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와 인권 - 죽음 개념의 의사소통이론적 재구성 -
李 相 暾 (고려대 법대 교수)
<목 차> Ⅰ. 뇌사와 인권개념 Ⅱ. 죽음 개념의 전문화와 기능화 Ⅲ. 죽음과 의사소통 Ⅳ. 뇌사 개념의 실천적 과제 Ⅴ. 절차주의적 법제화와 인권
Ⅰ. 뇌사와 인권 개념
1. 근대적 인권 개념의 한계
인권에 대한 전통적 이해는 나의 생각으로는 두 가지 전제에 묶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① 인권이란 어떤 '고정된 크기(또는 실체)의 이익'이며, ② 인권은 주로 '국가권력과 개인(시민) 사이의 관계'라는 콘텍스트 속에서 말하여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권 개념을 근대적 인권개념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근대적 인권개념의 기획은 개인의 인격적 자율성을 실현하는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권개념은 오늘날과 같은 과학기술사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세계, 즉 과학기술에 의해 관리되는 일상영역에서는 그 개념의 기획을 더 이상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실천적 한계를 경험한다. 뇌사상태에 빠진 사람의 인권(생명권이나 자기결정권)이 뇌사라는 과학·기술적 전문언어의 옷을 입은 채 장기이식의 도구적 유용성을 위하여 점차 죽음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현상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현상에서 인권의 침해가 확인된다면 - 이 글은 바로 (아래 Ⅱ에서) 이러한 현상을 분명하게 밝혀줄 것이다 - 근대적인 인권 개념의 한계는 단지 인권이 말해지는 콘텍스트가 국가권력과 개인 사이의 권력적 관계영역으로부터 개인들이 살아가는 생활세계로 넓혀갔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국가의 법이 뇌사상태에 빠진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규정하고, 국가기관이나 그의 집행대리인이 그런 사람의 장기를 적출하는 행위를 관리하는 경우에도 만일 '뇌사자는 죽은 사람이다'라는 의학적 계몽의 물결에 맞설 수 있는 과학기술적이면서도 실천적인 논리가 시민들에게 제공되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그와 같은 국가의 활동에 의해 인권(생명권)이 침해됨을 주장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침해될 인권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법학자들이 전개하는 이른바 '기본권의 대사인적 효력-이론'처럼 인권의 효력범위를 확장한다고 해도 인권 개념을 단지 어떤 고정된 크기의 이익으로 바라보는 한, 과학기술적 일상영역에서 그 실천적 힘을 발휘하는 데에는 마찬가지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뇌사문제에 대한 성찰의 빈곤
이러한 근대적 인권 개념의 실천적 한계는 아마도 뇌사의 일반적인 죽음개념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비판적 성찰이 빈곤할 수밖에 없는 척박한 토양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뇌사의 죽음개념화는 죽음의 결정을 단지 장기이식의 유용성이나 치료중단시점의 선택과 같은 공리적 관점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아닌가? 뇌사개념이 인간존재의 의미를 너무 의식중심적으로 파악하는 서양적 전통에 서있는 것은 아닌가? 또한 그런 관점의 환원을 통하여 삶의 가치를 삶의 '길이'나 삶의 '경제성'으로 편중시키는 것은 아닌가? 뇌사 개념의 법적 성취가 한정된 인적·물적 의료자원을 장기이식학과 장기이식술의 발전에 편중시킴으로써 의료자원배분의 합리성을 깨뜨리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편중발전은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장기거래의 시장 위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은 아닌지, 더 나아가 그런 시장을 확대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은 아닌가?
