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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고후 3:13-18절
제 목 :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자2
일 시 : 2016. 7. 10.
고후3:13-18/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18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참으로 놀랍고 스릴이 넘치는 은혜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면 주님의 형상으로 바뀐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 그렇다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18절에서 주요동사는 보다 입니다. 보다란 자기 자신을 거울에 비추다, 즉 반영을 보다, 거울에서처럼 보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복음의 거울에 비쳐진 예수님의 영광을 본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1) 먼저 수건을 벗은 얼굴로 라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수건이란 모세가 자신의 얼굴을 가릴 때 사용했던 것으로 없어질 율법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가린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수건으로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았습니다. 은혜와 복과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았습니다. 그래서 수건을 벗다란 완악함을 벗어 버린다는 뜻이며, 율법주의를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한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2) 두 번째로 거울을 보는 것처럼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거울에 비쳐진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에 가려진 예수님이 아니라 복음의 거울에 비쳐진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복음의 거울에 비쳐진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즉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행위와 관계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게 가리고 있는 수건을 제거하고 복음의 거울로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형상을 본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롬8: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시고 부르신 목적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처럼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형상이란 주님의 얼굴 즉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품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면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과 같이 온전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히12:2절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은혜와 진리를 선물합니다. 히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의 주제는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분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십니다.
바라보다란 주의 깊게 생각하다, 주목하다, 보다 라는 뜻입니다. 원래 의미는 다른 것들로부터 눈을 돌려 또 다른 어떤 것을 주목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바라보다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것에서부터 눈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본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만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끊임 없이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달려갑니다. 자신이 닮고 싶은 사람, 또는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어떤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달려갑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바라보고 달려왔습니까? 과연 내가 바라보고, 내가 닮고 싶어하고, 내가 갈망하는 그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까?
히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권면하면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히8:1/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고 했으며, 골3: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동일한 의미의 말씀입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계시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온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처럼 온전하게 될 수 있을까요? 거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좌우편에 계시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곧 안식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마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치 옛 언약 아래서 제사장들이 매일 성전에서 서서 섬기는 것과는 대조되는 것입니다. 히10:11/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지상의 성소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날마다 같은 제사를 드리며 섬기지만 거기에는 쉴 수 있는 의자도 없었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드리는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번거러움 속에서 안식 없이 살아야 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래서 히10:12-14/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은 십자가에서 이미 완성하셨습니다. 때문에 이제는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안식을 누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히10:13절을 보시면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보좌에 앉아서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것은 원수를 완전히 짓밟아 완전히 항복할 때까지 기다리신다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정확하게 해석해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고전15:25/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모든 원수를 자신의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 앉아서 안식하신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고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은 왕 노릇 하시고 계십니다.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앉아서 쉬는 것이 아니라 왕 노릇 하시면서 안식하고 계십니다. 왕 노릇 하는 것과 종 노릇 하는 것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안식하는 것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때문에 왕 노릇 하는 것이야 말로 안식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린 말씀 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완성하신 구원의 축복 속에는 우리는 모든 것을 받아 누린 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씀이 의도하는 바를 잘 모를 경우에는 정말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줄로 오해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정말 나의 구원을 위하여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이 성취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서 안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이며 조금도 과장되거나 왜곡된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보좌 우편에 앉아서 안식을 누린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면 우리의 삶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무엇을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 드렸듯이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 앉아서 왕 노릇 하십니다. 그것이 곧 안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이라는 것은 전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안식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지 않는 일은 조금만 해도 노동이고 고된 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하루 종일 하면서도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의 개념을 다시 정립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안식하신다는 것은 보좌에 앉으셔서 왕 노릇 하신다는 뜻이고, 그것은 다른 말로 예수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왕 노릇하는 것이 안식하는 것이고, 종 노릇 하는 것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왕 노릇 하십니까? 종 노릇 하십니까? 위로 하나님 한 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다스리는 자가 왕 노릇 하는 자이며, 그런 사람이 진정 안식을 누리는 자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눅22:28-30/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주님과 함께 한 자들입니다. 제자들은 항상 주님과 동거동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신의 나라를 네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나의 나라를 맡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여기보세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든 시험에 동참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 앉으실 때 그들도 주님과 함께 보좌 우편에 앉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보좌 우편에 앉아서 무엇을 하십니까?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보좌 우편에 앉아서 안식한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안식하는 것입니다.
좀 더 나가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예수님과 함께 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내가 한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엡2: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보좌 우편에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왕 노릇 하시면 우리도 같이 왕 노릇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골3: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우리는 예수님과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에 평강이 왕 노릇 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평강이 왕 노릇해야 합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또한 엡3:6/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이 말씀처럼 예수님과 한 몸 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상속자가 되고, 예수님과 함께 지체가 되고, 예수님과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든 일을 예수님과 함께 하게 되고, 모든 것을 예수님과 함께 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과 한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예수님과 한 몸 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보좌 우편에 앉아서 주님과 함께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보좌 우편에 앉아 안식을 누린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이 거기서 무엇을 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 앉아서 안식을 누리면서 세 가지 일을 하십니다.
