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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통일문화의 향 원문보기 글쓴이: 오상지
면장하시는 외할아버지 | ||||
<연재> 통일운동가 안재구 자서전 ‘어떤 현대사’ (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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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하시는 외할아버지
복란이 아지매 집에서 자고 그 이튿날 이모에게 갔더니 이모는 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맞으면서 외할아버지가 대구에 오셨다고 했다. 어제 면장회의가 있어서 오셨다는 것이다. 전화로 얘기를 했는데 내가 와 있다고 했더니 오는 대로 성주여관으로 보내라는 말씀이었다고 하신다. 그리고 성주여관으로 찾아가는 길을 가르쳐주었다.
당시는 시내버스가 있기는 했지만 반월당이라는 곳(지금 동아백화점 건너편)에서 중앙로로 해서 신암동까지만 있었고 운영은 시청 직영이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볼일은 걸어 다녀야만 했다. 포장도 중앙로나 포정동에서 서문시장까지, 시내버스가 다니는 길 정도이다. 다만 도지사 관사까지 동인로 길만 포장되어 있다.
나는 타박타박 먼지 길을 걸어서 달성군청(지금의 대구백화점 자리)을 찾았고 거기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바라보니 저 멀리 성주여관의 간판이 보여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여관 문을 들어서서 안내실 창문을 열고 안내원 총각에게 구지면장의 방을 물었다. 안내원 총각은 사전에 알고 있어서 대뜸 면장님 외손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문을 열고 나와 자기를 따라오란다. 어느 방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문에다 대고,
“면장님, 외손자가 왔습니다.”
방안에서 ‘오냐’하는 반가와 하는 목소리와 함께 미닫이문이 드르륵 하면서 열리며 수염이 길게 난 얼굴에 반가운 웃음을 가득 담고 초로의 노인이 나오신다. 외할아버지다. 어릴 때 밀양에 오셔서 뵌 적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되어 얼굴을 잊고 있었지만 뵈오니 당장 알아보겠다.
“오냐, 네가 왔구나. 그 동안 많이 컸구나. 들어오너라.”
우선 툇마루에 걸터앉아 편상화 끈을 풀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외할아버지는 이미 윗목에서 정좌를 하고 내가 들어와서 절하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절을 공손히 하고 바로 앉아 할아버지를 보고 인사말을 여쭈었다.
“할아버지, 기체 안녕하십니까.”
“오냐, 너거 집도 별일 없제. 니 할아버지도 안녕하시고.”
“예. 어머니 아버지도 잘 계십니다.”
“그래 내가 너그들 본지도 오래 되었구나.”
그리고 집안 안부를 대강 물었다. 할아버지는 시종일관 반가운 표정이었고 다 큰 나를 보니 더욱 반가운 모양이다.
아까 나를 데리고 왔던 총각이 과자 상을 가지고 들어오고 한참이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말했다.
“할아버지, 이번에 대구에 온 김에 외가에 다녀올랍니다.”
“그래, 학교는 어쩌고?”
“....”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 학교에 안 다닙니다.”
할아버지는 깜짝 놀란 얼굴로
“그건 무슨 말이고. 아니 중학교에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지난 5월 1일 세계노동절 날에 동무들과 기념대회에 갔다고 학교에서 퇴학을 시켰습니다. 학교에 못 다니기에 시간도 있고 해서 외가에 다니러 왔습니다.”
“응 그런 일이 있었구나. 원 공부하는 학생을 퇴학시키다니. 그놈의 학교 다니지 말거라. 어디 학교가 그놈이 교장하는 중학교밖에 없나.”
할아버지는 너무나 뜻밖이었고 분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위로할 겸 여쭈었다.
“할아버지, 꼭 학교라는 데에 가야 공부하는 것은 아니지요, 독학을 해도 되고, 나중에 세상이 안정되고 새나라가 서면 그때 학교에 다녀도 안 되겠습니까. 할아버지,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오야, 어린 네가 벌써 그런 결심을 할 줄 아는 걸 보니 이제 다 컸구나. 그러나 세상이 이래서야, 좌우 싸움은 저그들끼리 박이 터지든지 말든지 하지, 와 어린 학생들을 싸잡아 퇴학을 시키고 난리고.”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놈의 세상 어찌 될는지 모르겠다. 좌익은 폭동을 일으켜 그 통에 저그들도 숫하게 당하고 순사 놈들이 맞아죽고, 우익은 그 분풀이로 아무나 잡아 패고. 일제 때 몸서리나는 공출을 지금도 받으라 하니 어디 농민들이 말을 듣나, 아이구, 이놈의 면장 노릇도 못해먹겠다. 군청에서는 공출 독촉하라고 생 난리더구나.”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더구나 유치장에 가서 죽도록 맞은 일은 말할 수가 없었다. 아마 그 말을 했더라면 외할아버지는 다시 밀양에 가지 말라고 하셨을 것이다.
저녁때가 되자 이모로부터 전화가 왔다는 아까의 총각이 전했다. 그래서 내가 전화를 받았다. 이모는 할아버지는 여관에서 진지를 잡수시겠다고 하셨으니 너는 빨리 돌아오라는 말씀이다.
