(氏)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서는 최지몽의 아버지인 최상흔(崔相昕)을 시조로 삼고 있다. 최상흔은 산라 진성왕 때 사람으로 원보상(元輔相.태봉의 관계에 따라 정한 문무의 벼슬, 정 4품)을 지냈다. 최상흔이 낭주에 정착하여 가세가 크게 번창하여 후손들이 낭주를 시조가 난 곳의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하지만 최상흔 이후는 세대가 활실치 않아 고려 말 전객사(典흥客寺)의 정3품인 전객령(典客令)을 지낸 최희소(崔希沼)를 중시조로하여 세계(世系)를 이어가고 있다.
서구림리의 낭주 최씨는 고려 전기에 최지몽(崔知夢.907~987)이 군서면 구림리에 출생한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구림(鳩林)이라는 명칭 유래는 구림은 '동구림리, 서구림리, 도갑리' 일대 마을을 일컫는다. 도선이 사생아로 태어나 버림받았을 때 '비들기가 품어서 살려 냈다' 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본래 영암군 서종면(西終面) 지역으로 구림의 서쪽에 있어 서구림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율정리(栗亭里), 서호정리(西湖亭里), 남송정리(南松亭里), 북송정리(北松亭里), 국사암리(國師岩里)와 서시면(西始面)의 신흥리(新興里)를 병합하여 서구림리로 개설했다.
구림의 형성 및 변천은 낭주는 영암의 옛 이름으로 마한의 영토얐가 삼국 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여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렀고 768년(신라 경덕왕 17)에 영암군(靈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