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2010.1.21(목요일)자
詩가 있는 풍경
소반다듬이
송수권
왜 이리 좋으냐
소반다듬이, 우리 탯말
개다리 모자 하나를 덧씌우니
개다리소반상이라는 눈물 나는 말
쥐눈콩을 널어놓고 썩은 콩 무른 콩을 골라내던
어머니 손
그 쥐눈콩 콩나물국이 되면 술이 깬 아침은
어, 참 시원타는 말
아리고 쓰린 가슴 속창까지 뒤집어
흔드는 말
시인이 된 지금도 쥐눈콩처럼 쥐눈을 뜨고
소반상 위에서 밤새워 쓴 시를 다듬이질하면
참새처럼 짹짹거리는 우리말
오리 망아지 토끼 하니까 되똥거리고 깡총거리며
잘도 뛰는 우리말
강아지 하고 부르니까 목에 방울을 차고 달랑거리는
우리말
잠, 잠, 잠 하고 부르니까 정말 잠이 오는군요, 우리말
밤새도록 소반상에 흩어진 쥐눈콩을 세며
가갸거겨 뒷다리와 하니 두니 서니 숫자를 익혔던
어린시절
◆시 읽기◆
개다리소반! 참으로 정겹고 소담스런 말이다.
시인은 어머니가 쥐눈콩을 고르시던 소반에서, 어릴 적 가갸거겨를 익히던
공부상에서, 시인이 된 지금은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개의 다리처럼 휘어진 막치 소반 위에 쌀이나 콩을 펴놓고 뉘나 돌을 고르시던
어머니가 생각나고, 잊혀가고 있는 순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우리의 옛 정서에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소반다듬이라는 우리 탯말에 개다리 모자 하나를 덧씌우니
개다리소반상이라는 눈물 나는 말....
이름만 부르면 오리 망아지가 되똥거리고, 토끼가 깡총거리며, 강아지가 방울을
차고 달랑거린다. 잠 잠 잠 하고 부르니까 정말 잠이 오는 우리말이다.
외래어와 신종언어들이 범람하는 요즈음 젊은이들에게는 민속박물관에 전시된
물건쯤으로 알고 있을 개다리소반,
한겨울 눈 속에 파묻힌 고향집 싸리울처럼 참으로 정겹고 소담스런 우리말...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첫댓글 툇마루 끝처럼 나만의 공간이 있었듯이 개다리 소반처럼 기억이 스며들어 있는 것들, 버릴 수 없는 옛것들이 살아납니다.
지금도 반질반질 닦은 개다리 소반이 고향을 한상 차리고 있지요?
예 시절 손님이 오시면 내 오시던 개다리 소반이 지금은 기억속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이 글을 통해서 감회가 새롭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섬진강가에서 우리 것, 우리 말을 지키고 계시는 송수권시인님은 지금도 게다리 소반에서 글을 쓰시기도 하나 봐요. 우리들의 고향 같으신....
개다리소반에 차려낸 한 아름이 넘는 즐거움! 고맙십니더.
ㅋ 즐거움 한 상 받으셨다니....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