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의 저녁기도>는 베르디의 3대 인기걸작인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에 이어서 완성되었지만,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이후의 작품들보다도 덜한 지명도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원인은 이 작품의 태생적인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오페라는 베르디가 1855년 파리 오페라 극장의 위촉을 받아서 완성한 작품으로, 당시 파리의 관객들의 기호를 고려하여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프랑스 그랑 오페라 스타일을 도입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특징으로 인해 베르디의 다른 오페라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 작품만의 독특한 풍미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원래 프랑스어 리브레토를 기초로 완성된 작품이었지만, 이탈리아어 버전으로 개작한 이후에야 보다 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본 공연은 2010년 10월 파르마의 테아트로 레조에서 있었던 실황으로, 내한 공연을 통해 우리에게도 낯익은 다니엘라 데시 / 파비오 아르밀리아토 커플이 남녀 주인공을, 관록의 바리톤 레오 누치가 몽포르테를 열연하였다.
파리 오페라하우스는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의 연이은 대성공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베르디에게 1855년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박람회를 위한 오페라를 위촉하였다. 베르디는 파리 관객들의 취향을 감안하여 프랑스 고유의 그랑 오페라 스타일의 작품을 완성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5막의 장황한 스토리를 가진 <시칠리아의 저녁기도>다. 현재는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개정버전이 보다 널리 공연되고 있는 편이다. 오리지널 프랑스어 대본은 외벤 스크리브와 샤를르 뒤베리에가 자신들의 희곡 ‘알바 공작(Le duc d'Albe)'을 기초로 완성한 것이다. 이 리브레토는 앞서 도니제티에게 제공되었지만, 그는 이 오페라를 미완성 상태로 남기고 말았다. 이후 이들은 극의 공간적 배경을 스페인에 점령당한 플랑드르에서 프랑스에 점령당한 시칠리아로 바꿔서 베르디에게 제공하였다.
<시칠리아의 저녁기도>의 대본은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 문학적 창작을 덧붙여서 완성되었다. 1282년 시칠리아에서는 당시 이 섬을 지배하던 프랑스의 폭정에 항거하는 큰 폭동이 일어났다. 이 폭동은 저녁기도를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서 섬 주민들이 프랑스인들을 습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이후 폭동은 섬 전체로 확대되면서 결국 프랑스 지배세력이 섬 밖으로 축출되고, 폭동을 후원했던 아라곤의 페드로 3세가 시칠리아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오페라는 이 역사적 사건에다 가공의 인물인 엘레나 공녀(전 시칠리아 왕의 누이동생)와 아리고(시칠리아의 젊은이. 사실은 프랑스 총독 몽포르테의 숨겨진 아들)의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를 삽입하여 완성되었다.
=== 작품 해설 ===<2010년 12월 1일 네이버캐스트 / 안동림 글>
내마음의 아리아
베르디,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고맙습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에 꽃다발을 받은 엘레나가 고마운 뜻을 밝히는 노래
'고맙습니다, 여러분' 등으로 알려져 있다
빠리(파리) 오페라 극장을 위해 쓴 이 오페라는, 시칠리아 섬이 불란서 점령 아래 놓여 있던 1280년대에 시칠리아의 애국자들이 봉기(蜂起)하여 불란서(프랑스) 사람을 모두 죽인 사실(시칠리아의 만종)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본이 부실(不實)했기 때문에 원숙기의 베르디로서는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점이 눈에 띈다. 불란서 풍의 그랜드 오페라를 표본으로 삼았다 해도 불란서다운 화려함이나 세련됨이 없고 마이어베어(GiacomoMeyerbeer 1791-1864) 식의 거대(巨大) 취미도 본질적으로 베르디와는 맞는 데가 없었다. 그래도 잘 된 부분에서 4명의 주역들이 펼치는 노래의 향연은 서로의 개인 간의 인간관계를 멋있게 묘사하여 베르디의 훌륭한 솜씨를 과시하고 있다. 전 5막의 오페라는 스크리베(EugèneScribe)와 뒤베이리에(AnnHonorèDuveyrier)가 쓴 각본을 따랐다.
