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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스크랩 오대산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2/2)
현림 추천 0 조회 61 16.01.31 13: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대산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2/2)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는

오대산 중대 사자암의 적멸보궁(月精寺寂滅寶宮)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자장보살이 당나라에 가서

문수보살의 계시를 받고 돌아와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이다.



적멸보궁은 중대 사자암의 이 길을 통해 올라간다. 이어진 돌계단이 다소 가파르지만 정감이 넘친다.





돌계단 옆은 이런 석등이 연이어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암행어사로 이름을 떨치던 박문수가 천하의 명당이라고 감탄했던 이곳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은 예로부터 한국 불교에 회자하는 말로

野山第一通度寺(야산제일통도사) 高山第一月精寺(고산제일월정사)라는 말과 같이

천하의 명당으로 이름난 곳이다.

이 말은 낮은 산지에서는 통도사의 적멸보궁자리가 으뜸이고,

높은 산지에서는 월정사 즉 중대의 적멸보궁이 으뜸이라는 의미다.

오대산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산맥들이 주위에 병풍처럼 둘러싸여

중앙에 우뚝 솟아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인, 용의 정수리에 해당되는 곳으로

그 아래에는 이를 뒷받침하듯 용의 눈물, 龍眼水(용안수)라 불리는 두 개의 샘이 있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모든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러운 궁전이란 뜻이다.

이러한 적멸보궁은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의 오대산에서 기도하던 가운데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친견하시고 얻은 석가모니 정골사리를 봉안한 불교의 성지다.




적멸보궁의 <적멸(寂滅)>이란 범어로는 열반(涅槃)<Nirvana>이다.

그 체()가 적정(寂靜)하여 일체의 상()을 여의였기 때문에 적멸(寂滅)이라 한다.

지도론 55삼독(三毒)과 모든 희론(?論)을 멸했기 때문에 적멸이다.고 했다.





적멸보궁은 제불보살을 모신 전각이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불전을 지칭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낙을 누리고 있음을 상징하게 된다.

부처님 생존시는 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에서 얻은 그 깨달음의 법을 설파한 적멸도량임을 뜻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곧 법신불(法身佛)로 부처님의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예불의 대상으로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다른 불전(佛殿)과의 차이점이다.

 




@이와같이 적멸보궁(寂滅寶宮)은 불상(佛像)을 전혀 모셔놓지 않고

법당 안에는 단(.戒壇)만 있고 속이 텅 비었으며 법당 밖 뒤편에는 사리탑을 봉안하여 놓았다.

사리탑을 세운 것은 부처님의 진신(眞身) 사리를 모신 보배로운 곳이란 뜻이다.





우리나라 적멸보궁의 기원은 신라 진덕왕 때 자장(慈藏) 스님이 중국 오대산에 가서 문수 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가사와 사리를 받아와 우리나라의 가장 수승한 땅에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여 모셨는데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부처님 가사와 사리를 모시고 금강 계단을 세운 것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강원도 설악산 봉정암(鳳程庵),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도 각기 사리를 모시고 적멸보궁을 지었다.

또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와 태백산 정암사(淨岩寺)에도 부처님사리를 봉안하고 적멸보궁을 세웠다.

정암사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한 것이다.

이로써 이곳을 3대 적멸보궁, 5대 적멸보궁이라 통칭한다.

그 외에 자장율사에 의하지 않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도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태조산의 도리사(桃李寺), 금강산의 건봉사(乾鳳寺)와 비슬산의 용연사(龍淵寺)을 합쳐

8대 적멸보궁이라 부르기도 한다.

 


적멸보궁의 건물은 정면 3, 측면 2칸의 익공식 단층 팔작지붕의 겹처마 집으로,

지붕은 청기와를 덮었고 용마루와 합각마루에 용두(龍頭)를 올려놓았다.

공포의 모양 형태에서 이 건물이 조선후기에 재건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른 적멸보궁의 경우는 사리를 안치한 장소가 분명하여

방등계단(方等戒壇)이나 사리탑(舍利塔)이 조성되어 있지만,

오대산 중대의 적멸보궁의 경우는 어느 곳에 불사리가 안치되어 있는지

그 정확한 장소가 알려지지 않아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다만 적멸보궁 뒤 쪽에 석가의 진신을 모셨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5층탑을 양각으로 새겨 넣은 84센티미터 높이의 마애불탑이 있을 뿐이다.




