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은 달아나 버리고 도둑을 쫓던 사람이 몽둥이를 얻어맞다 / 종광 스님
상당·시중은 직제자 기록
감변·행록은 후대의 가필
행록에는 황벽이 임제를
얼마나 아꼈는지 드러나
임제록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 행록의 첫 부분을 강의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강의하지 못했던 행록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師栽松次에 黃檗이 問, 深山裏에 栽許多하야 作什麽오
師云, 一與山門作境致요 二與後人作標榜이니다 道了하고
將钁頭하야 打地三下한대 黃檗이 云, 雖然如是나 子已喫吾三十棒了也라
師又以钁頭로 打地三下하고 作噓噓聲하니
黃檗이 云, 吾宗이 到汝하야 大興於世하리라
해석) 임제 스님이 소나무를 심고 있는데 황벽 스님이 물었다.
“깊은 산 속에 그렇게 많은 소나무를 심어서 무얼 하려는가?”
임제 스님이 말했다. “첫째는 도량의 경치를 위한 것이고
둘째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임제 스님이 말을 끝내고 괭이로 땅을 세 번 내리쳤다.
그러자 황벽 스님이 말했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그대는 이미 나에게 30방이나 맞지 않았나.”
임제 스님이 또 괭이로 땅을 세 번 내리치며 “허허”하고 숨을 길게 쉬는 소리를 냈다.
황벽 스님이 말했다. “나의 가르침이 그대에게 이르러 세상에 크게 일어나겠구나.”
강의) 후대의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남기기 위해서 소나무를 심고 있다는
임제 스님의 말에 황벽 스님은
임제 스님을 통해서 자신의 가르침이 널리 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임제 스님을 바라보는 황벽 스님의 눈빛이 그윽했을 것입니다.
임제 스님이 괭이로 땅 바닥을 세 번 두드린 것은
아마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세 번 황벽 스님에게 묻고 세 번 얻어맞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황벽 스님은 “그렇지. 너는 나에게 30방이나 맞고 결국 깨달음을 얻었지”라는 말로 화답을 합니다.
사철 푸른 소나무를 통해 스승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이 후대에 끊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임제 스님의 다짐이 아름답습니다.
後에 潙山이 擧此話하야 問仰山하되 黃檗이 當時에 祇囑臨濟一人가
更有人在아 仰山이 云, 有하나 祇是年代深遠하야 不欲擧似和尙이니다
潙山이 云, 雖然如是나 吾亦要知하니 汝但擧看하라
仰山이 云, 一人이 指南하야 吳越에 令行타가 遇大風卽止리다하니라(讖風穴和尙也)
해석) 뒷날 위산 스님이 이 이야기를 하면서 앙산 스님에게 물었다.
“황벽 스님이 그 당시 단지 임제 스님 한 사람에게만 부촉한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이 있었는가?”
앙산 스님이 말했다. “있습니다. 다만 먼 훗날의 일이라서 스님께 말씀드리지 않으려 합니다.”
위산 스님이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나도 알고 싶으니 자네는 이야기 해 보게.”
앙산 스님이 말했다. “한 사람이 남쪽으로 향해서 오월지방에서 법을 크게 펴다가
큰바람을 만나면 그치게 될 겁니다.(풍혈화상의 출현을 예언한 것이다.)”
강의) 임제록에 위산 스님과 앙산 스님의 대화가 나오는 것은
이들 스님의 권위를 빌어 임제 스님을 설명해야 했던 시대적인 흐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당(上堂)이나 시중(示衆)이 임제 스님의 직계 제자들에 의해 기록됐다면
감변(堪辨)이나 행록(行錄)은
후대 사람들에 의해 가필됐음을 고려하면서 임제록을 읽어야 합니다.
어찌됐든 이 내용은 임제 스님의 4대손인 풍혈연소(風穴延沼, 896~793) 스님의
출현을 예언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師侍立德山次에 山이 云, 今日困이로다 師云, 這老漢이 寐語作什麽오
山이 便打라 師掀倒繩牀한대 山이 便休하니라
해석) 임제 스님이 덕산 스님을 모시고 옆에 서 있는데 덕산 스님이 말했다.
“오늘은 피곤하구나.” 임제 스님이 말했다. “이 노장이 무슨 잠꼬대를 하는 겁니까?”
그러자 덕산 스님이 바로 몽둥이로 때렸다.
임제 스님이 덕산 스님이 앉아있는 법상을 엎어버렸다. 덕산 스님이 그만 그쳤다.
강의) 앞전에 보았듯이
임제 스님이 시자인 낙보 스님을 보내 덕산 스님을 시험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의 기록은 아마도 임제 스님이 젊은 시절,
아직은 황벽 스님을 모시고 있을 때의 일 같습니다.
덕산 스님이 피곤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임제 스님이 “무슨 잠꼬대냐”며 덕산 스님에게 핀잔을 줍니다.
그 말을 듣고 덕산 스님이 몽둥이로 때리자
그냥 맞지 않고 덕산 스님이 앉는 법상을 엎어버립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무례한 행동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임제 스님의 말씀은 이런 뜻이었을 겁니다.
“피곤하다. 아니다” 이런 것 또한 차별적인 마음 아니냐는 것입니다.
“스님에게 아직도 그런 차별심이 남아있습니까”하는 핀잔이었겠지요.
덕산 스님이 몽둥이로 점검을 합니다.
그러자 임제 스님은 이제 법상마저 엎어버립니다.
임제 스님에게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습니다.