방에 돌아와 할아버지에게 전했더니 할아버지는,
“오야, 그렇게 해라. 여기 여관 밥은 그렇고 그러니 너는 네 이모가 정성들여 잘 해줄꺼다.”
“예, 어제도 복란이 아지매가 곰국거리를 가져와서 잘 먹었습니다.”
“그래, 그 복란이 이실이 말이제. 이서방도 사람이 그럴 수 없이 좋은 거야. 그래, 너는 언제 외할매 보러 갈래.”
“모래는 외가로 갈 작정입니다.”
“그래 자동차 차부로 가서 구지로 바로 가는 차를 타면 주재소 앞에 세운다. 거기에서 좀 내려오면 면소다. 면소로 오너라. 그 바로 곁에 면장 사택이 있다.”
그리고 차 시간을 가르쳐 주셨다. 차표가 없으면 회사의 아무개를 찾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정좌를 하고 다시 하직 절을 하고 방밖으로 나왔다. 할아버지는 따라 나오며 보내는 것을 아쉬워했다.
“할아버지, 그럼 모래 뵙겠습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절을 올리고 문밖으로 나왔다.
이모는 기다리고 있었고, 누나와 누이, 아우 그리고 새아재도 형님도 다 와 있었다. 새아재는 저녁 진지는 반주로 시작하시었다. 이틀 만에 방에서 기고 있는 숙이 누이는 나와 안면이 통해 내 곁으로 와 안긴다. 젓가락으로 밥풀을 몇 알 집어 입에 넣어 주었더니 좋아라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풀쩍풀쩍 뛰어서 모두 보고 웃는다.
우리 집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정말 평화로운 저녁 시간이었다. 안온한 느낌이 내 가슴에 파고든다.
그리고 이틀 동안 어디 나갈 일도 없고 이층 형아 공부방에 처박혀서 거기에 있는 책을 보며 지냈고 이모가 해주시는 맛난 먹거리를 먹으며 푹 쉬었고 투쟁의 피곤을 풀며 지냈다.
이틀 뒤에 아침 일찍이 대신동 차부에 갔다. 이모는 나에게 노자를 하라면서 당시 돈으로 나로서는 좀체 쥘 수 없을 만큼 주신다.
경북여객차동차회사다. 대형버스라는데 요즘 버스로는 마을버스만 했다. 매표소에 갔더니 이미 차표는 없단다. 하는 수 없이 사무실에 들어가서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아무개를 찾았다. 나이가 40 정도 된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가 책상에서 일어서서 눈을 굴리면서 나를 본다. 그리고 불퉁스럽게,
“총각, 와 찾노?”
“저는 구지면장의 외손잔데 차표가 없어서, 할배가 아저씨에게 부탁하락 해서 왔습니다.”
“응 그래, 구지면장님 외손자라고? 그래 이리 와서 의자에 앉거라. 차표 끊어 올테이.”
당장 불퉁거리던 목소리가 순한 아저씨 소리로 되고 그 울퉁불퉁한 얼굴이 환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매표소 문을 열고 들어가서 표를 한 장 들고 나와 나에게 준다. 나는 그 표를 받고 준비한 차삯을 내었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그냥 두란다. 그래도 받으라고 돈을 내밀었더니 금방 정색한 얼굴로,
“이 사람, 그냥 두라니까. 나도 면장님 손자 차 좀 태워 주 보자.”
라고 하면서 돈 쥔 손을 기어이 내 호주머니에 넣는다.
“이 사람, 밖에서 기다리지 말고 여기 앉아 있거라. 차가 차부에 들어오면 내가 태워 줄 테이.”
차시간은 이미 지나고 있었다. 당시는 교통에 질서가 없는 사회인지라 차시간도 정확하지 않았다. 오래된 차라서 고장도 잦았다. 그것을 정비하느라고 시간이 지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가 도착하자 그 아저씨는 나를 데리고 나갔다. 차 입구에는 힘꼴이나 있는 청년이 버티고 검표를 하고 사람을 태웠다. 입구에는 서로 타려고 아우성이다. 그 아저씨는 나를 그쪽으로 데리고 가지 않고 차 앞으로 해서 운전사가 타는 쪽문으로 데리고 가더니 주머니에 열쇠를 내어 그 쪽문을 열고서 나를 태웠다. 나는 몸을 꾸부리고 들어갔더니 그 아저씨는 바로 운전사 뒷자리를 정해주면서 잘 가라고 손짓을 하고 차 탈 일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자기를 찾으라고 했다. 그 뒤 여러 번 대구에서 외갓집 가는 길마다 그 아저씨를 찾았고 때로는 시장 목롯집에서 국밥도 얻어먹었다.
전쟁 후에 소식을 물었더니 전쟁이 나자 고향으로 갔는데 그 후로는 차부의 사람들은 모른다고 했다. 외갓집 가는 이야기를 쓰는 대목에서 유달리 그 순박한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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