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이남제
한 줄 talk…처음 시작은 오토캠핑이었으나 지금은 백패킹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문득 그간의 회사생활을 돌아보게 되는 시기가 온다. 의욕 넘치던 신입사원일 때와 달리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포기하고 잃어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오고,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진 어깨와 핼쑥한 얼굴로 매일 아침 마지못해 출근길에 오를 때 말이다. 이남제 씨도 그랬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뜻대로 움직일 줄 알았는데, 어느덧 만만치 않은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회사생활을 정리했다. 6개월 동안 쉬겠다고 마음먹고 가장 먼저 한 것이 한겨울의 덕유산 등반이었다. 이때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자연 속에서의 치유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이 자신에게 매우 필요했다는 것도. 이후 자연 속으로의 여행을 준비하던 차에 우연히 잡지에서 캠핑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됐다.
“나무가 우거진 그늘 아래 타프를 쳐놓고 릴랙스 체어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캠핑을 동경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텐트와 장비를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장비가 어느 정도 준비되자 첫 캠핑을 계획했어요. 처음이라는 의미 때문에 장소 선정에 무척 고심했죠. 인터넷 캠핑 동호회에 가입해서 캠핑 후기를 열심히 검색한 끝에 중도로 결정했어요.”
사실 중도는 캠핑족들 사이에서 워낙 인기 있는 장소인지라 주말에 가면 여유로움을 느끼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는 직장을 그만둔 터라 평일에 갈 수 있었고, 파릇파릇한 잔디 위에서 한가로움을 경험했다. 캠핑이라는 걸 직접 체험해본 뒤 더욱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1박 2일 또는 2박 3일 동안 매 끼니 고심을 거듭해서 식단을 짜고, 그에 따라 필요한 음식들을 구입하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크림스파게티와 신선한 과일을 듬뿍 넣은 상그리아까지, 집에서 해보지 않았던 식단을 준비하는 과정이 더없이 행복했다. 캠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비인 화로대도 즐거움을 더해줬다. 싸늘하고 궂은 날씨에 따뜻한 온기를 주는 땔감들의 춤사위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고, 불길이 사그라질 즈음부터 시작하는 바비큐 타임은 그 어떤 이벤트보다 멋졌다.
중도로 첫 캠핑을 다녀온 이후 오토캠핑의 묘미를 다 느껴볼 겨를도 없이 한 달 만에 백패킹을 시작했다. 덕유산을 등반하면서 느꼈던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다 가까이서 경험하고 싶었다.
“바람이 좋았고, 흙이 좋았고, 나무가 좋았고, 그런 자연 속에서 걷는 게 좋았는데 오토캠핑은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어요. 답답한 도시를 떠나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려고 캠핑을 가는 거잖아요? 하지만 캠핑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캠핑장에 가면 빽빽하게 들어선 엄청난 크기의 텐트들이 사방의 시야를 가리고, 밤이 되면 이웃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끄러운 대화가 이어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이러한 캠핑 문화에 대한 대안으로 백패킹을 생각해낸 거죠.”
백패킹은 오토캠핑에 비해 더 큰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자동차에 장비를 싣는 오토캠핑과 다르게 무거운 장비가 담긴 배낭을 등에 지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일행 없이 홀로 백패킹을 즐긴다.
“지인들이 홀로 백패킹을 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합니다. 안전 때문이라기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혼자 다니는 이유는 캠핑을 가서까지 사회에서처럼 지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에요. 여러 사람들과 같이 다니지 않아도 캠핑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혼자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잖아요.”
백패킹은 오토캠핑과는 달리 장소의 제약이 적다. 캠핑장이 아니더라도 경치가 좋고 맘에 드는 곳 어디에든 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다. 캠핑장을 예약할 필요도 없고 계획을 짤 필요도 없어서 주말 아침 눈을 떴을 때 마음이 동하면 백패킹을 떠난다.
오토캠핑 사이트를 구축하려면 보통 한 시간가량 소요되는데 그가 사이트를 구축하는 데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단출한 장비 덕에 사이트 구축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백패킹의 또 다른 장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뚝딱 사이트를 구축한 후 그는 휴대용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오토캠핑을 할 때와 달리 백패킹을 하면서 음식을 최소화했고 주류도 가지고 다니지 않아요. 반면 휴대용 에스프레소 머신은 꼭 챙기죠. 산 정상이나 맑은 호수 위에서 카약을 타고 에스프레소를 뽑아 마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거든요. 손으로 서른 번 정도 펌핑해서 커피를 추출해내는데 크레마가 꽤 근사해요. 아침에 일어나 한 잔, 식사 후 한 잔씩 마십니다.”
