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점 인수
내가 공직생활을 접고 운수회사에 근무를 하는 동안 형님은 이것저것 여러가지 장사를 해 보았지만 모든 것이 실패의 연속 이었다.
형님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결국 어머니께서 계와 사채놀이를 하시면서 조금씩 모아놓은 돈은 얼마안가 형님이 모두 거덜을 냈다.
문제는 형이하는 장사가 안돼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장사는 그런대로 되는데 100원을 벌면 200원 쓰는 형님의 씀씀이가 문제였다.
이유야 어떻든 여러차례 사업에 실패한 형님은 결국 2년 정도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내면서 백수로 지내고 있었다.
동생인 나로서는 그런 형님을 볼 때 마다 형님보다도 형수님 보기가 더욱 미안했다 그러다 보니 반찬값이나 어린 조카들 간식거리는 내가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어머님께서 나를 보자고 하셔서 어머님께 찾아 뵈었더니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형이 그러는데 동네에 정육점이 하나 나온 것이 있는데 정육점 주인이 가게를 내놓았단다.
그 것을 한번 맡아서 해보고 싶다는데 형이 너 한테는 염치가 없어 말도 못하고 아무래도 나를 통해서 너한테 부탁을 해 달라는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을 하냐는 말씀이셨다.
어머니로부터 그러한 내용을 전해들은 정육점은 평소 나도 그 정육점 앞을 가끔 지나치지만 장사가 썩 잘되는 가게는 아닌 것으로 보였고 정작 장사가 잘 된다면 주인이 가게를 내 놓았을 리도 만무하였을 것이지만 나는 가게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기존의 설비에 대하여 중고시세로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였으나 가게 주인은 별도로 권리금을 쳐 달라는 것이였다.
나는 장사가 잘되는 가게도 아닌데 무슨 권리금을 주냐며 일단은 계약을 미루고 관심을 보이지 않자 형님은 내가 도와주지 않으려고 그런 것이 아닌가 해서 조금은 서운하게 생각을 하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계약을 하자고 달려들 수도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형님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전에 약방을 하던 구주약방 자리가 새로 나왔는데 약방을 하던 사람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때문에 약방 자리를 내 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왕이면 거기다가 정육점을 새로 차리면 어떠냐는 형님의 제안 이었다.
나는 그 약방 자리를 형님하고 함께 가서 보았는데 전에 이야기하였던 정육점보다는 위치도 좋고 별도로 권리금을 주느니 차라리 우리가 새롭게 가게를 꾸미는 것이 낳을 것 같아 그 자리에서 형님에게 계약을 하라고 하고는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꽤나 큰 돈 이었지만 아낌없이 형님께 가게를 얻으라고 돈을 건네주었다.
나는 정육점 상호도 기왕이면 전에 약방 이름을 그대로 써서 구주정육점으로 하자고 하였다.
그것은 구주약국이 신흥동에서 오랫동안 약국을 해왔기 때문에 동네사람이라면 구주라는 상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지도가 있기 때문 이었다.
그 때만 하여도 일반 대형마트가 생기기전이라 고기는 동네 정육점을 많이 이용할 때였고 개업을 시작한 형님의 구주정육점은 개업 첫날부터 장사가 불티나게 잘되었다. 형님과 형수님은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잔돈이 없어 쩔쩔 맬 때는 급한 대로 내 주머니에 있는 잔돈을 건네주었지만 형님이나 형수님이 정신이 없어서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지만 그래도 나는 너무나 행복하였다.
내가 형님을 아낌없이 도울 수 있었던 것은 못난 형이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조카들하고 참고 살아주는 형수님이 항상 고마웠고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 중에 의좋은 형제라는 줄거리가 있다.
형님은 동생이 신혼살림을 하느라 돈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여 가을에 추수한 볏단을 새벽에 아우 몰래 아우네 볏가리에다 가져다주고 동생은 형님이 식구가 많으니까 돈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여 자신의 볏단을 형님네 볏가리에다 몰래가져다 주다가 서로가 중간에 만났다는 이야기를 교과서에서 읽고는 우리 형제도 그 교과서에 나오는 의좋은 형제처럼 서로 돕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무튼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형님가게는 날로날로 번창을 하였다.
