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3장13-25절 바라바 대 예수 260407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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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 본문: 여론에 밀려난 공의와 바라바를 선택한 군중 (눅 23:13-25)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관리들, 그리고 백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는 이성적인 법 집행자로서 예수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했음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헤롯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빌라도는 "때려서 놓겠노라"며 타협안을 제시하지만, 무리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그들은 일제히 소리 지릅니다. "이 사람을 없이 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바라바가 누구입니까? 그는 성중에서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을 저질러 옥에 갇힌 자였습니다. 법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범죄자였으나, 군중은 메시아 대신 살인마를 선택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 세 번이나 설득하지만, 군중의 광기 어린 외침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결국 빌라도는 그들의 소리에 굴복하고 맙니다. 공의로운 재판관이어야 할 그는 민심이라는 이름의 폭력 앞에 굴복했고,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는 대신 아무 죄 없는 예수를 죽음의 길로 내몰았습니다.
2. 모든 이에게 버림받은 고독한 구세주 : 제자들 종교지도자 민중 빌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여정은 철저한 '버림받음'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장 뼈아픈 배신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떠났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삼십 냥이라는 이득 때문에 스승을 팔아치웠고, 수제자 베드로는 자신의 약함 때문에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하며 도망쳤습니다. 십자가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곁을 지킨 제자는 오직 사도 요한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종교적 양심을 지켜야 할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지도자들도 예수를 버렸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리를 외면했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빌라도와 헤롯은 법적 양심을 저버리고 여론 재판을 감행했습니다. 마치 과거 인민 재판과도 같은 광기 속에서 그들은 무죄한 피를 흘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더욱 허망한 것은 민중의 변심입니다. 불과 얼마 전, 예수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 그들은 "호산나(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치며 겉옷을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속 그들은 똑같은 목소리로 "바라바를 내달라"고 외칩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사람은 대단히 공의로운 척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철저히 자기 이기심에 따라 움직입니다. 신앙의 양심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은 열에 하나둘도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3. 복음을 삶으로 살아낸다는 것의 무게
사람들은 이기심의 파도에 휩쓸려 예수를 버렸지만, 주님은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그분은 버림받은 우리 모두의 구세주가 되셨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아픔, 눈물을 짊어지셨습니다. 죄와 상처, 죽음과 저주의 사슬을 끊어내는 은혜의 역사를 바로 그 고독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복음을 말로 전하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윤리적인 규칙을 지키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오늘날 세상은 교회를 향해 "윤리라도 좀 지켜라"라고 냉소합니다. 인터넷 시대가 되어 수십 년 전의 잘못까지 낱낱이 공개되는 세상에서,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본조차 지키지 못하는 모습은 복음의 가치를 가립니다.
목사가 돈을 멀리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절제하며, 세상도 하지 않는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지 않는 것, 그것은 특별한 영성이 아니라 신앙의 '기본'입니다. "우리 기본이라도 합시다"라는 고백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세상의 기준보다 낮은 삶을 살면서 어떻게 하늘의 생명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4. 인생의 환절기를 넘어서라.
상담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에는 반드시 '위기의 때'가 찾아옵니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것처럼, 우리 영혼과 인생에도 환절기가 있습니다. 지난주 부활절에 아이들이 감기 때문에 특송을 하지 못해 안타까웠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몸살'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어떤 이는 "몸이 살려고 하는 것"이 몸살이라고 합니다. 환절기의 감기 몸살을 잘 견뎌내야 다가올 여름의 무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이길 힘을 얻게 됩니다. 몸의 메커니즘이 새로운 계절에 적응하기 위해 겪는 진통인 셈입니다.
인생의 첫 번째 큰 환절기는 사춘기입니다.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일진 놀이를 하는 등 일탈을 할 때, 부모는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라고 보듬어주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무조건 엄하게 "이놈 자식" 하고 몰아세우기보다, 그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배려와 사랑을 쏟을 때 아이는 비로소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합니다.