2. 먼저 왕으로서 다스리는 일을 하십니다.
오늘은 이 한 가지만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요17:1-2/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기도하셨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자신도 그렇게 영광스럽게 되는 것을 요구하신 이유는 그것이야 말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처럼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모든 사람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엡1:20-24/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예수님은 보좌 우편에서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십니다. 즉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또한 히10:21/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서 하나님의 집(교회)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서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하시는 첫 번째 일은 왕 노릇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셔서 모든 만물들과 모든 교회들을 다스리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어떻게 다스리는 자가 되셨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눅22:24-27/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누가 천국에서 큰 자냐? 라는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누가 천국에서 다스리는 자가 되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섬기는 자가 천국에서 다스리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 있을 동안에 몸으로, 기도로, 물질로, 전도로, 말씀을 가르치는 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섬기는 자로 사셨기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서 다스리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빌2:5-11/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가장 낮아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죽기까지 복종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가장 높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사셨기 때문에 다스리는 자가 되신 것입니다. 막10:45/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결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처럼 온전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는 겸손하시고 온유하신 예수님을 닮게 되기 때문이며, 온전히 섬기는 자로 사신 예수님을 닮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빌2:5-8/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소개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과 온유입니다. 그래서 마11: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과 함께 섬기는 자가 되어야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는 자가 됩니다. 딤후2:11-13/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공평하신 재판장이십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모든 일에 공평하게 심판하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공평하시게 재판하시지 않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베짱이처럼 매일 놀다가 천국에 가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열심히 충성스럽게 봉사하고 섬긴 사람들은 너무나 억울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하게 재판하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므나 비유에서 모든 종들이 한 므나를 받았지만 열 므나를 남긴 종은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고,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은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므나를 남겼다는 것은 그만큼 충성하고 섬기는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므나 비유는 자신이 섬긴 만큼 다스린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예수님은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님, 모든 사람들을 섬기신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그렇게 겸손하고 온유하셔서 섬기는 자로 사셨던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 되셨고 만주의 주가 되셔서 보좌 우편에 앉아서 왕 노릇 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가 온전하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보좌 우편에서 왕 노릇 하는 자만이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하려면 이 땅에서는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첫댓글 ◆ 홀로 앉으십시오.
1. 고후 3:13-18절을 읽고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 함께 나누십시오.
1. 사도 바울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과 관련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 예수를 바라보자 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무엇입니까?
3.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은 거기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세 가지 표현으로)?
5. 보좌 우편에서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까?
1. 1) 먼저 수건을 벗은 얼굴로 라고 했는데 수건을 벗다란 완악함을 벗어 버린다는 뜻이며, 율법주의를 벗어 버리는 것이다. 2)거울을 보는 것처럼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인데 율법에 가려진 예수님이 아니라 복음의 거울에 비쳐진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2. 원래 의미는 다른 것들로부터 눈을 돌려 또 다른 어떤 것을 주목하다라는 뜻인데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것에서부터 눈을 돌이키는 것과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본다는 뜻이 담겨 있다.
3.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온전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4. 보좌에 앉으셔서 왕 노릇 하신다는 뜻이고, 그것은 다른 말로 예수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일을 하시는 것이며 안식하신다는 뜻입니다.
5. 겸손하고 온유하셔서 섬기는 자로 사셨던 예수님을 본받아야한다.
1.1)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2)거울을 보는것처럼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2.다른것들로부터 눈을 돌려 또 다른 어떤것을 주목하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것에서 부터 눈을 돌이키는것이고 우리를 온전하게하시는 주님을 바라본다
3.하나님보좌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을 바라볼때 온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4.안식을 누리고 계시고 왕노릇 사고 계시며 왕으로서 다스리는 일을 합니다
5.겸손하고 온유하셔서 섬기는자로 사셨던 예수님을 본 받아야합니다
1.1)수건을 벗은 얼굴-수건을 벗다란 완악함을 벗어 버린다는 뜻, 곧 율법주의를 벗어 버리는 것.
2)거울을 보는 것처럼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복음의 거울에 비쳐진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함.
2. 다른 것들로부터 눈을 돌려 또 다른 어떤 것을 주목하다.
1)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것에서부터 눈을 돌이키는 것
2)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본다는 뜻
3.인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은 십자가에서 이미 완성하셨고, 때문에 이제는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안식을 누리고 계시므로, 우리도 안식을 누릴 수 있음.
4.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안식하신다는 것은 보좌에 앉으셔서 왕 노릇 하신다는 뜻이고, 그것은 다른 말로 예수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일을 하신다는 뜻임.
5.예수님은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님, 모든 사람들을 섬기신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