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 그리고 귀
나는 숭실고등학교를 나왔고 동국대학교를 가까스로 졸업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도 대학입시를 치면서도 나는 충격을 받았다.
고등학교에서는 강당에서 입학행사를 시작하거나 끝나면서 기도를 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입시 때는 바로 옆자리에서 스님이 같이 시험을 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미션스쿨인 숭실고등학교
불교대학교인 동국대학교
나는 숭실을 다니면서 기독교의 신성을 만났고 대학을 다니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고민했으며
그 중간이거나 대안일 수 있는 힌두교를 선택했다.
아무튼 이 간단치 않은 이야기는 영영 못 할 수도 있고 어쩌면 나중에 좀 자세히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여하튼 각설하고
고등학교 입학 때 강당에서 행사의 막바지에 중창단 8명의 선배들이 나와서 두 곡인가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를 들으면서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마이크도 없이 8명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 강렬하고 성스러우면서 아름다운 합창이 내 영혼을 흔드는 것 같았다. 합창이란 것이 이렇게 대단하고 멋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사실 숭실고등학교는 동국대만큼이나 대단한 전통을 지닌 학교다.
개교90주년 행사에는 교과서에서 보던 소나기의 황순원 선배가 노구를 이끌고 오셔서 연설을 하시기도 했고 평소에는 않부르는 제1교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모란봉이 달아 오다 돌아앉으며 대동강수 흘러내려 감도는 곳에 백운간에 층층하게 솟아난 집은 합성숭실학교 숭실숭실합성숭실......”
그런데 매주 부르던 제2교가는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숭실고등학교에 유명한 것이 바로 합창단이다.
듣기로는 세계합창대회에 참가해서 우수한 성적을 내기도 했다고 하고 내 재학 당시에도 유명한 기수들은 테잎을 녹음해서 발행하기도 했다.
지금도 종종 만나는 석재 녀석이 그 합창단에 들어갔는데
그 대단한 자부심과 열정이 평범하던 녀석의 어느 구석에서 잠자고 있던 것인지 놀랄 만큼
합창단에 들어간 녀석들은 대단한 소속감과 열정을 보였고
성악 발성을 시도 때도 없이 연습하더니 어느새 진짜 숭실합창단이 되어버렸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나는 많이 놀랐다.
솔리스트로서 무대를 가질 만큼 노래에 대단한 소질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저 나와 같은 평범하던 녀석들이 어느새 유명한 숭실합창단이 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일종의 경외와 동경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평범하던 녀석들이 모여서 대단한 합창단이 되는 데에는 정말 많은 노력들이 필요했고 나는 그 과정을 석재 녀석을 통해 가까운 거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석재에게 어설프게 나마,
성대를 내리고 소리의 끌어올려 비강에서 공명을 일으키거나 가슴으로 소리를 내는 등의 방법을 주워듣고 따라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신복이형이 도시빈민연구회에 반강제로 가입시켰지만(신복이형은 내가 오리엔테이션때 양희은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이놈 운동권으로 키워야겠다고 찍었다고 했다) 또 동시에 동대불교합창단에 가입했다. 사실 동아리로서의 합창단은 불교와 관계가 없다. 오히려 기독교인 단원들은 불교를 떼고 싶어 했지만 학교의 지원 때문인지 정해진 방침인지 불교를 떼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에게 합창단의 원형은 숭실합창단 이었기에 오히려 자유롭고 느슨한 대학동아리로서의 합창단에게는 없는 스타르타식의 강력한 유대와 단련이 아쉽기도 했지만 노래를 좋아하는 다양한 선배 동기들과의 만남과 합창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4부로 나뉘어진 각 개인들의 소리가 서로 이쁘게 어울리려면 내 소리와 우리 파트의 소리와 상대 파트들의 소리 그리고 그 전체를 아우르는 지휘자와의 소통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그리고 그러려면 내가 내는 소리보다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어울릴 수 있게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입 못지않게 귀도 중요하는 것을 배웠다.
그러던 중 국악관현악단 한소리와 협연하며 예술의 전당에 서기도 하고(이때 MBC 토요국악마당인가하는 프로로 방송이되었다)
대학합창제에 참가하며 학교 옆의 국립극장 무대에 서기도 하고 무슨 행사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도 서보았다.
그리고 가을 막바지에 본관극장에서 정기연주회를 마쳤는데
뱃노래와 반야심경을 부르던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써클선배 들이 나를 총무로 내정해 놓은 것이다. 지휘자 다음으로 가장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총무로 나를 낙점하다니 2학기 과대표를 맡아 하면서 나는 동기들과의 관계도 너무 소중해졌다. 그리고 써클과 동기들과의 강한 유대를 동시에 유지한다는 것은 둘 다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합창단을 그만두었다. 쉽지 않았지만 나는 물리90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면서 나는 늦깍이처럼 사춘기처럼 나의 실존적 고민을 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성일이가 선배이자 상담역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 언젠가 집회에 나갔을 때 지독한 최루탄 연무 속에서 백골단에 쫒기며 어쩔 줄 모르던 나를 옆에서 손 꼭 잡고 이끌어주던 성일이는 정말 선배였다. 고맙다 성일아!
1학년때도 2학년때도 그리고 어쩌면 대학시절 내내 술 마시고 당구 치고 웃고 노래하고 즐거운 시간도 참 많았지만 고민하고 아파하던 시간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게 대학시절은 그것들의 범벅이었다.
그건 어쩌면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금도 이렇게 철딱서니 없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걸 보면 말이다.
엊그제 진철이가 단톡방을 나갔다.
이 땅은 지금 커다란 위기상황에 있다.
오십 중반인 우리 모두는 지리하게 해결되지 않는 정치상황과 각자의 사회경제적 처지로 피로에 지쳐있기 십상일 것이다.
그 와중에 내게 빌어먹을 광증의 3번째가 찾아왔고 하소연할 곳이 없어 너희에게 너무 떠들어 댔다. 덕분에 별탈없이(?) 증세가 가라앉았지만 떠질 듯 빵빵하다가 갑자기 바람 빠진 공처럼 쭈그러든 기분이다.
합창은 소리를 내는 입도 중요하지만 서로를 느끼는 귀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무대를 가능하게 하는 관객도 중요하다.
진철이와 모두에게 부끄럽고 미안하다.
감히 용서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