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효 문화 에세이】
효 문화의 상징 ‘뿌리 공원’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들
―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유익하고 흥미로운 장면들
― 뿌리 공원 성씨 유래와 인물, 예술적 조형물을 살펴보는 일은
만 권의 인문학[文·史·哲] 서적을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사랑하는 손자에게
대한민국 ‘성씨 테마 공원’으로 잘 알려진 대전의 ‘뿌리 공원’.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깊은 관심을 보이는 효 문화의 상징 ‘뿌리 공원’.
▲ 1997년 개장한 전국 유일의 뿌리 공원 - 입장료 전 국민 무료, 연중무휴
할아버지는 이곳을 자주 둘러 본단다. 대전광역시에서 70세 이상 노인에게 주는 ‘어르신 무임 교통카드’ 덕분이지.
▲ 대전광역시에서 준 ‘어르신 무임 교통카드’
시내버스를 한 번만 타면 30분 이내로 닿을 수 있는 세계적인 명소.
◆ 시민들이 누리는 특별한 혜택
대전시 ‘어르신 무임 교통카드’ 역시 알고 보면 근본적으로는 ‘어르신 공경’이라는 ‘효 문화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지.
할아버지는 이곳에 올 때마다 감탄하는 것이 한 둘이 아니야. 우선 천혜의 절경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지.
풍수지리에 대해 깊이 모르는 일반 시민들도 이곳에 오면 우선 아늑하고 평안한 느낌이 들지.
그 이유는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천혜의 자연조건에다가 사시사철 피고 지는 아름다운 꽃이며, 갖가지 형태의 조경 수목이 반기는 까닭이지.
▲ 천혜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효 문화 공원 앞에는 맑고 푸른 물이 흐르고 있다.
반겨주는 것은 그뿐이 아니란다. 효 문화를 상징하는 기기묘묘한 예술적인 조형물이 운치 있게 반겨주지.
먼저 거대한 화강암에 ‘뿌리 공원’이라 새겨진 명칭 석을 좀 봐. 옆에는 “사랑해요”라는 조형물이 반겨주지. 여기는 누구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포토존이야.
▲ 뿌리공원 입구에 세워진 간판석
◆ 한국족보박물관 ‘건립기(建立記)’를 쓴 원로 학자와의 대화
바로 옆에서는 ‘한국족보박물관’이 반갑게 손짓하지. 이 건물 앞에는 할아버지가 문단에서 존경했던 송백헌 박사(문학평론가, 전 충남대 명예교수)가 지은 건립기(建立記)가 서 있지.
▲ 족보박물관 앞에 세워진 건립기 - 송백헌 문학평론가 지음
언젠가 송백헌 박사(宋百憲 1935 ~2021)가 문학모임 식사자리에서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윤 선생, ‘뿌리 공원’에 한 번 가보세요. 족보박물관이 새로 생겼는데, 제가 건립기를 썼어요. 이제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뿌리 공원’은 효 문화의 중심지이자 겨레의 성지로 자리매김했어요. 족보박물관은 우리의 뿌리와 숨결을 한 눈으로 느낄 수 있는 산 교육장이자 관광 명소가 되었어요.”
▲ 건립기를 쓴 송백헌 박사(문학평론가, 충남대학교 교수, 좌측)와 필자(우측)의 대화
송 박사와 이런 유익한 정담을 나눈 것이 2010년이니까, 벌써 15년 세월이 흘렀구나. (전국 유일의 뿌리 공원은 1997년 개장했으니까 어느덧 28년 됐지.)
▲ 족보박물관 벽에 부착된 인상 깊은 문구들
그런데 할아버지는 여길 올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배운단다. 할아버지가 새롭게 발견하고 배우는 것을 몇 가지만 열거해 본다.
잔디광장 주변에 설치된 ‘힐링쉼터’에는 가족 단위 또는 연인들의 휴식 공간으로 도시락도 먹을 수 있고, 어느 가족들은 치킨을 싸다가 즐겁게 먹는 장면도 보았다.