3. 의사소통적 참여
뇌사문제에 관한 이와 같은 비판적 성찰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인권 개념으로 나는 어떤 고정된 크기의 이익, 즉 실체적인 개념이 아니라 절차적인 개념의 인권을 말하고자 한다. 즉, 뇌사현상과 관련하여 인권이란 인간의 죽음을 규정짓는 (정치적 결정의 성격을 수반하게 되는) 과학기술적 결정과정에 자유롭고 기회균등하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권 개념이 실체적인 개념으로 머물러 있는 한 인권개념은 사람임을 전제로 그 개인의 생명이나 자기결정의 효력만을 주장할 수 있게 할 뿐, 뇌사자가 그러한 권리의 주체, 즉 (산) '사람'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으며, 이와 같이 인권개념이 '무엇인가 말해줄 수 없는 영역'에서 과학기술적 결정은 암암리에 모종의 독점적인 정치적 결정을 수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권은 일종의 '의사소통적 참여권'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다루는 뇌사현상과 관련해서는 특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청을 의사소통적 참여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다.
- 첫째, 뇌사와 같은 과학기술적 현실에서 인권은 무엇보다도 죽음 개념의 과학기술적 규정지음이 죽음을 일상적인 의사소통적 교류의 세계, 즉 생활세계로부터 유리시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 둘째, 뇌사 개념이 (전문가들 사이에 펼쳐지는) 과학기술적.의사소통적 교류의 지평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교류도 합리적 형태로 통제될 수 있어야 한다.
- 셋째, 과학기술적.의사소통적 교류는 폐쇄된 상호이해가 아니라 일반시민, 특히 뇌사자의 가족 등에게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Ⅱ. 죽음개념의 전문화와 기능화
1. 죽음 개념의 독점
뇌사 개념은 의학자들에게는 이미 자명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뇌사를 법적인 죽음 개념으로 인정하는 경우에도 뇌사 개념을 법적으로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1) 뇌사개념
뇌사는 일반적으로 '(모든) 뇌의 기능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게 정지된 상태'라고 정의된다. 즉, 뇌사는 대뇌, 소뇌 및 뇌간의 전체기능이 종국적으로 소멸한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뇌사는 대뇌의 기능장애는 있으나 뇌간의 기능이 살아 있어, 뇌간이 관장하는 호흡.순환.대사기능.체온조절 등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식물적 기능이 살아있는 식물인간상태와 구별된다. 그러면 언제 뇌의 기능이 종국적으로 소멸했다고 볼 것인지가 문제된다. 각국의 뇌사 판정기준안을 비교.분석해보면 뇌사의 기준으로는 ① 무반응성 혼수, ② 자가호흡의 소실, ③ 뇌간의 신경학적 반사소실 등이 공통적이라 할 수 있고, ④ 무호흡검사와 ⑤ 뇌파검사의 필요유무 그리고 ⑥ 뇌사판정 시간 간격 등의 검사절차적 조건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이 확인된다.
(2) 신경(과) 전문의의 죽음 개념결정권
많은 신경과나 신경외과 전문의의 관점에서 보면 뇌사란 사실상 '뇌간반사가 완전소실되었음이 임상에서 진단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뇌간기능의 완전소실은 이미 죽음의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뇌간기능의 완전소실이 임상에서 진단된 환자는 '이미' 죽은 자이며, 그 이후에 행하는 각종 검사절차(앞에서 ④⑤⑥)는 사실은 불필요한 것이나 단지 환자보호자 등에게 뇌사라는 죽음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된다. 이렇게 이해된 뇌사 개념은 뇌사검사의 절차에 뇌사를 구성하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뇌사의 '실체적인' 개념정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임상뇌사의 개념은 뇌의 비가역적인 병변에 대한 진단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원인불명의 혼수상태에 있는 환자는 뇌사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실체적인 뇌사 개념은 뇌사의 결정권을 오로지 신경(외)과 전문의의 머리 속에 귀속시키고 만다. 왜냐하면 뇌사의 임상적 현상(위의 ①②③)은 일반인이 죽음의 현상으로 인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며, 신경계통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진 의사만이 권위를 갖고 진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죽음 개념의 전문화
