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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도 좋고
모르면 더좋은
이탈리아... 아씨시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일 듯 한 유럽 여행~ 로마나 피렌체, 베니스등과 같이 붐비지 않는 겨울의 아씨시에서 고즈넉한 중세의 골목길을 거닐면서 저절로 생각나는 평화, 안식, 정결, 겸손, 사랑, 기도.. 이런 단어들을 머릿 속에 간직하고픈 마음으로 이탈리아 패키지 여행 끝에 리턴 연장 하고 두번의 1박2일 아씨시 머무름에 부족함을 갖고 있던 중에 3박4일 일정으로 울부부 둘만의 시간을 갖고파 3번째로 다시 찾은 아씨시입니다..
2005년 2월, 프랑스 파리, 루르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 나폴리 쏘렌토까지.. 남부로 로마, 아씨시, 피렌체, 베네치아.. 북부로 유레일패스 끊어가지고 이리저리 일정을 짜맞추면서 둘만의 순례의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이태리 중부의 중세 마을 아씨시는 로마에서 기차로 약 2시간 Firenze가는 길에 1박 2일(2/10~11)로 아씨시에 머물렀었죠. 로마에서 기차 타고 도착한 아씨시역 호젓한 시골역의 느낌이 나는 Assisi역도 마음에 들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성지순례단과 함께 패키지로 와서 버스타고 오니 이런 호젓한 풍경을 볼 수가 없군요.
참고로 2005년 개인 순례 시에는 택시를 타고 아씨시 윗마을 호텔로 갔었죠(약 20 유로) Linea C 버스를 타고 Assisi 종점인 Piazza Matteotti(마테오띠 광장)에서 내려오면서 호텔로 가든가 성프란치스코대성당으로 가도 좋겠죠.. Assisi 역에 있는 따바끼에서 버스티켓을 구입(왕복 2.6유로/2018년 기준) 정도~ 또는 버스에서 기사에게 지불 (조금 더 비싸죠..)따바끼에서는 짐도 보관해주니까, 캐리어등은 보관해 놓고(3 Euro/Ea) 도보로 약 5분 걸리는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Basiica di Santa Maria Degli Angeli)을 다녀오는 것도 좋답니다.. 버스 정류장은 아씨시 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가면 Mac Donald 쪽에 있어요. 포르지운콜라가 있는 천사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도 같은 방향입니다. Assis Bus C선 시간 여유만 있다면.. 버스 타고 오르 내리며 버스안에서 보는 경치도 예쁠 듯 합니다. 꼬뮤네 광장에서 성문을 나오면 버스 정류장이 있옴 아씨시 역까지는 20~30분정도 걸리는 거 같아요. Citta della Pace, (평화의 도시) Assisi(아씨시);는 물론 로마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도 있지요..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아씨시를 그냥 당일치기 하기에는 너무(?)..] * 예쁜 골목길과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2층 전면의 오르막 계단길 골목골목 걷는 것은 아씨시의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매력 오르막 내리막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하루종일 걸어다녀도 지루하지 않을만큼 아기자기한 골목들이 가득하다. 중세 마을에서의 노을지는 야경을 보고 Assisi 윗마을 호텔 투숙 후에 내려다본 아시시의 야경 은은히 울려 퍼지는 성가도 들으며...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좋을 듯 한 곳이죠. 어느 이탈리아 신부님께서는 "아씨시는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 이라고 표현하시더군요. 그래서 평화의 마을이라고 하는 건지요.. * 당시에도 일정을 잡을 때 '평화의 기도'를 생각하면서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마을 Assisi에서 1박하는 걸로 우선으로 하였었죠.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영성의 마을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의 삶이 오롯이 녹아있는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카돌릭 성지입니다 * '하얀 중세마을 아씨시/Assisi' *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토스카나 지방의 아씨시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성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정말 그림 같은 곳 입니다. 역에서 내려 앞을 보면 저기 수바지오(Subasio) 산 중턱에 聖과 俗이 서로를 보듬어 안으며, 마치 부채를 펴 놓은 듯 고요히.... 무질서한 성채처럼 서 있는 마을이 하나 보입니다 저기가 바로 아씨시 언덕 위의 중세 마을입니다. 넓은 평원 위에 솟은 해발 424m의 수바시오(Subasio) 산에 위치한 이 도시는 성 프란체스코 및 성녀 클라라가 탄생한 주요 가톨릭 순례지의 하나이다. 성 프란체스코 성인(S. Francesco, 1182~1226)의 유골이 보관된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Basiica di S. Francesco)에는 언제나 수많은 순례객의 경건함이 끊이지 않는다. 