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 취재길을 동행했던 제천 두발산악회 이연규(李連奎) 초대회장에게 산악회 이름이 왜 두발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신이 지었다며 두 발로 산을 오르는 것이 바로 등산 아니냐며 되물었다. 일행 중 여성 한 분이 “남자들은 세 발로 산행하잖아요”라는 말에 일행 모두가 박장대소. 그 여성회원은 등산용 지팡이를 짚고 웃고 있었다. 이 회장은 두 발은 양족(兩足)이기도 하지만, 두발(頭發)이라는 뜻도 있다며 회원들에게는 늘 머리로 시작해서 머리로 끝내는, 생각하는 산행을 하라는 당부의 말을 덧붙인다고 했다.
도토리마을 l 산꾼들의 참새 방앗간
우리 귀에 무척이나 친숙하게 익은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의 박달재는 제천에 있다. 제천시에서는 이 고개를 제천10경 중 제2경으로 지정해 놓았다. 박달과 금봉의 슬픈 사연이 담긴 ‘울고 넘는 박달재’의 노래말 속에는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준다’는 구절이 있는데, 하필이면 많은 음식들을 두고 도토리묵일까. 필경, 제천에는 도토리나무가 많았고 도토리로 만드는 맛 있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니라 다를까. 제천시내 의림동 부부한의원 사거리에서는 ‘도토리마을(043-644-7586)’이라는 음식점을 만날 수 있다. 도토리사골탕을 전문으로 하는 집으로, 간판 아래쪽에는 두발산악회 간판도 함께 걸려 있다. 집주인 방태식씨(方泰植·54)가 이 산악회 회장이고, 도토리마을은 산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장소가 되어 있다. 술꾼인 산꾼들에게는 참새 방앗간 구실도 함께 한다.
조리를 맡고 있는 안주인 박계순씨(朴桂順·53)는 산꾼들에게는 ‘형수님’이나 ‘언니’로 호칭되고, 도토리묵채밥(4,000원)과 도토리사골탕(5,000원) 맛은 ‘끝내 준다’는 것이 정평이다. 한우 사골을 10시간 이상 끓인 뒤 진한 육수에다가 사태고기와 함께 녹각, 인삼, 대추, 감자 등을 넣고 더 끓인다. 그런 다음 파, 후추, 마늘 등 양념을 첨가하고 도토리면을 넣어 삶아낸 것이 도토리사골탕이다. 이렇게 끓여낸 탕은 도토리의 독특한 떫은 맛과 사골의 구수한 맛이 어우러진 건강보양식으로 손님들의 발길을 끈다.
몸속에 축적된 중금속 등의 독소를 해독시키는 성분이 들어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도토리를 소련에서는 방사선 오염을 씻어내는 소독재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산악회 회장집답게 외지에서 찾아온 산꾼들에게는 소상한 산악정보도 제공해 주는 이 식당에는 넓은 주차공간도 확보해 놓았다.
주인 방태식씨는 제천 두발산악회 회장이고, 안주인 박계순씨는 도토리 요리 전문가인 도토리마을.
참나무토종돼지 l 훈제구이의 명소
제천시 모산동에는 관광지로 유명한 의림지가 있다. 제천시는 지방기념물 제11호인 이 의림지를 제천10경의 제1경으로 지정해 놓았다. 관광지 주변에서는 으레 먹거리집들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의림지 입구 큰길 가에 있는 ‘참나무토종돼지(043-643-8726)’는 시선을 집중시키는 마력 같은 것이 있었다. 해거름의 시간, 목조건물의 별채, 높이 솟은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고, 건물 앞 넓은 주차공간에는 많은 차들이 서있지 않는가. 이러한 풍경만으로도 이 집에 들어가서 낭패 당할 일은 없을 것으로 느껴졌다.
그 느낌은 적중했다. 식당 안은 청결했고, 차려낸 음식들도 맛깔스러웠다. 식탁 여기저기에는 가족 단위 손님들로 빈 곳이 없었는데, 하산길 땀에 젖은 등산복 차림으로 식탁을 차지하고 앉아 있기가 조금은 안쓰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가운데 종사자들은 매우 친절했다. 그래서일까. 식당 입구에 붙어 있는 팻말은 그냥 ‘모범업소‘가 아니고 ‘우수모범업소‘였다.
흰 연기를 뿜어내는 별채는 참나무로 토종 검정돼지고기를 훈제해내는 곳이었다. 집주인 최경흠씨(40)는 참나무연기 속에는 인체에 유익한 성분 120가지가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근거로 하는 주장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그 연기로 구워내는 고기야 몸에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겠다.
참나무훈제구이(250g 8,000원)와 참나무고추장양념구이(250g 7,000원)가 대표음식인데, 육질은 부드러웠고 그 맛은 일행의 표현대로 탁월했다. 대학졸업 후 장교로 군 복무를 했고, 대기업에서 경영수업을 한 뒤 외식업에 매력을 느껴 직접 집을 짓고 문을 열었다는 업주의 당찬 의욕이 식당 곳곳에 베어 있었다.(
www.chamnamupig.co.kr).