그러나 이와 같은 뇌사 개념이 일반적인 죽음 개념이 된다면 죽음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사실의 문제로 남지 않고, 의사의 해석의 문제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뇌사의 확인은 검사방법의 선택과 검사결과의 해석이론에 따라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1) 방법의존성
현재 뇌사를 확증하는 검사방법으로 임상에서 중요한 것은 ⓐ 무호흡검사, ⓑ 뇌파검사(EEG), 그리고 ⓒ 뇌혈류검사가 있다. 그러나 어느 한 방법도 모든 증례에서 완벽하게 뇌사여부를 확증해줄 수는 없다. 첫째, 무호흡검사는 검사 도중 혈압의 급강하와 같은 활력상태(vital sign)의 변화가 발생하여 심장사에 대한 염려 때문에 중단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둘째, 뇌파검사도 한계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특히 임상에서는 뇌사로 진단되는데도 평탄뇌파의 확인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중환자실에서 뇌파검사를 할 때 교류파의 전파차단이 안되어 있고, 신경외과수술을 받은 환자의 경우에는 두부에 철사봉합 등 여러 장치기구로 인한 잡파(Artefact)의 발생 때문이라고 한다. 셋째, 뇌혈류검사는 예를 들어 뇌혈류가 흐르는데도 초음파검사로는 기술적으로 추적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뇌광단자방출단층촬영도 뇌혈류량은 측정할 수 있으나 뇌세포의 산소소비량은 측정못할 뿐만 아니라 - 운반용 SPECT가 개발되지 않은 현재로서는 - 환자를 인공호흡기를 단 채 의사가 호흡관리를 하면서까지 검사기가 있는 곳으로 이동시켜야 하고 검사비용이 대단히 많이 든다는 검사장애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임상에서 의사는 사실상 위 검사 방법 가운데 환자의 상태와 그 밖의 상황에 따라 어떤 검사방법을 선택하여 뇌사확인을 하게 된다.
여기서 뇌사의 확인은 어떤 검사방법을 선택.사용하느냐에 달라지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위 세 가지 모든 방법(ⓐ∧ⓑ∧ⓒ)에 의해 뇌사가 확인될 것을 요구하느냐, 아니면 어느 한 방법(ⓐ∨ⓑ∨ⓒ) 또는 두 방법([ⓐ∧ⓑ]∨[ⓑ∧ⓒ]∨[ⓐ∧ⓒ])에 의해서 뇌사가 확인되면 뇌사판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인지에 따라 뇌사자로 판정되는 환자의 범위는 달라지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뇌사는 검사방법에 중립적인 현상이 아니라 '방법에 의존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2) 해석이론의존성
또한 각 검사방법을 적용한 결과의 의미를 이해함에 있어 전문의료인 사이에는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첫째, 무호흡검사에서 뇌사를 인정하는 기준이 되는 동맥혈탄산가스(PaCO2)의 분압은 어느 정도이어야 하는지 또한 기준치에 약간 미달할 경우에 뇌사를 인정해도 좋은지 등에 관하여 이론적 판단이 다를 수 있다. 현재 대한의사협회의 뇌사판정기준에는 탄산가스의 분압이 50mmHg이상일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40mmHg이상으로도 충분하다고 보거나, 오히려 60mmHg이상이어야 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어느 이론에 따르느냐에 따라 무호흡검사에 의한 뇌사의 확인은 달라지게 된다. 둘째, 뇌파검사에서도 파고의 높이가 어느 정도 낮을 때 뇌사의 기준이 되는 평탄뇌파(flat EEG)라고 볼 것인지는 이론과 기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대한의협의 「뇌파기록술에 대한 지침」(1990)에 따르면 전극간의 거리가 10cm이상이고 전극간의 저항이 10~20KOhm보다 적고 10Ohm보다는 큰 상태에서 2uV(microvoltage)이상의 뇌파가 기록되지 않는 경우에 뇌사를 인정한다. 그러나 뇌파검사기의 기술적 발전에 따라 더 낮은 파고의 뇌파를 뇌사판정의 기준으로 설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기술적 조건 아래에서도 검사방법에 관하여 또는 파고높이의 최고치에 관하여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셋째, 뇌혈류검사에 의해 측정된 뇌혈류량의 일정한 수치를 놓고도 - 일정한 한계영역에서는 - 뇌사를 인정할 것인가에 관하여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비록 매우 드문 일이긴 하겠지만 혈류량의 정도에 따라 뇌사상태에 대한 진단이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뇌사는 검사결과가 '객관적으로' 말해주는 현상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해석의 결과이며, 이 때 해석은 이론적 가설에 따라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뇌사는 '이론의존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3) 전문언어화와 결정권의 독점
