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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란비 속 백두대간 길과 함께 한 황악산
1. 일자 : 2012. 7. 14 (토)
2. 장소 : 황악산(1111m)
3. 행로 및 시간
[우두령/질매재(10:30, 720m, 황악산 7km) -> 삼성산(11:15, 986m, 황악산 4.7km) -> 여정봉(11:46, 1030m) -> 바람재(12:08, 810m) -> 신선봉삼거리(12:40) -> 형제봉(12:52, 1046m) -> 황악산(13:13, 괘방령 5.7km) -> (헬기장) -> (백운봉) -> 운수암삼거리(14:03) -> 운수봉(14:10, 680m, 괘방령 3.1km) -> 여시굴(14:30) -> 여시골산(14:43, 622m) -> 괘방령(15:15)]
4. 동행 : 홀로
< 황악산 산행을 준비하여 >
계절이 한 여름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100대 명산을 찾아 안내 산악회를 뒤지다가 ‘송백’에서 김천 황악산을 간다 하여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곧바로 예약을 한다. 송백과는 첫 인연이다.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의 경계에 있는 황악산은 예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그 이름이 명명되었으며(어인 연유인지는 몰라도 ‘학(鶴)’이 ‘악(嶽)’으로 변했다), 삼도봉 민주지산과 함께 백두대간의 허리부분에 솟아 있다. 주봉인 비로봉과 함께 백운봉·신선봉·운수봉이 치솟아 있으며,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한 편이어서 암봉이나 절벽 등이 없고 산 전체가 수목으로 울창하다. 특히 직지사 서쪽 천룡대로부터 펼쳐지는 능여계곡은 대표적인 계곡으로 경관이 뛰어나다.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동쪽으로 금오산, 북쪽으로 포성봉이 보인다 한다.
황악산 기슭에 위치한 직지사는 신라시대 창건된 절로, 아도화상이 손가락으로 이 산을 가리키며 `저 산 아래에 큰 절이 설 자리' 라고 해서 직지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경내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 대웅전 앞 3층 석탑, 비로전 앞 3층 석탑, 대웅전 삼존불 탱화 등의 보물급 문화재가 있다. 직지사는 오늘 코스에서 빠져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늘 그렇듯이 지도를 보며 등산 코스를 어름 잡아 본다. 오름 길은 우두령(720m)을 들머리로 삼성산(986m)까지 올랐다가 바람재(810m)로 내려서고, 형제봉(1046m)을 지나 황악산까지는 약 7km 거리로 백두대간 길이다. 고도 200미터 차를 이기고 능선을 오르내리는 길이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시작 고도가 700미터가 넘으니 어쩌면 거저 먹는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하산 길은 백운봉, 여시골산을 지나 괘방령으로 이어질 것이고 거리는 5.7km 정도이고 역시 대간 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산행거리는 12.7km, 시간은 순수 걷는 시간 기준으로 우두령-황악산이 3시간 (우두령 - 50’- 삼성산 – 50’- 여정봉 – 30’- 바람재 - 50’- 황악산), 황악산-괘방령 구간이 2시간 20분 (황악산 – 70’ – 운수봉 – 40’- 여시골산 – 30’- 괘방령) 5시간 20분, 식사와 휴식을 고려하면 6시간을 예상한다. (이는 내 기준이고 산악회에서 제시하는 소요시간은 5시간이다. 발에 땀 좀 나겠다.) 시작고도가 높고 대간 길을 따라 걷는 산행이라 한여름이라는 계절적 요인만 없다면 크게 무리 없는 길이다.
황악산이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반열에 든 사유는 ‘전체적인 산세는 특징 없이 완만한 편이나 산림이 울창하고 산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 곳곳에 폭포와 소를 이뤄 계곡 미가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이다. 능선 길로 코스가 짜여 있어 폭포와 소와는 인연이 없을 듯하다.