로마 제국 시대부터 번영한 시장 도시이며,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가지는 굴곡이 심한 좁은 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어 중세의 자취를 느낄 수가 있다. "여기 아씨시에서 성 프란치스코와 함께 있노라면 정말로 우리는 천국의 문턱에 있는 듯 하답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아씨시에게 그토록 매혹적인 자연, 청정의 영기(靈氣), 일시 정지되어 있는 듯한 미풍 등을 주시어, 순례자들이 그런 것들을 거의 만져 느낄 수 있도록 하셨을까요" -교황 요한 23세. 교리상식_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 ASSISITV 오늘은 Assisi 아랫마을에 있는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degli Angeli)만 순례한답니다. 물론 포르지운콜라(Porziuncola)를 포함해서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일정이랍니다. 그리고 윗마을로 이동, 호텔 투숙한다는군요. '리보토르토 성지(Santuario di Rivotorto)' Sanctuario del Sacro Tugurio di Rivotorto ‘리보’는 강이란 뜻이고, ‘토르토’는 꾸불꾸불이란 뜻이어서, 리보토르토는 꾸불꾸불한 강이라는 뜻이다. Rivotorto 성당 이곳에는 성인이 머무르셨던 양우리와 움막(Sacro Tugurio)이 있어요. [자료사진] 프란치스코는 베르나르도, 카타니 베드로와 함께 아씨시 성안의 성 니콜라오 성당에서 성서를 3번 펼쳐 하느님의 뜻을 찾았다 (성서를 3번 펼치는 관습은 당시 민간인에게 퍼져있던 세속적인 민속이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프란치스코는 이들과 함께 이곳 리보 토르토를 첫 거처로 삼았던 것이다. 그 후 같은 해인 성 지오르지오 축일에 에디지오가 합류했었다. 그래서인지 성당 입구 문 위에는 “이 곳이 작은 형제들의 시초(HIC PRIMORDIA FRATRUM MINORUM.)”라고 새겨져 있다. 움막 내부 가운데에 십자가도 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기거하던 방도 있답니다. 성인은 짐승우리와 같은 곳에서 있는 그대로의 가난 안에서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고, 복음의 양식대로 사신 것이다. [출처] 블로그 리보토르토(Rivotorto)| * 아쉽게도 이번 순례에서도.. 2005년 개인 성지순례 시에도.. 이곳 리보토르토 성당은 가지 못했어요..
Assisi에 다시 갈 기회가 온다면
산 다미아노 수도원과 리보토르토 성당은
필히 순례하고픈 곳이랍니다.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degli Angeli) 2005년에 순례 때에는
뜻하지 않은 기차파업으로 운좋게도() 불안함 속에 몇시간 더 머물게 되면서.. 예정에 없었던 미사 참례를 했던 곳입니다. 아마도 아씨시에서 '조금 더 있다가 가거라'하셨던 것 같아요. ^&^*~ Basilica di Santa Maria Degli Angeli 아씨시 입구 시내로부터 약 5km 떨어진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이 성당은 원래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와 그 제자들이 오두막을 지었던 곳이다. 정문 앞 바닥에 새겨져 있는 그림 성당 출입문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 문양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가운데 맨손은 예수님의 손이고, 갈색 옷을 입은 손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손이다. 손바닥에 오상의 흔적을 보여 주는 표식이 있으며, 가장 자리에는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뜻하는 매듭 띠가 있어요. (프란치스코 성인은 숨을 거두기 2년 전인 1224년 9월 17일 ‘라 베르나’ 산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상처인 성흔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1182~1226)는 1182년에 상인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 (Mercante Pietro di Bernardone)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나이에 기사가 되어 세속적인 방탕한 삶을 즐겼다. 그리고 [대성당 왼쪽 출입문 옆 벽에 프란치스코 성인 탄생 800주년인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례없는 행사를 계획하였고, 1986년 10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주관으로, 세계 평화 위한 종교 지도자 기도 모임을 기념하여 만든 청동 기념물이 있죠. 이러한 그가 회심한 것은 그의 나이 24세가 되던 1206년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청빈을 실천하고자 부모의 기대를 저 버리고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린 채 신앙의 삶을 시작하였다. * 성당 지붕 위의 황금빛 성모 마리아 상이 꽤 인상적입니다. 