덕산 스님이 몽둥이질을 멈출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師普請鋤地次에 見黃檗來하고 拄钁而立하니
黃檗 云, 這漢이 困耶아 師云, 钁也未擧어니 困箇什麽오
黃檗이 便打하니 師接住棒하야 一送送倒하다
黃壁이 喚維那호대 維那야 扶起我하라 維那近前扶云
和尙이 爭容得這風顚漢無禮닛고 黃檗이 纔起하야
便打維那하니 師钁地云, 諸方은 火葬이어니와 我這裏는 一時活埋하노라
해석) 임제 스님이 밭을 가는 운력을 하다가
황벽 스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괭이를 세워놓은 채로 서 있었다.
황벽 스님이 말했다. “이 놈이 참 피곤한 모양이구나.”
임제 스님이 말했다. “괭이도 들지 않았는데 피곤할 일이 있겠습니까?”
황벽 스님이 곧바로 몽둥이로 때렸다. 그러자 임제 스님이 방망이를 붙잡고는 밀어버렸다.
황벽 스님이 유나 스님을 불렀다. “유나, 나를 좀 일으켜주게.”
유나 스님이 가까이 와서 부촉하면서 말했다.
“화상께서는 어찌 저 미친놈의 무례를 용서하십니까?”
황벽 스님이 일어나자마자 유나 스님을 후려쳤다.
임제 스님이 괭이질을 하면서 말했다.
“제방에서는 화장을 한다지만 나는 여기서 몽땅 산채로 묻어버린다.”
강의) 앞서 덕산 스님에게 했던 질문이 이제 임제 스님의 몫이 됐습니다.
그러나 임제 스님은 황벽 스님의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피곤하다, 편안하다 하는 차별에 걸려들지 않습니다.
덕산 스님과 마찬가지로 황벽 스님도 몽둥이를 휘두릅니다.
그런데 임제 스님은 그 몽둥이를 붙잡고는 스승을 아예 밀어 넘어뜨립니다.
유나 스님은 스님들의 기강을 잡는 사람입니다.
그런 유나 스님이 황벽 스님을 일으키면서 한마디 합니다.
“스님 왜 저런 놈을 가만히 둡니까.” 그런데 유나 스님은 오히려 황벽 스님에게 얻어맞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임제 스님의 다음 말에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제방에서는 화장을 한다지만 나는 여기서 몽땅 산채로 묻어버린다.”
그렇습니다. 부처든 조사든 스승이든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일체의 것을 배격하겠다는 뜻입니다.
어떤 권위에도 물들지 않고 스스로 주인으로 우뚝 서겠다는 결기입니다.
과격하기는 하지만 스승을 밀어버린 것도 그런 뜻입니다.
황벽 스님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오히려 어두운 유나 스님을 후려친 것입니다.
後에 潙山이 問仰山호대 黃檗이 打維那意作麽生고
仰山이 云, 正賊은 走却하고 邏蹤人이 喫棒이니다
해석) 뒷날 위산 스님이 앙산 스님에게 물었다.
“황벽 스님이 유나 스님을 때린 의도가 무엇인가?”
앙산 스님이 대답했다.
“진짜 도둑은 달아나 버렸는데 도둑의 뒤를 뒤쫓던 사람이 얻어맞은 것입니다.”
강의) 앙산 스님의 말씀처럼 임제 스님은 이미 부처님의 보물을 훔쳐가 버렸습니다.
임제 스님은 이미 진리의 당체를 얻어 가 버렸는데
경찰격인 유나 스님이 뒤늦게 임제 스님을 잡겠다고 나선 격입니다.
황벽 스님이 유나 스님을 때린 것은 이를 알려주려 한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결국 부처의 심인을 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나 스님은 부처님의 심인을 훔칠 생각은 않고
심인을 얻은 사람을 잡겠다고 쫓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師一日에 在僧堂前坐러니 見黃檗來하고 便閉却目하니
黃檗이 乃作怖勢하고 便歸方丈이어늘 師隨至方丈하야 禮謝하다
首座在黃檗處侍立이러니 黃檗이 云, 此僧이 雖是後生이나 却知有此事로다
首座云, 老和尙이 脚跟도 不點地어늘 却證據箇後生이로다
黃檗이 自於口上에 打一摑한대 首座云, 知卽得이니다
해석) 임제 스님이 하루는 승당 앞에 앉아 있다가 황벽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아버렸다.
황벽 스님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하며 바로 방장실로 돌아갔다.
임제 스님이 황벽 스님을 뒤따라 방장실로 들어가서 사죄하는 절을 올렸다.
그때 수좌 스님이 황벽 스님을 모시고 옆에 서 있었다.
황벽 스님이 말했다. “이 스님이 비록 후배이긴 하지만 도리를 알고 있구나.”
수좌 스님이 말했다. “노스님은 발꿈치를 땅에 붙이지도 않고 후배를 인가하려고 하십니까?”
황벽 스님이 스스로 자기 입을 한 대 쥐어박았다. 수좌 스님이 말했다. “아셨으면 됐습니다.”
강의) 황벽 스님이 임제 스님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는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옆에 있던 수좌 스님에게 아무 생각 없이 임제 스님을 칭찬했다가 핀잔을 듣습니다.
아마도 수좌 스님은 임제 스님에 대해 잘 몰랐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황벽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섭에게 자리 반을 내어주듯이 이미 깨달음을 인가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가득하니, 무심결에 수좌 스님에게 임제 스님을 칭찬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는 곧 경솔했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한참 후배인 임제 스님을 인가했다는 말이 퍼지면
육조 혜능 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임제 스님이 위험해 질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어찌됐든 자신의 입을 쥐어박으며 스스로의 허물을 참회하고 있습니다.
2013. 08. 19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