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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화
김 동 리
1
사방 산으로 둘러싸인 뒷골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대개 숯을 굽는다.
굽지 않으려야 않을 수도 없고 또 동구 앞까지만 가면 참봉네 화물 자동차가 기다리고 있으니 옛날처럼 읍내까지 지고 들어가야 할 수고는 던다 하여, 무슨 큰 유리한 조건이나 되는 것처럼 모두들 생각하는 편이었다.
오늘도 그들은 동구 앞까지 숯을 져내고 시방 굴로들 돌아가는 길이었다.
“뒷실 어른은 몇 짐 져냈능교?”
젊은이가 묻는다.
“나아이? 난 넉 짐…… 자네는?”
“나요? 난 다섯 짐요.”
그들은 갈림 길에서 갈리었다.
해는 산마루에 걸려 있다.
뒷실이는 젊은이와 갈리어 숯굴까지 왔다.
굴 안에는 벌건 불이 타고 있다.
그는 숯굴 곁에 있는 헛간에 가서 지게를 벗고 괭이를 들고 나온다.
“내 일쯤은 꺼내 묻겠구나.”
그는 숯굴 위로 오르는 흰 연기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처음엔 검은 연기 다음엔 푸른 연기 맨 나중이 흰 연기라 하지만, 이 흰 연기 중의 여러 빛깔을 알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는 괭이로 숯굴 곁의 흙을 파기 시작하였다. 내일은 숯을 묻으려는 것이었다. 솔숯 같으면 한 예니레 불이 타면 앞뒤 아궁을 꽉꽉 막아 놔두면 그만이지만 참숯은, 참숯 중에도 이 백탄은 벌건 불덩어리를 그대로 꺼내어 흙에다 묻고 문질러야 하는 것이다. 건너편 산골에서는 ‘송아지’가 혼자서 나무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이 나무 넘어간다
에라에라 넘어간다
심심산 이후후야
건너 산으로 물러가자
어제 벼른 무쇠 도끼에
낙락 장송이 다 넘어간다
한참씩 저르렁저르렁 하고 도끼 소리가 산골에 울리다가는 ‘지저끈 쾅’ 하고 나무 자빠지는 소리가 나곤 한다.
뒷실이는 흑흑 하고 흙을 파던 괭이를 멈추고 꽁무니에서 곰방대를 빼어 물었다.
“오늘이 초엿새라, 이 달 초순께 산고할 께랬는데, 야아 이거 낭팬걸…… 숯은 아직도 참봉 영감이 말한 데서 반도 못 냈고, 이거 어째야 되노.”
뒷실이는 잠깐 동안 곰방대를 물고 앉아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다.
건너편 산골에는 붉고 검고 푸르죽죽한 누더기를 두른 이 골 사람들이 솔잎을 따고 있다. 뒷골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많이 솔잎을 먹게 된다. 솔잎을 먹으면 장수를 하느니, 병이 없어지느니, 정신이 좋아지느니, 별별 영효를 다 선전하여 서로 권하고 기리는 것이나 기실 그나마 씹고 굶어 죽지 않으려는 수작들이다. 풍년이라도 풀뿌리를 캐야 봄을 치르는 이 곳이라 먹을 만한 풀뿌리가 쉽사리 있을 리도 없고 또 이십 리 삼십 리씩이나 먼 산을 가서 혹시 칡뿌리깨나 본다 하더라도 흙이 얼어붙어서 괭이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쓰던 떫던 결국 솔잎을 따지 않을 수없는 것이다.
그는 입에 곰방대를 문 채 건너편 산골로 어정어정 내려갔다. 그는 산 기슭에서 손을 들어 누구를 부르려다 말고 그냥 멀거니 바라보고 서 있다. 그러자,
“아배.”
하고, 여섯 살 먹은 작은쇠가 시퍼런 콧덩이를 입에 물고 이쪽으로 달려온다.
겨드랑이에 낀 조그마한 오그랑 바가지에는 파란 솔잎이 담겨있다.
“아배, 저기 돌이 즈 엄 마가야, 석탄 파다가야 죽었단다이.”
작은쇠는 그 아버지를 따라 저리 숯굴 곁으로 가며, 아까 솔잎 따면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응, 누가?”
뒷실이는 그 새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느라고 잘 듣지 않고서, 이렇게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전에 우리 동네 안 있었나, 저 돌이 즈 엄마 말이다.”
“돌이 엄마가 석탄을 파다 죽어?”
“응.”
뒷골에는 각별나게 흉년도 잦다. 해마다 어디론지 없어지는 사람도 많다. 지금 작은쇠가 전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돌이 엄마도 결국은 솔잎 못 먹어 내어 달아난 사람 중의 하나이다.
어둡다. 어느덧 햇빛이 없다. 산중이란 본디 그렇거니와 이 운문산(雲紋山) 뒷골은 더욱 오후 해가 절반이다. 낮에 짐짓한 해가 산마루에 걸리는가 하면 벌써 황혼이 시작된다. 뒷실이는 숯굴 앞에 앉아 어느덧 두 꼭지째 담배를 넣어 물었다. 담배래야 구기자잎이면 썩 상등이요, 대개는 호박잎이나 아무런 잡풀이나 되는 대로 뜯어 말린 걸로 담배 피우는 신명을 내우는 게지 제법 희연봉이나 사들고 하는 날이라고는 한 해에도 그다지 여러 번은 아니다. 그런 대로 그에게는 곰방대를 빨아 연기를 내는 것만이 그의 유일 한 낙이다.
뒷실이란 그의 택호요, 그에게는 또 찬물이란 별호도 있었다. 이 별호는 누가 처음으로 부르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그의 위인이 찬물처럼 단맛도 쓴맛도 아무런 까닭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여간 큰 변이나 불행이 닥치더라도 놀라 당황한다든가, 흥분하는 법은 없었다.
아무리 아내가 퍼붓고 조르고 쫑알거리고 원망을 해도 꽥 소리 한 번 지르는 법도 없었다. 늙은 어머니가 고기 타령을 하든, 어린 자식이 밥 타령을 하든, 그는 들을 만하고 앉아 곰방대만 뻐끔 빨면 그만 만사는 절로 해결되어 가는 것,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주는 대로 한 숟갈 뜨고 일터로만 나가면 하루 해는 지는 것이었다.
“아배.”
어딘지 곧장 사람 소리가 나는 것 같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곰방대로 한 모금 듬뿍 빨고도 손으로 눈물을 닦고 얼굴을 돌려 사방을 휘휘 살펴보는 것이나 역시 아무것도 없다.
“아배.”
이번에는 바로 귀 곁에서 들려온다.
― 아니 이건…….
바로 눈앞에 한쇠가 와 서 있다.
“아배 그렇게 눈이 어둔교?”
“응야 한쇠가?”
그는 또 눈물을 닦으며 한쇠를 쳐다본다. 그의 모친 말마따나 너무 오래 기름기 있는 걸 못 먹어서 그런지 혹은 워낙 불에 시달린 탓인지 이 즈음은 한참 동안만 불을 보고 나면, 그만 눈물이 질질 흐르고 조금만 어두우면 바로 턱 앞에 다가서도록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한쇠는 걱정스럽게 그 아버지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이번 숯은 내가 낼난요.”
한다.
“니가 어떻 게?”
“저 송아지 아저씨랑 내지요.”
“…….”
아비와 아들은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 바라보았다.
“오늘 장엔 일찍이 댕겨 왔나?”
“팔기야 진작 팔았지만 삼십 전 받아서 좁쌀 한 되 팔고 성냥 한 갑 사고 나니 그만 미역 살 돈은 없습데요.”