이상에서 살핀 뇌사 개념의 전문성, 뇌사의 검사방법의존성 및 검사결과해석의 이론의존성을 고려해 볼 때, 뇌사를 일반적인 죽음 개념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삶의 끝과 죽음의 시작에 대한 인식권한이 오직 특정 전문의 집단에 의해 독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회복이 가능한 의식불명의 환자와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뇌사자를 구별하는 일은 - 두 환자 모두 심장이 뛰고 있는 한 - 일상지식으로는 불가능하고, 신경학, 신경외과학, 진단방사선학 등의 전문지식과 고도의 의료기술장비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뇌사를 일반적인 죽음 개념으로 삼을 경우, 죽음의 판단은 일반시민들이 살아가는 삶의 세계에서 전문인들의 과학기술세계로 이전하게 된다. 이럴 경우 죽음은 더 이상 일상언어적 개념이 아니라 특정 전문의들이 관리하는 전문언어가 된다. "파고", "혈류량의 임계치", "동맥혈탄산가스", "뇌세포의 산소소비량" 등은 죽음 개념을 전문언어로 전환시키는 과학기술적 의미소들이다. 여기서 뇌사를 일반적인 죽음 개념으로 인정한다면, '죽음' 개념에 대해서도 이른바 "언어적 분업"(sprachliche Arbeitsteilung)을 말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3. 죽음 개념의 기능화
(1) 과학기술적 편의주의
이처럼 뇌사 개념에 의해 죽음 개념이 과학기술화되고, 전문의료인에 의해 그 결정권한이 독점된다면, 죽음 개념은 이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위험, 즉 '기능화'의 위험 아래 빠져들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무호흡검사로 인해 환자가 심장사할 위험이 발생하면 '심장의 보존을 위하여' 검사를 중지해야 한다든지, 뇌파검사에서 뇌사판정을 얻지 못하는 경우에도 장기이식을 위하여 뇌파검사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뇌사확인 검사절차가 뇌사 개념의 '구성적' 요소가 아니라 단지 (사후적인) '설명적' 요소에 불과한 것이라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임의적 검사인 뇌혈류검사뿐만 아니라 현재는 필수적 검사로 되어 있는 무호흡검사와 뇌파검사를 임의적(optional) 검사로 전환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주장은 뇌사 개념의 절차적 요소를 제거하고, 뇌사의 임상진단만으로 환자는 이미 죽은 자라는 확신 아래에서, 뇌사검사방법은 단지 죽음의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과학기술적 방편으로서 편의적으로 선택.사용할 수 있다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2) 목적에 의해 규정되는 기능개념 그러나 뇌사확인 검사절차는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뇌사 개념의 '설명적' 요소가 아니라 '구성적' 요소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전제에서 보면 무호흡검사와 뇌파검사를 임의적.선택적 검사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단지 뇌사검사의 임상적 어려움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는 표면상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목적 아래 놓이게 될 수 있다. 즉 그런 검사의 임의적 생략은 실천적으로는 분명 뇌사판정을 용이하게 해주는 것이며, 이것은 다시 - 물론 환자 및 그 보호자의 동의를 전제로 하지만 - 이식수술을 위한 장기를 더 많이 확보해줄 수 있는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되면 뇌사 개념은 사실적인 '존재 개념'이 아니라 '목적규정적인(zweckbestimmt) 개념', 즉 공리적 목적에 의해 그 내용이 규정되는 개념으로 전락하게 된다. 또한 위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 즉 신경학이나 이식학이 장기공급을 매개하는 다른 사회기구나 법제도와 함께 하나의 '사회적 하부체계'로서 '장기공급체계'를 형성한다면, 위 주장이 초래하는 뇌사 개념은 그런 체계의 기능적 유용성에 맞추어 그 내용이 변화되는 '기능적 개념'이 되고 만다.
