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자 눈 앞에 펼쳐지는 절경. 아, 바다여~~
섬 안 쪽으로 깊숙이 들어 온 바닷가 절벽 따라 물이 부서집니다. 저 짙푸른 바다 멀리서 퍼져 들어오는 파도는 절벽에 부딪히며 휘돌아 이리 철썩 저리 철썩, 바다를 뒤엎으며 산산이 부서집니다. 그 아픔은 푸른 바다를 깨워, 품고 있던 바닷물의 색을 다 드러내게 합니다. 아, 파도야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한동안 탄성 밖에는 안 나오더군요. 이건 사진으로는 도저히 그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없음입니다. 직접 봐야 합니다. 직접...
그 바닷길 따라 탐방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려수도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조성한 대매물도 해안길. 코스는 당금마을 - 매물도 분교 - 갈림길 쉼터 - 장군봉 - 꼬들개 - 대항마을의 5.2킬로미터.
학교 운동장 가에 핀 꽃. 오늘 숲 해설가가 참석 하지 않아서 이 꽃이 무슨 꽃인지 '갈챠'주는 사람이 없네요.
점심 시간이 다가오는 탓에 탐방로 반대방향인 전망대까지만 가기로 합니다. 마을 양새밭(텃밭)엔 방풍이 마치 시금치 자라 듯 그렇게 자라고 있습니다. 방풍은 중풍 예방에 특효라는 나물입니다. 약간 쌉싸름한 맛이 나긴 하지만 봄에 입맛 돌게 하는 나물이지요. 데쳐서 된장에도 무치고, 간장에도 무치고 소금에 무치기도 하는데, 어떻게 해도 맛있습니다.
한국전력 앞 전망대에 오릅니다. 이 곳에 올라가면 아까 운동장 앞에 펼쳐졌던 비경이 다시 한 번 감동으로 다가오고, 넓디 넓은 태평양이 사방으로 트입니다.
저 바다..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자꾸 자꾸 가 보고 싶어질 듯합니다.
여기서도 보이네요. 소지도.
이야, 좋다. 숨을 헉헉거리고 올라오면서도 눈 앞에 펼쳐지는 비경에 힘들다 소리는 쏙 들어가고 감탄사만 절로 나옵니다.
여기 저기 카메라 들이 댈 곳이 많은 곳.
이야, 자유가 보인다. 저 푸른 망망대해를 훨훨 날아 가고 싶은 젊은 청년. 아, 자전거 갖고 올 걸...
단체 사진 찍고 개인 사진도 찍으며 놀고 있는데, 점심 식사 다 차려 놓았다고 빨리 내려오라는 전화가 자꾸 옵니다. 할 수 없이 내려갑니다. 나무계단이 빙글빙글 굽이쳐 흐르는 전망대. 그 너머로 철썩이는 파도.
계단마저 예뼈 보이는 건 덤입니다.
너도나도 희희낙낙. 좋은 사람들끼리 하루 종일 멋진 풍경 보고 서로 웃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행복한 오늘입니다.
가을 하늘은 자꾸 깊어가는데, 발 아래 풀잎은 자꾸 시들어가네요. 시들어가며 깊어가는 건가. 내년에 다시 이 자리에 혹은 더 넓은 자리로 번져 피어 날 풀씨들이 영역을 넓히려 자꾸 옷과 신발에 달라 붙습니다. 추운 겨울을 나려면 몸 안의 물기를 다 말려야 할 겁니다. 그러려니 한 여름 한껏 물 올려 푸르렀던 몸뚱이의 물기를 다시 다 빼야할테고. 그러니 저렇게 쪼글쪼글 말라가는 거겠죠. 우리가 살아낼 몇 십년의 인생을 풀들은 일 년 동안 살아냅니다. 기특한 것들.
노을정원 민박집. 정원을 예쁘게 꾸며 놓았는데, 거기 앉아서 보는 노을이 아주 장관이랍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한껏 멋을 부리고 우리를 맞이합니다. 자신도 멋을 부렸지만, 밥상에도 그 멋은 한껏 피어납니다. 밭에서 마악 뜯어다 멸치와 무친 쪽파, 방풍나물, 톳나물, 해시리, 오이부추 생채, 그리고 '까지'나물. 까지나물은 포도씨유에 멸치와 마늘을 볶다가 가지를 넣어 덖고 물을 조금 부어 뚜껑 덮고 푸욱 익혔답니다. 가지를 반절만 냈는데도 어찌나 부드럽고 맛이 있던지. 차려진 나물 반찬을 다 먹고도 더 달라 해서 먹고, 그나마 남은 나물 버무린 양푼에 밥을 더 넣어 비벼서 너도 나도 맛있게 한 숟가락씩 더 먹었답니다.
