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전[11-1]천귀(天鬼)의 노래/바퀴벌레의 운명

[천지자연의 법]

어느날은
금룡포를 입고 천궁을 거닐며
현세에서도 낯익은 얼굴들을 다독거리다

어느날은
적룡포를 입고 옥좌에 앉아
서릿발처럼
만신을 아우르다

어느날은
문득 깨어나니 저절로 정좌

옥좌의 감각이 그대로 가슴에 찡하고
절도있는 손발의 각도 흩어지질 않누나

빛 기둥 다시 불러 천상에 올라
만조백관 모아놓고 옥좌에 앉아
무슨 공사 벌이는지
기억을 되돌려 분명히 하렸더니

눈부신 빛 속에서 펼쳐지는
나의 손발이 갈퀴로다.
거대한 바퀴벌레로다.

깨어나서도 한참을
치켜든 손에서 놀란 눈을 떼지 못하였네

혼이 달아나는 영각(靈覺)
천상천하유아독존

부정할 수 없는 바퀴벌레의 운명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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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