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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면(樂安面) 금전산(金錢山 667.9m)을 가다.
글 쓴 이 牧 鉦 高 達 五
2월 24일, 오늘은 시산제(始山祭)를 겸한 산행이라 준비물이 많기도 합니다. 집사람이 캐리카(Carry Car)로 운반을 도와 줘서 한결 쉽게 출발지에 도착하니, 금부총무님과 친구분들이 먼저 와 계신다.
얼마를 기다려 차에 오르니 빈자리가 너무 많슴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불참(不參)님들의 안부를 여쭈니, 정월 대보름이라 방생(放生)을 가셨다는 분, 또 어떤분들은 갑자기 불참을 통보 해 오기도 하여서, 이래 저래 늘 예상 보다는 동참률이 떨어집니다 그려!
절기는 입춘(立春), 우수(雨水)를 지나 경칩(驚蟄)을 향해 달리니... 대지(大地)는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켭니다.
영산 휴게소에서 간단히 조반(朝飯)을 들고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봄볕의 따사로움이 온 산천(山川)을 어루만져서... 저만큼 장척호(丈尺湖)에 얼음이 녹아 은색으로 파문(波紋)이 일고 있슴니다.
안내문에 ‘장척호’는 1928년 3월에 축조 되었으며, 면적 약 55만 제곱미터(165,000평)로 수면부에는 마름군락, 갈풀군락, 연꽃군락, 갈대군락, 물억새군락 등으로 산재 분포하며, 희귀종인 가시연꽃 등 수백종의 식물과 조류 및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한다.
차는 신나게 달려서 금전산 출발기점에 도착하니, 시계는 거의 11시가 다 되어간다. 준비해 온 제물(祭物)들을 골고루 나뉘어 지고 들며 일렬로 오르니, 모든님들의 정성이 따사롭게 느껴 집니다.
20여 분을 올랐을까? 솔밭 가운데 기이(奇異)한 바위가 있어, 모두들 사진촬영에 분주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석좌(石座), 왕좌(王座), 옥좌(玉座), 어좌(御座), 용상(龍床) 등으로 불러도 되것심다 그려!
다시 10여 분을 더 오르니 시야(視野)는 더욱 넓어져서, 남서쪽으로 낙안읍성(樂安邑城)과 평야가 한눈에 다 들어오니... 모두들 “이~야~!” 하면서 탄성을 지른다! 정상부근에 우람하고도 기이한 바위들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금강산, 설악산을 옮겨 놓은 듯 하고, 한 낮의 찬란한 봄볕이 반사되어 보는 눈이 다 시리다!
모두들 기념촬영을 해 가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전진합니다. 저만큼 망(望)바위(너럭바위)는 예보던 그대로이고, 또 다른 풍광들은 기억에 가물 가물 하도다! 1999년 7월에 등산했으니... 올해로 꼭 15년만에 다시 밟아보는 땅이로 소이다!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 없다 드니...” 옛 말이 과연 허언(虛言)이 아닙니다 그려! 대 여섯 분들은 타계(他界)하시고, 또 어떤 분들은 떠나시니... 어째 나만 홀로 남았구려!
20여 분을 더 올라 망(望)바위에서, 창립 초기부터 동참 해 오신 서부장(서경철)님과 김해진님, 황재덕님 등에게 지난날의 얘기를 나눔니다. 18년을 함께 등반 해 오면서... 쌓인 우정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리오!
옛적에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선생이 벗인 황산(黃山) 김유근에게 써 올린 싯구(詩句)가 떠 올라 잠시 옮겨 봅니다.
난파주전세월사(難把酒錢歲月覗)(돈으로도 술로도 가는 세월은 잡지 못하네)
괴아전장동맥반(愧我塡腸同麥飯)(부끄러워라! 나는 주린 배나 채우는 보리밥인데)
여군희세시창화(如君稀世是菖花)(그대는 세상에 드문 창포꽃 같은 사람)
~ 이 하 생 략 ~
그렇슴니다. 님들이 계셔서 오늘날의 제가 존재하는 것이랍니다. 20여 년의 세월동안 한결 같이 우리 남산을 사랑 해 주신 그 은덕(恩德)을 어찌 필설(筆舌)로 다 말 할 수 있으리오! 아~ 님들이여! 영원 하소서!
‘망바위’를 배경으로 최영수 산대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다시 정상을 향해 오름니다. 개념도(槪念圖)에는 형제바위, 원효대, 입석대(立石臺), 의상대, 두꺼비바위, 개바위(犬岩) 등이 있다고 하나 암반의 분포가 워낙 넓어서 다 분간키 어렵슴니다.
