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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7년 7월 15일 (토)
목적지: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내린천
해외출장에서 귀국하여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다. 내일은 이륙산악회 7월 정기산행일이다. 출장 다녀온 짐을 대충 정리하고 새벽 1시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늘 그렇듯이 야외일정이 있을 때는 일찍 잠이 깬다. 새벽 4시다. 그런데 밖에는 장대같은 장맛비가 유리창을 부서져라 내리치고있다. 인터넷 일기예보를 검색해보니 중부지방에 온종일 170 mm 이상 호우가 예보되어 있다. 아내도 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걱정을 거든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가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다. 아내는 우리 이륙산악회 문경새재 조령산행에 따라갔다가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바위에 미끄러 넘어진 적이 있어 산행안전에 유난히 민감해져 있다.
새벽 4시 42분에 최성원 대장의 산행안내문이 떴다. 누군가 이륙산악회 산행은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다고했다. 날씨가 좋으면 좋고 비가 오면 비를 즐기고 눈이 오면 눈을 즐기면 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친구들과 함께 하면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예상대로 최 대장은 호우예보와 상관없이 산행을 진행한다고 고지 하였다. 래프팅을 먼저하고 산행은 자작나무 숲길 산책이므로 준비물도 간단히 하고 점심도 준비하지 말라고 안내하였다. 만약 래프팅에 안전 우려가 있다면 동해안이나 설악산으로 목적지를 변경할 계획 임을 밝혔다. 동의하는 카톡 댓글들이 곧바로 뒤를 잇는다. 배낭을 꾸리고 집을 나서는데 다행히 비가 소강 상태로 바뀌었다. 이 때 웬지 다른 곳은 모두 비가 와도 우리 행선지는 날씨가 받쳐줄 것이라는기분좋은 느낌이 다가온다.
우리를 싣고 갈 버스는 사당역, 서초구민회관, 그리고 복정역 세 곳에서 오늘 참석자들을 태우고 오전 7시 30분경 비에 젖은 서울 도심을 빠져나갔다. 최 대장이 참석자들을 일일이 확인한다. 김유성, 김호열, 노만식, 정인식, 임재기, 정강훈, 박인수, 허몽린, 박동석, 김봉욱, 김위영, 최세종, 정관영, 최규옥, 윤영술, 서경수, 정재수, 김두식, 최동석, 고승훈, 최만수, 오상현, 박주형, 박기주, 김양빈, 최성원 +1, 총 27명이다.
버스 안에서 임재기가 준비한 유기농 웰빙 식빵과 최규옥이 준비한 두유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식빵의 달콤한 감칠 맛과 걸쭉한 두유, 거기에 아침식사를 챙긴 친구들의 정성이 토핑되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우리들의 허기를 든든하게 채워준다. 참석자들 대부분 자주 참석했던 친구들인데 정재수와 오상현은 오랫만에 참석한지라 최 대장이 두 사람에게 근황를 소개해주길 부탁하였다.
서울에서 멀어질 수록 구름이 옅어지고 고속도로는 거의 말라있다. 갑자기 모든 걱정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지난 밤의 수면 부족을 채우려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디. 얼마쯤 갔을까. 눈 떠보니 홍천 부근이다. 습관적으로 카톡을 보니 하루 전에 우리 목적지와 같은 장소로 교직원들과 야유회를 간 이중태가 현지 사정을 알려왔다. “어서들 오시게. 현재시간 비 안오네.” 중태는 내린천 상태와 래프팅 주의사항을 두루두루 알려 주었다. 출발 전에 아내가 걱정하던 마음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예전에 두 번 해본 래프팅의 경험을 친구들과 다시 되살린다는 흥분에 출발 전에 괜스레 날씨 걱정을 했던 것이 스스로 무안해진다.
드디어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내린천 래프팅 진행 장소에 도착하였다. 모두들 버스 안에서 일사분란하게 물에 입수할 수 있는 복장으로 갈아입고 래프팅복 대여 장소 앞에 집합하였다. 물놀이 전 스트레칭을 위해 김두식 구령에 따라 몸을 풀었다. 구령을 크게 하라는 두식이 윽박에 모두들 훈련소 신병들처럼 고래고래 악으로 구령을 붙이며 몸풀기 체조를 하였다.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웃어댄다.
몸풀기 체조를 마치고 헬멧, 구명복, 아쿠아 신발, 등을 지급 받아 서로 도와 가며 착용하였다. 래프팅 복장을 하고보니 로마병정놀이하는 아이들 모습이어서 낯설고 우습기도 하다. 우선 젊어 보여서 좋다. 군 생활때 철모쓰면 온 몸에 기가 돌듯이 래프팅 헬멧과 구명복을 동여매면서 모험심과 자신감을 완전 충전하였다. 래프팅 복장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서는 소형버스로 내린천 래프팅 출발지로 향했다.
래프팅 출발지인 내린천 원대교에 도착하여 9명씩 3개조로 편성한 다음 보트를 들고 물가로 이동하였다. 9명이 드는데도 보트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모두들 해병대 훈련병의 각오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래프팅 진행요원이 간단히 래프팅코스를 설명하고 노젓기 구령을 소개한다음 준비운동을 시키더니 물 속에 모두 드러누울 것을 지시한다. 차가운 물기운이 빠른 속도로 온 몸에 스며들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내린천과 동화되었다.
