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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에 오면서 5년쯤 사귄 사람들로 년초에 촛불회라는 모임을 여섯사람으로 구성했다
모두 컴퓨터도사쯤은 안되어도 고급컴퓨터 선생님도 함께 낀 모임이라
늙으막에도 무엇인가 새로운것을 찾고자
창의력과 의지를 세워보려는 7~80대의 청춘을 구가해보려는 그런사람들이었다
사무엘 울먼의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갖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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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춘
사무엘 울먼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가짐을 말한다.
청춘은 장미의 얼굴, 붉은 입술,
유연한 몸매를 말하는 것이 아나라
다부진 의지, 풍부한 상상력, 타오르는 정열을 말하는 것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의 청신함을 뜻한다.
청춘은 비겁함을 물리치는 용기이고
안이함에 이끌리는 마음을 단호하게 극복하는 모험심이다.
때로는 20세의 청년보다 60세의 노인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사람이 늙는 것이 아니라
이세상에 관한 관심을 잃을 때 사람은 늙는 것이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남기지만
정열을 잃은 사람은 마음에 주름살이 잡힌다.
60세건 16세건 신비에 이끌리는 유혹이 있고
미지에 대해서 어린아이 같은 탐구심이 있고
세상을 바라보며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만약 우리 마음의 중심에 무전기가 있어서
그 무전기가 아직도 아름다움과 희망과
기쁨과 용기와 힘의 메시지를 받아 들일 수 있는 한
당신은 젊은 청춘입니다.
그 찬란한 무전기에서 안테나가 떨어지고
당신의 정신위에 실의의 눈발과 염세의 얼음이
뒤덮이게 된다면 비록 당신의 나이가 20이라도
당신은 늙은이다.
그러나 당신의 안테나가 높이 솟아 있어
희망의 전파를 포착할 수 있는 한
당신은 80의 나이에도 청춘이고
청춘으로서 생을 마칠 수 있다.
-------머리를 높이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청춘이란 용어의 어원을 만들어낸
자등청춘(子登靑春=그대는 바야흐로 싱그러운 봄날)
여섭소추(余涉素秋=나는 이미늙어 황혼애 들었지만)
가 아니라 이렇듯 스스로를 챙겨 자신을 청춘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마음갖임, 그것이 중요한것이다
첫모임에서
두번
세번
오늘이 네번째 모임이라
모임명칭도
두번째 모임에서
촛불처럼 바람에 꺼지면 않되니까 아예 횃불이 아니면 불꽃회라는 이름으로하자는 나의 제의에 모두 의젓하고 뜻있는 믿을신자와 유붕이자원래면 불역낙호아의 벗우에 모임을 뜻하는 신우회로 확정을 지은것이다
인원수도 일년은 열두달이오 또 예수님의 제자도 열둘이니까 열두명쯤되는것이 좋으리라는 희망사항을 알아차린 권영산회원이 오늘 신입회원으로
무인생의 이상규와
경진생인 박종호 두분을 새로운 회원으로 맞이하여 박수갈채로 열두명을 채운것이다
그동안 아기자기한 이야기꽃으로 한달에 한번 음식점에 모이던것을 회원들의 뜻을 같이해 일년에 춘하추동네번쯤은 야외로 나가기로 작정을한 그날이 바로오늘 야외모임의 첫날이자 회원정수가 딱 들어맞게된 신우회발족의 완성의 날이었다
열시에 제천문화원앞에 모여 세분회원의 자가용에 넷씩 짝을 맞추니 딱 들어맞는 조촐하고도 안정된 깨알이 쏟아지는 고소한 향기를 풍기는 그런 모임이었다
양춘가절에 청풍명월 충주댐 조정경기장을 두루살피는 것을 기점으로 10:07분에 출발하였다
한반도의 중앙이라는 중원군의 중앙탑에서 이곳이 바로 한국의 중심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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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탑평리칠층석탑 中原塔坪里七層石塔 / 중원고구려비 中原高句麗碑
중원탑평리칠층석탑 中原塔坪里七層石塔 : 국보 제6호
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11
통일신라
남한
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높이 12.86m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불리우며,
현재의 위치가 원위치이다.
흙으로 높게 쌓은 단 위에 2층의 기단基壇과 7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시작되는 기단은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끝이 경쾌하게 치켜 올려 있어 자칫 무겁게 보일 수 있는 탑에 활기를 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탑 정상의 머리장식에서는 특이한 양식이 보이는데,
보통 하나의 받침돌 위에 머리장식이 얹어지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머리장식을 받쳐주고 있다.
기단에서의 기둥조각 배치,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의 짜임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후반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하기는 하나 너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듯 하여 안정감은 덜하며,
세부수법이 약화되고 섬약해져 있어 당시의 경향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상륜부에서 특이한 것은 노반석을 이중(아직 그 유례가 없다)으로 놓고 그 위에 복발과 앙화를 구성한 점이다.
1917년 탑을 보수할 때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은제사리합, 목제칠합 서류, 동경 2점 등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은제사리합 내에서 유리로 만든 사리병이 있었고 사리병 내부와 주위에 사리가 있었다.