형님은 장사 수완이 뛰어났다 그 당시 형님은 태능갈비를 비롯하여 굵직굵직한 거래처를 여러 군데를 잡아 하루가 다르게 매출이 늘어 형님 말로는 인천에서 소매로는 매출 1위를 하였다고 자랑을 할 정도였다.
장사 수완이 좋은 형님은 어느새 돈을 많이 벌어 집이 3 채나 되고 자가용도 좋은 차를 타고 다녔다.
형편이 좋아진 형님은 나보고 고기를 그냥 갖다 먹으라고 하였다.
오히려 고기를 안 가져다 먹는다고 역정을 냈다 그런 형이 고맙고 든든해보였다 아무튼 신흥동에서 어려서부터 문제아로 낙인 찍혔던 형이 그야 말로 성공을 한 것이다. 언젠가 형이 나한테 이런 말을 해 준적이 있었다.
전에 중학교 다닐 때 동네 골목길을 지나는데 옆집에 사는 성일이네 집에서 성일이 아버지가 성일이를 야단 치는데 성일이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너 이놈자식 옆집 중수처럼 될 거냐며 야단을 치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형은 그 당시 그 말에 충격을 받아 내가 커서 성공을 해 보란 듯이 잘 살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고 하였다.
형은 아무튼 칠전팔기도 더 되겠지만 형이 마음먹은 대로 뒤 늦게나마 성공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돈이 붙으면 여자도 붙는다고 형님은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하지 못 한다고 언제부터인가 형수님 말고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
문제는 남자가 어디 가서 다른 여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못해도 병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문내고 할 일도 아닌데 형님이 만나는 여자는 집으로 전화를 하고는 형수가 전화를 받아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형님을 바꿔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거기에는 형님한테도 문제가 많았다 나는 형님이 먹고 살만하면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으로 생각을 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생각지도 못한 걱정거리가 생겼다.
형수님은 형님의 부정한 사실을 시 부모님 한테는 차마 말씀도 못 꺼내시고 나를 볼 적마다 나한테만 하소연을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형님이 한편으로는 야속하기만 하였다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한 나머지 형수님이 이미 알아놓은 제물포 아파트에 상대여자가 살고 있다는 집을 형수님과 함께 찾아갔다.
그날따라 나는 말쑥하게 정장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녀의 집을 찾아갔는데 그 녀는 출타 중이였고 동생이라는 여자만 집안에 있었다.
나는 동생이라는 여자에게 내가 이중수씨 동생이라고 말하자 동생되는 여자도 형을 잘 아는 눈치였다.
나는 동생되는 아가씨한테 말하기를 미안하지만 언니가 잘못을 많이 하여 내가 손 좀 보러 왔는데 언니가 없으니 내가 조금만 손을 보고 갈테니 놀라지는 말라고 정중하게 고지를 하고는 보이는 대로 살림살이를 박살냈다.
갑자기 발생한 돌발 상황에 동생되는 여자는 기가 질려 있었고 나는 동생되는 여자에게 한마디 건넸다.
언니한테 전해주라고 도둑질을 하려면 주인 모르게 해야지 주인이 보는데서 도둑질을 하면 되겠냐고 하더라고 언니한테 꼭 좀 전하라고 하고는 그 곳을 빠져 나왔다.
그러한 나의 행동을 형님은 뒤늦게 알았겠지만 나한테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3시쯤 형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형수님 목소리에 불길한 생각을 하면서 어쩐 일이냐고 묻자 형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번에는 형님이 또 그 녀와 함께 송도에 있는 ㅇㅇ모텔에 있으니 나보고 빨리 좀 와 달라는 거였다.
밖에는 소낙비가 장대처럼 퍼붓고 있었다 나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송도 파출소로 갔다 나는더 이상 긴 말이 필요 없었다.
형수님한테 형님 버릇을 고치려면 형수님이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하니까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라고 하고는 마침 송도파출소에는 전에 동부서에서 같이 근무하던 조 문행 이 차석으로 있었다.