탑이나 능을 볼 수 있게 투명하게 된 다른 적멸보궁과 달리 방석 뒤 창문이 봉쇄되어 있다.









5대 적멸보궁의 주련은 자장율사가 지었다는 불탑게와 문 창살은 연화문이나 목단 등으로 장식하는 것이 상례지만

중대 사자암에 위에 있는 적멸보궁은 주련도 없고 연화문도 아닌 덧문형태로 

악귀의 근접을 막은 금강야차를 걸어 놓았다.

이는 아마도 월정사의 대웅전인 격인 적멸궁에 주련을 걸어 놓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월정사의 적멸궁에 걸린 주련은 자장율사의 불탑게로 탄허스님의 친필이라고 한다.(본방 월정사 참조)





<월정사 적멸궁 주련>

萬代輪王三界主(만대윤왕삼계주)

雙林示滅幾千秋(쌍림시멸기천추)

眞身舍利今有在(진신사리금유재)

普使群生禮不休(부사군생예불휴)

 

만대의 법왕이며 삼계의 주인이시 부처님께서

싸라상수에서 열반을 보이신 이래 얼마나 세월이 흘렀던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지금 여기에 모셨나니

수많은 중생들 끊임없이 예배하라.





<불교의 사리에 대한 고찰>

사리(舍利)는 불교 용어로서, 원래는 신체 또는 석가모니나 성자의 유골을 지칭하는 용어이나,

오랜 수행을 한 스님을 화장한 결과 나오는 구슬을 이르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사리를 오랜 기간 수행한 공덕의 결과물로 이해한다.

사리는 전신사리, 쇄신사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전신사리란 온 몸이 사리인 것을 말하고 쇄신사리는 구슬처럼 낱알로 된 것을 말한다.

사리는 보통 절탑 속에 보관되는데 한국의 5개 절에 부처의 사리가 보관되어 있다.

이 절들을 5대 적멸보궁이라 하는데

양산의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가 있다.





"과학적으로 보면 사리는 담석의 일종으로 식물성 단백질이 둥글게 뭉친 것이다"라는 주장이 있으나

담석을 가진 사람은 구역질, 구토, 오한, 발열등의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며,

담낭염, 담관염, 급성 담낭염등 여러 가지 합병증을 유발한다.

또 담석은 흑색, 갈색 형태를 띠나, 불교에서 말하는 사리는 여러 가지 색깔의 결정 형태를 띤다.





일부 불교계에서는 반드시 오랜 기간 수행하고 그로 인해 공덕이 쌓여야만 그 증거로 사리가 나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교도도 아니며 수행을 하지도 않은 할머니의 몸에서 화장 후 사리가 나온 경우도 있어

사리의 형성은 아직 그 원인이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불광대사전에 의하면 <사리sari>

원감속(元鑑續)의 비설록(?雪錄)

사리는 佛書(불서)에 실리라(室利羅) 혹은 설리라(設利羅)라 번역하여

골신(骨身) 또는 영골(靈骨)이라 하며 3가지 이 있다.

白色은 골사리(骨舍利), 黑色은 발사리(髮舍利), 赤色은 육사리(肉舍利)이다고 했다.

금광명경(金光明經) 사신품(捨身品)

사리는 무량육바라밀(無量六波羅密)의 공덕소중(功德所重)이다라고 했고,

사리는 계정혜(戒定慧)의 훈수(熏修)된 것으로 심히 얻기 어려운 최상의 복전(福田)이다.라고 했다.

 



현응음의6(玄應音義六)에는 사리는 全身(전신)사리와 碎身(쇄신)사리가 있다고 했다.

전신사리는 다보불(多寶佛)과 같이 全身이 그대로 사리인 것이고,

쇄신사리는 석가불의 사리와 같이 몸에서 나온 낟알로 된 것이다.

생신(生身)사리는 여래가 멸도(滅度)한 뒤에 전신사리와 쇄신사리를 남겨두어 이 공양케 하는 것이고,

法身사리는 대승, 소승의 일체의 경전을 말하는 것이다.

본래는 유골(遺骨)만을 말하였으나 후세에는 화장한 뒤에 나오는 작은 구슬모양을 사리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부처님의 사리가 전래된 것은 신라 진평왕10(眞興王十, 549)) 때에

()나라 사신이 가져온 것으로 시작으로 그 후,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자장이 가지고 온 것이다.





적멸보궁을 돌아 보고 내려 오는 길 미련이 남아 사자암을 한번 더 둘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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