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천안 부대동 성 요한세자 교회(구. 성당)
천안시 부대동에 한옥으로 지어진 성공회교회를 찾았다.
부대동은 1963년 천안이 시로 승격되며 부대동이 되었지만 그 전에는 천안군 북일면 부대리였다.
부대리 富岱理는 부토리富土理와 새터리新岱理가 합쳐서 생긴 마을이름이다.
이 마을에 처음 지어진 교회는 1907년 교인들이 힘모아 세운 6칸짜리 초가집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교인들은 1908년 3월 3일 북일학교를 세웠다.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는 달리 교인들이 세웠기에 학교 이름도 동네이름을 따서 北一학교라 했다.
이 학교가 천안 최초의 사립학교로 일제시대 내내 유지되다가 1946년 공립 부대초등학교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부대리 북일학교 출신 김종희가 1971년 천안시 신부동에 설립한 천안북일고등학교도 이 북일학교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이 한화그룹의 창시자 김종희씨가 이 교회의 교인이고 그 이들 김승연 한화그룹회장이 내어 놓은 헌금과 일부 교회 땅 판 돈을 합쳐 1986년 현재의 교회를 크게 신축하였다.
그리고 새 성전을 지으므로 지금은 식당으로 용도 변경된 옛 교회를 찾아 나선 것이다.
옛 교회는 새 성전의 대나무, 소나무, 측백나무 등으로 둘러싸여 자연의 일부인 듯 은근하게 숨어 있다.
이 교회는 1920년 트롤로프 주교에 의해 축성되었는데 정면3칸 측면8칸의 장방형 평면이다.
(원래 한옥은 지붕합각이 있는 쪽이 측면이지만 대부분의 한옥교회가 그렇듯이 교회에서는 내부 기능상 지붕합각 쪽을 정면으로 설명하기로 하자).
현재는 내부를 개조하여 식당으로 쓰고 있으며 주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쪽이 전에는 강단이 있던 곳이다.
3칸 중 음성교회와 같이 중안 한 칸은 강단으로 쓰고 좌우에 한 칸씩은 고해실과 성의실로 사용하였던 것 같다.
혹은 진천교회와 같이 3칸 전체를 나누어 부속공간으로 사용하고 그 앞에 강단을 두었을 수도 있다.
강단쪽 중앙칸에도 창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후자가 더 설득력은 있다.
강단 뒤에 정상적으로 창호는 두지 않을 테니까. 이 날 교회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 물어 보지 못 한 것이 후회스럽다.
전면 출입구가 재미있다.
정면은 중앙칸에만 출입구가 있고 정면 좌우칸은 창문만 있다.
그리고 측면의 전면쪽 마지막 칸에 양쪽으로 출입구를 두었다.
양쪽출입구는 남녀를 구별하여 드나들게 하였던 것이고 중앙의 출입구는 결혼식이나 장례식만 열어 사용하였다는데 신혼부부와 죽은 자에게만 열린 중앙문이라?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창문도 재미있다 우리의 전통 세살문을 설치하되 하부에만 살을 넣은 변형된 모양인데 유리를 끼우니 살이 필요 없고 살이 없는 것이 더 밝았을 듯하다.
벽면의 구성을 보면 주초석 사이에는 화강석으로 고막이석을 두었고 그 위로 적벽돌을 마구리가 나오도록 한 줄을 세워 쌓고 그 위로 벽돌을 쌓았다.
산쪽으로는 측면중앙부에 굴뚝도 있다.
합각부는 벽돌로 십자가 문양을 넣었고 와편으로 장식하였다.
현재의 내부는 주방쪽은 간막이 벽으로 막혀있고 전면쪽은 마지막 칸에 일부 벽체가 설치되어 있는데 아 양쪽칸은 분리된 현관으로 있었을 것이고 중앙칸은 별도 간막이 없이 내부와 연결되었던 것 같다.(진천성당같이)
2고주 7량가로 고주사이에 대들보 그 위에 종보, 고주와 평주 사이에 퇴보가 결구된 음성교회와 같은 구조이다.
지붕은 시멘트기와였지만 건물은 손본지 얼마 안되는 듯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고 내부에는 그리운 풍금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