1909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진 이 성당의 정면 양쪽에는 천사상이 서 있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는 양손을 벌리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전구하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두 성상은 이 건물이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란 것을 알려준다. 초기에 그는 소외된 나병 환자들을 돕고 고행의 삶을 살았다. 이후 그를 따르는 자들이 늘어나게 되어 첫 공동체를 만드는 데 바로 이곳에 오두막을 지어 시작하였다. 그는 따르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하여 3가지 기본 규칙을 세웠다. 성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기념 사진 한컷 하고요.. 배종호(토마) 신부님과 함께.. 성당 안으로 들어갑니다. 첫째는 그리스도 인의 도덕적인 삶의 가치를 순례 설파할 것, 둘째는 절대적인 청빈의 삶을 실천할 것, 셋째는 성직자와 미성년 신자들에게 봉사할 것 등이었다. * 이 규칙은 1223년에 교황 오노리오(Onorio)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졌다. 이 공동체가 바로 프란치스코 수도회(Francescano)이다. 현재의 성당은 16세기 갈레아쪼 알레씨 (Galeazzo Alessi)에 의해 Porziuncola 위에 건축되어지는 데 늘씬한 지붕과 함께 당당한 위엄을 갖추고 있다. 대성당 중앙제대 초기 움막은 1455년 프란치스코 사카르도 형제에 의해 경당으로 옮겨졌다. 그 경당은 성모님께 봉헌된 한 성당 주변에 건축되어진 것이다. 1491년 교황 식스토5세는 좀더 큰 성당의 건축을 요구하였고, 그것은 1640년 경에 완공된다. 이 때까지 아주 조그마한 수도원이 있었는데 5년 뒤에 큰 수도원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어 1854년 2월 11일의 지진 피해로 베르나르도 티니 형제의 설계에 따라 신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1909년 세 개의 주랑을 가진 현재의 성당이 이전의 잔재 위에 지어졌다. 1926년에는 옛날 모양에 따라 움막이 복구되었다. Porziuncola Wikipedia Wikipedia입니다.* Porziuncola(포르지운콜라) Porziuncola Homepage 클릭하시면 Website로 가요. 제단 벽에는 성모 마리아와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관련된 프레스코화가 있어요. 그 가운데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의 잉태에 관한 소식을 예고하는 장면과 성모님께서 승천하여 예수님 곁에 앉으신 장면이 눈길을 끕니다. 포르치운쿨라의 성모 마리아 경당은 전승에 의하면 352년 예루살렘에서 네 명의 순례자들이 성 치릴로가 기증한 성모님 무덤의 유물을 가지고 이탈리아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은 교황 리베리오의 권고로 움브리아에 인도 되었고 그 곳에 요사팟의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작은 경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베네딕도 성인이 이 곳에 수도원을 세우기 위해서 왔었으며 576년에 그의 동료들을 위해 이 경당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칸 초기 사료들은 이 경당이 옛날에 지어졌음을 언급하고 있으며, '포르치운쿨라의 성모 마리아'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경당 부근을 에워싸고 있던 숲들을 '포리치운쿨라의 떡갈나무 숲'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1211년경 수바시오 산의 베네딕토회의 아빠스(원장)인 테오발도 로부터 포르치운쿨라를 영구히 점유할 허락을 공식적으로 얻게 되고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형제들은 해마다 물고기 한 광주리를 베네딕토회에 주었다고 합니다. (페루지아 전기 8 참조)
오늘날 많은 순례자들은 대성당 안에서 보다도 Porziuncola 작은 경당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숨결을 더욱 가까이 느끼고 싶어한답니다. 대성당 옆 복도를 따라나갑니다. 대성당 옆 복도를 따라 가면 성 프란치스코 상과 비둘기 2마리가 있는데.. 아주 오래 전부터 한 쌍의 흰 비둘기가 대를 이어 성인 품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는 세가지 신비가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 신비는, 성 프란치스코의 성상을 지키고 있는 한상의 비둘기 이고 두번째 신비는 장미향이 나는 복도입니다. 세번째 신비는 가시 없는 장미로 이루어진 장미정원이라고 합니다. * ROSETO(Rose Garden, Rosen Garten) Bronze Statue by V,Rossgnoli(1916) '장미 정원'에는 가시 없는 장미가 있는 곳으로 '프란치스코'가 육욕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장미 덤불에서 알몸을 뒹굴었다는데 그의 몸이 닿은 덤불이 천사들이 가시를 없애주어서 가시가 없는 장미로 변해 있었다는 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지금도 이곳에서 나는 장미는 가시가 없다고 합니다 * 이곳에는 성탄 시기에 전세계 각국의 대표 구유가 제작 전시된다고 합니다. * 단, 이탈리아 구유는 상시 전시된다고 하네요..