그리고, 다시 한쇠는 말을 달아,
“참, 아침에 갈 때 윤 참봉이 보고, 매양 그라면 숯을 못 굽게 할 게라나요.”
한쇠는 이 말을 하기가 어쩐지 숨결이 가빠 물을 마시듯 말이 마디마디 끊어졌다.
2
불긋불긋한 빈대 피와 시꺼먼 숯 그림이 이리저리 혼란히 그려진 바람벽과 머리를 내리누르는 듯한 나지막한 천장 아래 어둠침침하고 가물가물하는 호릉불이 켜져 있다.
“아이고 사람이나 얼핏 와야지, 사람이나.”
구석구석의 너절하게 흩어진 버선목다리, 헝겊 나부랭이들을 주섬주섬 걷어 훔치며, 늙움이는 목 메인 소리로 혼자 중얼거린다. 네 귀가 아주 떨어져 나가고 군데군데 낡아 봉당이 드러난 삿자리 위엔 온갖 때와 오예(지저분하고 더러움)물이 겹겹이 끼어, 오줌 지린내와 땟국 절은내가 석유 냄새와 엎쳐서 건건접접하고 들쩍지근한 공기가 코를 쏜다.
며느리는 죽은 사람같이 창백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다가 이따금 울상을 하여 몸을 뒤틀곤 한다.
이때마다 늙은이는 그저,
“아이고, 사람이나 얼른 와야지 사람이나…….”
하며 당황히 뛰어들어 며느리의 배 위에 손을 얹는 것이다.
“배가 아프나?”
“…….”
“자꾸 뻗지르는가배.”
“…….”
그러나 며느리는 늙은이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모양으로 그저 ‘아이구’ 하며 몸을 뒤틀 따ㄹᅟᅳᆷ이다.
얼굴에 여기저기 숯 검정칠을 하고, 입엔 곰방대를 물은 찬물이가 들어오자 그의 아내는 마침 정신이 나는지 그 잿빛같이 된 얼굴을 들어 무슨 구원이나 청하듯이 잠깐 그를 바라본다.
순간 방 안이 고요해졌다. 그러나 그 구리터분하고 건건접접한 고약한 냄새가 일시에 코를 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며느리의 흩어진 머리를 쓸어 베개를 넣어 주며, 아들을 향해,
“이 얼굴 좀 봐라, 핏기 한 점 있나. 곧 죽은 사람 안 같으나?”
“…….”
찬물이는 잠자코 있다.
“곧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이라. 그래도 인제 겨우 숨을 좀 쉴구만, 아까사 그저 사죽을 틀고 네 구석을 매고 차마 눈으로 못 보겠더라니.”
늙은이는 온 얼굴을 비쭉거리며, 볼메인 소리로 호소하는 것이나, 그래도 아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된장국이라도 한 그릇 끓여 줄라니 어디 건더기가 있나 맨된장국이야 어디 써서 먹을 수가 있어야지…… 세상에 이런 꼴이 어디 있단? 금년 내내 하루도 쉴새없이, 소같이 일을 하고서 제 몸 푸는 데 된장국 한 그릇도 못 얻어먹다니, 째째…… 그 더운데 보리밭을 맨다, 논을 맨다, 똥물을 여낸다, 오줌을 여낸다, 가물에 물을 대인다, 이웃집에 소를 얻어다 콩씨를 넣는다, 머슴이래도 상머슴이지, 차라리 머슴 같으면야 바깥일이나 하지, 이건 바깥일은 바깥일대로 하고 집에 들면 또 질쌈을 한다, 빨래를 한다, 그래도 옷가지를 꿰맨다 어느 거 한 가지 제 손 안 가고 되는 게 있나? 일 년 열두 달 어느 하루 잠을 실컷 자본 날이 있나, 먹을 걸 남 대도록 먹어 본 날이 있나? 낮이고 밤이고 그저 갈팡질팡, 진일 마른일 다 해주고 그리고도 이제 몸을 풀라니 속이 비어 이렇게 널치가 나는구나.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고, 쩌, 쩌, 하느님이 무심하다, 하느님이 무심해.”
늙은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찬다.
눈꺼풀이 들썩들썩 뛰며 입이 왼쪽으로 비틀어져 실룩거린다.
“하기사 아무리 세(혀)가 빠지게 해도, 하늘이 비 안 주니 헐 수는 없더라만…….”
늙은이의 넋두리는 이제 하느님에 대한 원망으로 들어가려 한다. 아들의 저녁상을 내다 줄 것도 잊은 모양이다. 이 때 며느리가 몸을 꿈적이며, 무어라고 남편의 저녁상 내올 것을 주의하는 기척이 있자, 늙은이도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일어나, 시렁 위에서 아들의 저녁상을 내려놓는다. 도토리 가루에다 서속을 넣고, 거기다 여러 가지 풀뿌리를 얼버무려 죽을 쑨 것이다.
“어느 건 아이 밴 어미게는 음식이 젤이라고 태산도 모두 기름으로 된다는데 일 년 열두 달 풀만 먹고 사는 것이 무슨 주제로 힘을 쓴단? 더군다나 올해사 야속한 하느님이 비까지 안 줘서 쌀알 하나 천신(새로 나온 물건을 먼저 신뤼에 올리는 일) 못 하고 있는데…… 무슨 놈의 재앙이 하필 우리 에미 해산에 흉년이 든단 말고?”
“…….”
“사람이 너무 청렴해도 못 쓴단다. 어디서 쌀이나 쌀사발 하고, 국 건데기나 좀 하구 못 구해 올란?”
“…….”
죽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하고 어느덧 곰방대를 물고 앉아 있는 찬물이는 무어라고 했으면 좋을는지 알 수 없어 입맛을 쩍쩍 다시었다.
“지금 이대로 두면 해산도 안 되고 사람만 점점 더 늘어질 뿐이고 자칫하면 생목숨 잡는다…… 뭐든지 얼른 구해다 속을 좀 채워 줘야지 이러고만 있다간 큰일나는데…….”
“…….”
“시방 이래싸도 아직 언제 산고가 질는지 모르는 거다. 인제 다시 음식이 들어가 원기를 돋아 줘야지, 안 그러면 암만 있어야 사람만 축날 뿐이지 소용없다. 어디든지 나가 봐라.”
“…….”
찬물이는 곰방대를 문턱에 대고 털며 또 한 맨 입맛을 쩍쩍 다신다.
“어디든지 나가 봐라, 사람 사는 세상에 이다지도 절박할라고, 어디든지 한 번 나가 봐라.”
“그렇거던 송아지한테라도 가보소.”
오래 두고 연구해서 입을 뗀 찬물이의 의견이란 것이 겨우 이것이다.
“그렇잖아도 아까 저녁 때 가보았는데 송아지네가 안직 안 돌아왔두만…… 고것이 꼴값 하느라고 일을 해주거든 진작 제 집으로 돌아오쟎고 되잖게 바람이 들어서 그 어질고 인심덩어린 송아지 속을 썩 히는가 보더군.”
“…….”
“어쨌든 고걸 만나야 될 겐데…… 그래도 그게 큰 대문에 드나든다고 그러는 겐지 윤 참봉 집에 빌말이 있으니 인저 온 골 사람들이 다 고것한데 청을 하네.”
늙은이는 바쁜 듯이 일어나 희끄무레한 겉치마를 두르며 한쪽 손으로는 연방 실룩거리는 왼쪽 얼굴을 싸쥐며,
“아이고 가기사 가보지만 또 헛걸음을 하면 어쩔고?”
볼멘소리로 이렇게 근심을 하며 밖으로 나간다.
