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찻잔에 대입시켜 상대로부터 느끼는 온기와 정을 그렇게 과장 없이 이야기를 들려주듯 노래한 가요가 또 있을까요? '찻잔'은 사랑의 격정을 웅변한 노래가 아닙니다. 사랑을 느끼는 상대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차를 마실 때의 그 안락한 평화와 조심스러운 감정의 떨림, 모세혈관 하나하나 꽃이 피고 낙엽 지는 것 같은 순결한 사랑의 희열을 느끼게 하는 노래입니다. 이성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막연한 설렘과 그리움에 한쪽 가슴이 늘 조금은 시렸던 그때. 음악다방에서 흘러 나오던 노고지리의 '찻잔'과 함께 나는 조금씩 커피와 젊음의 쓰디쓴 아픔을 알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미 겨울이 저만치 가고 있는 오늘, 노고지리의 '찻잔'을 들으며 조금은 서둘러 다가올 봄을 기다려 봅니다. 시간은 거꾸로 달려가 35년 전의 봄이 그때 그 모습으로 지금 내 앞에 당도한 듯 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게 느껴지는 하루입니다. 오늘 감상하는 '찻잔'의 주인공 노고지리는 충북 음성이 고향으로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들의 본명은 형 한철수, 동생 한철호로 79년 3월 우리나라 민요를 당시 댄스리듬인 디스코로 편곡한 '성주풀이', '한 오백 년'과 R&B 스타일의 '새야 새야’ 등을 리메이크한 앨범을 가지고 우리나라 가요계에 남자 쌍둥이 가수로 처음 데뷔해 당시 대중들에게 크게 인정받았던 듀엣 가수입니다. 그들은 같은 해 1979년 말 자신들의 대표 곡이자 공존의 히트 곡인 '찻잔'을 발표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노고지리 정규 앨범으론 1집인 셈입니다.
이후 80년대 한철호 작사, 작곡의 '광대', '그대가 생각날 때면'과 한철수 작사, 작곡인 '달래줘', 또 다른 작곡가들의 곡인 '사랑의 꿀맛', '나 그대 만남은', '휘파람' 등 많은 곡들을 발표하며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사랑을 받으며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2004년에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당시 앨범의 곡들은 10대에서부터 40대 중 장년층까지 들을 수 있는 발라드 곡과 하우스 댄스 형식의 브라스를 가미한 템포 있는 곡들로 '미안해', '두려움', '요즘 여자들', '안 된다니까' 등 신곡 7곡과 '찻잔', '광대', '그대가 생각 날 때면' 등을 리메이크해서 같이 공감할 수 있는 10곡으로 꾸민 앨범이었습니다. 또한 노고지리를 아끼고 기억해주는 많은 분들을 위해 좀 더 가까이 할 수 있고 대화 할 수 있는 공간 '노고지리 오브 찻잔'을 형은 부천 중동에, 동생은 김포 감정동에 문을 열어 아직도 대중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다 가다 기회가 되면 들러 '찻잔' 노래를 청해 듣고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를 가져 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습니다.
찻잔 / 노고지리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뜻해
온몸에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뜻해
온몸에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