구유는세계 각국의 풍습이 반영돼 갖가지 모양으로 만들어지며 성탄구유를 위한 조각은 하나의 예술로까지 발전했다.
구유 주변에는 마리아와 요셉의 상, 동물들과 목동들의 상도 함께 놓인다. 동방박사들의 상은 아기 예수의 탄생를 알현하기 위해 방문했던 공현 축일(1월2~8일)이 지나서야 놓인다.말 구유를 대중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1223년 이탈리아의 그레치오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한 임금의 탄생과 작은 마을 베들레헴을 늘 동경하고 있었고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아기가 겪은 그 불편함을 보고 싶고, 또한 아기가 어떻게 구유에 누워 있었는지, 그리고 소와 당나귀를 옆에 두고 어떤 모양으로 누워 있었는지를 나의 눈으로 그대로 보고 싶습니다.” (토마스 첼라노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중에서)성 프란치스코가 말구유를 최초로 만듬은 Giotto가 성 프란치스코의 일대기를 그리면서 말구유 장식하는 프레스코화를 남길 정도라죠...
『성탄 구유는1223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성인으로부터 유래한다.그는 당시 교황 호노리오 3세의 허락을 받아성탄대축일 전야에그레초(Greccio)라는 마을에서 사람들과 동물들을 한자리에 모아그리스도의 탄생 순간을 재현하는 미사를 봉헌했다.프란체스코 성인이 성탄 구유를 재현한 이유는가난한 천민의 신분으로 사람들에게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이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지금 우리 안에 현존하고 있는 분이심을 알리기 위함이었다.오늘날 대림절과 성탄대축일에교회에서 전통적으로 거행되는 성탄구유예절은 여기서 유래한다.』
그는 신자들이 좀 더 실감나게 성탄의 의미를 깨닫게 하기위해 성탄 시기에 그레치오 성당에 베들레헴을 본뜬 마구간을 만들었다.
이 때부터 작은 모형의 마구간을 만들어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풍속이 세계로 퍼져 나갔고 16~17세기에는 성탄 구유 공경이 일반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 홈페이지 바로가기』 크리스마스 캐럴 CHRISTMAS MELODY _ 딩동 종이 울리네 천 개의 크리스마스 촛불을 밝히며 캐럴이 울리면 기쁨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낀다. 캐럴이 사라진 거리와 마음에 [크리스마스 멜로디]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희망의 빛을 밝혀 줄 것이다. “천 개의 크리스마스 촛불이 타오르네 이 땅의 어두움을 둘러싸고 천 개의 천 개의 촛불이 빛나네 깊고 파란 하늘 안에서 (중략) 모든 외롭고 어두운 마음 안에 다정한 빛줄기를 건네어라 하느님의 빛을 사랑스럽게 비추어라 거룩한 크리스마스에” -‘천 개의 크리마스 촛불이 타오르네’ 가사 중 ‘모든 외롭고 어두운 마음 안에 다정한 빛줄기를 건네어라’는 가사처럼 성탄 캐럴은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우리를 기쁨과 거룩함으로 인도한다. * 장미 경당(Cappella delle Rose)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안에는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가 죽은 통과 경당을 비롯하여 오상, 묵주, 성 안나, 유품, 성체 경당 등 16개가 넘는 경당이 있습니다. 우리 순례단은 오늘 유품 경당에서 미사 봉헌을 하였습니다. La basilica papale di Santa Maria degli Angeli ad Assisi'리보토르토 성지' (Sanctuario del Sacro Tugurio di Rivotorto) 아씨시 외곽에 있는리보토르토(Rivototo) 성당입니다.