며칠 째 파도가 높아 고기 잡으러 가질 못했다고 회 대신 내어 주신 해산물. 돌멍게, 소라, 전복, 굴. 싱싱하기가 지금이라도 바다에 넣어주면 뽈뽈거리고 움직일 것 같더군요. 굴은 원래 아직 먹는 철이 아닌데, 못 먹을 때는 칼을 대면 더러운 물이 나온다지요. 자연산 굴은 저렇게 희여멀건 회색이며 깨끗하니 먹어도 된다는 주인 아주머니 말씀. 아린 맛 없이 맛있습니다.
저 안쪽부터 김치, 해시리, 까지나물, 방풍나물, 톳무침, 멸치 쪽파 무침, 오이생채. 사진 찍은 다음에 주신 매운탕은 국물이 아주 시원한 자연의 단맛이었지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정성껏 마련한 매물도 밥상입니다. 참 맛나게 먹었습니다.
1시가 넘은 시간이었기에 다들 시장하기도 하고 맛있어 보이기도 하여 자리에 앉자마자 젓가락부터 들고 먹기 시작합니다.
싱크대 앞에 서 계신 분이 노을정원 주인 아주머니입니다. 이 민박집은 방이 세 개 있는데, 통째로 다 빌리는데 20만원이라네요. 사실 통섬의 마음은 현지에서 현지의 것으로 만든 밥을 먹고, 그 곳 분들에게 경제적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자 주의라서 도시락 대신 주민들께 점심을 부탁합니다. 이미 피서철이 지난 한적한 섬에서 우리 밥상 차려주겠다는 분들이 없었다지요. 흔쾌히 허락을 해주셔서 덕분에 맛있는 밥을 먹었습니다.
한 달만에 마련한 자리이니 건배가 빠질 수 없습니다. 즐거운 섬탐방을 위하여!!!
노을정원의 잘 정돈된 정원입니다.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르는 모임인지라 섬에서의 탐방은 힘들지 않은 코스로 합니다. 그래서 당금마을에서 대항마을까지만 코스로 잡았더군요. 좀 더 걷기를 원하는 사람은 따로 움직이기로 합니다. 대매물도 해안길 코스가 가 보고 싶은 저와 사진을 찍으실 작가님과 젊은 청년 그리고 통영이 좋아서 못 떠나고 계신다는 교회 목사님까지 네 사람은 대매물도 해안길을 걷기로 합니다.
다시 마을 뒤 학교로 올라가서 학교 옆으로 조성한 길을 걷습니다. 조금만 올라가면 드넓은 태평양이 반기는 섬. 대매물도입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길을 조성하였는데, 아직 안내판은 설치를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길이 나 있으니 길 따라 걷습니다.
이 길은 한산도 역사길과 달리 길 가는 내내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돌길도 만나고 흙길도 만나고 염소도 만나는 길.
해풍이 소나무를 죽이는 건 아닐텐데, 푸르름 잃어가는 소나무의 아픔을 전해듣습니다. 더 많은 소나무들이 다치기 전에 방제를 해야 하는건지. 자기네들이 스스로 자력갱생해야 하는 건지.
길은 제주도 올레길 같은 분위기로 이어집니다. 좁은 오솔길 따라 아직은 낯선 사람들이 길을 걷습니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젊은 청년은 앞으로의 날을 걱정하고, 이미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사람은 그에 알맞는 조언을 해주지요. 돈을 좇아 일자리 구하지 말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통영에서 목회를 하고 계신 목사님은 통영이 좋아서 떠나기 싫다 하십니다. 20년 전 통영에 놀러 왔다가 눌러 앉은 사진작가는 아직도 여행중이라 합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지만 지금은 여행을 더 계속 하고 싶다고. 문득 천상병 시인이 생각납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했던. 삶이 소풍이라는 생각을 갖고 산다면 하루하루 참 즐겁고 신날 겁니다.