동경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탑 조성 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전설 :
1) 나라의 중앙을 표시하기 위해 탑을 세웠다고 하는데,
이곳에 먼저 임시로 탑을 세우고 건강한 사람을 영토의 남과 북의 끝에서 여러차례 동시에 출발시켜 보았는데
그때마다 이곳 탑평리에서 만나게 되어 중앙임을 확인하여 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2) 충주지역에 왕기가 발흥하고 있어 이를 누르기 위하여 건립하였다.<풍수지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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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이라는 7층석탑을 구경하면거 세계술박물관을 비롯한 주변의 물과 언덕과 공원이 어울리는그곳을 지나서
임진왜란때 신립장군이 순직한
[출처] 탄금대 - 신립|작성자 Rook Andante
탄금대가 옛신라의 악성우륵이 거문고를 탓던곳임에 그 역사적
족적과 함께 그곳 궁도장에는 명궁탄생의 경축푸랭카드도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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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탄금대의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전 신라 진흥왕 시대에 가야국의 제일가는 악성 우륵이 멸망을 애견하고
우거지를 찾아 온것이 충주 였었는데 이곳 대문산의 아름다운 풍치에 감동되어 제자 법지 계고 만덕
에게가무 음곡을 가르치며 가야금을 탄주하니 그 미묘한 음악 소리에 이끌려 모여든 사람들이 부근에
부락을 이루었다고 하여 이러한 연유로 탄금대라 호칭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국악의 발상지 이기도 하다,
그리고 임진왜란때도 순변사 신립장군이 휘하 8000여기를 이끌고 이속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적의
무리를 맞아 사력을 다하여 선전 분투 하였으나 중과 부족으로 천추의 한을 품은채 장열하게 최후를
마친 전적지 이기도 하다,
탄금대 열두대에서 내려다보는 남한강의 비경 입니다.
충주댐을 출발하여 새재길의 첫관문인 탄금대 인증소 500m 전 입니다.
한강 8경중 탄금경 간이 휴게소 입니다.
간이 휴게소에서 바라본 충주 조정경기장 쪽의 발전상입니다.
탄금대 입구의에 서있는 탄금대 유래를 적어준 입간판 입니다.
탄금대를 올라가는 시원한 그늘의 도로부 입니다.
안내 간판의 모습 입니다.
공원에 올라가면 제일먼저 이 노래비가 보입니다
노래는 주현미 님의 노래 였었습니다.
나무 그늘이 시원한 주 통로의 공원 전경 입니다.
양쪽으로는 많은 작가님들의 조각 작품들이 많이 비치 되어 있었습니다.
일종의 조각 공원 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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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만들어진 충혼탑의 글씨이다.
충주 중원 지역의 장병과 경찰관 군속 군 노무자 2,838위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충혼탑을 건립 하였으며 2004년 5월 충주시에서 호국 영령의 위패 안치실을 건립.
그위에 탑을 원형 그대로 복원 설치하고 매년 6원 6일 현충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신립 장군과 함께 왜적에게 배수진을 치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장열히 전사함을 위로한 팔천 고혼 위령 탑이다.
신립 장군의 애절한 모습을 닮은것 같다.
얼마나 사무첬던 패전을 더덤는듯 올바르게 크지를 못하고
그 애환으로 자라는 모습의 소나무의 형태를 볼수 있습니다.
열두대 위에서 남한강을 바라본 전경이 신립의 최후를 맞은 지역 이기도 합니다.
탄금대 비가 열두대 옆에 서있습니다.
탄금대의 열두대 정자 입니다
열두대에서 바라본 남한강의 전경 들 입니다
물은 고요하고 마음은 한없는 여한을 남기듯 신립장군의 최후를 생각해 봅니다
훈련도 안된 병졸들을 이끌고 최후의 저지선을 만들어
시간을 끌기 전투에서 끝내는 장수로서의 굴욕을 마감 하였다.
우륵 선생의 기념비 입니다
조웅장군 기념비
감자꽃의 노래비 입니다
동천 권태응 님의 시 입니다
충주 문화원이 있지만 어디를 가도 내부 방문은 하지 못했습니다
조가작품들도 많은것 같아 파이로 올리게 됩니다
작가의 이름을 올리지 못한점 양해를 해 주시기바라며
지금까지 함께하여주신 모든분들께
진심을 감사를 드리는 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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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신립장군이 순직한 탄금대가 옛신라의 악숭우륵이 거문고를 탓던곳임에 그 역사적족족과 함께 그곳궁도장에는 명궁탄생의 경축푸랭카드도 걸려있었다
역사를 탐방하는 수학여행학생이나 된둣이 5000년역사의 흥망성쇠를 회상해보면서
이제 들쭉날쭉 80대노인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찰라이었다
준비해갖고간 빨갛고 노랗고 파란과일들을 잔디위에 펴놓고 떡와 부치기까지 곁드리니 그야말로 아기자기한 야외모임의 실체를 향기나는 술로 목을 추기는 그런행사가되었다
12:12분 그곳을 떠나 오늘의 목적지인 수안보를 향하였다
오늘부터 온천축제가 벌어지고있는 수안보에 당도하면서 먼저 오시오식당에서 곤드레산채밥을 먹었다
산채비빔밥이 7,000원이었는데,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이것은 작년것이고 올해는 8,000\이었고 여기 이 그림보다는 훨씬 더 맛있고 뜨겁고 구수한 된장국이 일품이었지요
무슨크게 홍보작전이라도해주려는듯이 한분은 일일이 사진을 찍어대는폼이 마치 어린아이들과 흡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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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2012 수안보 온천 축제
지난 4월 20일(금)부터 22일(일)까지 충북 충주시 수안보에서 열린
제28회 수안보 온천제를 소개합니다.
