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제목은 우리가 어릴적 부터 흔히 들어온 "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 라는 전설의 대강이다.
나는 이게 혹시 다른나라 이야긴가 했었다. 아니, 천만에 우리나라 저 신라의 이야기였던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위인의 쑈킹한 비밀을 알게 되면 그 말을 하고싶어 안달이 난다 했다.
심한 경우는 속병이 나고 우울증에 신경쇠약증까지 일어난다고 했다.
그래서였던가?
여기 경문대왕의 왕관 제작 관리를 전문으로 맡아 일하던 장인이 경문대왕의 당나귀 귀를 본 이후로 그 비밀을
발설하지 못해 미칠지경이다가 대나무 숲속에 들어가 "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 했더니 속이 시원 하더라는 그 내용...
사실 이렇게 옛 역사책을 펴놓고 읽자 하니 한편 싱겁기 짝이 없슴은 무슨 연유인가?
아무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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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48대 왕은 경문대왕(景文大王)이다
오늘은 《 임금님의 귀는 당나구 귀 》라는 전설의 실체를 밝혀 본다 .
이 내용은 삼국유사(三國遺史)에 전해 내려오는 귀중한 민족사적 가치를 갖고 있는 내용이다.
왕의 휘는 응렴(膺廉)이며 나이 18세에 국선(國仙 : 花郞의 별칭)이 되었다.
약관(弱冠)에 이르렀을때 헌안대왕(憲安大王)이 낭(郞:응렴)을 불러 대궐 안에서 잔치를 베풀고 물었다.
「 낭이 국선이 되어 사방에 돌아 다니다가 무슨 이상한 일을 본 일이 있느냐 ? 」
「 신이 아름다운 행실을 하는 사람 세명을 보았습니다.」
「 그 이야기를 들어 보자 」 하니
남의 윗자리에 있을만한 사람이 겸손하여 남의 밑에 앉은 사람이 그 첫째요, 부호이면서 겸손하게 옷입은 이가 그 둘째며
본래 고귀한 세력가(勢力家)이면서 그 위엄을 보이지 아니한 이가 그 세째입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낭의 어짐을 알고 모르는 새에 눈물을 흘렸다.
나에게 두 딸이 있으니 낭의 수발을 받들게 하겠다.
낭이 자리를 피하여 절하고 황공스럽게 물러가 부모에게 고하였다.
부모가 놀랍고도 기뻐서 그의 자제들을 모아놓고 의론 하였다.
왕의 맏공주는 아주 못생겼으며 둘째 공주는 매우 아름다우니 둘째 공주에게 장가 드는게 좋겠다.
낭의 무리의 우두머리인 범교사(範敎師:흥륜사의 승려)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낭의 집에 이르러 낭에게 물었다.
「 대왕께서 공주를 공의 아내로 주고자 한다는데 참말인가 ?」
그렇습니다.
「 어떤 공주에게 장가 들려는가?」
양친이 저에게 명하시되 아우가 좋다고 하십니다.
「 낭이 만일 아우에게 장가 든다면 나는 반드시 낭의 면전에서 죽을것이다.」
「 그 형에게 장가 간다면 반드시 세가지 좋은 일이 있을것이니 경계하도록 하라.」
그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 뒤에 왕이 날을 가려 낭에게 사람을 보내어 두 딸을 공의 의향대로 하겠다 하였다.
그 사람이 돌아와서 맏공주를 받겠다는 낭의 뜻을 아뢰었다.
그런지 석달이 지난후 왕은 병이 대단하여 군신(君臣)을 불러놓고
「 내가 남손(男孫)이 없으니 최후의 일은 당연히 맏딸의 남편 응렴(膺廉)이 이을것이다. 하였다.」
이튿날 왕이 돌아가자 낭이 유조(遺詔)를 받들어 즉위하였다.
이에 범교사(範敎師)가 왕에게 뵈옵고 아뢰기를
「 제가아뢴 세가지 좋은일이 지금 모두 실현되었으니 하나는 맏공주를 취함으로써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고
다음은 앞날에 흠모하던 아우 공주를 쉽게 취할수 있게 된 것이며 , 셋째는 맏공주를 취함으로써 왕과 부인이
매우 기뻐하시는 그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그 말을 고맙게 여겨 대덕(大德)의 관직을 주고 금 130냥을 하사하였다.
왕이 돌아가자 시호를 경문(景文)이라 하였다. 일찌기 왕의 침전(寢殿)에는 저녁마다 무수한 뱀이 모여들므로
궁인(宮人)이 놀라고 무서워 하여 쫒아 내려 하니 왕이
「 내가 만일 뱀이 없으면 편안히 자지 못하니 금하지 마오.」하였다.
매양 잘때에는 뱀이 혀를 내밀고 왕의 가슴을 덮어 주었다.
왕이 왕위에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나귀의 귀와 같았다. 왕후와 궁인들은 다 알지 못하고 오직
복두장(귀인이 쓰는 관을 만드는 장인)한사람만이 알고 있었으나 평생토록 남에게 말하지 않더니 그 사람이 죽을때에
도림사(道林寺)의 대밭 속 사람 없는곳에 들어가 대를 향해 외첬다.
『 우리 임금의 귀는 나귀의 귀와 같다.』
그 후에 바람이 불면 댓 소리로 『 우리 임금의 귀는 나귀의 귀와 같다.』고 하였다.
왕이 이 소리를 싫어하여 이에 대를 베어 버리고 대신 산수유(山茱萸)를 심었더니 바람이 불면 다만
『 우리 임금의 귀는 길다.』 고만 하였다.
삼국유사 원문
『 乃登位 王耳忽長如驢耳 王后及宮人皆未知 唯복頭匠一人知之 然生平不尙人說 其人將死
入道林寺竹林中 無人處尙竹唱云 吾君耳如驢耳 其後風吹 則竹聲云 吾君耳如驢耳 王惡之
乃伐竹而植山茱萸 風吹則但聲云 吾君耳長 』
국선(國仙) 요원랑(邀元郞), 예흔랑(譽昕郞) ,계원(桂元) ,숙종랑(叔宗郞)등이 금란(金蘭)을 유람 할때
은근히 임금을 위하여 나라를 다스리려는 뜻이 있어 노래 세수(首)를 짓고 다시 심필(心筆),사지(舍知)를 시켜
침권(針卷)을 주어 대구화상(大구和尙)에게 보내어 노래 세수를 짓게 하니
첫째는 현금포곡(玄琴抱曲)이고
둘째는 대도곡(大道曲)이며
세째는 문군곡(問群曲)이었다.
대궐에 들어가 왕께 아뢰니 왕이 크게 기뻐하여 칭찬하고 상을 주었다. 노래는 미상하다.
자료 : 三國遺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