나는 조 경장에게 전후사정 이야기를 하고는 모텔에 있는 두 사람을 무조건 연행하여 본서로 넘기라고 하고는 형수한테는 간통은 친고죄로 아무 때고 형수님이 취하를 하면 나올 수 있는 죄니까 일단 유치장에 잡아넣고 형님의 버릇을 고친 다음에 취하를 해주자고 그렇게 이르고는 나는 여기 없었던 것으로 하고 집으로 갈 테니 그리 아시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날 오후쯤 되어서 나는 남동경찰서 형사계로 찾아갔다.
남동서는 동부서에서 분할된 경찰서라 전에 동부서에서 같이 근무하던 형사계 직원들이 여러 명 있었다.
형사계에 들어서자 오래간만에 나를 보는 직원들은 반갑다며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하였다.
한쪽 보호실 철창 속에는 형님과 그 녀가 고개를 조아리고는 앉아있었다 나는 먼저 그 녀가 있는 여자보호실 쪽으로 갔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금 새 알아보고는 일어서서 철창 쪽으로 와서는 죄송하다고 하는 거였다 나는 그 녀에게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내가 전에 말했지 못난 형님이 찾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 형수님 불쌍한 분이니까 형수님 마음 상하게 하지 마라달라고 그리고 도둑질 하려면 주인 몰래 하라고했지 하며 철창 사이로 나는 그 녀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한대 내리쳤다.
그러면서 나는 형에게 겁을 주려고 잘 됐네 이혼 수속도 되어있으니까 둘이 감방에 가서 10개월 정도 살다 나와서 둘이 살림 차리고 살면 되겠네 하고는 잘못했다고 두 손을 싹싹 비는 그 녀를 뒤로하고는 나는 형사계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어머니한테서 터져 나왔다.
그래도 자식이라고 형수한테 형을 경찰서에 잡아넣었다고 얼마나 닦달 하셨는지 착한 형수님은 결국 시어머니 등살에 못 이기고 그날 밤에 취하서를 써주어 형님과 그녀는 그 날로 경찰서에서 풀려나왔다.
그 녀는 나중에 알았지만 유흥업소 여자들을 상대로 일수놀이를 하는 여자라 만약에 몇 달씩 유치장에 감금되어 있으면 일수 돈을 수금할 수가 없어 손실이 엄청 발생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두려워서인지 그 녀는 형수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3000천 만원을 지불하겠다는 지불각서를 형수에게 써주고 형수는 그 녀에게 받은 지불각서를 나한테 보여주었다 나는 형수가 보는 앞에서 그 지불각서를 찢어버리면서 말했다 형수님 우리가 돈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죠
그 후로 형님과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지만 그 후 형님은 위암으로 2년간 투병생활을 하였다.
먹고 살만하니까 그런 불치의 병이 형님에게 생겼던 것이다.
정기적으로 항암주사를 맞으며 병마와 싸웠지만 날이 갈수록 형님의 고통은 심해졌다 병마와 싸우는 형님의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그러한 자식을 옆에서 지켜보시며 간병하시는 어머님의 고충도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시며 형님을 돌보았지만 어머님의 지극정성인 간병에도 불구하고 병마와 싸우는 형님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다 나중에는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형님을 어머니께서는 수시로 목욕을 시켜 항상 청결하게 해주시며 힘들다는 내색 한번 안하시고 형님 곁에서 수발을 하셨다.
나는 그동안 형님이 너무나 고통스러워해 마약의 일종인 필로폰 주사약을 어렵게 구해서 형님이 살아있는 한 고통이라도 좀 덜 받으라고 전에 집사람이 식당할 때 가게에서 서빙을 하던 아주머니가 보건소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 그 분을 통해서 아침저녁으로 약물 주사를 놓아주었지만 그것도 처음에는 약효가 8시간 정도 가던 것이 시간이 갈수록 나중에는 한 시간도 못가서 형님은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하는데 나중에는 형님 엉덩이에 살이 없어 주사를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형님의 몸은 그야말로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형님을 나는 차마 눈뜨고 바라볼 수가 없었다.
형님에 고통을 대신해서 아파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지만 그런 생각은 나의 생각일 뿐, 형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나의 부질없는 생각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