자연이 좋아 백패킹을 하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이 순도 100퍼센트의 백패커는 못 된다고 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비롯해 아이패드는 백패킹 갈 때 그가 꼭 가지고 다니는 아이템이다. 아이패드로 사이트 주변의 별자리를 찾아보고, 전자책으로 소설을 읽고,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확인한다.
지금까지는 알려진 곳을 찾아 다녔다면 앞으로는 자신만의 캠핑 장소를 개척해서 다니고 싶다.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바다 건너 송도 신도시의 첨단 고층빌딩들이 바라보이는 서해의 섬들을 찾아다닐 예정이다.
그가 홀로 백패킹을 다니는 것은 자연을 동경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도시생활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과정은 아닐까. 주말에 철저히 혼자가 되는 시간을 가지며 주중에 도시에서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 말이다.
MY FAVORITE * 캠핑 사이트 디자인
“다음날 아침 텐트 안에서 지퍼를 열고 바라보게 되는 첫 풍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텐트 안에서 보이는 프레임에 고심하며 사이트의 위치와 방향을 결정합니다. 백패킹에서는 보통 바람을 등지고 텐트 방향을 결정하지만 자연은 이상하게도 멋진 풍경을 선사해주는 방향 쪽에서 바람이 불더군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언제나 바람을 마주하며 텐트를 설치하고는 합니다.”
# 스노우피크 오젠 테이블과 티타늄 미니솔로 쿡 세트
“플라스틱을 좋아하지 않는 반면 금속은 무척 좋아해서 금속으로 제작된 제품을 주로 구입하는 편입니다. 오젠은 스노우피크에서 새롭게 출시한 솔로 테이블인데, 상판이 티타늄으로 되어 있어요. A4용지 사이즈인데 무게가 320그램 남짓이에요. 티타늄 미니솔로 쿡 세트는 솔로 캠핑에 최적화된 제품이죠. 깊은 쿠커와 얕은 쿠커 2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에 스토브와 이소부탄가스가 쏙 들어가서 수납 면에서도 최고지요.”
MY FAVORITE * 캠핑 기어
# 아크테릭스 보라 80, 클라터뮤젠 알스빈 30
“아크테릭스 보라 80은 주로 사용하는 백팩이에요. 전면부의 캥거루 주머니에는 텐트를 수납할 수 있어요. 포켓 구성이 합리적이어서 힐레베르그 악토 텐트와 함께 사용하면 빠른 설치와 철수가 가능하죠. 서브로는 30리터 크기의 클라터뮤젠 알스빈 30을 사용합니다. 벨트에 ‘버터플라이 브릿지 벨트 시스템’을 적용해서 배낭을 메고 오래 걸었을 때 피로를 덜어준답니다.”
MY FAVORITE * 캠핑 레시피
# 훈제연어 샐러드
“오토캠핑을 할 때는 매끼 요리를 하고는 했어요. 하지만 백패킹으로 바꾼 뒤로는 그다지 요리를 즐기지 않아요. 요리라고 해봤자 간단히 훈제연어 샐러드나 돼지고기 숙주 볶음 정도만 해먹습니다. 포도는 늘 챙겨 가요. 보기에도 예쁘고 목마를 때 먹으면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거든요.”
재료(2인분 기준)-훈제연어 100g, 새우 50g, 무순, 샐러드 재료, 케이퍼 적당량, 샐러드드레싱(올리브오일 2큰 술, 통후추, 오레가노, 파슬리 약간)
step 1. 냉동된 훈제연어와 새우를 실온에 두어 해동시킨다.
step 2. 해동된 새우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준비한다.
step 3. 연어에 무순을 넣고 돌돌 만다. 바닥에 샐러드 채소, 케이퍼를 깔고 돌돌만 연어와 새우를 올린 후 샐러드드레싱을 뿌린다.
MY FAVORITE * 캠핑 스폿
# 원대리 자작나무숲
“초록색 숲과 하얀 자작나무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즐겨 찾는 곳이에요. 힐링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죠. 혼자서 또는 적은 인원이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에 좋아요.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2011년 3월에 개장한 곳으로 3,000그루의 자작나무가 심어져 있죠. 요즘은 입소문이 꽤 많이 나서 평일에도 명상을 위한 단체나 트레킹 동호회 회원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