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교구본사 은해사 조실 포산당 혜인스님(제주 약천사 회주)이 23일 오후 9시20분 은해사 기기암선원에서 수선안거 중 원적에 들었다.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은 27일 오전10시 은해사에서 거행되며 은해사와 제주 약천사에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1943년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화순리 990번지에서 출생한 혜인스님은 1956년 13살의 어린 나이로 출가하겠다는 마음을 내고, 부모님을 설득하여 출가수행자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혜인스님은 일타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62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특히 혜인스님은 1971년 3월24일부터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에서 매일 5000배씩 절을 올리기 시작해 200여 일동안 100만배 절 기도를 성취한 일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울러 제주지역 대표 사찰인 제주 약천사와 64만평 규모인 단양 광덕사 대작불사를 통해 많은 불자들에게 신앙적 귀의처를 제공했다.
조계종 계단위원, 제주불교중흥회장, 해인사 교무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 조실과 약천사 회주 소임을 맡아왔다. 저서로는 <신심>과 <원력> 등이 있다.
“정진과 전법도생 게을리 마라”
은해사 조실 혜인대종사 유훈
1943년 제주에서 출생한 스님은 수차례 부모님을 설득한 끝이 13세에 출가, 동화사 선원에서 일타스님을 만나 상좌의 연을 맺고 사미계를 받았다. 이후 해인강원에서 경전을 공부하고 자운율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981년 고향인 제주로 돌아간 스님은 제주불교중흥회 회장을 맡으면서 불교 발전에 헌신했다. 제주도에 내세울 만한 가람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 스님은 서귀포시에 부지를 매입, 약천사 대작불사를 시작하면서 16년 만에 현재의 대가람을 완공했다. 이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환희정사를 창건하고, 단양 광덕사에 주석하면서 백만불전 건립 불사를 했다.
사찰 불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스님은 다시 수행자로 돌아갔다. 2006년 수덕사 정혜선원 안거를 시작으로 수행에만 전념했던 혜인스님은 2012년 조계종 계단위원과 은해사 조실로 추대됐다. 이후 2014년 은해사 기기암 선원에서 정진하면서 안거철에는 선원에서, 해제철에는 제방 사찰에서 법문을 했다. 특히 2014년에는 “암 수술 4일만에 관악산 호압사에서 대중법문”을 할 정도로 철저하게 정진을 했다.
당시 스님은 법문을 만류하는 대중에게 “선을 하는 사람은 좌복 위에서 죽기를 서원해야 하고, 법사는 법상에서 숨을 거두겠다는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며 후학들에게 늘 정진과 전법도생의 길을 갈 것을 당부했다. 전국 어디서든 법을 청하는 곳이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발걸음을 해 부처님 가르침을 전했던 혜인스님은 특히 재가불자들에게 <부모은중경>을 중심으로 불심과 효사상에 대한 법문을 널리 폈다.
임종을 앞두고 염불을 하시던 혜인스님은 “일생동안 살면서 단 한사람에게 마음 아픈 일을 하지 말고, 미워하는 마음도 가지지 말라”고 당부하며 “열심히 정진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을 찾아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삶을 살으라”고 간곡히 이르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다 원적에 들었다.
혜인스님은 저서로 <신심> <원력> <행복을 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남겼으며, 육성법문으로 <범망경 보살계 법문> <칠월백중법문> <부모은중경법문> 등 수십종의 법문을 남겼다.
혜인대종사 임종게
무적지처부진명(無蹟之處孵眞命)
무시무종어차법(無始無從於此法)
혹건혹파천당옥(或建惑破天堂獄)
시이름등삼계주(是以凛騰三界主)
약몰심멱감천칙(若沒尋覓甘泉則)
여마니주격천장(與摩尼主隔千丈)
시십마(是什麽)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이 땅에서 펼친 스님의 불사와 가르침을 공경찬탄하며
스님의 귀한 가르침 가슴에 새기며 살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극락왕생하시기를.....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니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부나무아미타불-()()()-
극락왕생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