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선배들에 의하여 기수협회를 독립시키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결국 독립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실패를 하여 곤욕을 치루었던 기수협회의 독립! 나 자신도 기수협회를 독립시킨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면서도 1998년 5월 어느 날 기수협회를 독립시키는데 앞장서기로 하였다.
그리고, 1998년 5월 23일 조교관람대에서 기수 회원 59명이 참석하여 임시 총회를 열었다. "조기협회에서 기수들의 탈퇴"에 대한 안건을 투표에 붙였는데 3표 기권을 제외하고 56명이 찬성하여 이날 부로 조기협회를 탈퇴하며 곧바로 발기인을 선출하였다. 각 기별로 하여 14명의 발기인을 선출하고는 나는 준비위원장이 되었는데 이때부터 나는 기수라는 목을(?) 내놓고 오직 기수협회의 완성만을 위하여 죽기살기로 뛰었다.
조기협회를 탈퇴한 우리는 돈도 없고 행정도 없이 발기인 대회와 임시총회를 수차레 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만 봉착되는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자금도 그렇고 행정력도 그렇고 또 막상 조기협회를 탈퇴를 하고는 마사회와 문체부를 비롯한 유관단체를 찾아다니며 사단법인을 만드는데 도와 달라고 하니 조기협회가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마사회와 문체부를 비롯하여 모두가 반대를 하거나 도와 주지를 않는 것이다.
문체부가 기수협회의 독립은 절대 불가라고 하고 있으며 마사회에서도 부서장들이 대부분 기수협회의 독립을 반대하고 있었다. 어느 단체도 도와 주지 않는 상황에서(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던분들도 있었음) 우리는1998년 6월 17일 기수협회 창립 총회를 열었다.
창립총회를 하고는 이제는 사단법인을 만들어야 하기에 주위에 사단 법인을 만들었다는 분들만 있으면 찾아가서 자문을 받으면서 준비를 하였는데 사단법인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단법인을 어떻게 만들라는 안내장이나 책이 없기에 나는 많은 주위 분들의 자문을 받고는 사단법인을 만들기 위하여 문체부에 노크를 하니 문체부에서는 기수협회의 사단법인은 절대로 불가하다는 답뿐이었다.
조기협회와 같은 유사단체가 있어서 절대로 불가하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이러한 답변에 굴하지 않고 수 차례에 걸쳐서 문체부에 사람을 보냈다. 사람을 보낼 때마다 문체부는 한결 같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어떠한 해결책이 없기에 내가 직접 서류를 갖고 문체부를 찾아가서 문체부 간부들을 만나 도와 달라고 하니 역시 불가능하다는 답변뿐이었다. 나는 문체부 간부들과 많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기수협회의 서류를 민원실에 접수를 하니 도와 달라고 하고는 1998년 7월 7일날 무작정 민원실에 접수를 하였다.
서류를 문체부에 접수를 하고는 보도자료를 뿌리고 그리고 기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기수협회의 서류는 언론을 타다 보니 문체부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무작정 서류를 접수하고 여러 곳에 부탁하여 도움을 받다 보니 문체부에서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보니 서류가 많이 미비가 되었기에 사단 법인 서류는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며 친절히 가르쳐 주며 경기도청에 다시 접수를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비 서류를 더 보완하고(이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서류중에 1억원자리 통장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1억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수개인에게 조금씩 빌리고 각 동기회비를 빌리고 하여 힘들게 1억원을 만들었다.) 과천 시청에 접수를 하였다. 과천 시청에서 2틀만에 경기도청으로 올라갔는데 경기도청에서는 이리저리 글씨 하나까지 문제를 삼으며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었다. 빨리 사단법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경기도청에서 건1달 동안 실강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달간 경기도청을 오가며 느끼는 것은 문체부가 기수협회의 서류가 시끄러우니 의도적으로 경기도청으로 넘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튼 1달 동안 경기 도청을 뛰어 다닌 결과 경기도청에서 문체부로 보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이제는 사단법인이 되는가 하는 안도의 숨을 내 쉴 수가 있었다. 그리고 문체부에서 마침내 1998년 8월 29일 사단법인인가를 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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