통천문(通天門:極樂門) 부근에 이르니, 암벽이 워낙 거대하고 골기(骨氣)가 뛰어나서... 여러 회원님들이 기(氣)를 받는다고 암벽에 착달라 붙어 꼼짝도 않으신다. 이쯤되면 자연사랑도 극(極)에 달해서 물아일여(物我一如)가 되는 경지입니다.
모두가 탄성을 연발하면서 극락문을 통과해 금강암(金剛庵)에 이르니, 천하가 한눈에 들어오고 낙안읍성 일대의 풍광들이 더욱 정겹게 다가 온다. 읍성(邑城)은 동서로 길게 자리하여 초가집과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평화롭게 느껴집니다.
안내문에 금강암(金剛庵)은 호남제일의 관음기도 도량으로 백제 위덕왕 24~25년(577~580)에 검단(黔丹)선사가 창건했다 하며, 이 후 통일신라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중수하고, 고려때는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송광사(松廣寺)의 아란야(阿蘭若)로 세워 수도 한 적이 있다. 또 송광사의 16국사 중에 마지막 국사이신 ‘고봉국사’께서도 수도한 도량(道場)이라 적혀있다.
‘금강암’의 ‘휴신전(休神殿)’에 들어 선채로 예를 드리고 물러나와 주위의 풍광들을 조망하는데, 박총무님께서 차를 한잔 권하신다. 암자에서 스님이 중생들에게 제공하는 차라고 하면서... 비닐천막으로 지은 막사 안에는 많은 산객(山客)들이 휴식을 취하며 담소(談笑)를 나누고 계신다.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보답으로 ‘기와불사’ 한 장을 올림니다. 그 사이 최대장님은 벌써 정상에 도착하여 어디쯤 오느냐고 전화가 빗발친다. 바쁜 걸음으로 오르니 정상봉 바로 아래 ‘헬기장’에서는 광주에서 오신 “흥사단회원님”들이 시산제(始山祭)를 모시고 있다. 거창한 플래카드(Placard)와 회원님들의 수도 많으시다.
다시 몇걸음을 더 올라 정상봉(금전산 667.9m) 돌탑 앞에서 하늘방향(乾方)으로 제물을 진설(陳設)하고 모든님들과 함께 정성을 다해 제(祭)를 올림니다. 남산산악회의 무궁한 발전과 시방세계(十方世界) 산행에 무사안녕(無事安寧)과 회원님들의 건강과 가내 행복을 기원(祈願) 기원 하였슴니다.
시산제를 마치고 제물들을 골 고루 나누어 중식을 함께 드시니, 날씨는 고요하고 따사로운 봄볕이 모든 님들을 어루만져 주심니다. 지난날의 기억 속에서 오늘만큼 따사롭고 편안했던 날들도 없었던 것 같슴니다.
점심후 사방을 둘러보니 북쪽으로는 우산, 국사봉이 지근한 거리에서 손에 닿을 듯 하고, 남쪽은 바위산으로 천하 절경이다!
이 곳 금전산(金錢山 667.9m)은 호남정맥상의 백이산(584.3m) 부근에서 북동 방향으로 조산을 거쳐 금전산에 이르고, 다시 오봉산, 호사산, 운동산, 첨산, 봉화산을 지나 천마산(146.9m)에서 그 맥을 순천만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금전지맥이라 한다.
또 금전산은 낙안읍의 진산(鎭山)으로서 뛰어난 풍광으로 수려(秀麗)하여 사계절 많은 등산객들이 운집하는 곳이며, 남쪽 산 기슭에는 천년고찰 금둔사(金芚寺)가 있어 사바세계의 전법도량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슴니다.
‘오공재’로 나려가는 하산길은 육산(陸山)이라 낙엽이 쌓여서 푹신 푹신하여 발 아래 감촉도 편안하다. 20여 분을 걸어서 470고지 부근에 이르니, 주위 소나무들이 많이도 부러지고 또 뿌리채 뽑혀 너머져 있다.
아마도 2012년 7월과 8월에 태풍 “카눈”과 “볼라벤”의 상처인가 봅니다. 수십년, 수백년 됀 거목(巨木)들이 쓰러져 있어, 대자연(大自然)의 위력 앞에는 그저 속수무책(束手無策)입니다. 그려!
하산길은 평탄하고 완만해서 걷기도 한결 수월하여 선두그룹으로 내려오니, 후미에 최대장님이 “처음 오신 회원 한분이 다리에 통증을 호소한다.”고 하여, 오던 길을 되돌아 한참을 오르니, 박총무께서 사혈침으로 응급처치를 하고 있어, 간단한 지압으로 통증을 풀고 다시 하산 합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도 계절의 변화 앞에는 어쩔 수 없는 듯... 봄은 어김없이 찾아 와 졸~ 졸~ 졸~ 개울물 소리에 이방인(異邦人)의 귀를 간지러 주시고, 개울가에 버들강아지는 싹눈이 뽀~송 뽀~송 물이 올라 금새라도 터질 것 같도다!