< 희망사항 >
대학 1학년 때인 1984년 여름 김천에 간 일이 있다. 방학을 맞아 친구 집에 들린 것인데, 직지사를 찾아 대웅전 안에 모신 여러 불상들 중에 고추를 내놓고 있는 아기 불상을 보고 놀란 일과 친구 집 일을 돕는답시고 포도 상자를 거꾸로 만들어 낭패를 본 일이 새삼 기억이 난다. 오래 전 일이다. 친구 집에서 서쪽 방면으로 우뚝 솟은 산이 바로 황악산인데 친구는 어릴 때 ‘황악산 넘어는 무엇이 있을까?’가 늘 궁금했고 산이 꿈을 막는 것 같아 답답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꿈 많은 청춘이 꿈꾸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느껴진다. 당시 강형과 진용과는 늘 붙어 다녔는데 세월이 흐르고 어느덧 일 년에 두 세 번 보면 많이 보는 사이로 관계가 소원해 졌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나 보다. 기회가 되면 내 쪽에서 조만간 연락해 보아야겠다.
월간‘산’지에서 숲에 관한 특집 기사를 인상 깊게 읽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나라는 일제시대의 약탈과 전쟁의 상처를 딛고 숲을 훌륭하게 복원한 대표적 국가이며, 남한의 임목축적은 1ha 당 109 제곱 미터로 OECD 평균을 상회한다. 독일이나 일본에는 아직 한참을 뒤지지만, 전쟁 후 최악의 상태보다 10배 이상 숲이 우거지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산림의 공익기능은 수원함양, 산림정수, 토사방지, 대기정화, 산림휴양 등이며 돈으로 환산한 가치는 약 100조 규모이다. 우리나라에는 식물이 약 3500종 서식하는데 그 중 나무는 900종이다. 나무는 키나무(교목), 떨기나무(관목), 덩굴나무(만경) 등으로 대별되는데, 숲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 교목 20개 수종은 가래, 고로쇠. 굴피, 귀룽, 까치박달, 느릅, 당단풍, 마가목, 물푸레, 분비, 사스레, 산사, 신갈, 신나무. 야광, 쪽동백, 층층, 팥배, 함박, 호랑버들이다.
앞으로 산에 다니며 이 20개 나무를 구분해 보아야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경험상 목표 없이 어쩌나 살펴 본 나무만으로 그 수종을 구분하고 숲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꽃 과는 달라서 나무를 그 줄기와 잎으로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무척 어렵다. 아마도 종류가 많고 크기와 계절에 따라 모습이 변하기 때문인 것 같다. 긴 시간을 가지고 도전할 목표할 생기니 갑자기 더욱 산에 가고파 진다. 이번 황악산 산행에서는 ‘나무와의 긴 여행’ 그 시작의 단초를 마련해 보았으면 한다.
장마(오란비)가 한창이다. 산행 준비를 하는 지금도 비가 내리고 있고, 주말에도 비 예보가 있다. 산악회에 전화를 하니 대장 왈 “우리는 비가 와도 무조건 갑니다”라고 한다. 생각을 정리한다. 그래 나도 비가 와도 간다. 물론 최고 산행의 조건 중 맑고 청명한 날씨가 산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임을 알지만, 가끔은 비가 맞고 싶을 때도 있다. 여름 산에서 푸른 숲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생기발랄한 빗방울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소리가 내 영혼을 쓰다듬어 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 말했다, “우중산행은 스스로 자신을 토닥거리고 받아들여 내가 나를 되찾는 시간이다. 세상 속에서 나란 존재가 희미해져 갈 때 우중 산행을 권한다.” 라고. 결국 비 없는 대간 길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비 가 온다면 그 비 속에서 낭만을 찾아 볼 일이다.
토요일이 다가 올수록 한 여름, 낯 모르는 대간꾼들과 함께하는 산행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날씨도 날씨지만 그들의 산행 속도를 알기에 많이 뒤처질까 두렵다. 아직 스스로의 산행 실력에 의구심이 많으니 한참을 더 산에 다녀야겠다. 늘 배우는 그리고 도전하는 자세로 산에 임해야겠다.
(여기까지는 산행 준비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김천 가는 길에 >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지만, 간발의 차이로 버스 한 대를 놓쳤더니 가까스로 잠실역에 도착하여 뛰듯이 버스에 올랐다. 송백과는 첫 만남이다. 버스는 천호동과 상일동에서 일행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큰 비 예고가 있었음에도 버스 안은 몇 자리를 빼고는 만원이다. 놀랐다. 비 탓으로 대부분의 산악회는 주말 산행을 취소했을 터인데, 이 산악회가 이리 많은 사람을 모으는 비결은 무얼 일까?
