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명곤붕(北溟鯤鵬)-1 통권 111
북명(北溟)에 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은 곤(鯤)이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인지 모른다. 변해서 새가 되면 붕(鵬)이라고 하는데, 붕의 등은 몇천 리인지 알지 못한다. 세차게 날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곧 남명(南溟)으로 옮겨간다. 남명은 천지다. 붕이 남명으로 갈 때는 물 3천리를 치고, 바람을 타고 오르기를 9만 리나 하여, 여섯 달을 난 뒤에 쉰다.
라혼은 백호대수영과 서해대수영을 합하여 대수영(大水營)만을 남겼다. 백호는 서방을 지키는 신이고, 서해는 서쪽 바다라는 뜻이니 천자로부터 모든 바다를 관장하는 해도대원수로 인정받았으니 서쪽을 의미하는 이름을 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라혼은 남상 청해진에서 바다의 패자임을 선포하고 뱃머리를 인시드 대륙으로 향하여 인시드 남쪽 해안과 동쪽 해안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 후 전 대수영의 세력을 한꺼번에 동원해 그곳에 들끓던 해적들을 토벌했다. 그리고 한 달 후 토금전장에서 마련한 상품들을 배에 실어와 인시드 남주의 항구에 하역해 지난 3년 간 막혔던 바닷길이 그전보다 안전해졌음을 증명했다. 라혼은 자신의 피어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천패방(天覇邦)을 서해좌수사(西海左水使)에 임명하고 백호대함 한 척을 배치하여 인시드 남쪽 바다와 동쪽 바다 그리고 남상의 서쪽까지 포함한 해역을 맡겼다. 즉, 전 서해대수영의 수군들을 반란 이전의 본래 임무로 복귀시켜버린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바다의 패자임을 선언한 백호나한의 시선은 해남군도로 향해 있었다.
“비어 있는 섬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군.”
조정의 방침으로 남상엔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믿어왔었다. 그러나 대주원과 타가선, 모석이 과거 대선제국의 황실이 남상을 지배할 때 건설된 마을과 성 등을 정찰했는데,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다행히 규모가 큰 마을이 얼마 없어 라혼의 대군에 맞설 만한 세력은 없었지만 오랫동안 대륙의 원주 조정과 상관없이 살아온 백성들이라 언제 무슨 이유로 봉기를 일으킬지 알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라혼의 군사들은 정복자이자 침략자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군사들의 창검의 서슬 퍼런 위세에 숨죽이고 있겠지만 마음속으로 승복하지 않은 그들을 어찌 다루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군, 이들을 그냥 두기엔 문제가 많습니다. 그들은 조정의 백성이 아니라 도(盜)의 무리입니다.”
도(盜)의 무리란 도둑을 뜻하지만, 본래 나라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말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지 않고 어떠한 부역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스스로 원해서 그런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변경 지역이어서 나라가 관리를 포기하거나, 그 위치가 워낙 오지에 있어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을 말했다. 나라에 죄를 지은 자들이 그들 틈에 숨거나 스스로 목숨을 스스로 챙겨야 하다 보니 거칠고 배타적인 습성을 갖게 되는데 나라가 혼란해지만 그들의 수가 늘어 큰 골치 덩어리가 되기 일쑤였다. 도의 무리들의 가장 큰 특징은 나라의 법 밖에 있다 보니 법을 가벼이 여긴다는 것이었다. 특히 지배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를 특별 예우하는 법이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데 법의 기강을 세운다며 아무도 원하지 않는 처벌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봉기를 불사할 정도로 반발했다. 그러나 그대로 두면 나라의 법 안에 살고 있는 백성들과 다툼이 있거나 하여 살인, 방화 등의 중죄를 저질러 크게 문제되었을 경우 백성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나라에서 법에 따라 처벌하려 할 것이지만 무리 속의 연대를 중시 여기는 도의 무리는 국법보다 죄인이 자신들의 일원이라는 것을 더욱 중시해 끝까지 죄인을 보호한다. 그리고 그들이 존재하는 곳은 조정의 힘이 미약한 곳이어서 그대로 골치 덩어리로 남는 것이다.
“다음에 벌일 일은 대군이 필요 없이 함대에 속한 수군만으로 충분하다. 도(盜)라고 해서 법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니, 그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고 영역을 분명히 해라! 대주원과 타가선에게 마을이 몇 개가 있고 사람이 얼마나 사는지 조사한 후 각 마을마다 우리에게 대항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알아서 살아가도록 한다는 약속을 해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하지만 조정의 권위를 무시하는 이들인데 그들이니 그것마저 거부한다면 어찌합니까?”
라혼의 결론에 대주원이 우려 섞인 어투로 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고학이 답했다.
“그것은 대참장께서 재량을 가지고 하시면 됩니다. 단지 우리가 꼭 얻어야 할 땅이나 성은 강제로 점령하시고 그 밖의 지역은 그들의 재산과 영역을 인정해주면 됩니다. 어차피 남상 대륙을 개간하는 것은 조정의 방침에 어긋나는 일이니 우리와 그들이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주군께 한 가지 주청할 것이 있습니다.”
“말하라!”
“남례성에서 진토인 부족에게 그랬듯이 그들을 상대로 모병을 하는 겁니다.”
고학의 의견은 이러했다. 아무리 법이 없는 도의 무리라고 하지만 무리 안에는 많은 불문율과 규칙들이 있었다. 그 대부분은 무리의 연대를 강조하거나 재산 소유권에 관한 것들이었다. 재산의 소유권이 있다면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있게 마련이므로 그들을 받아들이면 될 것이고 외부에 대한 동경을 가진 자도 있을 것이니 그들 또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군의 위업은 남아의 웅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1천명 중 단 한 명이라도 주군의 군사가 된다면 그들이 갖는 효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습니다.”
“….”
한마디로 백호나한을 대영웅으로 만들자는 말이었다. 라혼은 고학의 의견에 턱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청해진 앞바다에서 관함식(觀艦式)을 열기로 하고 남상 전역에서 사람들을 모으기로 했다. 관함식은 함선들을 모아놓고 그 위용(威容)을 검열하는 의식으로, 바다의 열병식이었다.
관함식 행사가 열리던 날, 남상 전역에서 초대된 인사 중 3분의 1이 라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뜻밖의 일이 벌어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그 뒤로도 귀순을 청하는 세력들이 줄을 이어 라혼이 남상 태회진에 발을 디딘 지 3개월 만에 남상 전역 태반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라혼이 그들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 뒤 재산과 영역을 명확히 하며 군사까지 모집한다는 제안을 하자 자신들이 어찌 다루어질까 불안해하던 사람들이 감복해 마지않았고 서해대수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세력들은 자신들이 반역자로 다뤄지는 두려움이 해소되어 서해대수영에게 한 것과 같이 대수영에서 어떤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충성을 맹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수인 조정에 대한 반감이 희박한 세력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게 라혼은 5만호, 인구 30만에 이르는 세력을 얻을 수 있었다. 남상은 과연 서해대수영의 어조목이 새로 나라를 여는 야망을 품을 만한 저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