홍기사님의 협조로 귀가길에 ‘낙안읍성’을 답사 할 수 있어 감사드리며, ‘읍성’ 동문에 도착하니 마침 ‘정월 대보름’이라 민속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어찌나 많은지... 인산인해(人山人海)요! 차산차해(車山車海)로다!
동문 입구의 평석교(平石橋) 앞에는 석구(石狗:돌로만든 개상) 3마리가 있는데, 이는 풍수지리상으로 동쪽 오봉산의 사기(邪氣)를 막으려는 비보용(裨補用)의 의미가 있다고 하며, 한 마리는 근래에 새로 세운 것 이라 한다.
오늘은 입장료도 무료(無料)여서 밀고 당기는 일 없이 스무스(Smooth)하게 통과하여, 여러 회원님들과 낙풍루(樂豊樓)를 올라 돌담길을 걷슴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낙안의 기록은 마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1,5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백제때는 ‘파지성(波知城)’이라 불렸고, 고려 태조 23년(940)에 비로소 ‘낙안(樂安)’이라 불렸다 한다.
1983년에 민속마을 제302호로 지정 되었으며, 1977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 아홉채를 비롯하여 108세대 279명이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한다. 또 성(城) 내에는 사직단(社稷壇), 성황사(城隍祠), 여단(厲壇)과 같은 제사 공간과 향교(낙안중교아래), 역원, 창고시설, 봉수, 감옥터 등이 있다.
성(城)의 전체 길이는 1,410m, 높이는 4m이며, 동, 서, 남 세곳에 성안 큰 도로와 연결된 문이 있고, 적을 방어하기 위한 ‘치성’이 4곳에 있다. 또 본래 낙안읍성은 조선 태조 6년(1397)에 흙으로 축성 되었으며, 이 후 1424년부터 여러해에 걸쳐 돌로 쌓았다 하며, 전설에 따르면 인조4년(1626)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금전산의 바위를 칼로 내리쳐서 하루만에 쌓았다고 한다.
이는 장군의 공적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며, 지금도 마을 한 가운데는 임경업 장군의 선정비가 남아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임장군을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으로 삼고 해마다 정월 보름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祭)를 올린다고 한다.(이상 낙안읍성 자료 참조)
낙안읍성은 인위적으로 만든 민속촌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평지성(平地城)이며, 이 밖에도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 전북 고창의 “모양읍성” 등이 있다.
10여 분을 돌아 객사 부근에 이르니, 그 옆으로 놀이 마당에는 ‘대보름 노래자랑’으로 많은 시민들이 모여 흥겨웁게 잔치마당을 벌이고 있다. 어쩌면 우리 전통의 민속놀이 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문화다!
동헌(東軒)과 내아(內衙) 부근에는 여유로운 공간과 아람드리 거목(巨木)이 자라 있어 역사와 전통을 지닌 읍성(邑城)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 보겠도다! 뒤로는 낙안(樂安)의 진산(鎭山)인 금전산이 높이 솟아 있고, 그 왼쪽(청룡)으로는 오봉산과 제석산이 감싸주며, 오른쪽(백호)으로는 백이산이 높이 솟아 그 잔여 지맥이 옥산(玉山)으로 뻗어 내려 안산(案山)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어 천하의 요새(要塞)요, 길지(吉地)로다!
서문에서 다시 동문 방향으로 돌아 나오니, 나무장승에 낙안팔경(樂安八景)을 새겨놓아서 간단히 옮겨 봅니다. 용추수석(龍湫水石), 안동화류(雁洞花柳), 원포귀범(遠浦歸帆), 옥산총죽(玉山叢竹), 보람조하(寶嵐朝霞), 오봉명월(五峰明月), 백이청풍(伯夷淸風), 금강모종(金剛暮鐘) 이다.
동헌(東軒)과 내아(內衙)에는 고을 사또가 죄인을 치죄하는 장면과 형틀에 매어 곤장을 맞는 장면, 감옥까지 볼 수 있으며, 그 밖에도 민속놀이로 연날리기, 그네뛰기, 제기차기, 떡메치기, 투호놀이, 달집태우기 등 많은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밖에도 남문(쌍청루)쪽으로는 많은 초갓집과 물레방아, 도자기 체험장, ‘대장금 영화 셋트장’도 있어, 답사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으나 일정상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동문을 나섬니다.
