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먼저 읽은 『홀로그램 우주』는
집안의 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디에 묻혔는지 도무지 찾을 수 없어
한동안 심란했습니다.
물론 그 책은 별 가치가 없는 것이어서
여기에 소개는 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 '별 것도 아닌 책'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것에서
삶의 모습을 다시 읽기도 했다는 것 정도를 말하고
이번에 Richard Dawkins와 다시 마주 앉게 된
그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의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그의 분야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으니
눈에 띄면 골라 들 수밖에 없는 것이 내 상황입니다.
결국 이번에도 다시 Dawkins의 책이 눈에 띄었고
그래서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한 이 책에는
역시 얻을 것이 적지 않았으니
이 책이 내게 풍부한 보물창고이거나
또는 잘 여문 곡식이 가득한 들판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소득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몇 권을 읽는 동안 내 안에서
무엇인가 안쓰러움 같은 것이 꿈틀거리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처음엔 그것이 거슬림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지켜보는 동안 거슬림이나 불편은 아니라는 것이 조금씩 보였고
결국 그것이 안쓰러움이라는 감정에 가깝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이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똑똑한 천재임에 분명합니다.
‘동물행동학’, ‘분자생물학’, ‘집단유전학’, ‘발생학’ 같은
분야들에 정통하다고 하는 이 학자에게 중대한 관심사는
근본주의적 기독교도들이 드러내는
무지와 광기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들이 갖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이 어떤 것인지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1976년에 처음 썼다고 하는 『이기적 유전자』 이후에
1993년의 『눈먼 시계공』, 2006년의 『만들어진 신』을 비롯해
이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책들을 내면서 오늘에 이르렀고
전 세계 반(反)기독교운동에 앞장서서 싸우는 전사라고 하는 말도
그리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서 그의 싸움이 안쓰러움으로 꿈틀거리는 것은
왠지 개미 목에 코끼리의 굴레를 씌우려는 짓으로 보이기 때문인데
사실 ‘근본주의적 기독교도’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틀림없는 거짓에 홀린 광란의 춤이라는 것만은 맞지만,
그것이 대응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더욱이 이 똑똑한 천재가 자신이 쌓은 지적 도구들을 들고
결국 그런 것들을 붙들고 씨름을 한다는 것이
불필요하고 무가치한 것에 대한 것에 맞서서 싸우는
‘단지 소모적’일 뿐인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마치 그게 ‘과거의 망령들이 빚어낸 그림자’이거나
또는 오래 묵은 무지의 시대가 쌓은 ‘인식의 쓰레기더미’일 수밖에 없는 것들인데
과연 그것과 저리도 집요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가 싶은 겁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얻을 것은 많은 책이었고,
때로 문장의 짜임새가 복잡해서
내용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는 것인데도
문맥을 파악하기 어려운 곳이 있었던 것은
지나친 수사적 표현 때문이라는 것을 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읽으면서 기뻤다는 말을 하기에는 모자람이 하나도 없는
꽤 좋은 책이었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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