늙은이가 나가고 조금 있으니까 찬물이의 아내는 또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찬물이는 평소로 그 우악스럽고 무뚝뚝한 아내가 이렇게 늘어져 누워서 신음하는 것을 볼 때 어딘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아내는 그의 어머니의 말마따나 정말 소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본래 위인이 부지런한데다 원력이 좋아서 천생이 약질로 생긴 그의 시어머니와, 본래 좀 느리고 게으른 편인 찬물이가 입으로만 걱정을 하고 있는 여러 가지 들일을 그가 떠맡듯이 거의 혼자서 해내는 것을 보고 그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아끼는 마음으로,
“대강해라…… 소같이도 한다.”
이렇게 빈정거리는 것이었다.
작년 봄이다. 어릴 때 친정에서 보니 누에를 먹일 만하더라고 뽕나무 준비도 없이 누에씨를 받았다.
처음엔 열 잎, 다음엔 한 바구니, 또 그 다음엔 한 광주리, 누에가 자라면 자랄수록 몇 갑절 뽕을 먹어 내는지 알 수가 없다. 본래 무엇이든 하기만 하면 남 대도록 해내는 솜씨라, 첫 시험이라 해도 똥을 치는 것이며 치잠을 가리는 것이며 여러 해 먹이던 사람 같이 익숙하다.
그 차에 홀가분도 하여 병잠 하나 없이 여간 충실히 되지 않았다. 그만큼 재미도 나고 또 애도 쓰이고 하여 여러 날과 밤을 쉬지 못한지라 얼굴이 부숙부숙 붓고 두 눈엔 시뻘겋게 핏대까지 서게 되었다. 제사령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누에는 완전히 뽕을 굶게 되었다. 비는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고 먹을 때를 지친 누에는 대가리들을 쳐들고 잔박 가로만 기어나왔다. 뒷실댁 (즉 찬물이의 아내)은 온종일 벙어리처럼 그 핏대 선 두 눈으로 누에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다가 어둠이 들자 뽕 도둑질을 나갔다.
“엄마 그러지 말고 누에를 갖다 내버려라.”
한쇠가 이렇게 말하니, 뒷실댁은,
“아까워서 어째 내버리노?”
하면서 어둠 속에 사라져 버렸다.
한쇠는 이 날 밤 문고리를 잡고 앉아 얼마나 조마조마하면서 그 어머니의 돌아오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몇 번이나 방문을 열고 밤비가 좌락좌락 내리는 어두운 뜰을 내다보곤 하였으나, 그의 어머니는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틀림 없이 뽕 임자에게 들키어서 경을 치는가 보다고 혼자서 발버둥을 치며 있노라니까 무엇이 툇마루에 철썩 하며 무슨 물건 부딪뜨리는 소리가 났다.
옷은 젖어 몸에 휘감겨 붙고 머리는 흐트러져 아주 물귀신 모양처럼 된 그의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온 뽕 보퉁이를 툇마루에 내려놓기가 바쁘게 연방 우물가로 가서 손발을 씻고 있다. 오다가 비녀를 길에 빠뜨려서 그걸 찾느라고 길바닥을 더듬다가 개똥을 주물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굶을 대로 굶고 지칠 만큼 지친 누에는 인제 그만 뽕을 먹지 못했다. 한쇠 어머니가 아무리 정성껏 물기를 닦고 좋은 잎을 골라 누에 입 끝에 대어 주어도 누에는 고개를 두를 뿐이었다. 한쇠 할머니는 곁에서 며느리의 하는 양을 들여다보고 있다 차마 볼 수 없었던지,
“오냐 이 짐승들아 부디 먹어라이, 부디 부디 받아 먹고 살아나거라이, 조금씩 맛봐 가면서 부디 살아나거라.”
이렇게 어린애 달래듯이 타일렀으나 종시 소용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한쇠 어머니는 누에를 죄다 거름 속에 갖다 묻어 버렸다. 뽕까지 누에와 함께 거름에 버리려다 아깝다고 해서 이웃 사람을 주었다. 거기서 말이 난 겐지 어쩐지 뽕 임자가 알고 찾아왔다.
윤 참봉 맏아들의 소실이다. 성이 뾰로통하게 나서 처음 아무런 말도 없이 마루에 올라와 궐련부터 한 개 피워 물더니,
“세상에 사람 사는 법이 언제나 제 손으로 벌어서 제 것을 먹고 살아야지, 남의 것을 욕심내어 함부로 훔쳐 갈려고 해서는 허구한 세월에 하루 이틀도 아니요 도저히 살 수가 없는 법이야.”
하고 무릇 사람의 사는 법부터 설교하여 차곡차곡 죄목을 캘 모양이다.
한쇠 어머니는 감히 밖에 나올 수 없었던지 잠자코 부엌에 앉아 있었다.
이 때 빌기 잘하는 한쇠 할머니는 목 메인 소리로 온 얼굴에 근육을 실룩거리며,
“그저 살라 하니 그리십네다.”
하고 여자에게 빌붙기 시작하였다.
“언제든지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의 덕 안 보고 살 수 있입내까? 목구멍이 포도청이지요, 그저 없고 보니 죄가 많십내다.”
“암만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동정을 빈다면 그건 또 모르지만 남의 물건을 생으로 홈치러 들어서야 이건 도저히 나쁜 사람들 아니오.”
바로 이 때다. 평생 사람의 몸에 손질이라고 해본 적이 없었다는 찬물이가 도리깨로 그의 아내를 자꾸 뚜드려서 나중엔 아주 숨이 끊어지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윤 참봉네 맏아들 첩은 그만 하고 돌아갔지만 그 뒤로부터 한쇠 어머니는 날만 흐려도 온몸이 부서지는 듯이 아프다고 하였다.
이렇게 찬물이는 지금 곰방대를 물고 앉아 아내의 싯누런 팔다리를 바라보면서 작년 봄 그 봉변당하던 때의 자기의 도리깨질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3
국거리를 구하러 나갔던 늙은이는,
“아이고 밖에서는 굿을 해도 우리 집 구석에서는 모르는구나.”
하고 삽짝 밖에서부터 중얼거리며 들어왔다.
“성님 좀 어떠신교?”
늙은이 앞서 송아지 처가 고기 소쿠리를 안고 들어온다. 소쿠리에는 빛깔이 거무푸레하고 누렁 냄새가 물컥 오르는 쇠고기가 반 소쿠리나 실하게 된다.
“아따 웬 고음(‘곰’의 취음)거리는 이처럼 많이 가져오능교?”
찬물이도 소쿠리를 들여다보며 놀라운 듯이 인사를 한다.
“윤 참봉네 집에서 그 큰 소를 잡아 동네에 논으던가만 감쪽같이 모를 뻔했네.”
늙은이는 너무나 홍감해서 어디부터 먼저 이야기해야 좋을지 두서를 못 차린다.
“이거 일 원 어치다. 공께지 공께라, 장에 가 살라면 암만 해도 삼 원 덜 주고 이렇게 받으란? 더러라 백정놈들 파는 거사 일 원어치라고 해도 새 한 마리만한걸 뭐…….”
늙은이는 뼈와 꺼풀만 남은 주먹을 쥐어 보이며, 온 얼굴을 실룩거리며 어쨌든지 이것이 공것 마찬가지로 싸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 살림에 이럴 때 한 번 안 사먹으면 좀해서 쉽나, 마침 맘 낸 적에 눈 질끈 감고 그만 낫게 가져와 버렸지, 온 집안 식구가 한 번 고로 먹어야지 사철 풀만 먹고 기름기 있는 겉 안 먹으니 살 수가 있나? 그러고 참 나도 늙으니께 송장이다. 아까버텀 이 송아지네 이야기를 한다는 게 엉뚱한 소리만 실컷 했구나. 실지로 알고 보면 이게 모두 송아지네 덕이다. 우리 보고 누가 이렇게
인정을 쓸라고 모두 보는 데가 있지 그리.”
