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축과 신축의 놀이터
이사를 했다. 20년 전 지은 구축 아파트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새 아파트로 옮겼다. 이번 책을 읽으며 아파트의 놀이터를 유심히 바라봤다. 구축 아파트의 놀이터는 아파트의 측면에 위치해있었다. 최대한 구석으로 몰아놨다는 느낌이었다. 흡사 아이들에게 “어른들 시끄러우면 안 되니까 저리 가서 놀아.” 말하는 듯했다. 아파트 구석에 위치하고 있으니 아이들도 잘 가지 않고, 볕이 잘 들지 않아 진녹색의 이끼들이 제 자리를 펼친 듯 자라고 있었다. 어둡고 습했다. 구축 아파트 놀이터 두 곳 모두 비슷한 위치에 비슷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신축 아파트의 놀이터는 상대적으로 밝았다. 건물의 중앙에 자리 잡아 ‘소황제들의 놀이 공간이오.’ 의 풍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각각의 놀이터에 테마가 있어 한 곳은 백과사전, 한 곳은 모험이랜다. 미끄럼틀이나 시소, 그네가 각각의 모양과 색상으로 다른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도 한번 올라가고 싶을 정도의 미끄럼틀처럼 생긴 책 성(책 모양으로 만들어낸 성채)도 있었다.
두 아파트의 공통점
토요일 이른 저녁시간임에도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원래도 아이들이 잘 안 간다. 단지 내에 아이들이 많지도 않았지만 내 눈에도 그리 가고 싶은 공간이 아니니 충분히 이해됐다. 근데 지금 아파트에도 아이들이 없다. 상대적으로 젊은 가족이 많이 들어온다고 알고 있었는데 노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다. 다들 어디 갔지? 주말이라 야외로 놀러 나갔나? 아무리 그래도 세 곳의 놀이터에 아이가 하나도 안 보이다니. 앗. 한 아이가 나왔다. 기저귀를 하고 있는,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아기였다. 엄마는 뒤를 따르고 아이는 뒤뚱뒤뚱 걷다 말고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 구석의 모래를 마구 흐트러뜨린다. 엄마는 아이를 말린다. 아까도 그랬나 보다. “이거 또 치워야 하잖아.” 라며 아이를 말린다. 알아는 듣는지, 들려도 안 듣는 건지 그 꼬맹이는 모래 흐트러뜨리기에 여념이 없다. 깔끔하고 예쁘게 정리된 아파트의 놀이터 바닥에 폭신한 우레탄이 깔리고 형형색색의 놀이기구들이 ‘나 예쁘지’ 뽐내는 동안 정작 아이들이 없고, 모래 한 줌 흐트러뜨리기가 어렵다.
내 어린 시절에는
대전의 샘머리라는 작은 마을에 살았던 덕분에 도시 살았던 동년배들보다 휠씬 다양한 놀이 경험을 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나 역시도 ‘살아남은 것이 다행’ 이라고 할 정도로, 지금 생각하면 기함할 정도로 위험하고 더러웠던 놀이도 많았다. 땅과 돌과 흙만 있으면 놀이는 무궁무진했다. 비석치기, 눈차걸윷 오징어, 구슬치기, 병뚜껑치기, 종이딱지치기 마니공기(돌을 많이? 만개 정도? 모아야 할 수 있다는 놀이었나-엄청난 자갈 돌을 모아놓고 서로 따 먹기하는 놀이) 땅따먹기. 짚더미방방 (몸의 가려움을 어떻게 참았나 싶다) 재미있었다. 가방 놓고 밖에만 나가면 늘 놀 사람이 있었고, 딱히 돈이 없어도, 갈 곳이 없어도 있던 곳에서 돌 줍고, 바닥에 줄 그으면 할 수 있는 놀이들이 참 많았다. 그 시절 여름엔 밖에서 다친 상처, 모기 물린 곳을 벅벅 긁어대 낸 상처로 내 다리가 성할 날이 없었다. 구슬도 얼마나 많이 모았는지, 왕구슬, 옥구슬, 쇠구슬, 애기구슬 그걸 정말 애지중지 모았다. 이젠 흐릿해진 필터를 거친 기억들이라 아마 틀릴 지도 모르겠지만 내 돈 주고 산 구슬이 하나도 없었다. (친구 것을 뺏은 건 아니다. 다 딴 거라고 믿고 있다)
‘놀 곳, 놀 사람, 놀 시간’이 없는 아이에게