리보는 강이란 말이고, 토르토는 꾸불꾸불이란 뜻이다.
이곳에는 사부님이 머무셨던 양우리막이 있는 곳으로 이곳이 바로 작은형제회의 시초 성당이다.
*
베르나르도, 카타니 베드로 그리고 후에 에디지오가 합류했다.
성당 문 위에 "이곳이 작은형제회 시초"라고 적혀 있다. 사부께서는 이곳에서 머무르시며 루피노 성당 주일 미사 강론을 하셨는데
불마차 환시를 보셨고 어느 형제가 한 밤중에 배가 고파 울고 있어 모든 형제들이 다 함께 식사해야 하는 사건도 있던 것이다. 이런 사건을 성당 정면 지붕 밑 삼각형 공간에 모자이크로 표현해 놓았다.
성당 실내 뒤편에 당시 성인이 수도하던 돌로 만든 움막이 보존돼 있다.
제단을 다 가릴 수는 없으니
성당 바닥을 돋우어 움막의 지붕 바로 아래까지 올려놓았다.
순례객들은 계단을 내려가
성인이 최초의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기도했던 공간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고 올라온다.
돌로 만든 침대는 너무 작다.
최초의 작은 공동체 리보토르토가 있어요..
이제 아씨시 역으로 돌아가서 맡겨둔 캐리어를 찾고 택시를 타고 윗마을의 호텔로 이동합니다. 저녁 식사 후 호텔 전망 가든에서 내려다 본 아씨시의 야경입니다. 멀리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도 보이네요.. 우측의 가장 높은 곳은 로마시대의 요새 Rocca Maggiore9로카 마죠레)인 듯 합니다. 프란치스코에게 길을 묻다 2편
한걸음,
한걸음씩...
희망을 갖고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 당신께
닿을 수 있겠지요.....
자신을 돌로 쳐 죽이려는 사람들을 위해
"주님 이 사람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제 영혼을 받아 주소서."라고 외치며 순교하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입니다. St Francis of Assisi Full Movie 이탈리아 중북부 2부_미니시리즈 순례, CPBC
=== 진정한 여행의 맛보기 ===
내게는 여행 준비하는 동안에 50%의 즐거움 여행 중에 현지에서 20%의 즐거움 돌아와서 정리하면서 Review할 때 30%의 즐거움이 있다.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에서 남긴 기록을 다시 정리했다. 수천 장의 사진과 일기를 돌아보며 현지에서 가볍게 스쳐 지나갔던 것들을 새로 느끼고, 깨닫게 됐다. 비로소 이 여행에서 얻은 것들이 진짜 내 것이 된 느낌 - 어느 분이 쓴 글에서.. 그러니가 복습이 참 중요하기는 한가 봅니다.
이탈리아 아시시 투어가이드 [투어소개&코스안내], Italy, Umbria, assisi Auguri di Buon Natale! 아우구리 디 부온 나탈레!
성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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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이탈리아 식당에서 주문할 때..
"뽀꼬 쌀레 빼르 파보레" "Poco Sale Per Favore"
소금 적게 넣어주세요. 플리즈
아씨시에서 로사리아와 함께 하는 추가 머무름은,
그것도 보통 당일치기나 1박2일로 머무는 아씨시에서 4박5일을~~~
이제 종착역을 향해가는 우리 인생 속에 유럽에서의 마지막 휴식일 듯 합니다.
웬지 모르게 고요한 중세 소도시, 그 중에서도 아씨시가 더 다가온 것 같죠..
3번째인 이번 여유로운 아씨시 머무름에서는 성프란치스코 대성당의 새벽과 아침, 낮, 저녁 그리고 밤~
이렇게 모든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정말 만족스러웠답니다.
또한 수녀원 스테이~~ 아씨시의 매직 아워는 해질녘 노을을 볼 수 있는 시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