대장의 간단한 인사말과 여대장의 장황한 코스 설명이 이어지더니, 이내 황간IC를 지나 오늘의 들머리 우두령에 도착한다. 시간은 10시 30분, 예상대로다. 비가 오락가락 한다. 거세어 지지 않기를 바라며 길에 나선다.
< 우두령에서 바람재 >
해발 720미터 우두령에는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소 형상의 상징물이 서 있다. 왠지 생뚱맞다. 들머리는 그 밑 우측 소로를 따라 나 있었다.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 시원한 숲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 서늘함은 곧 축축함으로 바뀔 것을 난 알고 있다.
< 우두령 / 연무에 젖은 숲 >
연무에 젖은 숲은 어둑어둑했다. 회색 빛 일색의 길에 녹색의 나뭇잎의 색감이 오늘따라 돋보인다. 길가를 따라 연한 분홍빛의 야생화가 탐스럽게 피어 있고, 숲 안쪽에는 주황색의 나리꽃이 지천이다. 여름 야생화는 봄보다 다양하지 않지만 그 색체의 화려함은 자못 눈 길을 끈다.
우두령에서 삼성산으로 오르는 길은 고도 차 270미터로 오늘 산행의 첫 고비이다. 지난 주는 천은사에서 고도 차 1150미터 정도를 치고 올랐으니, 이 정도 고도 차는 거저먹기려니 생각할 수 있으나, 오늘 산행 길에서는 상대적으로 높낮이가 가장 큰 곳이니 신경이 쓰인다. 언제나 그렇듯이 초반 30분은 힘에 겹다. 습기가 몸에 닿아 땀으로 변하여 온 몸이 축축하다. 연무에 젖은 숲은 더욱 어두워진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다행이 거세지는 않다. 배낭 커버를 할까? 비 옷을 입을까? 여러 생각이 인다. 그러나 귀찮음과 관성이 배낭을 내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 야생화 / 나리 / 좁쌀풀 >
11시 15분 삼성산에 도착한다. 넓지 않은 공터에 작은 돌 비석이 서 있다. 고도가 986미터이니 당분간 오르막은 없겠지 하고 한결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길을 이어간다. 바람재까지는 2.5km. 길은 숲이 우거져 반소매인 팔을 스친다. 풀 독이 걱정되어 팔을 하늘로 향하여 걷는다. 숲은 점점 더 우거져 간다. 아! 내가 백두대간의 한 가운데 길을 걷고 있음을 실감한다.
< 삼성산에서 / 연무에 젖은 숲 >
바람재가 1.2km 남았다는 이정표까지 비교적 편한 길을 걸었다. 여정봉으로 향하는 길은 다시 오르막이다. 평탄하기만 한 삶이 없듯이 평지만 있는 능선은 없다. 평탄해 보이는 길에도 작은 오르내리막은 수 없이 반복된다. 산과 삶의 공통점이다.
여정봉에는 표지석이 없었다. 부산의 어느 산악회가 만들어 놓은 표지판이 아니었으면 이곳이 어디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삼성산을 오르며 ‘이곳만 지나면 이제 힘든 곳은 없을 거야’ 하고 했던 말이 허언이었음은 확인하는 데에는 그리 많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이제는 길의 평이함은 기대하지 않기로 한다.
< 바람재 가는 길 / 바람재에서 >
여정봉을 지나며 잠시 하늘이 열린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자취를 감추었고, 키 큰 풀이 자란 길을 걷는다. 짙은 숲 길을 헤치고 나오니 시야가 확 트이는 곳이 나타난다. 예전 군부대와 도로가 있던 곳을 백두대간 정비 차원에서 복구해 놓은 곳이다. 모처럼 만에 시야가 트이니 길을 걷는 재미가 느껴진다.
바람재로 향하는 길은 고도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진다. 이리 내려 가면 안 되는데 하며 한참을 걸어가니 마침내 시원한 개활지인 바람재가 나타났다. 짙은 안개에 젖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너른 공터, 바람재의 모습이다. 길가에 이제껏 보지 못했던 야생화, 달맞이꽃이 특유의 노란 자태를 뽐낸다. 이름대로 주위에 바람이 인다.