드디어 한 조씩 출발하였다. 내린천에서 가장 긴 약 2시간 30분 코스를 예약했다고 최 대장이 귀뜸한다. 지난 달만 해도 극심한 가뭄으로 돌밭을 드러내었던 내린천이 최근 내린 장맛비로 래프팅 가능 수위인 3.8미터를 훌쩍 넘어 6미터 수위가 되었다. 래프팅 최고의 스릴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진행요원이 분위기를 돋군다. 진행요원은 아들 또래보다 더 어려보이는데 우리들 보고 ‘형님들’이라 호칭하는데 싫지않다.
내린천은 위에서 바라봤을 때와 보트를 타고 가면서 느껴지는 물살의 강도가 많이 달랐다. 보트가 굽이치는 물결아래로 떨어질때는 집채처럼 보이는 물살이 보트에 들이닥쳐 눈을 뜰 수가 없다. 이럴땐 일부러 크게 괴성을 질러야 재미있다. 진행요원의 구령에 따라 ‘하나 둘 하나 둘’ 노를 저어 물살을 헤쳐나아가면서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 마치 오래 전부터 훈련받아온 수군들처럼 일사분란하게 구령을 붙이며 힘차게 노를 저었다. 그동안 전국 산들을 찾아 산행하며 다져진 단결심과 근력의 덕분인 듯하다. 그냥 보트만 타기에는 만족스럽지 않다. 노를 이용해서 다른 조 보트에 물싸움을 건다. 그냥 노 젓기 보다는 몸을 거의 물바닥에 뒤로 뉘여서 스릴을 즐긴다.
보트가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배도 고프고 목이 말라 술 생각이 간절하다. 수통에 시원한 막걸리를 채워 왔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에 아쉽기만하다. 두 시간여 보트를 타고 가는 동안 날씨는 구름, 비, 햇빛 등을 차례로 파노라마 연출을 해준다. 래프팅 환경이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다고 모두들 입을 모은다. 울창한 숲과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물은 아름다운 속살을 드러내며 보트를 힘차게 저어가는 우리들에게 기꺼이 길을 내어준다. 래프팅이 끝날 때쯤 몇몇 친구들이 조금 아쉬워하였다. 보트가 뒤집어지면서 좀 더 스릴있는 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래프팅이 너무 안전위주로 진행되었단다. 그래도 안전하고 즐거운 래프팅으로 오랜동안 기억에 남을 추억을 내린천 계곡에 남기고 왔다.
래프팅이 끝나고 간단히 샤워한 뒤에 식당에서 제공한 돼지고기로 바베큐 점심식사를 하였다. 고기 굽기를 자원한 친구들이 숯불구이 바베큐통 석쇠 위에 잘 숙성된 돼지고기를 얹고 소금을 뿌려가며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냈다. 박인수가 지난 달에 설악산 공룡능선에 다녀온 것을 기념하여 준비한 국내산 홍어도 식탁 가운데 자리잡아 차려졌다. 김호열은 홍어용 김치를 준비하고 김유성은 점심에 마실 모든 술을 찬조하고 정강훈은 복분자주를 챙겨왔다.
숲길을 따라 들어가니 곧게 뻗은 하얀 나무들이 환상적인 군락을 이루고 있고 나무들 사이에서 요정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것만 같다.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은 불에 타는 소리만 자작거리는 것이 아니라 귀를 잘 기울이면 나무들의 자작거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아닐까? 산장 부근 앞에 가로놓인 자작나무 고목벤치에 모두들 걸터앉아 자작자작 나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나무들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두들 비밀이다.
두식이와 호열이가 맛깔스런 트로트 노래를 가벼운 율동으로` 구성지게 부르며 자작나무 요정들에게 화답을 한다. 친구들은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하트 에너지를 만들어 보내기도 한다. 자작나무 숲을 바라보는 눈길도 친구들과 마주치는 눈길도 사랑과 평화로 가득차있다.
자작나무 숲을 1시간여 걸으며 자작나무를 ‘나무의 여왕’, 자작나무 숲을 ‘숲의 백미’라고 하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한 폭의 수채화여서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형용해야할 지 모르겠다. 서현숙 시인의 ‘자작나무 숲’ 시에 기대어 자작나무 숲의 강렬한 감동을 공감해본다.
“하얀 나무 / 햇빛에 강한 빛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 자작나무를 보고 한 사람이 평생을 걸었다. / 남은 날을 모두 주고 얻고 싶은 나무 / 그것을 본 순간 그의 여행은 끝났다. / “내가 저걸 보려고 이렇게 돌아 다녔구나” / 그의 일생을 결정짓는 하루였다. /…
(중략)…
/ 파릇파릇한 작은 잎새에 애틋한 눈길 주고 / 튼실해져 가는 흰 몸뚱아리 껴안으며 / 그렇게 숲지기와 나무는 잎잎으로 사랑을 키웠다. / 사랑은 / 평생을 결정짓는 하루의 감동과 / 그것을 지키는 옹이 박힌 손이었다.”