“어디메요, 저를 보고 드리는 게 아니라 올해가 참봉 어른 환갑이라고 소 한 마리 잡은 셈치고 이렇게 헐값으로 동네에 노나드리는 게랍니다.”
송아지네는 변명 하듯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한다. 그는 까만 우단 저고리에 엷은 홍빛 내의까지 받쳐 입고 이 골짝에서는 드물게 보는 호사를 했다.
“아 참 그렇다지, 올해가 참봉댁 회갑이구나, 아무리나 팔자 좋다. 살림 이 부자라 자식들 많아 세상에 다시 더 바랄 게 있나.”
“그럼요, 팔자야 상팔자지요.”
송아지네는 수삽(부끄러워 머뭇머뭇하는 모양)한 듯이 턱으로 덜 여며진 옷깃 사이로 내다뵈는 분홍색 내의를 가리며 이렇게 장단을 맞춰 준다. 그런데 여기 소개하기 늦은 인물이 하나 있다. 금년이 그의 환갑이라 소 한마리 아주 잡은 셈치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헐값으로 노나 먹이고, 그의 맏아들 첩은 일찍이 뽕 도난을 만나 무릇 사람 사는 법을 설교하러 이 집 마당에도 나타난 일이 있었고, 시방 여기 고기 소쿠리 곁에 까만 우단 저고리에 분홍색 내의를 받쳐 입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송아지 처의 정부인 동시 화물 자동차운전수이기도 한, 낯에 여드름 많이 난 사내를 둘째 아들로 가진 윤 참봉이란 사람은 대체 어떠한 인물인가. 뒷골 사람들은 모두 그를 윤 참봉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요즈음 일이다. 삼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윤 주사로 불리었고 또 윤 주사로 불리기 전에는 윤 새령으로 불리었다. 그는 본래 음내에서 사령 노릇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아직 부자가 되기 전엔 물론이요, 이제 내노라 하는 부자가 되어서도 읍내 사람들은 여태 윤 새령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뒷골 사람들도 그가 듣는 데서는 윤 참봉, 윤 참봉 하나 듣지 않는 데서는 ‘윤 새령’이 보통이었다. 이 눈치를 챈 윤 참봉은 ‘윤 새령’이라 부르는 사람만 보면 반드시 시비를 걸었다. 그만큼 그는 ‘윤 새령’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하였고, 또 이제 와서는 그를 면대해서까지 ‘윤 새령’으로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처음으로 이 뒷골로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그는 아직 ‘윤 주사’도 되기 전이었다. 그 때, 벌써 내용으로는 살림이 착실했던 모양이나, 그는 머슴을 데려 농사를 짓는 한편,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장리벼를 준다, 현금을 대부한다 하며 말하자면 이 골 사람들의 유일한 금융 기관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기를 한 십여 년 하고 나니 뒷골 부근의 좋다는 토지는 대개 그의 소유가
되어 버렸고 그와 동시에 그는 ‘윤 새령’에서 ‘윤 주사’로 화해져 버린 것이다.
요즈음은 또 그의 두 아들이 장성하여 일찍이 그가 손을 뻗쳐 보지도 못한 신기한 꾀를 쓴다. 맏아들은 첩을 얻더니 동구 앞에다 말하자면 지점 (돈놀이 하는)을 내고 거기서 술, 담배, 소금, 석유, 성냥, 비료, 북어, 포목, 기타 잡화를 갖추어 놓고 아주 떡 벌어지게 장사를 하는 것이다. 특히 이 가게가 동네 사람들을 끄는 것은 그 ‘고뿌 술’이란 거다. 양조 회사가 생긴 이후로 술이라면 전혀 사먹 게 되니 그 부드럽고 배부른 막걸리를 마음놓고 먹을 수가 없다. 부드러우니만큼 많이 먹어야 하고 많이 먹을라니 돈이 헤프다. 이 수요에 따라 꼭꼭 찌르는 왜소주가 나온 것이다. 막걸리로는 십 전 어치나 먹어야 속이 한 번 후련할 것이 소주로 하면 오 전짜리 한 고뿌면 제법 화끈해진다. 여름으로 논에 물을 대이다 숨이 차면 온다, 겨울 밤으로 숯굴에 불을 보다 온다, 투전을 하다 온다, 내기를 하다 온다.
“주우티·, 탁배기보다사 참 우에 있다.”
“흐, 헌 모금을 먹어도 어디라고, 탁배기보다사 위지. 양반이다.”
그들은 소주 고뿌를 기울일 때마다 이 모양으로 칭송을 했다. 그러면 윤 주사 맏아들의 첩도 생긋이 웃으며,
“그러먼요, 막걸리보다야 참 정하지요.”
하고 주전자를 들어 빈 잔에 다시 부으려고 하면, 대개는,
“아무렴, 막걸리에서 정기만 뽑아 낸 거 아닌가배.”
하고 한 잔씩 더 드는 편이었고, 혹 뒷일을 여물게 닦아 나가려는 사람들은,
“어디요, 그만두소, 없는 사람들이 먹구 싶다고 자꾸 먹을 수 있는교?”
하며 거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소주 이외에도, 여자는 팔 수 있는 것을 팔고, 혹은 사고, 또 뒷밭에는 뽕을 심어 봄에서 여름까지 이웃 여자들을 데려다 누에를 먹이고 하여 일 년에 이 여자의 손으로 들어오는 돈만 해도 적지 않은 것이라 한다.
둘째 아들은 맏아들보다도 더 신식 재주다. 그는 화물 자동차를 끌고 다니며 겨울이면 이 곳 사람들이 구워 내는 숯을 실어다 읍내에 내기도 하고, 나무도 실어다 팔고, 가끔 해변으로 나가면 어물을 실어다 원근 각 동네에 풀어 먹이기도 한다. 이리하여 금년 환갑이 된 윤 참봉은 매년 가을이면 벼를 칠팔백 석이나 받게 되고, 겨울 한철 동안은 온 골 사람들이 그에게 숯을 구워 바쳐야 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한쇠네도 물론 가을이면 윤 참봉에게 벼를 갖다 바치고, 겨울 한 철 동안은 쉴 새 없이 숯을 구워 바쳐야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풍년이 들면 벼 열두어 섬 나는 논마지기 주고는, 지주 앞으로 여덟 섬을 매니, 나머지 서너덧 섬으로 농비 덜고 지세 치르면 쭉지벼 한두 섬 남는 것이 고작이요, 흉년엔 물론 남는 거래야 빚뿐이다. 찬물이와 그의 아내는 여러 해 동안 타작 마당에서 이렇게 빚을 지거나 쭉지벼 한두 섬을 앞에 두고 입을 비쭉거리며 하늘을 쳐다보곤 하였다. 그러나 또 봄이 온다. 산기슭에 진달래가 붉게 피고, 깊은 골짜기에서 접동새가 피나게 울고 하면 찬물이와 그의 처도 억울과 주림의 동면을 깨고 또 한 번 들로 나가, 괭이로 흙을 파고 씨를 넣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윤 참봉은 금년 환갑 기념으로 송아지 처나 한쇠 할머니 말대로 하면 아주 착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온 동네 사람들에게 거의 공으로 노나 먹이다시피 헐값으로 처분한 쇠고기 이야기다. 얼마 전부터 병이 들어 있던 소가 지난 밤에 죽었다. 윤 참봉은 머슴과 의논하고 이것을 아주 고기로 팔 계획을 세웠다. 백정들같이 중간 이익을 보지 말고 현 시가대로 소값만 계산해서 실비로 부근의 모돈 소작인들과 이웃 사람들에게 노나 보낼 작정을 했던 것이다. 그것이 마침 이 낌새를 알고 군청 축산계에서 출장 나온 사람이 있어 윤 참봉이 평소로 이러한 출장원들을 홀대해 왔느니만큼 이 출장원이 윤 참봉네 소청을 준엄히 거절을 해서 할 수 없이 아까운 황소를 땅 속에 묻지 아니치 못했던 것이다. 출장원은 현장까지 따라가서 완전히 다 묻은 것을 보고 그제야 읍내로 들어갔다. 이렇게 되고 보니 아무리 아까운 황소지만 도리가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손해만을 볼 수도 없고 하여 머슴에게 일임한 것 같이 해 다시 그 소를 땅에서 파오게 한 것이다. 병이 들어 죽은 소요, 이미 땅 속에까지 묻히었던 것이라 파내 오긴 왔지만 빛깔이며 냄새며 도저히 속이고 팔 수는 없어 그저 그만큼 짐작할 사람은 짐작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까지는 하지 않고 대강 이리저리 처분해 넘기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한쇠 할머니가 소쿠리를 들여다볼 때마다 즐거워 못 견디는 이 거무푸레한 쇠고기도 물론 그것이다.