< 바람재에서 안개를 벗 삼아 >
< 바람재에서 황악산 >
당초 산행을 준비하며 추정한 이곳까지의 소요시간은 2시간 10분, 오늘 아침 수정한 계획은 1시간 40분 이었는데 얼추 비슷하다. 산악회에서 예상한 완주시간 5시간을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배가 고파온다. 아침에 이것저것 주워 먹었지만 2시간 가까이 산행을 하며 그간 축적한 에너지를 대부분 소모해 버렸다. 벤치에 앉아 빵과 과일로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일행들이 지나간다. 벌써 식사를 하냐고 한마디씩 말을 건네고 지난다. 그들 눈에는 정식 대간꾼이 아닌 내가 일행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행동하는 것이 마땅치 않고, 또 내가 늦을까 봐 걱정하는 눈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행 들머리에서 호기 있게 선두로 치고 나섰으나, 점차 뒤처져 중간 후미로 가더니, 이제 식사까지 먼저 하게 되니 완전 후미로 처지게 된 것은 당연지사다. 중간 대장이 무전기로 ‘바람재에 3명 있음, 식사를 하는 분도 있음’ 이라고 무전을 친다. 개의치 않는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알고 있고, 늦지 않을 자신도 있다. 그들이 황악산을 지나 점심을 먹고 있을 즈음 틀림없이 그들을 내가 따라 잡을 것이다.
< 까치수영 / 연무에 젖은 숲 >
짧은 휴식시간을 지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바람재의 고도가 810미터이니 황악산까지 300미터를 치로 올라야 한다. 다시 오름이다. 그래도 에너지를 보충하고 걷는 길은 오전보다 힘겨움이 덜하다. 무엇보다, 일행을 쫓아 가는 것이 아니고 내 페이스에 따라 걸으니 마음이 편하다. 노란 돌나무가 지천이다.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모습이 풍성하다.
12시 40분 신선봉 갈림에 닿았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직지사로 하산하게 된다. 이곳까지 오면서 우리 일행 말고는 사람의 흔적을 보지 못했는데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길도 넓어진다. 우측 멀리에서 목탁 소리가 들린다. 소위 직지사의 ‘나와바리’에 들어선 것을 실감한다.
12시 52분 형제봉에 도착. 정상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풀 숲에 평소 못 보던 꽃이 탐스럽게 피어있다. 까치수영이다. 편안한 곡선의 미가 돋보이는 흰 색 야생화다. 고도가 높아지고 나리꽃의 개체 수가 점점 많아진다. 출발 전 이번 산행은 나무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아가는 산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나무는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여름 야생화와는 많은 인연을 맺는다.
1시 13분 드디어 황악산 정수리에 도착했다. 출발 후 2시간 40분, 식사까지 한 것을 감안하면 무척 빠른 행보다. 일행 대간꾼들 중 선두는 나보다 30분 정도 먼저 이곳을 지났을 것이다. 놀랍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 중 상당수가 여자라는 것이다.
황악산 정상은 돌무더기와 표지석이 서 있는 작은 공터로 생각보다는 작은 규모다. ‘한반도의 노른자위’에 빛나는 곳이라 크게 기대했는데 소박한 모습이 의외였다.
< 황악산 정상에서 >
< 황악산에서 괘방령 >
정상에서의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2시경부터 많은 비가 온다 했으니 서두를 일이다. 헬기장 비슷한 곳을 지난다. 길이 헷갈린다. 직진 길을 버리고 우측 소로로 들어선다. 잠시 후 커다란 나무로 만든 직지사로 향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연무가 점점 짙어진다. 무언가 하늘에서 한바탕 쏟아질 기세다.
반대편에서 하나 둘 지나는 사람들과 조우한다. 서로 멈짓한다. 이 궂은 날씨에 산에 오르느라 수고하십니다 하는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2시를 조금 지나 운수봉 삼거리를 지난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직지사로 향할 것이다. 내처 운수봉을 향해 길을 간다. 2시 10분경, 운수봉에 닿았다. 이곳까지는 대세 내리막 길이었다. 다행히 비는 쏟아지지 않는다. 이제 괘방령까지는 3.1km가 남았다. 1시간 남짓이면 산행이 종료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 진다. 연무만 없었다면 대간 능선 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경치가 그만이었을 텐데 희뿌연 안개 속만을 걸었으니 조금은 손해를 보는 기분이다. 게다가 시간에 쫓기어 허겁지겁 걷기만 했던 것도 후회가 된다.