주인 최경흠씨의 당찬 의욕이 식당 곳곳에 베어 있는 참나무토종돼지.
진성가든 l 향토음식경연대회 연속입상
칡닭요리로 충북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업소인 진성가든.
의림지에서 북쪽으로 얼마 가다 보면 제2의림지가 나온다. 이곳 피재골과 용두산으로 가는 갈림길 삼거리에 칡닭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 ‘진성가든(043-652-9400)’이 있다. 충북 향토음식경연대회에서 연속으로 수상한 경력으로 향토음식업소로 지정되어 있고, 충북의 맛집으로도 선정된 업소다. 칡닭을 위시하여 한방오리백숙, 염소전골 등을 차려낸다.
칡닭은 닭 특유의 비린 맛을 없애주는 엄나무를 비롯해 12가지 한약재를 넣어 조리하는데, 이 집만의 색다른 맛으로 충북 일대에서는 명성이 높다고 한다. 한방오리백숙에는 오리고기에다가 황기 당귀 천궁 백출 항정 구기자 녹각 감초 밤 대추 마늘 등 한방약재를 듬뿍 넣어 맛을 내고 향을 내는 바 건강식이나 스테미너식으로 식도락가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는 것이 집주인 박영효씨(52)의 설명이다.
칡닭요리로 충북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업소인 진성가든.
천명삼겹살타운 l 산꾼들의 생일파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다. 진성가든 취재를 마치고 부담을 드리지 않을 업소를 찾아 술 한 잔 걸치겠다는 생각으로 나서는데 뜻밖으로 월간山 취재팀 ‘악돌이 일당‘(실례된 표현 양해 바람)과 마주쳤다. 아침 통화 때는 집에 있을 것이라고 했던 악돌이를 제천땅에서 만나다니! 참으로 반가웠다. 그런데 그 날이 악돌이의 생일날이었다.
제천 산꾼들이 악돌이의 생일을 기억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두발산악회 이연규 창립회장과 유기남 회원, 그리고 악돌이 세 사람의 생일이 같은 날이란다. 그 날은 두발산악회가 소백산 국망봉 산행이 있었던 날이고, 하산 후 제천역 앞의 ‘천명삼겹살타운’에서 생일파티가 예정되어 있었던 터였다. 그래서 ‘원님 덕분에 나팔을 부는’ 격으로 생일파티에 불청객으로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너무나 신기한 일은 악돌이와 이연규 회장은 생일만이 아니라 나이마저 같았다.
귀향열차에 오르기 전 하산주 걸치기 좋은 제천역 앞 천명삼겹살타운.
개미식당 l 약초순대의 본향
제천은 약초의 고장이라고 한다. 약초의 고장에서 생산된 황기 당귀 천궁 등 양질의 약초 20여 가지 추출액을 넣은 약초순대를 만들어 차려내는 음식점 ‘개미식당(043-643-5093)’은 제천의 명소 중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시내 남천동 중앙시장 윗쪽에 있는 작은 식당으로 제천을 들리는 외지 식도락가들은 반드시 이 집을 거쳐 간다는 소문이다.
23년 전에 문을 열었다는 집주인 이종흥(56)-김옥희씨(52) 내외가 이 음식의 개발자로 공인되고 있는데, 배추 양배추 양파 등 신선한 채소들과 함께 차려져 나오는 약초순대는 비린내가 전혀 없고 뒷맛이 고소하다. 주인 부부는 이 약초순대를 먹은 다음 트림하게 되면 강한 약초 냄새가 나오는 것이 이 음식의 특색이자 자랑이라고 했다. 옥호의 ‘개미’는 부지런하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약초순대국 4,000원, 약초순대 5,000원, 약초순대전골 15,000원. 포장도 해 준다.
20여 가지 약초 추출액을 넣은 약초순대 개발자인 개미식당의 이종흥-김옥희 주인내외.
향온&황둔막국수 l 신림의 먹거리집
감악산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과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행은 제천땅 명암리에서 백련사를 거쳐 오르는 코스가 백미로 알려져 있지만, 강원도땅 신림의 창촌을 들머리로 감악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많다. 감악산 서쪽 자락인 신림(神林)은 한자 뜻풀이 그대로 신성한 숲이라는 이름의 마을로 신림면 소재지다.
여느 면소재지와 다름없이 농협이 있고 먹거리집들이 산재해 있다. 농협 맞은편에 있는 식당 ‘향온(033-762-0525)’이 이 지역에서는 가장 많이 알려진 집인데, 집주인은 자신의 식당에서 주문받는 음식으로 ‘돌아가는 경제사정’을 훤히 알 수 있게 된다면서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000원에 차려내는 뼈다귀해장국이 가장 많이 팔리고, 23,000원에 차려내던 오리탕 주문이 뚝 끊어진 것을 보면 경제사정이 무척 어려운 것 같다는 이야기다.
