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음을 남기고 물 속으로 사라졌다. 빙산과 부딪친 지 2시간20분 만이었다. 오
전 3시55분쯤 되어 카르파티아호가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타이타닉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밤바다에는 초록빛 등불을 단 구명 보트들이 드문드문 흩어져 물결을 따라 넘
실대고 있었다. 첫 번째 보트에서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사이에 날이 밝아 왔
다. 사고 해역에는 여기저기 빙산이 널려 있었고,그 사이사이로 사람들을 새까
맣게 태운 보트들이 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카르파티아호에 먼저 닿으려고
힘껏 노를 저었다. 노를 젓는 사람들은 다 여자였고,남자 선원 한 사람씩이 보
트를 이끌고 있었다. 노를 빨리 저으려고 ‘뱃사람이여,기슭으로 저어가세’라는
뱃노래를 부르는 보트도 있었다. 오전 8시40분. 마지막 구명 보트로부터 75명
이 카르파티아호에 옮겨 탐으로써 구조 작업은 막을 내렸다.
구조된 보트는 모두 17척,살아난 사람은 1,530명. 하늘이 도왔다고나 할까. 마
침 카르파티아호 선실은 반 넘게 비어 있어서 생존자들을 태우는 데 별 어려움
이 없었다. 구조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캘리포니안호가 그곳에 왔다.
그들은 카르파티아호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카르파티아호는 타이
타닉이 가라앉은 사실을 알려주고,자기네는 급히 뉴욕으로 돌아갈 테니 그곳
에 남아 주검들을 수습해 달라고 부탁했다.
캘리포니안호는 한 시간 가까이 수색했지만 주검은 단 한 구도 찾지 못했다.
물론 생존자는 없었다. 영하 2도나 되는 차가운 물에서 일곱 시간이 넘도록 살
아 남은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큰 빙산에 걸려 눈에 띄지 않았던 주검들은,1
주일 뒤 다른 배에 306구나 발견되어 대부분 바다에 장사 지내졌다.1971년 미
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해양지질학자 로버트 밸러드는 타이타닉호를 찾자고
제안했다. 그는 배를 발견하기만 하면 자기가 직접 잠수정을 타고 바다 속으
로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는 이 제안을 1978년에도 했지만 돈을 대겠다고 나서
는 사람이 없었다.
밸러드의 생각으로는 그 무렵의 해양 탐사 장비라면 타이타닉호를 찾을 수 있
었다. 1963년에 침몰한 미국 원자력 잠수함 드레셔호와 1968년에 침몰한 소련
골프 2급 잠수함을 찾아 끌어올리면서 심해 탐사 장비들이 눈부시게 발달해 있
었던 것이다.
1980년 잭 그림이라는 지질학자가 밸러드에게 돈을 대겠다고 나섰다. 그는 네
스 호수의 괴물과 아라랏산에 있다고 하는 노아의 방주,히말라야에 산다는 설
인 예티를 찾는 일에 돈을 댄 적이 있었다. 그 세 가지는 다 실패했는데,그는
네 번째로 타이타닉을 찾는 일에 도전했다. 잭 그림이 타이타닉을 찾는 일에
돈을 대기로 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컬럼비아대학의 해양학자 윌리엄 라이
언이 그림을 만났다. 그는 그림에게,1963년 드레셔호를 찾아낸 기계는 자력계
(磁力計)였지만,타이타닉이 가라앉은 곳은 북대서양에서도 자력이 무척 센 화
산지대 근처이므로 스캔소나(수중 음파탐지기)를 쓰라고 충고했다.
밸러드와 그림과 라이언,거기에 사이드 스캔소나를 만든 프레드 스파이에스는
1980년 7월30일부터 8월16일까지 1300평방㎞에 이르는 넓은 바다 밑을 음파
탐지기로 수색하다가 돌아왔다. 1981년과 1983년에도 시도했지만 날씨가 나빠
실패했다.밸러드는 세 번이나 실패했어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탐사
지역을 좁히려고 프랑스 해양연구소의 장 자리와 장 미셸 두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미셸과 밸러드는 1973년 대서양중앙해령을 탐사할 때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타이타닉호의 침몰에 관해 쓰여진 모든 항해일지와 기록을 찾
아 샅샅이 뒤졌다. 덕분에 배가 가라앉았을 만한 곳을 20평방㎞ 이내로 좁혔
다. 1300평방㎞에서 20평방㎞로 좁히다니! 엄청난 성과였다.
1985년 6월,미국 해군이 밸러드에게 22만달러를 대기로 했다. 해군은 타이타
닉 탐사를 하면서,사람이 직접 들어가지 않고도 카메라와 비디오를 통해 바다
속을 뒤지는 ‘원격조종 탐사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해
군이 만든 심해 탐사용 잠수정을 3900m 깊이에서 시험해 볼 좋은 기회라고 여
겼던 것이다.
1985년 7월11일부터 8월7일까지 밸러드 일행이 탄 르 시르와 호는 긴 쇠줄 끝
에 프와송(생선)이라고 불리는 음파탐지기를 매달고 바다 밑을 뒤졌다. 거기에
는 사이드 스캔과 수직 소나가 함께 달려 있었다. 다른 쇠줄에는 자력계를 매
달았다. 음파탐지기가 물체를 찾아 모니터에 비추면 자력계가 쇠붙이인지 아
닌지 알려줄 것이다. 그러나 빠른 해류와 거센 바람 탓에 대원들은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
8월13일 밸러드와 미셸은 우즈홀 해양연구소가 보낸 탐사선 노르 호로 갈아타
고 다시 탐사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이 연구소가 새로 만든 잠수정 아르고 호
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르고란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 야손 일행이 황금양을 찾아 나설 때 탔던 배
이름이다. 아르고 호는 자동차만한 크기로 썰매 모양을 했는데,강력한 음파탐
지기와 탐조등,고성능 카메라를 갖추고 있었다. 아르고 호는 6,000m 깊이에서
도 활동할 수 있는 잠수정으로서 사람들은 노르 호 선실에 편안히 앉아 아르고
호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날마다 거센 파도와 물결에 부대끼
면서 탐사했다. 그러나 타이타닉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원들은 점점 기
운을 잃어갔다.