4
송아지 처가 돌아갚 뒤 이내 한쇠가 들어왔다.
“야야 이거 와봐라.”
할머니는 탁은히 불러 턱으로 고기 소쿠리를 가리킨다.
“아이고 누렁내야”
한쇠는 고기 소쿠리를 들여다보자 이내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
할머니는 약간 악의 띤 눈으로 잠자코 손자를 바라본다.
“어째 이렇게 누렁내가 자꾸나?”
“개사, 하면 쇠고기에 누렁내 안 나?”
할머니는 한쇠가 고기를 보고 얼마나 반가워하며 기뻐하는가를 좀 보려고 한 것이 의외로 자꾸 누렁내만 난다고 하니 잔뜩 못마땅해서 볼멘소리로 이렇 게 말한다.
“그렇지만 아주 썩은 냄새가 나요.”
“뭐?”
할머니는 악의에서 다시 증오에 가까운 무서운 얼굴로 한쇠를 똑바로 노려본다.
“할매 이거 어디가 사왔는교?”
“오 오냐 오냐 니는 먹지 마라, 내 내 혼자 먹을란다, 니는 머먹지 마라.”
할머니는 왼쪽 입 아귀와 눈 언저리를 실룩거리며 손을 내저으며 고기 소쿠리를 안고 밖으로 달아나 버렸다.
고기를 안고 뒤란까지 뛰어온 늙은이는 까닭 모를 분노에 숨이 차고 가슴이 뛰어 진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철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세상에도 죄 많고 복을 차는 버르장머리 아닌가, 윤 참봉과 같은 복 많고 하늘 아는 사람이 일껏 회갑 기념으로 헐값에 노나 준 귀불의 음식을 보고 썩은 냄새가 나다니, 오오 생각만 해도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산신님네, 산신님네, 불쌍한 우리 인간들이 산신님네 덕만 믿고 삽네다, 산신님네 태산 같은 덕만 믿고 삽네다, 우리 맏손자 한쇠는 성품이 제 애비를 닮지 않고 제 에미를 닮아 그저 뚝심이 세고 성질이 괄괄하오나 효성이 많고 슬기가 있삽네다, 모두 이 늙은 것이 망녕한 탓이오니 이 늙은 것에다 벼락을 쳐주소서, 부디부디 벼락을 쳐주소서, 모두 이 늙은 것의 망녕이읍네다, 그러하고 우리 한쇠 에미는 본래 아무 죄도 없입네다, 이 늙은 것이 하도 명주옷이 입고 싶어 뵈니 이 늙은 것의 옷을 해주려고 누에를 멕였으니 모두 이 늙은 것의 죄이올씨다. 그뿐 아니라 한쇠 애비한테 매도 많이 맞았입네다. 우리 한쇠 애비가 제 안사람께 손질한 것도 그게 첨이오며 우리 한쇠 어미는 그 때 아주 기절했다 살아났사옵네다. 산신님네, 산신님네, 부디 굽어 살펴 주옵소서.
우리 한쇠 에미에게는 아무 죄도 없사오니 그저 이 늙은 것의 머리 우에다 벼 락을 쳐주움소서.”
늙은이는 고기 소쿠리를 앞에 놓고 북쭉 산을 향해 두 손을 비비며 그저 몇 번이든지 절을 하는 것이었다. 늙은이가 한 여남은 번이나 산을 향해 절을 하고 났을 때 문득 방에서 며느리의 신음소리가 들려 나왔다.”
“아이고 아이고…….”
늙은이는 별안간 조바심이 났다. 그는 고기 소쿠리를 안고 도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 날 밤 한쇠는 꿈 속에서도 역시 그 쇠고기가 보였다. 군데군데 시커먼 잡풀들이 우묵우묵 나고 땅에서는 송장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의 할머니는 등불을 들고 서 있고 그의 어머니는 괭이로 흙을 파헤치고 있다. 이윽고 흙 속에서 희끄무레한 송장이 나왔다. 송장은 흩이불로써 쌌는데 이불은 송장 썩은 물로 제 살같이 붙어 버렸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칼로 송장의 살을 떠내기 시작하였다. 푸른 칼날에 먹물같이 검은 피가 묻어 나온다. 두 사람은 송장의 살을 오리고 또 오려서 치마에 싸고 광주리에 담는다. 광주리에 담긴 살은 그러나 쇠고기로 되어 있다. 그것은 사람의 송장이 아니라 소의 송장이란 것이다. 한쇠는 가슴이 뛰며 다리가 떨리어 들고 있던 등불을 내던진다. 소리를 지른다―— 눈을 뜬다. 방 안에는 그의 어머니가 앓고 누웠고 밖에서는 그의 할머니가 죽 솥에 불을 넣고 있다.
“야야 한쇠야 와 그카노?”
“할매.”
“니 와 자꾸 그케쌌노?”
“할매 여태 안 잤는교?”
5
이튿날 새벽이다. 곰국이 꿇었다. 할머니는 먼저 고사를 지낸다고 소반에다 곰국 한 사발을 얹어 들고 뒤란으로 가서,
“산신님네, 산신님네, 산신님네 은혜는 하늘 같삽네다마는 불쌍한 우리 인간들은 산신님네 은덕을 다 갚을 수 없삽네다, 이 국을 먹고 나거든 이 늙은 것도 소생하여 눈 언저리와 입 아귀가 실룩이는 병을 본대같이 낫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한쇠 에미는 본래 아무 죄도 없삽네다, 이 늙은 것이 웬걸 산신님네 보고 거짓말을 하오리까, 참봉 댁 뽕밭에 뽕 도둑을 간 것도 근본은 모두 이 늙은 것 때문이올씨다, 이 늙은 것의 머리에다 벼락을 쳐주읍소서, 그리고 우리 한쇠는 천품이 제 애비를 닮지 않고 제 애미를 닮아 뚝심이 세고 성미가 괄괄합네다만 효성이 놀랍습네다, 산신님네 이 곰국을 먹고 나거든 부디 병과 화는 이 집에서 다 물러나고 복과 재수만 들어와 주옵소서, 부디부디 산신님네 태산 같은 은혜만 믿삽내다.”
두 손을 비비며 몇 번이나 절을 하고 나서 그제야 안심한 듯이 그 상을 안고 천천히 앞뜰로 나왔다.
“인제 모두 오너라…… 자 한쇠도 얼른 오너라.”
