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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북유럽 관광지에 온 듯…한폭의 그림엽서 |
영광 백수읍 해안 노을길 서해 일몰 포인트로 해질녘 관광객들 쇄도 인근 원불교 영산성지ㆍ불교 도래지도 유명 |
입력시간 : 2012. 10.12.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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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길이다. 서해안에서 보기 드문 풍광이다. 그 풍광이 동해안에 버금간다. 해질 무렵 낙조도 명물이다.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국 아름다운 길 100선을 꼽은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아홉 번째로 이 길을 꼽았다. 지난해엔 대한민국 자연경관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영광 해안노을길이다. 길은 원불교 성지가 있는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에서 시작된다. 이곳 영산성지에서 모래미해변, 365계단, 노을전시관과 해수온천탕을 거쳐 동백ㆍ답동마을까지 이어진다. 거리가 26㎞ 가량 된다.
풍광 못지않게 눈여겨 볼만한 곳도 부지기수다. 의미도 남다르다. 영산성지는 우리나라 4대 종교의 하나인 원불교의 발상지. 박중빈 대종사가 큰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그 흔적을 정관평(貞觀坪)에서 먼저 만난다. 정관평은 대종사가 1918년 제자 9명과 함께 일군 간척지. 이것이 원불교 창립의 물적 자산이 됐다.
성지로 가는 길도 멋스럽다. 도로변 나무가 아담한 숲 터널을 이루고 있다. '다른 세상'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이 숲터널을 지나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태어난 집이 있다. 그가 깨달음을 얻은 곳도 있다. 검소하면서도 소박한 원불교 특유의 문화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해안을 따라 노을길을 걷는다. 철 지난 해당화가 반긴다. 열매와 어우러진 꽃이 애틋하다.
저만치 법성포도 보인다. 백제에 불교가 처음 전해졌던 포구다. 침류왕 원년(서기 384년)에 인도승려 마라난타존자가 불교를 전하면서 발을 디딘 곳이다.
법성포의 지명도 여기서 유래됐다. 법(法)은 불법을, 성(聖)은 성인 마라난타를 가리킨다. 또 마라난타가 처음 지은 절이 불갑사. 절 이름에 부처 불(佛), 첫째 갑(甲)을 쓴 것도 이런 연유다.
마라난타상의 위용을 이 길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전시관과 유물관, 부용루, 팔각정도 눈에 들어온다. 한국식 사원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간다라의 불교조각과 건축양식을 본떠 만들었다. 불교유적이라기 보다 공원 같은 곳이다.
원불교 영산성지와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를 연달아 보며 걷는 발길이 더 여유롭다. 내 마음도 넉넉해진다.
모래미해변 앞에 옥당박물관 표지판이 서 있다. 원불교에서 폐교를 개조해 만든 박물관이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쓰였던 토기와 석기가 전시돼 있다. 동국통보, 해동통보에서 1원, 5원짜리 지폐까지 화폐의 역사도 알 수 있다. 길을 걷다가 잠시 쉬어가기에 맞춤이다. 관람료도 없다.
모래미해변을 지나자 길은 이제 넓은 칠산바다와 만난다. 시야도 탁 트인다. 해안절벽도 아찔하다. 평지가 많은 서해안에 어떻게 이런 절벽 지형이 발달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절벽과 바닷물이 만나는 해안에 기암괴석도 솟아 있다. 크고 작은 암초도 바다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 너머로 칠산도, 석만도, 안마도, 송이도, 소각이도, 대각이도 등이 떠 있다.
365계단이 놓여 있다. 나무계단이 바닷가까지 이어진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데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아찔한 기분까지 든다. 바다를 최대한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산자락에 365전망대도 세워져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해안도로와 데크 길, 바다 풍광이 멋스럽다. 부러 발품을 팔아 올라볼만 하다.
지금까지의 도로에서 살짝 벗어나 나무 데크가 예쁘게 놓여 있다. 마음 놓고 걸으며 바다와 섬 풍광을 감상하라는 배려다. 데크 덕분에 지나다니는 자동차를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걸을 수 있다. 바다풍광도 더 넉넉하게 다가선다. 나무 데크는 해안을 따라 2㎞ 정도 이어진다.
여기서 노을전시관을 거쳐 동백마을로 가는 길은 해안노을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코스다. 길은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진다. 늠름하게 선 절벽 위를 지나기도 한다.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걷기에 좋다. 걷기여행의 묘미도 느낄 수 있다.
바다에 옹기종기 떠 있는 일곱 개의 섬, 칠산도도 여기서 제대로 볼 수 있다. 앞바다에 떠있는 섬들도 손에 잡힐 것 같다. 노을전시관과 해수온천랜드도 이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노을전망대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가서 만나는 동백마을도 소박하다. 영화 '마파도'의 배경이 됐던 마을이다. 영화 세트로 쓰인 몇 채의 집이 지금도 남아있다.
바다도 더 가까워졌다. 바다를 배경으로 일렁이는 억새도 그림 같다. 마을에 들어선 쉐이리펜션은 한 편의 동화 속 세상 같다.
해질 무렵 노을도 황홀하다. 해안길 어디서나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해넘이의 감동과 여운도 오래도록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