(3) 기능화된 죽음 개념의 위험성
이처럼 기능화된 죽음 개념이 갖는 위험성은 너무나 자명하다. 뇌사 개념의 기능화는 곧 뇌사의 절차적 구성과정이 위축되거나 상당부분 생략됨을 의미한다. 이처럼 뇌사의 절차적 구성과정이 위축.생략될수록 임상진단의 오류가능성에 대한 통제기회는 약화되는 반면, 장기이식의 활성화라는 공리적 목적은 뇌사 인정과정에서 더욱 강하게 작용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 마치 오판에 의해 선량한 시민에게 사형을 선고·집행하는 경우만큼 또는 그보다도 훨씬 드문 일이겠지만 - 극단적으로는 뇌가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산'사람까지도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거나 치료를 소홀히 하게 만들 위험성을 가져올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위험은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사유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이런 위험성에 대한 우려만큼은 일반시민들이 뇌사 개념을 관리하는 전문의료인집단의 자율적 자기통제에 힘입지 않고는 독자적으로 불식시킬 수 없다는 점이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Ⅲ. 죽음과 의사소통.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근본적으로는 뇌사 개념에 의해 죽음에 대한 인지구조가 일반시민들의 살아가는 세계, 즉 생활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와 의료체계나 장기공급체계의 기능적 요소로 편입된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 죽음과 생활세계
(1) 문화적 정서와 과학적 인식의 괴리
뇌사 개념에 의해 죽음이라는 언어가 분업관계 아래 놓이고, 또한 그 분업이 아무런 마찰도 없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고 할지라도, 뇌사 개념은 치아에 땜질재료로 박아 넣은 아말가미와 같이 일반시민들의 죽음에 대한 인지과정에서는 매우 생경한 것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물질적인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뇌사 개념은 환자보호자로 하여금 그가 사랑하는 가족환자의 심장이 아직 뛰고 있으므로 살아있거나 (시민들이 뇌사 개념을 일반적인 과학적 인식으로 수용한 이후에는) 혹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면서도' 그의 죽음을 객관적 사실로 '인식'해야만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정서적) 느낌과 강요된 (사실적) 인식 사이의 괴리는 오늘날과 같은 과학기술시대에서도 결코 과학기술적인 방법으로는 메워질 수 없다. 여기서 그렇게 메워질 수 없는 이유를 단지 아직 충분히 과학화되지 않은 삶의 문화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런 괴리는 죽음의 과학기술적 독점을 의미하고, 이는 다시금 일반시민들로서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가족이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그가 언제 자기 곁을 떠났는지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반시민은 오직 전문의료인이 죽음을 선언할 때에 비로소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좀 비유적으로 표현한다면 애도의 곡(哭)은 전문의료인의 지휘 아래서만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생활세계적 죽음 개념
그러나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그리고 죽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삶의 범주들이다. 사람들이 애밴 여자의 배가 한껏 불러오고, 호흡이 가팔라지며, 진통이 시작할 때 점점 고조되는 흥분과 기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그 누구의 태어남을 인지하듯이, 죽음에 대한 경험도 그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생생한 것이어야 한다. 죽음은 곧 이별의 순간이며, 그 순간은 죽는 자와 삶을 함께 살아 온 사람들이 그와 함께 했던 삶의 역사가 응집된 형태로 회고되면서, 수많은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자연스럽게 교류되는 순간으로 남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며, 또한 인간이 숨쉬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태어남처럼 죽음의 일상성은 과학기술적 합리성으로 대체될 수 없는 문화적 가치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태어남처럼 적어도 보통의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세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개념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죽음의 순간, 이별의 순간은 보통의 시민들이 직접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바로 숨이 멈추고, 맥박이 더 이상 뛰지 않는 현상과 함께 죽음의 순간이 함께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법은 뇌사가 심폐사보다 선행하는 죽음의 과정에서도 바로 그와 같은 의사소통적 교류의 공간을 뇌사라는 과학기술적. 기능적 개념에 의해 메워버려서는 안된다. 달리 말해 법은 뇌사를 일반적인 죽음의 개념으로 제도화해서는 안된다.