할머니는 곰국을 방에 들고 와서 식구마다 한 그릇씩 놓았다.
“자아, 한쇠도 얼른 오너라.”
할머니는 곧장 한쇠를 불렀다.
“나는 싫구만요.”
한쇠는 밖에서 들어오지 않았다.
“야 야 그러지 말고 들어와 먹어 봐라, 먹어 보고 싫거든 싫다 캐라.”
“할매나 많이 잡소.”
한쇠는 역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쇠 어머니가 보다 못 해,
“이 못된 것아, 남의 애 대강 태우고 그만 들어오너라.”
하고 나무라도,
“내사 싫구만요.”
한쇠는 끝까지 버티었다. 늙은이도 한쇠가 끝까지 고집을 부릴 것 같으니까,
“오냐, 싫거든 마라, 내 다 먹을게…… 내사 없어 못 먹겠다,
병든 소면 어때? 죽은 소면 어때? 먹으니 맛만 좋고, 배 부르고 힘만 나네.”
혼자 약이 올라서 일부러 한쇠가 보란 듯이 곰 뼈다귀 하나를 들고 모조리 돌려 핥고 샅샅이 우벼 빨고 소리가 짝짝 나도록 입맛을 다시었다. 그들은 워낙 오랫동안 벼 쭉정이와 풀뿌리만 먹어 오던 차이라 처음은 곰국이란 말만 들어도 살 것 같고 솥뚜껑을 열 때 훅훅 오르는 허연 김과 구수무레한 냄새만 맡아도 침이 돌았다. 그러나 한 사발씩을 거의 다 먹어 갈 무렵에는 벌써 육초(쇠기름으로 만든 초)도 끼고 누렁 냄새도 각별나게 비위를 거슬려 주었다.
“고기는 다르던가배.”
한 그릇을 다 먹고 나서 손으로 이마의 땀을 씻으며 한쇠 어머니는 얼굴을 찡그렸다. 찬물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입맛을 다시며 곰방대를 내어 물었다. 다만 늙은이만이 끝까지 달게 굴었다. 그는 작은쇠가 먹다 남긴 국물을 들고 마시며, 아직도 한쇠를 두고 빈정대었다.
“싫거던 말지, 말아…… 내 먹지. 내 다 먹지. 내사 늙은 게 실컷 먹고 죽으면 어딴? 내사 이왕 죽느니, 골아 죽기보다 실컷 먹고 죽을란다.”
“…….”
한쇠는 한참 동안 할머니를 흘겨보고 있던 두 눈에서 눈물을 닦고 나서 잠자코 입술을 깨물며 산으로 갔다.
6
겨울 해라도 유달리 따뜻한 날씨다. 찬 기운이 서리인 솔 등에 아침 해의 금빛이 퍼붓는다. 지르렁 지르렁 ! 도끼 소리가 산골에 울리며, 저저끈 꽝! 하고 나무 넘어가는 소리가 난다.
이 나무 넘어간다
어라어라 넘어간다
분 바르고 향수 뿌린
주막집 똥갈보야
산골 숯장사라 괄시를 마라
아주까리 기름 바른 뒷골 처자
백탄 장사 총각 보고 밭 못 맨다
송아지가 혼자 나무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는 금년 스물아홉이다. 작년까지 윤 참봉 집에 머슴을 살아서 그 돈으로 금년 봄에 사십 원을 내고 처음 장가란 것을 갔다. 처음 그가 그의 아내를 이 산골에 데려왔을 때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십 원짜리 각씨 좋은데!”
“흥 가시나 풍년은 들었구마는.”
혹은,
“그렇지만 너무 예쁘다…… 송아지한테는 좀 과한데…….”
이렇게도 말했다.
제 식구를 가진다면 살림을 해야 되고 살림은 하려면 살림 얼터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송아지는 사십 원 들여 장가를 가고 십오 원에 오막 한 채를 사고 그러고는 사실 왜솥 하나 살 돈도 남지를 않았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가까이 왕래할 친척도 없고 보니 자연 의지할 곳이래야 그가 십여 년이나 머슴살이를 한 윤 참봉네 집밖에는 더 없었다. 하여 그들 내외는 안팎 없이 윤 참봉네집에 거의 살 듯 무시로 출입을 하게 되었다. 송아지가 윤 참봉네 머슴과 함께 거름을 내면 그의 처는 안에서 부엌일을 해 준다든가, 목화를 따준다든가, 송아지의 할일이 언제나 있는 거와 같이 그의 처가 해줄 일도 언제나 있었다. 이러는 동안에 윤 참봉 둘째 아들과 송아지 처와의 사이에 험한 풍설이 돌기 시작하였다. 어떤 사람은 송아지 처가 윤 참봉 집에 일을 하러 간 첫날부터 벌써 다른 일이 있었다느니, 혹은 그 이튿날부터라느니 별별 말이 다 많았다. 워낙 숙설거리니 송아지의 귀에도 그 말이 들어가지 않을 리 없었지만, 본시 위인이 태평인데다 달리 의지할 데가 없는 터이라 속으로 잔뜩 못마땅히 굴면서도 아주 발길을 뚝 잘라 끊을 수도 없었다. 혹 밥이 너무 늦어서 돌아오고 할 때 송아지가 나무라면 그의 처는,
“그래 얼른 돈 벌어 오라문…… 나도 앉아 먹게…….”
하고 도리어 뾰로통해지곤 하였다. 모두가 내 것 없는 탓이려니, 금년 겨울만 치르면 내년 봄엔 거리에서 죽더라도 이 고장을 뜨려니 그는 속으로 혼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윤 참봉 둘째 아들의 버릇을 고쳐 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한쇠가 동네에서 들은 말이 있어,
“아저씨, 윤 새령네 둘째 아들 그 버릇 좀 고쳐 주소.”
한즉 겨우 대답이란 것이,
“그래도 아이 때는 그처럼 못돼 먹을 것 같지 않았는데…….”
하는 것 이었다. 숯굴까지 와서 한쇠는 송아지를 건너다보고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 송아지 아저씨 !”
이렇게 두어 번 큰 소리를 질러 부르니 그제야 송아지는 도끼를 멈추고 서서 이쪽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다.
“오늘 우리 숯 좀 묻어 주소.”
“아배는?”
“아배는 다른 일이 좀 있어서요…… 시방 곧 건너와 주소.”
한쇠는 헛간에서 기다란 쇠갈퀴와 삽을 들고 나왔다. 송아지는 숯굴 앞으로 와서 먼저 불을 들여다보더니,
“아직 늦잖구나.”
하며 저고리 안섶을 들고 담배 쌈지를 꺼낸다. 한쇠가 쇠갈퀴로 숯굴의 불덩 이를 꺼내며,
“아저씬 흙을 덮어 주소, 내가 꺼낼게…….”
“한 대 피우고 천천히 하자꾸나.”
하고 송아지는 곰방대를 입에 문 채 삽을 들고 일어선다.
참숯 가운데도 금탄과 백탄이 있어, 이 백탄은 벌건 불덩어리를 쇠갈퀴로 꺼낸 뒤 흙을 덮어 문질러서 껍질을 한 번 더 벗겨야 하기 때문에 여간 까다롭지 않다.
“나는 이 백탄은 질색이다.”
송아지는 삽으로 흙을 뜨며 이렇게 말한다.
“와요?”
“성이 가셔서 어디 해먹 겠더나?”
조금 뒤에 한쇠가,
“참 아저씨, 어젯밤 저 홍하산 불 좀 봤는교?”
한즉,
“시방도 저기 타고 있네.”