또래 친구의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가끔이나마 보면 유튜브 보며 아이돌 춤 따라하기, 집에서 보드게임,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자전거 타거나 놀이터에서 놀기 정도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나가 놀라고 편히 두기엔 사람도 무섭고 자동차도 너무 많고 위험한 구조물도 너무 많은 세상이니 내가 양육자라고해도 걱정스러워서 내 공간 안에, 시야 안에 가둬놓을 거 같다. 분명히 풍요로운데, 더 풍족하고 여유로운 거 맞는데 흙바닥을 구르며 놀았던 그 시절의 나보다 요즘의 아이들이 즐거운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 부모가 시골로 내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놀이터를 생태, 친환경 모래 뿜뿜의 공감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각종 체험학습이 넘쳐나는 것도 이해된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야외 놀이 경험을 가진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비슷한 경험이라도 해주고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실현 시켜주는 거니깐. 관찰자 입장이라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거지. 내가 당사자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놀이를 권하며 공간을 제공할 수 있었을까.
나를 유난히 따르는 조카를 보면, 특별한 걸 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함께 노는 걸 좋아한다. 그네에 배를 대고 타라면 그렇게 탄다. 시소에서 발을 힘껏 굴러 자신을 띄워보라면 최선을 다해서, 다리에 알이 배기도록 뛰어본다. 달려보라면 달린다. 조카의 놀이봇처럼 논다. 근데 그게 나도 재미있다. 둘 다 깔깔거리며 놀고 있으니 누가 애이고 누가 어른인지 모르겠다고 남편이 웃었다. ‘놀 곳, 놀 사람, 놀 시간’이 없는 아이에게 나라도 놀 사람, 놀 곳이 되어줘 보는 것, 가끔이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거나 해야겠다.
첫댓글 늦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기에도 너무 늦은 상황... ㅠㅠ
이제야 두 글이 어떻게 다른지 꼼꼼하게 살펴봤어요.
대전의 샘머리 구체적인 지역명이 추가되어서 생생함을 더 했고, 결론을 대폭 수정하셨네요.
저번 결론이 '이게 좋은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힘이 빠진 느낌이라면
그래도 이번엔 뭔가 작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느낌?
좋습니다. 아예 인용을 빼신 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
마지막 단락에 조카 얘기를 하셨는데 처음엔 주어가 조카인줄 알았는데
다시 읽어보니 은경쌤이네요. ^^;;
그 부분이 살짝 헷갈렸어요~
"그거나 해야겠다" 보다는 "그것부터 시작해야겠다."가 낫지 않을까
제안해봅니다. :-)
ㅎㅎ짝꿍이 계시니 그나마 무플방지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감사할뿐입니닷!!!! 지난 모임때 제 글 평가해주셔서요. 주신 의견들 반영하고 선생님 코멘트 참고해서 새로 써보았어요. 사실. 잘 모르겠는 게 속마음이긴 한데, 조카 이야기가 들어가니깐 제 경험이라서 그나마 힘을 낼 수 있었네요. ㅎㅎ
구축 아파트의 놀이터와 신축 아파트의 놀이터를 비교한 도입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놀이터의 공통점으로 옮겨간 흐름이 좋습니다. 마지막에 조카와 재미있게 노는 은경샘의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구요. 예전 의왕등대에 마을놀이 활동가라고 시간을 정해서 동네 아이들 모아서 노는 분이 계셨어요. 은경샘에게 잘 어울릴거 같아요.ㅎㅎㅎㅎ
제가 좀 놀 땐 애같이 노나봐요.ㅋㅋㅋㅋㅋㅋ 철 안(못) 든 어른. 사실 놀이터에서 가끔이라도 애들 보면 그네도 밀어주고 싶을 때 있거든요. 근데 애들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할까봐 그냥 꾹 참아요.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