▲ 드넓은 잔디광장에 설치된 대화 탁자와 힐링 쉼터
◆ 효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가족 간의 대화
새롭게 발견한 조형물 중에는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이 묻어나는 대화로 이어진다. 슬며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의미 있는 조형물이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별일 없지?”
“보고 싶다”
“밥은 먹고 일해라”
“너희가 잘사는 게 효도야”
부모와 자식, 손자, 며느리가 주고받는 진솔한 대화체 문구에 ‘효’라는 개념이 모두 녹아 있어.
자 그럼 발길 닿는 대로 각양각색 성씨 조형물이 반기는 아름다운 산책길을 천천히 걸어 볼까?
◆ 성씨 조형물을 통해 뜻밖에 만나는 ‘문학 작품’
각 성씨 문중에서 설치해 놓은 조형물을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와 위대한 인물, 그리고 고전적인 문학 작품도 만날 수 있지.
오늘 할아버지가 새롭게 발견한 문학 작품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오로시(烏鷺詩 : 까마귀와 백로)’이다.
성주 이씨(星州 李氏)인 ‘이직(李稷)’ 선생의 작품이다. 조선조 영의정을 지낸 학자 문인이지.
▲ 성주 이씨(星州 李氏)
▲ 오로시(烏鷺詩) 조형물
오로시(烏鷺詩)
이직(李稷, 1362~1431)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 들 속조차 검을쏘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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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이씨 유명인 중에는 고려 문신이자 청백리였던 이조년(李兆年) 선생도 있더구나.
백과사전을 검색해 보니 이조년의 아버지는 이장경으로 슬하에 5남을 두었는데 첫째부터 이름이 각각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이조년(李兆年)이었다.
아들들 이름을 숫자로 지은 특이한 경우로, 별난 이름 문서에도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학창시절 국정교과서에서 만났던 이조년 선생의 시조 이화조(梨花操)를 여기서 만나다니, 다시 몇 번이고 외워보았단다.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이 이 시조는 운율도 빼어나고 의미도 깊으니 외워 두는 게 좋다고 하신 기억이 난다.
▲ 이화조(梨花操) 조형물
이화조(梨花操)
이조년(李兆年 : 1268~1342)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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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조상들의 업적과 정신을 배우는 ‘자연 학습장’
역사와 인물, 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이곳이야말로 ‘자연 학습장’이 아닌가 한다.
너의 엄마 성씨인 ‘경주 김씨(慶州 金氏)’, 너의 할머니 성씨인 ‘원주 원씨(原州 元氏)’ 조형물을 살펴봤다. 모두가 존경스러운 훌륭한 조상들이다.
▲ 경주 김씨(慶州 金氏)
▲ 원주 원씨(原州 元氏)
또 빼놓을 수 없는 성씨가 있다. 배천 조씨(白川 趙氏)다. ‘호국(護國)과 충효(忠孝) 정신의 표상’인 중봉 조헌 선생이 ‘배천 조씨’지.
조헌 선생이 지은 『지당에 비 뿌리고』는 학생들에게도 잘 알려진 명시조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서 호국(護國) 위민(爲民) 충효(忠孝) 정신을 몸으로 실천하신 분이지.
중봉 조헌(趙憲) 선생은 『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 노래 가사에도 등장한다. 너의 고조할머니 성씨인 ‘배천 조씨’의 자랑스러운 조상이시다.
▲ 배천 조씨(白川 趙氏)
▲ 『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 노래 가사에 배천 조씨인 중봉 조헌 선생이 나온다
지당(池塘)에 비 뿌리고
조헌(趙憲, 1544~1592)
지당에 비 뿌리고 양류(楊柳)에 내 끼인 제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매였는고 석양에 무심한 갈매기만 오락가락 하노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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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배천 조씨’인 너의 고조할머니 제사 때마다 붓으로 지방(紙榜)을 썼지.
【顯 祖妣 孺人 白川趙氏 神位】
그런데 궁금증이 생겼어. ‘백천(白川) 조씨’라 써 놓고 어째서 ‘배천 조씨’로 읽느냐는 거였어.