하며 허리를 편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멍멍히 서서 멀리 흰 연기가 안개처럼 이는 홍하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이 때다. 깜둥 강아지 한 마리가 그들이 숯을 묻고 있는 헛간 앞에 알찐하더니 어디론지 달아나 버린다. 이것을 본 한쇠는 돌연히 쇠갈퀴를 내던지고 강아지 뒤를 쫓아 내달은다. 조금 뒤에 한쇠가 강아지를 붙잡지 못하고 숨이 씨근덕거리며 돌아오니 삽을 짚고 서서 이것을 바라보고 있던 송아지는 빙그레 웃으며,
“인제 아주 집에 안 오나?”
한다.
“…….”
한쇠는 대답 대신 고개를 둘렀다.
금년 봄이다. 여러 해를 두고 늘 고기 타령을 하던 그의 할머니가 봄철 들면서부터 그만 얼굴이 비틀어져 버렸다. 의원에게 물어 보니 늙은 사람이 여러 해 동안 너무 자양 섭취를 못 해서 그러니 먼저 보신을 많이 도우고 나서 침을 맞아 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한쇠 어머니는 며칠 동안 궁리를 하고 나더니 뒷골에서 이십 리나 되는 친정엘 가서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왔다.
“아이고 강아지는 웬 걸 그래 얻어 오노?”
하고 시어머니가 반색을 한즉,
“…….”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바라보며 비죽이 웃었다.
“엄마 감둥이 내 다오.”
하고 작은쇠가 감둥이를 안고 달아나려고 한즉,
“강아지 너무 주물르지 마라, 얼른 안 큰다.”
하고 그 어머니는 작은쇠를 나무랐다. 그러나 사람도 굶는 형편에 강아지 먹일 게 있을 리 없었다. 한쇠 어머니는 한 끼에 죽 한 그릇도 채 못 돌아오는 자리의 요식을 강아지와 노났다.
“강아지 멕일려다 사람 먼저 죽겠다.”
하고 늙은이는 며느리의 하는 양을 못마땅히 여겼으나 강아지는 또 강아지대로 좀처럼 살이 붙지 않는다. 이것은 작은쇠의 주무른 탓으로 작은쇠만 여러 번 매를 맞곤 하였다. 그러한 즈음 하루는 송아지네가 와서 보고 살갑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요새 참봉네 댁에서는 큰 개 한 마리를 잡아먹어 버리고 그 대신 강아지를 한 마리 더 두어야 되겠다고 애를 쓰고 구하는 중이니 이 때에 그만 이 강아지를 ‘선사품’으로 갖다 드리면 여간 생색이 나지 않을 것이며 선사한 보람도 있을 것이라고 전하자 늙은이도 그럴싸해 구는 것을 한쇠 어머니가 염량 없는 소리 말라고 거절해 버렸다. 그뒤에도 또 이웃집 여편네들이 와서 송아지네와 비슷한 말을 해서 한쇠 어머니는 그런 게 아니라 이건 어디 긴히 ‘쓸 데가’ 있는 게라고 거절을 하였다. 이리하여 강아지는 역시 한쇠 어머니의 죽그릇과 작은쇠의 똥 누는 것만 바라고 말라 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 뒤 강아지는 마을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집에서 굶고 으글뜨려 누웠다가도 마을을 나가면 그래도 어디서 무엇을 주워 먹고 들어오는지 번번이 배가 불룩하다. 혹은 하루씩 묵어 들어올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이삼 일씩 눈에 안 뜨이기도 하였다. 한쇠 어머니는 찬물이를 보고,
“인제 어디서든지 보는 대로 잡아 들어오소.”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찬물이는 강아지가 자기 집 뜰 아래까지 와도 가만히 바라보며 곰방대만 빨고 있었다. 한번은 집에 온 것을 한쇠 어머니가 나무 막대를 찾는 동안 어느덧 작은쇠가 품에 안고 얼른 놓아 주지를 않아 놓기만 하면 후려갈기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 눈치를 챈 강아지는 작은쇠의 코만 한 번 핥아주곤 어느 새 수채구멍으로 빠져 달아나 버렸다. 이 때도 작은쇠가 감둥이 대신 매를 맞게 되었다. 어느 날은 송아지네가 와서,
“요새는 강아지가 참봉댁에 와 아주 살데요, 암만 가라고 쫓아도 사람의 눈치만 할끔 보곤 뒤란으로 가 숨어 버려요, 그래 참봉댁 할머니는 그러지 말고 강아지 값을 치러 드리라더군요.”
하고 슬그머니 한쇠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었다. 한쇠 어머니는 골난 목소리로,
“팔 걸 이십 리나 허둥지둥 가서 구해 왔을라고.”
하였다. 한쇠는 강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뛰어 한참 동안 쇠갈퀴를 잡은 채 정신 없이 먼 산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한 판에 벌겋게 벗겨진 이마 위에 탕건을 쓰고 누런 명주 바지 저고리를 입은 윤 참봉이 두꺼비처럼 엉금엉금 기어올라온다.
“참봉 어른 나오시능교?”
송아지는 삽을 잡았던 손을 문지르며 그 앞에 허리를 굽신한다. 윤 참봉은 송아지의 대답에 인사를 하는 대신,
“니 아비는?”
하고 그 음숙하고 안광스런 두 눈으로 한쇠를 바라본다.
“편찮읍죠.”
“…….”
윤 참봉은 잠자코 한쇠를 한참 노려본다. 그의 눈은 점점 모가 나기 시작하고 법령(法令: 양쪽 광다뼈와 코 사이로부터 입가를 지나 내려오는 굽은 선) 위에 얹힌 누렁 사마귀는 꿈적거리는 것 같았다.
“이번 숯만 내라.”
그는 드디어 최후의 선고를 내렸다. 한쇠는 말의 뜻을 잘 알았다. 한쇠는 두어 번 장에 숯을 내다 팔다가 그에게 들키었다. 그들이 굽는 숯은 윤 참봉네 빚을 갚아 나가는 방법으로 모조리 윤 참봉에게 내어야 하게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차 이에 위반을 하였으니 지금부터는 숯을 굽지 말라는 것이다. 한쇠는 얼굴을 들어 윤 참봉의 얼굴에 훌훌 뛰고 있는 사마귀를 바라보았다. 이 때 퍼런 콧덩이를 입에 물은 채 작은쇠가 올라온다.
“성아 집에 오나.”
“와? 엄마 아이 낳았나?”
“아이 낳아서 죽았다.”
“아이가 죽어?”
“아이 죽어서 아배가 안고 갔다.”
하고는 콧덩이를 도로 콧구멍으로 빨아들이고 나서,
“할매가 아파…….”
할 즈음 조금 전에 나타났다가 그 새 어디 가 숨어 있던 감둥이가 다시 나타났다. 감둥이는 조그만 꼬리를 치며 작은쇠 곁으로 살랑살랑 걸어왔다. 작은쇠는 하던 이야기도 잊어버린 채 기암을 하고 뛰어가 감둥이를 안는다. 작은쇠는 기쁨으로 발갛게 된 두 뺨을 번갈아 감둥이의 목에다 문지르며,
“감둥아 니 어디 갔던? 니 윤 새령네 집에 갔던? 감둥아 니는 내 안 보고 싶던?”
작은쇠는 윤 참봉 앞에서 윤 새령이라 불러서는 그에 대한 욕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이런 말을 한다. 강아지는 작은쇠의 낯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감둥아 내 안고 우리 집에 가, 엉이, 배고파? 배고프면 내 곧 똥 눌게…… 곰국 줄게. 으냐 으냐 엄마가 때리면 말려 줄게 인저 다시 윤 새령네 집에 가지 마. 엉이.”
작은쇠가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아나 이놈아!”