8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얼마 안 있으면 돌아가야 할 철이 성큼 다가서고 있
었다. 타이타닉을 찾을 희망은 자꾸 엷어졌다. 8월31일 밤 미셸은 밤 12시부터
9월1일 새벽 4시까지 당직을 서려고 관제실로 나갔다. 그 시간대는 제일 힘겨
운 때였으므로,믿을 만한 미셸이 당직을 서기로 되어 있었다.
9월1일 0시30분 조금 지났을 때였다. 문득 석탄과 긴 파이프 같은 것이 스크린
에 나타났다. 미셸의 가슴이 뛰었다. 함께 당직을 서던 항해사와 비디오 기술
자,소나 전문가 여섯 사람도 꼼짝하지 않고 화면을 지켜보았다. 5분쯤 지나자
커다란 보일러 같은 것이 화면에 나타났다. “누가 가서 밸러드를 깨워야겠어!”
미셸이 말했으나 아무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려 하지 않았다. 이 가슴 벅찬 순
간에 누가 화면에서 눈을 떼려 하겠는가. 얼마 뒤 요리사에게서 보고를 받은
밸러드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는 화면에 나타난 보일러를 보자 큰소리로 외
쳤다. “바로 저거야!”
한 바탕 뜨거운 순간이 지나간 뒤 그들은 묵념을 했다. 그 시간이야말로 74년
전 타이타닉 호가 바닷물에 잠기고 수많은 사람이 파도에 휩쓸려 죽어가던 시
간이 아닌가.다음 이틀 동안 바람은 40노트,파도는 4m 넘게 솟구쳤다. 노르호
를 돌려주기로 한 날이 며칠 남지 않아 밸러드는 악조건에서도 24시간 탐사에
매달렸다.
아르고호는 물 속 3,900m에서 쉴새없이 타이타닉호를 맴돌며 사진을 찍어 모
니터로 전송했다. 포도주병,매트리스,전신기,마스트,닻 사슬…. 날마다 수많은
잔해가 화면을 메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배의 앞부분만 보였지 뒷부분이 보
이지 않았다. 나중에야 타이타닉호가 두 동강 난 사실을 알았다.
1986년 7월14일 2차 탐사가 시작되었다. 밸러드는 탐사선 애틀란티스 2호에서
잠수정 앨빈호로 갈아탔다. 앨빈호는 6,750m 잠수테스트에 합격했고,1960년
이후 지금까지 100개가 넘게 만들어진 유인잠수정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성능과
업적을 자랑한다. 밸러드를 비롯한 과학자 세 사람은 앨빈호 속에서 ‘제이슨
주니어’라는 로봇을 원격조종해 타이타닉호의 계단 통로를 따라 선실로 들여
보냈다. 로봇에 장착된 특수카메라가 선실 안 모습을 구석구석 찍었다. 카메라
는 높은 수압과 짙은 어둠 속에서도 170 시각을 선명하게 찍었다. 1등 선실의
크리스털 샹들리에는 조금도 상하지 않은 채 매달려 있었고,구리로 만든 조타
실 장식품들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조사는 날마다 4시간씩 7월25일
까지 12일간 계속되었다. 특이한 것은 조난자들의 뼈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
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곳 바닷물 속에는 무기물이 적게 들어 있어 뼈가 모두
녹아버렸거나 조류에 휩쓸려 없어진 것 같았다.
주니어’는 어떤 잠수정도 잠수한 적이 없는 3,650m를 훨씬 넘어선 3,900m 바
다 속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다. 길이 71㎝ 너비 68.5㎝ 높이 50㎝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로봇은 적 잠수함이 있는 곳을 알아내고 물 속의 전파탐지장치
와 미사일을 찾아내는 군사용 로봇이다. 미국 해군은 타이타닉 탐사 덕분에 이
로봇의 쓰임새를 아주 잘 시험해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날 밸러드는 구리로 만든 판 2개를 타이타닉호 갑판에 얹었다. 하나는
타이타닉호 희생자 가족들의 모임인 ‘타이타닉 역사협회’가 희생자들을 추모
하는 글을 새긴 것,다른 하나는 뉴욕탐험가협회가 보내온 것인데 거기에는 이
렇게 적혀 있었다.
“앞으로 이곳에 오는 사람은 심해 탐험 기념이랍시고 이 배를 손상하는 일을
삼가주십시오."
출처 : [기타] http://www.misterynemo.wo.ro/
.
타이타닉 (Titanic) 1997 제임스 카메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디카프리오와 케이트윈슬렛 주연의 "타이타닉" 뱃전에서의 그 씬은 오래동안 모두에게 기억되는 장면.. 신분이 다른 남녀 주인공의 절절한 사랑이야기... 그리고 바다위 화려한 선상에서의 러브씬들.. 엔딩씬에서 디카프리오가 케이트를 구해주고 얼음바다속으로 가라앉는 장면 거대한 타이타닉호의 침몰씬등 옛연인을 회상하며 할머니가 손녀딸에게 전해주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그리고 셀린디온의 멋진 목소리로 노래하던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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