오늘은 행운이 겹쳐서 일까? 하산주를 금둔사(金芚寺) 주차장에서 준비할 동안 금둔사 경내를 답사 하기로 합니다. 일주문을 지나 무지개 다리를 건너니 대웅전(大雄殿)이 눈앞에 우뚝하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을 중심으로 모든 전각(殿閣)을 배치하는 것에 비하면, 금둔사의 대웅전은 제일 아래쪽에 진좌(鎭坐)하고 있슴니다. 그 뒤로 여러 전각들이 계단식으로 배치되어 있고, 수각(水閣)도 언덕아래 특별하다.
도량을 한바퀴 휘~ 돌아 청룡쪽 제일 높은 곳에는 삼층석탑(보물 제945호) 과 석불입상(보물 제946호)이 모셔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금전산에 금둔사가 있다”는 기록과 송광사 사적에 “송광사 제16국사인 고봉스님이 명산을 두루 다니다가 태조 4년(1395) 금둔사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송광사로 떠났다.”는 기록이 있다.
이 밖에 특별히 전하는 기록은 없으며, 삼층석탑은 1979년에 복원한 것으로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전체 높이는 약 4m, 상층기단 각 면에는 팔부신중을 2구씩 조각하였다.
그 뒤로 석불입상은 연화좌대 위에 비석모양의 돌에 돋을 새김으로 새겨져서 특이하고 머리에는 커다란 빗돌지붕을 얹어 놓았다. 불상의 높이는 약 3m가 되며, 9세기 작품으로 추정한다.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돌아 나오니, 선방(禪房)은 언덕아래 억겁(億劫)의 침묵속에 잠들어 있다. 금둔사의 가람 배치는 계곡을 중심으로 좌우에 포진되어 있으며, 자연 지형에 따라 전각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주산(主山)은 웅장하고도 수려하며, 청룡(靑龍)은 그만 그만하고 백호는 우람하여 안산(案山)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회원님들과 답사를 마치고 산문(山門)을 걸어나오는데, 황고문님은 일주문(一柱門)의 아름다움을 극찬하신다.
금전산의 연화봉은 만고에 향기롭고
오봉산의 명월은 낙안의 광명이로다
백이산의 청풍은 만대의 가풍이요
금둔사의 용추수석은 순천의 보배로다
단기 4346년(서기2013년) 2월 24일
순천시 낙안면 금전산(667.9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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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금전산 산행에 동참하셨던 모든 회원님들에게 다시한번 깊은 감사를 드리오며, 당일은 참으로 행운이었슴니다.
산행과 더불어 '낙안읍성'을 답사하고, 아울러 '금둔사' 까지 답사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뻣슴니다. 또 황고문님의 사진자료와 김해진님의 사진자료를 활용할 수 있어서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남산님들! 내내 건강하시길 바람니다.
금전산에서거움이 가득한 모습들이 인상적이고집에 소원을 빌어보고
낙안읍성에서는
금둔사에서는 일주문이 두개의 기둥에 서있는 모습이
사람 모습과 같이 느끼고 왔지요
바뿐중에도 산행후기까지 올려 주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감니다.
황고문님이 다녀 가셨군요! 늘 보이지 않게 산악회를 위해 노력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산행때 좋은 사진 올려주셔서 자료활용에 많은 도움 되었슴니다. 내내 건강하시길 바람니다.
금전산 후기를 읽고나니 산행을 못한 마음이 더하는것같습니다 가보진못했지만 상세하게 올려주셔서 갔다온듯합니다. 고회장님 존경합니다^^수고 많이하셨습니다~~
박회장님! 반갑슴니다. 조용히 그리고 자애롭게~ 항상 남산을 격려해주시는 마음에 감사드려요!
졸문의 글을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다음 산행때는 꼭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내내 건강하세요!
금은 보화로 쌓여있는 금전산 낙안읍성의 유래하며
열심히 장문을 써주신 고회장님, 많은것을 배우고 갑니다.
산행후기는 남산의 보배요, 역사를 한몸에 접할수있어 유익한 공부가 되는것 같습니다.
고회장님의 나라를 아끼는 충정심 애뜻한 마음 과 정성 현대인의 귀감이되는글 감사합니다.
벽송대장님이 다녀가셨군요! 과찬하신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차내에서도 떠들고 나면 늘 계면쩍고,
또 산행후기도 올리고 나면 언제나 허전하고, 부족한것 같아 그저 송구할 뿐입니다. 더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여 회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슴니다. 졸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벽송님 가정에 행복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고회장님의 산행후기를 읽으니 더욱더 생생하고 새롭네요 잘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김선생님! 반갑슴니다. 금둔사 내에서 김선생님 사진 촬영하시는 모습 너무 멋져요!
광양 백운산 산행때 까지 내내 건강하시고 행운을 빌겠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