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방 5 / 시 / 김은희
로또
빚보증에 시름 앓는 친구
수화기 너머에서 마른 입술 닦는 소리
자꾸 귀에서 수화기는 멀어지고
미끄러지는 손바닥이 축축하다
한 끼 찬거리 지갑 풀어 로또를 산다
파 몇 단, 두부 몇 모, 콩나물 서너 봉지와 맞바꾼
숫자열매 틈으로 나, 콩벌레되어 파고들면
오래 오래전의 여자
출산 고통 대물림할 때
벗어놓지 못한 유혹 태반처럼 따라와
오후의 동공 자꾸 흐려 놓는다
콩을 훑는 지문 끝 피가 더워지고
열매는 어느 깍지 속에 숨어있을까
재크가 만났던 노인
요술콩 쥐어주고 암소 끌고가서
부른 배 실룩이며 구천에서 자고 있을 지도 모를
혼령 깨울 주문을 나, 부지런히 외운다
임당리일육팔삼번지에서사월구일에태어난김씨대주아파동 동호수는백오동팔백일호자동차번호는이육삼구이며이름의 획수는오삼오전화번호뒷자리는영이일사라네요발원축원하 옵건데잘좀돌봐주시길
가려내는 까만 진액 콩에
뱅글 돌아가다 멈춰서는 지구본
껍질을 갉고 들어가 몸 동그랗게 말자
빈 장바구니 타박하는 남편소리가 굴러 떨어진다
대출 없는 인생 살 수 있다면 몇 곱절 밤은 길겠지만
위태로운 곡예전도 견딜만하다는 듯
살풋, 콩나무 자라는 소리 들린다
솜이불 아래 숨겨둔 가슴이 콩닥콩닥
거인의 성까지 부풀어 오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