하고 윤 참봉이 소리를 질렀다. 작은쇠가 놀라 고개를 들자 윤 참봉의 높게 쳐들었던 긴 담뱃대의 커다란 쇠꼭지가 작은쇠의 머리 위에 날카롭게 내렸다. 담뱃대는 한가운데가 ‘자작근’ 분질러져 한 동강은 숯굴 위로 푸르르 날랐다. 작은쇠의 이마 위로 벌건 피가 흘러내린다. 작은쇠는 강아지를 놓아 버리고 두 손으로 머리를 얼싸 안으며 땅에 주저앉아 버린다. 이와 거의 동시에 한쇠는 불에 걸쳐 두었던 쇠갈퀴를 잡아들었다. 쇠갈퀴를 잡은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었다. 그리하여 그 벌겋게 달은 쇠갈퀴가 막 윤 참봉의 누렁 사마귀를 찌르려는 순간 송아지는 한쇠의 손을 잡았다.
“아서, 아서.”
7
한쇠가 집을 나온 뒤다. 곰국 한 그릇을 먹고 난 한쇠 어머니는 조금 쉬어서 검붉은 핏덩이와 죽은 아이 하나를 낳았다. 늙은이는 소반에다 냉수 한 그릇을 얹고 산신을 빌려니 웬 셈인지 머리가 몹시 아프고 정신이 흐리멍덩하였다.
“싸 쌈신님네, 쌈신님께 빕 내다.”
겨우 손을 좀 비비고 절이라고 몇 번 하고 나서 해산국을 뜨러나가 솥뚜껑을 밀치니 국에는 어느덧 육초가 쫙 덮이고 솥에서 혹 끼치는 누렁 냄새가 소스라치게 거슬리었다.
“이거 별일이다. 금시 그렇게 좋던 국이 별안간 웬일일까?”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간신히 육초를 헤치고 국 한 그릇을 떠서 방으로 들여갔다. 골치가 벌룸거리고 속이 욱신거리며 곧장 구역질이 나려고 하였다. 그는 곧 쓰러지듯이 방구석에 드러누워 버렸다. 죽은 아이와 핏덩이를 산기슭에다 아무렇게나 묻고 돌아온 찬물이 역시 골치가 벌룸거리고 속이 뒤틀려 견딜 수 없었다. 한쇠가 피투성이 된 작은쇠를 등에 업고 집에까지 왔을 때 집에
서는 사람 앓는 소리가 들리었다.
“아야 아야 한쇠야이 한쇠야…….”
한쇠는 작은쇠를 업은 채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그의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드러누운 채 두 눈에 야릇한 광채를 띠며 천동같이 앓고 있다.
“아야 아야 한쇠야 한쇠야이…….”
순간 한쇠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이고.”
엉겁결에 그는 목이 째지도록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다음 순간,
“엄마…….”
그는 본능적으로 그의 어머니에게로 뛰어들었다.
“엄마 와 이러노?”
“엄마, 엄마, 엄마!”
한쇠는 어머니의 손을 흔들며 목을 놓고 울었다. 한쇠의 울음 소리에 찬물이는 억지로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그는 세 사람 가운데서는 비교적 중독이 가벼운 모양이었다.
“한쇠야 느 엄마가 어떠누?”
찬물이는 이렇게 물었다. 이 때 한쇠 어머니는 그 야릇한 광채가 떠도는 눈을 열어 한쇠와 찬물이를 보았다.
그러고는 한쇠의 손을 잡으며,
“한쇠야!”
하고 불렀다.
“엄마, 엄마.”
한쇠는 두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서 어머니의 얼굴을 똑똑히 바라볼 수도 없었다.
“할매는?”
“할매는 괜찮다, 할매는 여기 누워있다.”
“…….”
“…….‘
한참 동안 어미와 아들은 서로 마주 바라보았다.
“한쇠야, 나는 인저 죽는다. 할매는 부디 니가 잘 봐드려라…….”
“엄마, 안 죽는다, 엄마 엄마!”
한쇠는 미친 것처럼 고함을 질렀다.
한쇠 어머니는 또 조용히 눈을 열어 한쇠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더니,
“저 어린 게…… 끌, 끌, 끌.”
하고 간장이 녹아 내릴 듯이 혀를 찼다. 그러고는 눈을 감아 버린다.
“엄마, 엄마, 엄마.”
한쇠는 목이 째지도록 자꾸 ‘엄마’만 불렀다. ‘엄마’의 눈 언저리에 경련이 일어나며, 반쯤 눈이 열리다 말고 목에서 딸꾹질 소리가 났다.
“엄마! 엄마! 엄마!”
운문산 뒷골에는 오후 해가 절반이다. 낮에 짐짓한 해가 산마루에 걸리는가 하면 어느덧 황혼이 시작된다.
“아야! 사람 살려라!:”
골목 골목이 죽어 가는 사람들의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온다. 윤 참봉네 죽은 쇠고기를 먹은 사람은 한두 집이 아니었고 먹은 사람은 거개 중독이 들렸다. 이리하여 집집마다 죽어 가는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가 밤이 깊어 갈수록 산골에 울리었다.
“이 동네 사람 다 죽는다!”
누군지 이렇게 외치며 골목을 내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와 함께 바람 소리도 우우하고 들려 왔다.
산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마을로 내려왔다. 숯굴마다 불이 났다.
“저 불 봐라!”
“야! 불났다!”
사람들은 이렇게 소리만 지를 뿐 아무도 불을 끄러 산으로 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중에는 산이 비어서 숯굴의 불 보는 사람이 없는데다 바람까지 불고 해서 절로 불이 났을 게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혹은 일부러 누가 질렀을 게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불은 삽시간에 뻗어 합하고 합친 불은 다시 골을 건너고 산등을 넘었다.
“저 불 봐라, 저 불 봐라!”
“바람이 자꾸 세어 가는군!”
사람들은 골목마다 우글거렸다.
어느덧 그들은 불과 바람과 같이 소리를 지르며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입입 이 불과 바람과 그리고 육독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은 윤 참봉이 병들어 죽은 소를 그대로 속이고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다는 둥, 한 번 소 공동묘지에 갖다 묻었던 것을 도로 파내다가 팔았다는 둥, 이말 저말 갈피없이 떠들어 대었으나 어쨌든 육독이 든 것은 윤 참붕네 쇠고기 탓이라는 생각은 모두 마찬가지들이었다. 게다가 작은쇠가 ‘윤 새령’이라 했다가 그의 대꼭지에 맞아서 머리가 뚫어졌다는 것과 그의 둘째 아들이 송아지의 처를 화물차에 싣고 어디론지 달아나 버렸다는 이야기들도 쑥설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아까,
“이 동네 사람 다 죽는다.”
고 외치고 골목을 돌아다니던 사람이 바로 그 송아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나 엊그제부터 홍하산에 산화가 났더라니.”
한 노인이 이렇게 말하자 또 한 사람이,
“홍하산에 산화가 나면 난리 가 난다지요?”
하고 물었다.
“난리가 안 나면 큰 병이 온다지?”
그러자 또 한 사람이,
“그보다 이 몇 해 동안 통히 산재를 안 지냈거든요.”
이렇게 말하자 또 다른 사람이 이에 덩달아,
“옛날 당산제를 꼭꼭 지낼 땐 이런 변이 없거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람도 점점 그 미친 날개를 떨치고 불은 산에서 산으로 뻗어나갔다.
“우———.”
“우———.”
불 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마을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는 한 곳으로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바라보았다. 바로 뒷산의 불 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골목의 비명 소리도 잠깐 잊은 듯 그들은 멍멍히 서서 먼산의 큰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