대항마을에서만 장군봉을 올랐던 사람에게 이 길은 낯선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길이 있으니 갈 수 있습니다. 어느 인부의 장갑 한 짝이 주인을 기다리며 다소곳이 누워있는 길. 이 길을 만들어주신 분의 땀은 우리의 오늘 행보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내가 만든 길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입니다.
저 길을 돌아 돌아 올라가면 또 어떤 비경이 우릴 기다릴까요.
저 멀리 홍도가 보이고 그 너머로 대마도도 보입니다. 일곱 개의 돌섬 등가도도 보이고. 우리나라 제일 남동쪽 끝. 그 바다를 보며 서서 한동안 탄성만 질러 댑니다. 도대체 매물도까지 와서 이 걸 안 보고 가다니...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나중에 배 좀 아프겠는 걸 하면서..
너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넋을 놓은 사람들. 오밀조밀한 섬들 가득한 잔잔한 통영 앞바다와는 또 다른 바다의 모습입니다.
대매물도 섬의 비경은 곳곳에 숨겨져 있어서 걷는 내내 눈 가는 곳곳이 발걸음을 잡았다 재촉했다 합니다.
장군봉을 향해서 다시 올라갑니다. 도룡룡 닮은 뱀이 낯선 이의 발걸음에 놀라 휙휙 도망갑니다. 도룡룡은 물이 있어야 사는데 이 뱀은 물 없이도 산다네요. 장지뱀이라고. 가느다란 몸통에 날센 다리를 가졌습니다.
엄태웅 사이다 광고 찍을 때, 손으로 이렇게 풀을 쓰다듬는 거 나오잖아. 소지도 광고의 실제 모델인 사진작가의 기억을 들어봅니다. 엄태웅 씨에게 손으로 풀잎을 간지리며 바람을 느껴보라 했더니 눈을 감고 풀을 쓰다듬더랍니다. 아니, 눈 뜨고 해보세요. 눈을 뜨고 풀잎을 손으로 사알 만졌더니 진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그의 말이 흐믓했던 모양입니다.
아, 매물도...
그 바다, 그 섬, 그 사람들...
등가도. 섬이라고 하기엔 열악한 환경을 가졌습니다. 일곱 개의 돌 섬. 물이 들어오면 잠겼다가 물이 나가면 드러나는 섬을 섬이 아니라 여라 했다네요. 저 섬에 몇 년 전에 유조선이 충돌해서 침몰했답니다. 다행히 선박용 경유만 흘러나오고, 유조 탱크가 터지지는 않았다지요. 저 청정 바다에 유조탱크의 기름이 퍼졌다면 이 일대 생태계는 다 죽음이었을 겁니다. 다행히 수압에도 견뎌주어서 일 년이나 후에 외국 기술로 선박을 무사히 인양해서 가져 갔다는. 한동안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야 했던 등가도의 슬픈 전설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답니다.
홍도는 목포에 있는 거 아닌가요? 그것도 홍도고, 저것도 홍도고. 같은 지명이 어디 한 둘이던가. 대마도는 총 길이가 70킬로미터랍니다. 상 하로 나뉘어져 있어서 더 길어 보이는 모양입니다.
층층이 꽃. 미륵산 정상 부근에 가득 피어 있던 꽃인데, 요즘은 자꾸 미륵산이 부릅니다.
저기 좀 올라가봐, 좀 유치하긴 해도 왜 연예인들 하는 거 있잖아. 이런 데선 재미있거든.
시키는대로 돌 위에 올라 팔을 쫘악 벌리고 바람을 느낍니다.
좋~아..
목사님도 해보시죠.
그렇게 네 사람 모두 두 팔 벌려 태평양을 안아보았습니다. 태평양에서 부는 바람을 온 몸으로 받으며 행복해 했습니다. 이런 기회가 어디 그리 자주 있겠습니까.
좀처럼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 사진작가는 카메라까지 맡기고 그 '재미'를 느낍니다. 푸른 바다가, 파란 하늘이,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어 놓습니다. 매물도는 한나절로는 안 되겠단 생각이 자꾸 듭니다. 아, 매물도...
첫댓글 정말, 삶을 소풍으로 생각하고 살고싶습니다.
돌멍게 참 싱싱해 보이네용. 먹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