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숨처럼 사랑하던 女子가 그만 꿀컥 숨넘어가 죽으면, 그 숨결일랑 어디에다가 담아 가지고 다니는 게 그 중 좋으료? 깨끗한 남녘 시골의 밋밋한 대수풀의 큰 대나무의 그 대나무 통 속에다 담아 가지고 다니는 게 좋지 안 하료? 그 대나무 통을 가슴에다 꾸리고 헤매다니며 가끔 가끔은 수다스런 사람들이 안 보일 때에 그 대나무 통 속의 그 愛人의 숨결을 불러 내서 이얘기하고 이얘기하는 게 좋지 안 하료? 혹시라도 이런 비밀도 지켜줄 줄도 아는 金庾信 將軍 같은 사람이나 만나거들랑 그런 사람의 집에선 一宿泊도 하여 가며, 愛人아! 東海 바닷속에서 내가 건져 낸 듯이 東海 바닷가에서 만나 살던 愛人아! 西쪽으로 西쪽으로 내 故鄕으로 가면서 요로코롬 가는 것이 좋지 않으료?
며칠 전 아내가 잠자리에 들면서 뜬금없이 내 몸에서 푸른빛의 퉁소 소리가 난다고 했다. 이 무슨 소린가, 나는 화들짝 놀라 잠이 다 달아났다. 시를 쓰면서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는 서방을 나무람으로 한 것인지 아닌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미당의 「대나무 통 속에다 넣어 둔 愛人의 넋에 」라는 시를 떠올렸다. 서정주의 이 도저한 연시(戀詩)는 현실의 실제 상황이 아니라 ‘가정’의 어법으로 비롯된다. 그것이 “제 목숨처럼 사랑하던 女子가 그만 꿀컥 숨넘어가 죽으면, 그 숨결일랑 어디에다가 담아 가지고 다니는 게 그 중 좋으료? ”라는 질문이다. 시인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이 미당의 사랑論이다.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가 죽으면 곧장 다른 여자를 찾아나서는 게 아니라 그 여인의 숨결을 담아가지고 있겠다는 것이다. 어디에다? 대나무 통 속에다. “그 대나무 통을 가슴에다 꾸리고 헤매다니며 가끔 가끔은 수다스런 사람들이 안 보일 때에 그 대나무 통 속의 그 愛人의 숨결을 불러 내서 이얘기하고 이얘기하는 게 좋지 안 하료?”라는 이 시구는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사랑의 말씀인가. 미당의 이 아름다운 서정시에는 김유신 장군도, 서쪽 동쪽도 필요 없겠다. 이 구절 하나면 충분하겠다. 아직은 젊은 아내가 나중에 나보다 먼저 죽으면 나도 이런 순도 높은 서정시를 쓸 수가 있을까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