‘시칠리아의 만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
1282년 시칠리아의 수도 팔레르모이다. 당시 시칠리아는 불란서 군이 통치하고 있었으나 시칠리아인의 불란서를 반대하는 감정이 거세다. 귀국한 우국(憂國) 지사 프로치다를 중심하여 아리고와 그를 사랑하는 전 시칠리아 왕의 여동생 엘레나는 지금의 정권을 뒤엎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리고는 엘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나, 죽은 오빠의 복수가 우선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아리고는 몽포르테 총독이 실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가면 무도회 장에서 총독을 암살하려고 온 엘레나와 프로치다로부터 총독을 막는다. 총독은 체포된 엘레나, 프로치다 등 반역자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 아리고는 아버지(총독)에게 간청(懇請)하여 그들을 석방하게 되고, 그 동안 아들의 처지를 이해한 총독은 엘레나와 결혼시켜 반발 세력과의 화평을 꾀한다. 중간에 낀 엘레나의 괴로운 생각을 제쳐두고 총독이 둘의 손을 잡았을 때 결혼 축하의 종이 울린다. 그 종소리를 신호로 하여 시칠리아의 민중이 궁전으로 난입(亂入)한다. 일대혼란이 몰아치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원전 판은 불란서어이지만 이탈리아어판 공연이 많다. 드라마로서는 용두사미(龍頭蛇尾) 격이고 마지막은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한 가운데 순간에 끝이 난다.
베르디,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고맙습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
고맙습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 이렇듯 귀여운 꽃을 받다니; 친절한 선물이야 말로 여러분의 순수 결백한 표시입니다! 사랑이 내게 베풀어준 유대(紐帶)는 얼마나 행복스러운 것이 될까요, 만약 여러분이 신랑의 들러리로서 이 가슴에 행복한 맹세를 인도해 준다면요! 선물 고맙습니다, 선물 고맙습니다, 아, 정말! 꿈꾸듯 몽롱하게 취하고 있습니다! 미지(未知)의 사랑으로 가슴이 뜁니다! 모든 감각을 취하게 하는 하늘의 신령(神靈)스런 기운을 나는 이미 숨 쉬고 있습니다. 모든 감각을 취하게 하는 것을 나는 이미 숨 쉬고 있습니다. 오, 시칠리아의 바닷가여, 투명한 날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어도 너무도 두려운 복수 사건이 그대 가슴을 찢어발기고 있습니다! 희망으로 가득 차있는 이 가슴이 견디어온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내 기쁜 이 날이 바로 그대의 영광의 날이라면 기꺼이 받아드리겠습니다, 이 꽃 선물을, 아, 정말로.
사랑하는 아리고와의 결혼식을 앞두고 엘레나가 모인 사람들의 축복에 응답하여 기쁨을 노래하는 볼레로(bolero = 4분의 3박자로 된 경쾌한 스페인 춤) 리듬에 콜로라투라가 섞인 아리아이다. 전 왕가의 마지막 왕의 여동생 엘레나는 시칠리아 인의 깊은 존경을 받으며 불란서에게 저항하는 청년 아리고와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이이다. 아리고는 불란서 인 총독이 시칠리아 여인에게서 얻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혼란이 일어나지만 아리고를 처형하기 직전에 총독은 아리고와 엘레나의 결혼을 허락하고 시칠리아 인과 불란서 인의 화해의 상징으로 삼으려고 한다. 결혼식 직전에 꽃다발을 받고 고맙다는 뜻을 말하는 것이 ‘고맙습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이다. 그 직후, 엘레나는 동지인 반란 지휘자로부터 만종(晩鐘)을 신호로 일제히 봉기(蜂起)하여 불란서 측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는 계획을 알게 된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리고도 이제는 적이다. 엘레나는 결혼을 포기하려고 생각하지만 이미 늦어 종이 울리고 참극(慘劇) 속에 막이 내린다. 여기서 가사는 전반(前半)이 기쁨의 감정, 후반(後半)시칠리아 운명의 날에 대한 우려(憂慮)이다. 이 아리아를 다 부르면 제11행 째의 “O carosogno, o dolceebbrezza!"(꿈꾸듯 몽롱하게 취하고 있습니다!)부터 6행 째인 ”나는 이미 숨 쉬고 있습니다“(chetutti I sensiinebbrio) 까지를 가사 끝에서 되풀이하고 그 뒤에 후주(後奏)가 이어진다.