곰탕·소내장탕·도토리묵밥 각 4,000원, 삼계탕 7,000원.
신림 방면으로 감악산을 찾을 경우 추천할 만한 창촌의 향온과 황둔의 황둔막국수.
황둔찐빵 l “황둔리에도 찐빵집이 있습니다“
감악산 정상을 중심으로 1시 방향에 있는 마을이 황둔리이고, 이곳은 지금 새로운 ‘찐빵마을’로 뜨고 있다. 황둔리는 찐빵만이 아니라 교통의 요지답게 손님이 많기로 널리 소문이 나 있는 ‘황둔막국수(033-764-2053)’ 황둔점도 이곳에 있다. 30년 전통을 자랑한다는 이 집은 원주시 관설동에도 원주점이 있고, 막국수는 4,000원이다.
찐빵이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지명이 안흥이다. 안흥은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의 지명이다. 3,000명의 상주인구 중 300여 명이 20여 업소에서 찐빵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연간 3,000만개나 되는 찐빵을 만들어낸다. 미국과 캐나다에 수출까지 하면서 연간 찐빵 판매 액수가 70억 원을 넘긴다니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원주는 안흥과 인접한 지역인데, 그 영향을 받아서일까. 원주땅 신림면의 황둔리에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찐빵 제조업소 다섯 곳이 생겨나서 성업 중이다. 원래 ‘청색에서 남색이 나온다’고 했듯이 황둔리의 찐빵 제조업소에서는 안흥의 찐빵보다 훨씬 더 맛있게 만들고 있다는 자랑과 긍지가 대단하다. 아울러 다양한 찐빵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 업소들 중에서 선두주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황둔찐빵(033-764-3394)’으로 들어가 봤다. 간판에 걸려 있는 업주 이인숙씨의 하얀 얼굴사진이 곱게 잘 만든 황둔찐빵의 우유찐빵 모습이다. 받아든 명함에도 사진이 들어 있는데 주인의 고운 얼굴이 곱게 빚은 우유찐빵 모습 그대로다.
방부제를 전혀 쓰지 않는 찰흑미, 쑥, 우유 3색의 찐빵을 만들어 택배 위주로 판매하고 있는 황둔찐빵의 포장 단위는 아주 다양하다. 쑥찐빵 28개 10.000원, 삼색찐빵 30개 12,000원, 흑미찐빵 20개 10,000원, 우유찐빵 40개 14,000원.
http://gwmart.co.kr/bkbak.
황둔에서 찐빵 제조업의 선두주자인 황둔찐빵의 주인 이인숙씨.
찰흑미, 쑥, 우유 3색의 찐빵을 만들어 택배 위주로 판매한다.
옛길 l 창밖에는 치악산 남대봉
신림의 4대째 토박이라는 박창선씨가 감악산 자락 신림에서 이 집 ‘옛길(033-762-1077)’만은 빠뜨리지 말라며 88번 지방도에서 싸리재로 가는 비포장도로 100m 지점에 있는 한옥으로 안내했다. 지은 지 불과 석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한옥의 통유리 창가, 탁자에 앉아 따끈한 대추차 한 잔 받아들고 창밖을 내다보니 치악산 남대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감악산 자락에서 감악산은 보이지 않고 치악산 선경을 즐길 수 있다니, 이곳은 분명 명당터다.
주인이 예술감각 넘치는 명함을 건네주며 “저 조남옥입니다”며 인사를 한다. 명함에는 ‘손두부가 있는 한옥전통찻집 옛길’이라고 적혀 있고, ‘이복석’이라는 이름 석 자도 적혀 있다. 얼마 후 외출에서 돌아온 듯 부인이 반갑다고 인사하며 “저 이복석입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이름 석 자가 손님들을 헷갈리게 했다. “부인의 성함이 이복석씨였군요” 했더니 그렇단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결혼식 때는 주례가 실수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신랑 이복석군은 신부 조남옥양을…” 일행은 죄송스럽게도 남의 이름을 가지고 한바탕 즐겁게 웃었다.
감악산 정상에서 10시 시계방향 산자락, 신림2리에 있는 옛길 한옥건물은 목조 건축가인 남편 조남옥씨가 직접 설계하고 지었다고 한다. 창밖은 영하의 차가운 날씨인데 실내 창가 작은 화분에는 생화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무를 태우는 큰 난로가 있는 분위기 만점의 공간에서 대추차 한 잔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아 맥주를 추가로 주문, 잔을 부딪치는데…. 일모도원(日暮途遠) 갈 길은 멀고 해는 서산에 기울고 있었다.
한옥 통유리창 밖으로 치악산 선경을 즐길 수 있는 찾집 옛길의 안주인 이복석씨.
/글·사진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 sanchonmir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