그에 대한 답은 국어 교육자이자 향토사학자인 너의 큰 할아버지(尹佶遠, 옥천향토전시관장 역임)께서 궁금증을 풀어주셨다.
◆ 참고 : ‘배천군(白川郡)’은 황해남도의 연백평야 동쪽에 있는 군이다. 한자 표기는 ‘백천(白川)’이지만, 활음조 현상에 의해 ‘배천’으로 읽는다.
※ 활음조(滑音調, euphony) 또는 호음조(好音調)는 언어의 화자가 어떤 어휘를 본래 어법에서 의도하는 발음과는 다른 발음으로 읽는 현상을 가리킨다.
민간에서 속되게 읽는 법이라 하여 ‘속음(俗音) 현상’이라고도 부른다. 십월(十月), 육월(六月)에서 종성이 탈락하여 ‘시월’, ‘유월’로 발음하는 것이 대표적인 ‘활음조 현상’이다.
◆ 칠원 윤씨 ‘종훈(宗訓) 석’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성찰하다
뿌리 공원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오르니 땀이 흐른다. 전망 좋은 이곳에 자리 잡은 ‘칠원 윤씨(漆原 尹氏)’ 조형물 앞에 이르렀다.
▲ 칠원 윤씨(漆原 尹氏)
가문의 전통과 후손들의 정신적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종훈(宗訓) 석’ 앞에서 옷깃을 여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조상님들이 현답(賢答)을 제시한다. 종훈을 바라보면 인생을 성찰하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가다듬게 된다.
▲ 칠원 윤씨(漆原 尹氏) 종훈(宗訓)
종훈(宗訓)
숭조보본(崇祖報本) 조상을 숭배하고 근본에 보답하자 효친목종(孝親睦宗) 부모에게 효도하고 일가 간에 화목하자 근정계후(勤正啓后) 근면하고 정직하게 후손을 가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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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행(百行)의 근본(根本)인 ‘효(孝)’를 다시 생각하다
한나절 가벼운 산책만으로는 선조들의 훌륭한 업적과 정신을 가다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더구나 수많은 성씨의 특징과 유래를 하나하나 살피기엔 하루 이틀로는 부족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국내 유일의 효 문화 공원을 방문하여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역사와 전통문화를 공부하고 싶다.
▲ 하루 이틀로는 부족한 수많은 성씨 조형물 탐방
위대한 역사를 창조해온 조상님들의 우국충정(憂國衷情) 정신과 아름다운 전통문화, 그 바탕을 이루는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백행(百行)의 근본(根本)인 ‘효(孝)’에 있음을 ‘뿌리 공원’에서 다시금 느낀다.
뿌리 공원 성씨 유래와 인물, 예술적 조형물을 살펴보는 일은 만 권의 인문학[文·史·哲] 서적을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2025. 5. 19.
대전 ‘효 월드 · 뿌리 공원’에서
尹智煥의 할아버지 尹昇遠 산책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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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5.05.19. 08:18
뿌리공원에 대한 설명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새로운 꾸밈과 내용이 이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꼭 한번 가보아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시간을 내어 찾아보고 싶은 곳입니다. 뿌리는 잎과 줄기를 지탱해주고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 불휘(뿌리 )기픈 남간 바람에 아니 뮐쌔 곶됴코 여름 하나니. 용비어천가 제2장에서.
▲ 답글 / 필자 윤승원
이곳을 둘러볼 때마다 옛 부모님을 생각합니다. 특히 숭조(崇祖)에 관한 이야기라면 자식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누누이 강조하셨던 아버지를 모시고 이런 효 문화 공원을 산책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역사 공부, 위대한 인물 공부, 그리고 문학작품도 만나는 이곳이야말로 ‘문사철(文史哲)의 학습장’입니다. ‘뿌리’가 어딘가 살피는 일도 중요한 역사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낙암 교수님 따뜻한 격려와 귀한 소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