(3) 뇌사의 생활세계적 개념화
그러나 이것은 과학기술적이며 기능적인 뇌사 개념을 언제나 죽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뇌사자가 자신이 '비가역적인' 뇌사상태에 빠지게 되면 다른 장기가 채 죽기 전에 다른 이에게 장기를 이식시켜 그의 생명을 살리겠다는 의사를 이미 표현한 경우에 뇌사를 인정하는 것은 인간의 죽음을 기능화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사람은 죽음의 과정에서 과학과 기술, 사회체계와 기능을 자신의 윤리적 실천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셈이라 할 수 있다. 이 때 뇌사자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와 사회적 관계를 맺은 사람은 그의 뇌사상태를 무엇보다도 윤리적 실천이라는 맥락이 강조된 상황 속에서 '그 개인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의사소통을 전개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뇌사 개념은 과학기술시대에서도 여전히 생활세계 속에 머무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뇌사는 일반적인 죽음 개념이 아니라 장기이식을 위하여 예외적으로만 죽음 개념으로 인정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뇌사를 예외적인 죽음 개념으로 인정하는 경우에도 뇌사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전문의료인들만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보호자와 함께, 다시 말해 환자보호자와 환자의 뇌사상태에 대한 상호이해를 도모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물론 이 상호이해는 의사의 개인적인 진단의 정확성이 아니라 과학기술적 검사장치에 의해 매개됨으로써 의사 개인의 인적 지배영역을 넘어선 상황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특히 간과해서는 안될 점은 일반 시민이 뇌사상태를 이해하기 가장 쉬운 방법인 뇌파검사가 그 기술적 낙후성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적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중요한 절차라는 점이다.
2. 죽음과 의사소통
요컨대 죽음 개념이 생활세계 속에 남아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뇌사를 임상진단한 의사와 환자가족 사이에 환자의 의학적 죽음에 대하여 충분한 '상호이해'가 전개되어야만 한다. 이른바 뇌사검사절차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임상진단을 기술적 장치에 의해 확인하는 의미만을 가지지만, 환자가족의 입장에서는 환자의 뇌사를 비로소 '실감나게' 받아들이는 의사소통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뇌사판정의 검사절차는 뇌사를 임상진단한 의사의 개인적 인식이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 전환되는 최소한의 의사소통적 과정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뇌사검사절차는 - 뇌사가 적어도 사회적인 의미의 죽음이 되고자 하는 한 - 단지 뇌사를 설명하는 방편이 아니라 뇌사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뇌사검사절차는 생략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현상 밖에 존재하는 어떤 실용적 목적(예: 이식용 장기의 확보)에 의해 간소화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런 생략과 간소화는 뇌사를 사회적으로 인지하는 의사소통적 교류의 생략과 간소화를 의미하며, 그런 생략과 간소화는 뇌사를 사회적 죽음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그 만큼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뇌사를 임상진단한 의사와 환자가족 사이에 환자의 죽음을 과학적으로 인지하는 의사소통적 과정에 의해 환자의 죽음이 '사회화'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법적인 의미의 죽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뇌사 개념의 사회화는 환자가족이나 환자의 교류집단과 같은 매우 작은 집단 내에서 펼쳐지는 의사소통적 교류의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최소한의 의사소통적 교류가능성을 근거로 전체 법공동체에 효력이 있는 일반적인 법적 죽음을 인정할 것인지는 또 다른 실천적.법정책적 과제라고 볼 수 있다.