< 직지사 이정표 / 운수봉에서 >
한 두 방울 비가 떨어진다. 웬만하면 우비를 꺼내지 말아야 하는데 하며 발걸음에 속도를 내어 본다. 고도가 낮아지니 그 많던 야생화가 자취를 감춘다. 분명 고도와 야생화의 생육과는 상관관계가 깊다. 좋은 시절이 덧없이 지나간 것 같아 아쉽다.
< 돌나물 / 원추리 >
운수봉에서 여시골산까지는 1.6km, 한 30분이면 가겠지 하고 생각했다. 10여분 오르막을 걸었다. 봉우리 정상에 무수한 표지기가 보인다. 혹 이곳이 여시골산 하고 의심 겸 희망 어린 생각을 해 본다. 아니다. 너무 이르다. 다시 내리막, 너무 내려간다. 한참을 가니 여우가 그려져 있는 작은 표지판이 보인다. 여시굴이다. 표지판 옆에는 실제로 깊고 어두운 굴이 보인다. 여우가 살던 굴이라 한다. 그 음침한 분위기가 꿈에 나타날까 겁난다.
여시골산은 표지석이 없나 보다 하고 포기하고 걷는데 고도 600미터 부근 언덕에 여시골산이 나타났다. 예상대로 운수봉에서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중간에 조바심은 냈지만 ‘시간 겐또’가 맞아가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 진다. 그래도 이제 30분 정도면 괘방령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어시골산에서 괘방령으로 향하는 내리막 계단은 가팔랐다. 둥근 나무로 계단을 내었는데 잘못 밟으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조심스레 고도를 낮추어 간다. 20여분 아무 생각 없이 터벅터벅 걸으니 하늘이 열리고 개활지가 나타난다. 반대편 방향으로 원추형의 산이 솟아있다. 대간을 따라 추풍령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하나의 산을 끝마치고 나니 다른 산에 대한 욕심이 번진다. 영락없는 산꾼의 습성이다.
< 여시굴 >
개활지에서도 한참을 더 걷어 내려오니 도로가 나오고 커다란 돌비석이 보인다. 이곳이 괘방령이다. 고도는 약 250미터 수준이고 충청도 영동 땅과 경상도 김천의 경계가 이곳에서 나뉘어진다. 우중산행을 한편으로는 걱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대하고 걸었던 산행이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 괘방령에서 >
< 에필로그 >
40여명의 산악회 일행 중 중하위로 하산을 완료한 것 같다. 괘방령 밑 팔각정에 큰 식당이 차려졌다. 아침에 대장이 예고한 대로 닭죽에 오이 소박이, 떡, 수박이 차려진 진수성찬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산행으로 지친 다리를 쉬기도 전에 평상에 앉아 차려진 음식을 맛나게 먹었다. 3만 5천원의 회비로는 기대할 수 없는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 감사할 따름이다.
많은 땀을 흘렸으나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간단히 윗옷만 갈아 입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언제나처럼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말리니 꿉꿉한 기분은 이내 사그라든다. 눈을 감고 지나 온 산행을 복기하다 스르르 잠의 나락으로 빠진다.
오늘로 100대 명산 산행 중, 95번째의 산행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무악산, 화왕산, 천왕산, 미륵산, 깃대봉 만이 남았다. 이제 슬슬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다. 과연 마지막 산행지가 어디가 될지 내 자신도 궁금해 진다.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내 지식이 모자라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 시간과 노력이 해결해 줄 것이지만, 사람들 관계에서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점점 막막해 진다. 지금 회사에서 돌아가는 일들이 그렇다. 안타깝지만 이 역시 시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괜한 나섬이 오해를 부를 수 있음을 알기에 묵묵히 참고 내 길을 가야겠다.
얼마 전 친구가 책을 냈다고 문자가 왔다. 출판을 기다렸다. 샀다. 제목이 [쉿, 나를 깨우세요.] 이다. 서문에 이런 글이 나온다. “이해할 수 없으면 곱씹고, 그래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생각하지 마라. 언젠간 기억이 그것을 이해시킬 것이다.” 많이 일들이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