추천 음반 및 DVD
[CD] 에리히 클라이버 지휘, 휘렌쩨(페린체) 시립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51) 칼라스(S) Melodram 에리히 클라이버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아버지이며, 가수들을 기량껏 노래하게 하면서 드라마의 움직임을 정확히 전하는 명지휘자이다. 그의 밑에서 전 시칠리아 왕의 딸인 엘레나를 전성기의 칼라스가 열연하며 명창을 들려준다. 독립운동의 지사 프로치다의 역을 바소 칸타테(bassocantate=서정적 저음)의 미성(美聲)을 구사하여 깊숙한 노래를 들려주는 크리스토후(Borischristoff)도 인상 깊다. 처음에는 악마 같던 불란서 인 식민지 총독 몽포르테의 음영(陰影)짙은 바리톤의 귀중한 목소리와 청년 아리고가 내뿜는 경질(硬質)의 미성도 좋았다. 그러나 관습적인 생략 부분이 많고 오케스트라와 합창 녹음이 말할 수 없이 빈약한 것이 흠이다.
[CD] 레바인 지휘, 뉴 휠하모니아 관현악단/죤 올디스 합창단(1973) 아로요(S) RCA 레바인의 지휘가 한층 돋보인다. 지금은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감독으로 맹활약을 하고 있지만 당시는 런던에서 많은 오페라를 녹음하여 지금의 기초를 다졌다. 여기서도 뉴휠하모니아 관현악단(뉴필하모니아 관현악단, NewPhilharmoniaOrchestra)에서 매우 웅장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듣는 이를 매료한다. 도밍고가 막 인기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고 아로요(MartinaArroyo), 밀른즈(SherrillMilnes), 라이몬디(RuggeroRaimondi) 등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등장하고 레바인(JamesLevine)이 메트로폴리탄에 가서 자리를 차지하기 전의 무렵 5인의 젊은 사자들이 남긴 아름다운 기록이다. 음악에 낭비가 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치열하게 용솟음치는 인간 드라마로 그려내고 있다.
[DVD] 무티 지휘, 밀라노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 합창단(1989) 스튜더(S) 피찌 연출 EMI 무티의 장려(壯麗)하고 빈틈없이 꽉 다져진 지휘, 거기 응답하는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의 관현악과 합창단은 빈틈이 없다. 가수진은 최고를 갖추었고 그 중에서 엘레나 역에 필요한 극적 표현력과 찬란한 콜로라투라의 기교를 아울러 갖춘 스튜더(CherylStuder)가 돋보였고, 또 아리고 역의 메리뜨(ChrisMerritt)는 벨칸토 오페라 가수로서 유명하지만, 여기서는 드라마틱한 힘찬 목소리를 과시하고 있다. 또 제2막의 유명한 발레 ‘4계’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발레리나 클라리치가 출연하여 이 오페라를 더욱 빛나게 해주고 있다. 후르라네또(FerruccioFurlanetto)의 포로치다, 잔카나로(GiorgioZancanaro)의 몽포르테 총독도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잘 소화하여 드라마 속의 몫을 다하고 있다. 연출과 미술을 담당한 것은 피찌(PierLuigiPizzi)로, 너무 간단한 무대여서 그 나름대로 존재 가치는 있으나 호화로운 무대를 기대하면 실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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