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경주고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경주고에서 거의 고3담임을 주로 했는데 나름대로는 명문대 진학에 신경을 쓰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 부분에서도 남에게 지기 싫었던 게 있었던가 보다. 교직생활 말기에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가 갑자기 관리자인 교감, 교장이 되는 바람에 내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경주고 교감으로 부임하고부터 나는 종래와는 다르게 바쁘게 움직였다. 내 인사보직이 중, 고등학교를 오가는 입장이 되었기에 나름대로는 학교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바빴다. 내가 경주고에서 해야 할 일을 ‘日暮途遠’으로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시대가 너무 빨리 변화하여 거기에 기민하게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원래 안정된 곳 일수록 변화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던가?
우선은 학교의 비효율적인 면들을 바꿔 나갔다. 인사문제에서의 비효율적인 것들, 조직이나 시설, 교육활동, 시스템, 규칙 등에서 개선할 점을 찾았다. 아울러 직원들이 평소에 불만족스러워했던 부분들을 협의를 통해 바꿔 나갔다. 맨 먼저 한 것이 시설이었다. 각 室의 이동거리 등의 효율성과 용도의 적절성을 감안한 위치 배정, 비효율적인 표지판, 실내 기물의 재배치 등을 손댔다. 다음에는 조직 개편문제와 수업방법 개선이었다. 불필요하고 종래 허술하게 운영되었던 부서를 통폐합 또는 바꾸었고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수업방법 개선에 몰두했다. 당시 한창 얘기가 많이 되어지던 ‘학생활동중심수업’으로의 변화를 선생님들에게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물론 입시가 존재하고 있어 모두가 성적하락을 우려했음을 물론이다. 또 대학입시가 시험점수로 해결하던 정시입학보다 학생활동을 평가하던 수시입학으로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많은 고민을 했다. 전방위적으로 많은 것을 바꾸어 나갔지만 가장 컸던 것은 금, 토요일을 이용한 특기적성활동이었다. 학생들은 대거 교외로 나가게 되고 당연히 자습활동은 줄어들게 되어 성적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 밀고 나갔다. 그것은 그동안 공부로 혹사당하던 아이들로 하여금 숨통을 트게 하는 것이어서 그 뒤 학교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고 반대하던 사람들보다 찬성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특기적성지도를 지원하기 위해 많은 반을 개설했고 강사들을 모셔왔다. 아울러 야구부의 재창단, 관악부의 재창단도 그 변화의 일련 선상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