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글보글 (부사 : 좁은 그릇에서 적은 양의 물이나 찌개 따위가 거품을 일으키며 자꾸 요란스럽게 끓어 오르는 소리. 또는 그 모양)
여름이라는 말은 ‘너름→녀름→여름’의 변천사를 겪었다고 한다. 너름의 어근은 ‘널’인데, 이는 ‘날(日)’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다. 여름을 뜻하는 일본말 나쓰(natsu), 태양(太陽)을 뜻하는 몽골말 나라(nara) 역시 ‘날’이라는 어근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여름은 날, 즉 태양의 계절인 것이다. 1978년 열린 TBC 해변가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징검다리의 <여름>, 그 노랫말에 따르면 ‘여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사랑의 계절’이다. 젊음과 사랑과 태양의 공통점은 뜨거움이다. 뜨겁지 않은 젊음, 뜨겁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만약 있다면 그건 가짜 젊음이고 가짜 사랑일 것이 분명하다.
여름은 뜨겁다. 뜨거워서 여름이다. 그래서 여름은 뜨거운 젊음과 뜨거운 사랑의 현장이 된다. 재야 언어학자 장 아무개의 주장에 따르면, 여름은 ‘열(熱)+음(陰)’ 또는 ‘열(熱)+음(音)’인 ‘열음’이 형태를 바꾼 것이다. 여름은 뜨거움(熱)이 클수록 그늘(陰)도 짙어지는 계절이다. 그리고 여름의 뜨거운 소리들, 그래서 여름을 여름답게 하는 소리들. 보글보글, 바글바글, 지글지글, 와글와글, 오글보글, 그리고 소리는 아니지만 이글이글.
여름은 ‘열+음’, 여름의 옛말인 너름은 ‘널+음’에서 비롯된 말이다. ‘열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널다’도 ‘볕을 쬐거나 바람을 쐬기 위하여 펼쳐 놓다’라는 개방(開放)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 ‘열음’, 즉 ‘열려 있음’이라는 뜻을 가진 여름은 뜨거움의 계절인 동시에 열림의 계절인 것이다. 여름에는 문이 열리고, 해수욕장이 열리며,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이 열린다. 그래서 여름은 무전여행의 계절이기도 하다. 문이 열리면 잠자리가 해결되고,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면 끼니가 해결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여름은 침대가 되고 이불이 되어 무전(無錢)의 육체들을 품어준다. 어렵사리 들어간 대학을 탱크를 앞세우고 들이닥친 계엄군에게 빼앗겼던 그해 여름, 나는 자전거 짐받이에 늘 버겁기만 한 청춘(靑春)을 싣고 전국을 떠돌았다. 몇 푼 뱃삯이 없어 제주 탑동의 방파제에서 지새운 노숙의 밤들을 떠올리면 여름에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연대 단위의 모기떼를 함께 보내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 이미 저만치 사라진 슬픔과/가까이 자리 잡은 고독을 양념하여/오글보글 끓여 내면/투박한 기명에 담아도/제 맛을 제대로 아는/장(醬)이여, 너를 읽는다. (홍해리의 시 <장(醬)을 읽다>에서)
사리다 (동사 : ① 국수, 새끼, 실 따위를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
② 뱀 따위가 몸을 똬리처럼 동그랗게 감다.)
국수사리, 새끼사리의 사리는 ‘사리다’에서 나온말이다. 아니 어쩌면 거꾸로 사리라는 말이 먼저 있었고, 거기에 어미 ‘-다’가 붙어 ‘사리다’라는 말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리는 윷놀이에서 끗수가 높은 모나 윷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모나 윷을 던진 횟수를 세는 단위로도 쓰이는데, 이를테면 “모를 연속으로 네 사리나 치다니 어젯밤에 용꿈이라도 꾼 모양이구나”처럼 쓸 수 있다.
음력 보름과 그믐 무렵에 밀물이 가장 높은 때도 사리라고 한다. 크다는 뜻의 앞가지 ‘한-’을 붙여 한사리라고도 한다. 비슷한 말로는 큰사리, 대조(大潮), 대고조(大高潮), 대기(大起) 같은 것들이 있다. 반대로 보름과 그믐 사이에 조수(潮水)가 가장 낮은 때는 조금이라고 한다. 사리와 마찬가지로 한조금, 작은사리, 소조(小潮)로도 불린다.
사리와 조금의 관계는 밀물과 썰물, 만조(滿潮)와 간조(干潮)의 관계와 같다. 밀물과 썰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는 토박이말로 미세기, 한자말로 조석(潮汐) 같은 것들이 있다. 조석은 조수(潮水)와 석수(汐水)인데, 한자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원래 조수는 아침에 밀려들었다가 나가는 바닷물, 석수는 저녁때 밀려왔다가 나가는 바닷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름과 그믐은 어떻게 만들어진 말들인지 살펴보자. 망월(望月)은 ‘달을 바라본다’는 뜻이지만 보름달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바라다(望)’의 명사형 바람이 바뀌어 보름이 되었다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다. 사람들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자기의 인생도 그처럼 한 점 이지러짐 없이 가득 차기를 바랐을 것이고, ‘자기의 바람과 같은 달’이라는 뜻에서 그 달을 바람달이라고 불렀던 것이 지금의 보름달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몰다’는 ‘저물다’의 옛말이다. 그믐은 ‘그몰다’의 명사형인 ‘그몰음’의 변형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그믐달은 ‘저무는 달’이라는 뜻이다.
★ 그 신(神)은 몸을 사리면 팔 척 장신의 남자만큼 하여지지만, 그 몸을 늘이면 이 바다 안에 꽉 들어찰 만큼 크다고 했다. (한승원의 소설 「해일」에서)
첫댓글 사랑스러운 지현님, 입덧은 좀 가라앉았나요. 여름의 어원을 알고나니 여름도 견딜만 하네요. 그런데 이 글의 출처는?
속은 아주 많이 편해졌어요. 안정기에 접어들었나봐요. 관심 감사해요 *^^* 이 글의 출처는 첫회에만 올리고 생략했는데 장승욱 선생님의 <사랑한다 우리말>이라는 책입니당~
'사리'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당연히 일본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그랬을까? 아마도 '사라'라는 어휘가 떠올라서 그랬나봅니다. [사리]-'모 한사리', '몸을 사리다' '국수사리' '조금과 사리' 다 들어본 말인데 몽땅 우리말이었군요.
일본어라는 느낌이 좀 있죠 ㅎㅎ
저도 전영복 선배님처럼 일본말인 줄 알았습니다.@@ 쓰면서도 괜히 찝찝했었는데 이젠 당당하게 써야겠습니다.^^ 자료 감사히 봤습니다.~
네, 많이 많이 쓰셔요~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당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