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귤밭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없다.
미깡밭에서 농약줄조차 잡아본 경험이 없다.
이런 나에게 지난해 11월 오영철이라는 선배가 나를 찾아왔다.
의사결정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자기 과수원의 감귤을 따야될 것인지 따지 말 것인지 의사결정을 해 달라는 것이다.
따면 될 것 아니냐고 아주 쉽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 형은 제주시에서 비교적 규모있는 가전제품 대리점을 운영하였었는데
몇 년 전 부도로 인하여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모든 것을 청산하고 고향인 성산읍 난산이라는 곳으로 갔다.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서울사람이 부동산으로 구입해 논 과수원을 임대하여 감귤농사를 하게된 것이었다.
첫해 그 형은 돈을 한푼도 벌 수 없었다고 하였다.
수확 후 농약값, 비료값, 인건비, 그리고 과수원 주인에게 임대료를 주고 나니 남는 게 전혀 없었다고 하였다.
다음해 역시 가을걷이를 한 후 결산해 보니 약 천만원의 빚이 생겼단다. 화가 났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감귤농사를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내 땅도 아닌 과수원에서 누구 좋으라고 뼈빠지게 일을 한다는 것인가?
다음해에는 그 과수원을 방치하여 놔둬버렸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감귤나무와 감귤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해에 감귤 수확을 하지 않자 나무 위에서 말라 비틀어져 모두 버렸단다.
그리고는 과수원 주인에게 더 이상 과수원을 빌릴 의사가 없다고 하자
서울 주인이 임대료를 받지 않을테니 그냥 관리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없어 감귤 농사 4년차인 지난해에도 과수원을 방치하다 싶이 하였다.
농약과 비료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을에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엉망으로 된 감귤을, 인건비를 들여 수확하여 팔 수 없다면 인건비만 날리는 결과가 된다고 하였다.
내가 그 과수원에 가 보자고 하였다.
다음날 그 과수원으로 갔다.
그 과수원의 감귤을 보는 순간 목구멍까지 수확하지 말라는 말이 올라왔으나 내뱉을 수 없었다.
그 형의 의지를 무참히 꺾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못생긴 감귤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수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하지 못하고 밀감을 하나 따먹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생김새와는 달리 너무나 맛이 있는 게 아닌가?
우연히 어쩌다 맛이 있는 것을 하나 먹었겠지 하면서 과수원을 한바퀴 휘 돌아보는 시늉을 하였다.
그리고 군데 군데 감귤나무에 달려있는 감귤을 하나씩 따먹어 보았다.
나로서는 샘플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모두 맛이 있었다.
그 형더러 한 박스를 따 달라고 하였다.
노란 컨테너에 가득 갖고 와서 회사 근처 가게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조금씩 나누어주었다.
모두들 맛있다고 하였다. 서귀포 강정 밀감이냐고 하였다.
밤새 고민을 하였다.
농약을 하지 않았고 화학비료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아주 맛이 있는데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감귤을 팔 수 없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는가?
고민 고민하다가
다음날 그 형더러 20박스만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당신네 서울 사람들이 보기 좋은 떡이 맛이 있다는 논리로 예쁜 감귤만을 찾으니
우리 제주도 농민들은 감귤맛 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농약을 하는데 이 감귤 먹어보고 평 좀 해달라는 내용으로,
서울에 있는 KBS MBC SBS 방송국,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언론사 보도국장과 편집국장에게 귤과 함께 보내었다.
국회 농수산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도 보내었다.
청와대 비서실장에게도 보내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난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보낸 귤처럼 무해하고 맛있는 밀감은 제주도민이 먹고
농약으로 뒤범벅된 귤만 서울로 보낸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정중하게 그것은 예쁜 귤만 찾는 소비자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제주도내 지방 언론사를 통하여 취재가 시작되었다.
기꺼이 인터뷰를 하였고 전국으로 8시 9시 뉴스 등에 보도되었다.
그 파장은 대단하였다.
전국에서 약 4백명이 그 감귤 한번 먹어보자고 전화가 왔다.
내 전화번호를 어찌 알았는지…
고민이 되었다. 얼마를 받고 팔아야 할 것인가?
고민 끝에 서울에 있는 대학 동창 10명에게 10kg 한상자씩 보내었다.
이 친구들이 껄껄대며 웃었다.
이제는 감귤 유통사업에 뛰어들었냐면서. TV 신문을 통해 인터뷰하는 것 잘 보았다고 놀렸다.
서울에 있는 소비자들에게 자네가 받은 10kg 한상자에 얼마 받으면 되겠냐고 물었다.
열 명의 친구 모두 웃기는 대답을 하였다.
서울 사람들은 가격이 낮으면 싸면 사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 얼마 받으면 되겠냐고 가격을 얘기해 보라고 하였더니 어떤 친구는 5만원 어떤 친구는 3만원, 2만원 …
그 가격을 평균내니 2만 5천원이었다. 그래서 가격이 결정된 것이다.
전국의 주문자들에게 10kg 한상자씩 보내주었다.
그리고 상자안에는 메모를 동봉하였다.
그 메모안에는
『맛이 없으면 돈을 부치지 않아도 좋다. 맛이 있다면 2만 5천원을 부치고 그리고 주위에 소문 좀 내 달라.』고 하였다.
대부분 돈을 부쳐왔다.
그리고 그 다음 주문은 처음 주문의 세배가 넘었다. 결국 없어서 못 팔게 되었다.
다른 감귤 농민들이 15kg 한 상자에 6천원에 팔고 있는 상황에
10kg 한상자에 2만 5천원을 받고 없어서 못 팔았으니.
졸지에 나는 유명해져 버렸다.
전국 언론에 몇 번 노출되더니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지인들로부터 전화도 많이 받았다.
나는 일반적인 상황을 다르게 인식한 것 뿐인데.
그리고 해결하고자 하는 실마리를 정확하게 꿰뚫었다고나 할까?
못난이귤에 대한 이야기다.
제주도내 신문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못난이귤을 검색해보면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