자작나무의 표피를 만져보니 고운 살결이다. 중압감을 주지않는 늘씬한 몸매로 곧장 뻗어올라 푸른 잎으로 하늘을 채웠다. 자작나무 숲 곳곳에 피어오른 들꽃들도 수줍은 화사함으로 순백의 요정들을 찬미한다. 우리는 피톤치드 가득한 숲속을 걸으며 온 몸 가득 힐링을 누렸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한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만난 행복은 소박하고 결코 크지 않고 우리 안에 내재된 것을 끄집어낸 본연의 것인지도 모른다. 래프팅에서 동심을 끌어내었고 자작나무 숲을 걸으며 가슴 가득 힐링을 받았다. 자연 앞에 겸손해지고 모든 것에 감사해진다. 혼자라면 찾아갈 기회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같이하여 이런 감동을 공유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 행복감을 김두식은 카톡에 이렇게 표현하였다. “어린시절로 돌아간 하루. 모두 고맙고, 십년 이십년 후에도 오늘 같이 지냈으면… “.
그렇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때가 젊은 시절에만 찾아오라는 법은 없다. 지금이 바로 그 때였으면 좋겠다. 우리는 산행하며 늘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우리 마음이 있어야할 곳을 찾아간다. 길 속에 길이 있고 걸음 속에 답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산행을 계속 꿈꾼다.
첫댓글 "귀를 잘 기울이면 '자작거리며' 속삭이는 나무"를 자작나무의 정의로 했으면 합니다.
1주 전 래프팅의 짜릿함이 다시 몰려온다. 폼 잡느라 누워서 패들질하다 급류에서 물을 한 바가지 마셨더니 정신이 하나 없더구만. 너무 좋은 산행기 써쥐서 고마워! 자주 읽어볼거야.
야 잘썼다!!
일기체로 사실적이고 다녀온
모두 친구들이 두고 두고 읽어 추억으로 남겠다
수고 했습니다.
내린천의 래프팅이며, 원대리 자작나무의 숲의 우리 이야기를 신나고 재미있게 술술 풀어 놓은 느낌입니다. 산행이 있는 날이면 27인의 이야기가 공룡능선 처럼 또 휩쓸고 다닐것 같네요.
더운 여름 답답함을 시원하게 해소해 줄 시원한 후기였습니다.
문장가로 등용시켜야 겠습니다.
래프팅과 자작나무숲의 여운이 아직도 가슴을 아련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세세하고 아름다운 필치로 다시한번 파노라마처럼 그날의 행적을 떠올려서 감동을 주는 주형이의 후기는 영원히 가슴에 추억으로 남아 생각날때 마다 꺼내서 읽어 보고프게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구만! 역시 예상대로 팔방미인인 주형이는 글도 잘 쓰구만. 수고했고 고맙구만!
바닷가(임재기)
폭염과 습기로 숨막하는 여름날에 한 줄기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잘 섰다.역시 광고인들은 책을 많이 읽어서 문학적 소양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문학과 예술(춤, 음악, 와인) 그리고 운동(테니스)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주형이의 인품이 묻어나는 후기이다. 더운날 장문의 후기를 쓰느라 고생했다.명품 후기로 등재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였던 래프팅을 친구들과 함께했기에 두려움속에서도 마냥 웃고 떠들고 즐거워했었던 상쾌한 추억과
술 한잔후에 걸었던 자작나무숲의 편안함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해줄 산행후기다.
더우기 주형이의 마음 씀씀이가 여기저기 드러나 있어 좋다
처음 써 본 산행후기인지라 여러가지로 부족함에도 과분한 덕담을 많이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산행후기를 읽어주고 댓글로 그리고 전화로 격려해 준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의 정을 표합니다.
더운 여름 건강하게 보내세요.
심야에 한 번 더 들춰보는 산행후기 ~ 주형이 고맙넹!
세상 속에 잔잔한 한편의 드라마를 들여다보는 듯 산행후기가 너무 사실적으로 다가오는구만!
진진한 맛을 내며 오래도록 남을 후기 감사하고 감사하다.
보트가 뒤집혀 주었으면 더 스릴 있는 체험을 하였을 텐데.... ㅎㅎ
“울창한 숲과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물은 아름다운 속살을 드러내며 보트를 힘차게 저어가는
우리들에게 기꺼이 길을 내어준다.” 와~ 뭐라 말해야하지...?!
“길을 걸으며 우리 마음이 있어야할 곳을 찾아간다. 길속에 길이 있고 걸음 속에 답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산행을 계속 꿈꾼다.”
이런 멋진 말을 보통스럽게 (보통예금 인출하듯ㅋ ) 쓰다니...주형이 대단혀~~!!
글을 텃치하는 솜씨가 중견 작가 수준이닷.
산우들 말처럼 산행 후기가 아니라 한편의 문학작품 같다. 암튼 감사하네.....
산행을 장기간 결석하고 있어서 산우들 볼 면목도 없고...
가끔씩 열람해보는 산행후기, 댓글 다는 것도 조심스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