두 번째 환절기는 40대 중반부터 60대까지 이어지는 '중년기'입니다. 마음의 환절기를 겪는 이때, 이른바 '늦바람'이라 불리는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가정이 흔들리고 유혹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봅니다. 이때 누군가 곁에서 영혼을 붙들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5. 박목월 시인의 인생환절기 극복
한국 시단의 거장 박목월 시인에게도 인생의 호된 환절기가 있었습니다. 그가 서울대 교수 시절 한 제자와 사랑에 빠져 제주도로 도피했을 때의 일입니다. 모든 이가 그를 비난할 때, 그의 아내는 묵묵히 바느질을 하여 외투 두 벌을 지었습니다. 남편의 것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그 여제자의 것까지 정성껏 지어 제주도로 내려갔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원망하거나 소란을 피우는 대신, "이 옷 입고 겨울 잘 보내세요"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옷을 건네고 떠났습니다. 그 따뜻한 배려와 조건 없는 용서 앞에 시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조강지처의 깊은 사랑을 깨달은 그는 즉시 잘못을 뉘우치고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그 여제자가 지었다는 노래 가사 중에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가을날의 정취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고비에서 서로를 놓아주고 각자의 길로 돌아가야 했던 아픈 이별의 기록입니다. 이처럼 인생의 환절기를 지날 때 누군가 우리를 따뜻하게 붙들어 준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은혜를 입게 됩니다.
6. 양심을 판 재판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봅시다. 인간들은 이기심에 눈이 멀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쳤습니다. 빌라도는 로마법의 원칙인 '등가의 법칙(지은 죄만큼 벌을 받는 법칙)'을 들어 예수를 놓아주려 했지만, 군중은 오히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라고 저주 섞인 맹세를 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죄는 반드시 그 피로 갚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며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겪은 역사를 보며, 많은 이들은 이 '피의 대가'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무죄한 피를 흘린 대가는 그만큼 무거운 것입니다. 지금도 중동에서는 보복과 살육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율법과 복수심으로는 이 굴레를 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는 다릅니다. 주님의 보혈은 '등가의 법칙'을 뛰어넘는 '완전한 사죄'의 은총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향해 원망을 품지 않으셨습니다. "호산나"를 외치다 한순간에 배신한 자들을 묵상했다면 주님은 한(恨) 많은 사람이 되었겠지만, 주님은 오직 하나님의 사명만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 보혈이 우리에게 흘러와 모든 죄를 씻고 죽음의 저주를 해결한 것입니다.
7. 묵묵히 사명의 길을 걷는 성도의 축복
우리 성도들의 삶 또한 복음 안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저지른 잘못보다 더 큰 공격을 받기도 하고, 목회자로서 혹은 성도 보기에 부끄러운 연약함 때문에 괴로워할 때도 있습니다. 자녀들이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을 보며 부모로서 걱정이 앞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보다 앞서 그 외로운 길을 걸어가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세상의 여론이 나를 죽이려 하고 이기심 가득한 사람들이 나를 이용하려 할지라도, 주님만 바라보고 묵묵히 걷는 자는 결국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목회 현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삶의 자리에서든 하나님은 반드시 온전한 회복을 주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은 십자가의 핵심입니다. 내가 죽고 주님이 사시는 그 길을 갈 때, 우리의 삶에는 풍성한 생명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총을 가슴에 새기고, 인생의 환절기를 믿음으로 견뎌내어 마침내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합니다. 날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게 하시고, 아버지의 뜻과 의를 이루며 그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리는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삶의 환절기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기심에 휘둘리지 않고 신앙의 기본을 지키며, 십자가의 고독한 길을 묵묵히 걸으신 주님을 본받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복음으로 살아낼 용기를 주시고,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가운데 넉넉히 승리하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우리와 늘 함께하시길 원하오며,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