"53℃의 특별한 행복이 있는 곳"이라는 슬로건 아래
수안보 물탕공원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 미스터리가 다녀왔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상인, 지역 관계자들이 모여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체계적인 축제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20일(금) 정오부터 '행사알림 한마당'을 시작으로
오후 8시 개막식, 불꽃놀이, 초청가수 공연까지...
볼거리 즐길거리를 많이 제공했습니다.
다만, 주말에 비가 와서 외부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했다는 전언입니다.
너무 짧은 기간 축제라 제대로 홍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네요.
온천제 시작일인 지난 20일 날씨가 너무 맑았습니다.
수안보 온천은 국내외로 매우 유명하지요.
물탕공원은 대내외 행사 장소로 적합한 듯 보였습니다. 충주시에서 아주 많은 신경을 쓰는 듯 해요.
물탕공원 내 온천 분수에는 12지신상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수안보에서 비교적 깔끔하다는 수안보온천랜드 외부 벽화.
벚꽃이 만개했네요.
장터도 생겼고요.
개막식에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경찰을 대동한 카퍼레이드가 재미났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옥수수 등을 직접 삶아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고요.
찰진 것이 아주 맛있더군요. ^^;
오후 6시 20분부터 시작된 산신제와 불씨채화, 발원제의 모습입니다.
수안보온천랜드의 내부 모습인데요. 수영복이 아닌 찜질옷을 입고 외부 물놀이장 및 노천탕을 이용하도록 돼 있더군요.
조금 이상한 구조였습니다. 옷 입고 물에 들어가야 한다는... -_-;;
족욕장 무료입장입니다.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고요. 28년이란 오랜 전통을 자랑합니다.
아산 도고와 수안보 등지에서는 온천 축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는데요.
예산군 덕산 온천에서도 이런 지역 축제가 매년 개최되길 희망해 봅니다. ^^;
[출처] 2012 수안보 온천축제 - 현장 스케치|작성자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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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보온천축제의 현장을 돌아보는 시간을 그리 많은시간이 걸리지아니하였다
굿판이 벌어지고 각설이 타령이 구경꾼들을 모으는 곳에서는 어디라 할것없이 떡을 치고 엿을 파는것이 일색이라 그런곳에 어울려 생활필수품들을 아주 헐값에 만물상품으로 진열해놓은곳에서 무엇인가 하나를 사주어야 그곳인심을 얻게된다 마침우리회원한분이 그곳에서 몽키스파나하나를 10,000\주고 샀으니 다행으로 체면을세운것이다
하오2시30분 축제장을 떠나 오늘의 제목을 이름값으로 하는 청풍호의 벚꽃축장으로 앞서가며 뒤따르는 세대의 차들이 수미상응하며 장사진을 이루고있는 행락차들의 물결속으로 합류하면서 각종 이채로운 승용차들을 비교해가며 모두가 자기들의 몫을 자랑하는것 같은 경쟁대열에 희열을 느끼게하는것이었다
멀리보이는 우뚝솟은 국립공원월악산을 뒤로하면서 호랑이가 어슬렁거리고다니었다는
심산유곡의 산수면을 구비구비돌아서 빠져나오니
봉수대를 지어국토수호의 횃불을 높이쳐들었던
봉수대를 뒤로하여
펼쳐진청풍호반에 들어서자
흐드러지게 활짝피어난 화사한벗꽃들이 한창어우러져
글자그대로
화란춘성에
만화방창이라
이곳에
들어선차들은
가는곳마다 차량홍수로 주차를 할수가 없는지경이라
서로 상의하여 이제 각자조별로 각개약진을 결정하였다
우리일행은 아예 오늘구경이 이쯤으로 만족하다는
지족자족의 느긋함과
넉넉한 여유로운 마음으로 뜻을 이루어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
십분이면 돌아갈것 같지만 차량행열은 느린굼벵이보다 더 느슨하게 움직이는것이었다
아예 산천경개를 바라보면서 도로가 주차장인듯 움직일줄모르는 차안에서 아름답고 시원하며 선들바람까지 불어제끼니 무엇을 이에서 더 기분을 돋우어주랴?싶도록 질문을 하는듯 이렇데 오늘의 귀가길을 느긋하면서도 흥취를 만끽하는가운데 집에당도해 시간을 체크하니 4시20분이었다
일일閑이
일일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