Ⅳ. 뇌사 개념의 실천적 과제
의사와 환자가족 사이에 펼쳐지는 뇌사에 대한 최소한의 의사소통적 교류를 토대로 뇌사를 예외적인 법적 죽음으로 인정해야 할 실천적 필요성은 무엇보다도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치료중단의 합법화(아래 1)와 장기이식의 합법화(아래 2).
1. 치료중단의 합법화
의사들이 뇌사를 의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죽음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뇌사자에 대한 치료가 무의미한 치료임에도 불구하고 뇌사자에 대한 치료를 합법적으로 중단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즉, 법적인 죽음으로 승인된 뇌사 개념은 합법적으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시점을 정해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에 대해 의사는 더 이상 아무런 치료의무도 부담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뇌사를 법적인 죽음 개념으로 인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뇌사자를 아직 산 사람이라고 보는 경우 뇌사자에 대한 (고의적인) 치료중단은 형식논리적으로는 살인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이미 '소극적 안락사'(passive Euthanasie)라는 개념에 의해 또는 뇌사자에 대한 의사의 생명유지의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합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뇌사자에 대한 치료중단을 두고 '안락사'라고 표현하는 것은 의사들에게는 낯선 언어사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법적 용어의 낯설음이 생활세계적인 죽음 개념을 희생시켜서라도 의사들에게 부담시켜서는 안될 일은 아닐 것이다.
2. 장기이식의 합법화
그러므로 뇌사를 죽음 개념으로 인정하는 실제적인 유일한 목표는 뇌사자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합법적으로 이식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뇌사자는 일반적으로 아직 죽은 사람은 아니지만 반드시 곧 죽을 예정인 사람이므로 어차피 기능이 소멸할 자신의 장기를 다른 환자에게 이식함으로써 그를 살리고자 한다면, 그것은 윤리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은 그런 실천을 '강요'해서도 안되지만 반면에 그런 실천을 '방해'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법의 윤리적 중립성은 법적 허무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윤리적 실천이 왜곡된 의사소통적 구조 속에서, 그러니까 폭력과 돈의 힘이 지배하는 의사소통적 교류로 점철될 가능성이 있다면, 법은 그러한 왜곡을 차단하고 자율적인 윤리적 실천이 펼쳐질 수 있게 하는 - 때로는 그러한 실천을 유도하는 -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통로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통로를 마련하는 법제화의 방향은 대략 다음과 같은 틀을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 판정주체 뇌사판정의 주체는 협의체 형태의 기구가 맡아야 하고, 뇌사판정기구는 신경(외)과 전문의와 같은 관계전문의를 반드시 포함하고 있어야 하나 특정 전문의 집단에 한정되어서는 안되며, 뇌사검사는 관계전문의 다수(예: 2인이상)가 서로 독립하여 판정업무를 수행하여야 하며, 장기이식을 행하는 의사와 뇌사를 판정하는 의사는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 판정방법 뇌사를 판정하는 방법은 다원적인 의사소통적 구조, 즉 의협이 제안하고 관계전문의와 법률가, 종교인 및 일반시민 등이 참여하는 기구의 심의결정에 따라 정하도록 한다.
- 뇌사구성적 의사소통 뇌사판정주체는 환자가족에게 뇌사검사결과를 설명함으로써 환자의 죽음에 대한 이해(동의)를 얻어내야 한다(뇌사구성적 의사소통).
