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2/4일 추운 겨울에 "이병찬 산부인과'에서 난 엄마 뱃속에서 세상구경을 하러 태어났다. 우리집에서는 첫째로 태어났다 첫째로 태어나 관심을 받으면서 자랐다.
추운겨울에 오돌돌 떨며 핏덩이가 되어 있는 몸을 깨끗이 씻어서 태어난 "나"를 보며 가족들은 많이 기뻐했다. 그래서 첫째로 태어난 "나"를 후회해 본 적은 몇번 있지만 지금은 상관이 없다. 우리집에선 영원한 첫째이니까?
내가 태어나 제일로 이뻐해 준 사람은 작은 고모이다 고모는 항상 어디 갈 때도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맛난 음식과 예쁜 옷과 핀을 사 주었다.
고모랑 "동물원"도 가고 고모 회사에도 따라 갔던 "나" 이렇게 고모 사랑도 받고 삼촌에게도 사랑을 받고 엄마 아빠에게도 독차지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리고 가족 여행도 많이 해서 사진도 앨범이 가득 메워질 정도로 많이 찍었다.
그리고 내가 4살 때 나의 여동생이 태어났다.
여동생은 손과 발이 너무 조그마했다. 이건 사진으로만 봤을 뿐이다.
하지만 눈도 크고 욕심도 많고 겁도 많은 여동생이다 하지만 지금은 중학생이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1년 전에 나의 남동생이 태어났다 조그만 손과 발이 너무나 귀여웠다.
그리고 내가 8살 때 "지천초등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을 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아빠가 큰 대수술을 받았다. 아빠가 밤에 머리가 아프다면서 거실에 나오셨다. 그러나 차가 있어도 머리가 아파서 차도 못 몰고 아빠 친구차를 타고 갔다.
아빠는 그때부터 병원 생활을 했다 난 아빠 병문안을 고모랑 갔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병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그냥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6년이라는 초등학교 생활을 하고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 1년을 앞두고 5학년 때 경운기 사고가 났다. 아빠는 척추를 다쳐서 지금도 어떨 때 한번씩은 허리가 편찮으시다고 하신다. 이렇게 아빠는 병원 생활을 하고 난 초등학교 생활을 끝마치고 "관음중"학교 입학을 해서 2년반을 거기서 생활하다가 "신동중 칠곡고등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처음엔 많이 적응을 못 해서 남학생이 조금만 뭐라고 해도 울고 했던 내가 반년을 생활하고 "칠곡고"에 입학을 했다.
22명 그대로가 한반이 되고 몇몇 학생이 "칠곡고"로 입학을 해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고등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지금의 나의 성격은 내성적이다. 하지만 말을 할 땐 많이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장점은 그냥 성격이 내성적이라 좋은점은 별로 없다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단점은 난 남 앞에서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많고 떳떳하지 못하고 자신감이 없다.
여기서 나의 성격이 많이 강해졌다고 나의 단짝 친구가 그랬다. 하지만 난 나의 성격이 당당해졌다고 느낄수가 없는데 친구는 느낀다는 점이 고마울 뿐이다.
그리고 난 그 친구가 너무나 고맙다 항상 나의 곁에서 위로해 주고 슬픈 일이 있을 땐 슬퍼해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땐 기뻐해주는 친구 너무나 소중하고 고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장래희망은 "유아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이 꿈은 중학교 다 닐때부터 이 꿈을 가지고 싶었다. 지금도 유치원생들을 보면 이 꿈이 정말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난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 중이다. 열심히 해서 남부럽지 않게 떳떳하게 유치원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지금도 한 걸음씩 한걸음씩 열심히 하려고 다짐하고도 또 다시 다짐을 해본다.
첫댓글 생각을 많이 해서 쓴 글이구나. 조금 짜임새 있게 줄여보는 것도 좋은 글쓰기 방법이란다. 수고혔다.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 !! 언제나 열심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