- 환자의 자기결정과 가족 사이의 의사소통 뇌사자의 장기적출에서 윤리적 실천의 주체인 뇌사자의 자기결정권(Selbstbestimmungsrecht)은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뇌사자의 장기기증이라는 의사결정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의사소통적 교류의 과정에서 가족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지위, 예를 들면 장기적출에 대한 거부권(Vetorecht)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족이 장기기증의사를 생전에 표현하지 않은 환자 본인의 의사를 대신할 수 있게 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환자 본인과의 '상호이해' 또는 의사소통적 '교류'(Kommunikation)라기 보다는 '독단적 결정'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 윤리적 의사소통 뇌사자의 장기기증은 뇌사자의 윤리적 실천에 대한 상호이해의 궤도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따라서 장기기증이 상업화(Kommernzialisierung)되어서는 안되며 기증된 장기의 분배 역시 윤리적 원칙에 따라 행하여져야 한다.
- 사적 자치 이처럼 장기분배의 업무는 윤리적 원칙을 형성.실행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현재로서는 장기분배의 윤리적 원칙이 의학적 규칙에 환원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의협, 병원협회, 의료보험협회 및 각종 시민단체 등이 공동으로 하나의 장기관리본부를 설립하고, 계약의 형태로 그 업무사항을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장기분배의 업무와 장기이식을 위한 정보관리업무는 업무의 효율성을 위하여 장기관리업무와 통합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 개인정보보호 뇌사자의 장기적출에 관련된 개인정보를 특별하게 보호함으로써 윤리적 실천의 궤도 밖에서 - 때로는 범죄적 폭력과 상업적인 자본에 의해 - 장기적출이 이루어지는 것을 예방하여야 한다.
- 기록의무와 논증의무 장기기증에 관련한 윤리적 의사소통교류의 전제조건으로서 뇌사판정에서 장기분배 및 장기이식에 이르는 과정이 기록에 남겨지고, 각 행위의 근거가 그 기록에 의해 제시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록 및 논증의무의 이행이 없다면 뇌사자 장기이식을 두고 환자 자신과 그 가족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까지 윤리적 실천의 의미를 상호이해할 가능성이 확보될 수 없기 때문이다.
- 형법에 의한 절차엄호 뇌사의 판정에서 장기이식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윤리적 실천의 의사소통적 교류라는 궤도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일탈행위(예: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뇌사판정기준위반, 장기매매, 장기이식관련 개인정보의 침해 등)는 형법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Ⅴ. 절차주의적 법제화와 인권
이상과 같은 대강의 윤곽을 띤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통로를 거친 뇌사만이 예외적으로 법적인 죽음으로 취급될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첫째, 뇌사자의 인권이란 누구나 자신이 뇌사상태에 빠질 경우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는 윤리적 실천을 할 수 있는 권리이며, 이 권리는 뇌사판정과 장기적출 및 이식의 과정이 바로 위와 같은 대강의 윤곽을 띤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적절하게 실현될 수가 없다. 위와 같은 윤곽의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통로에서 벗어난 뇌사판정, 장기적출 및 이식은 범죄적 폭력과 상업적 자본에 얼룩질 위험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여기서 뇌사자의 인권은 모든 시민이 (잠재적인 뇌사자로서) 위와 같은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재해석될 수 있다.
둘째, 여기서 제시된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통로를 제도화하는 법은 '절차주의적 모델의 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법이 윤리적 실천의 각 단계마다 실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러한 실천이 이루어지는 절차, 조직, 조종권한의 분배만을 맡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뇌사를 예외적으로 법적인 죽음으로 전환시키는 법은 어떤 실체적인 윤리적 규범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윤리적 실천이 시민들 사이에 자유롭고 평화롭게 펼쳐지는 의사소통적 교류의 '테두리조건'을 보호한다. 이러한 법의 역할은 탈윤리화되고, 과학.기술에 의해 합리화된 미래사회에서도 여전히 법의 정당한 임무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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