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살아진다
서 옥 선
오늘은 친구들과 한 달에 두 번 있는 산행 일이다. 인생길을 걷는 날이기도 하다. 회원은 산 대장, 총무, 새내기, 고문으로 이름한 넷이다. 뜨거운 여름에 지친 만경산의 초록은 새뜻한 단풍으로 단장했다. 산 초입부터 산객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돋보인다. 길섶에는 보랏빛 용담, 갈색 고비, 하얀 구절초가 나무 사이로 햇살을 부른다. 떡갈나무와 상수리나무들 틈새에 우뚝 선 소나무의 기상은 산의 기운을 북돋운다. 여름철에 늘어진 엿가락처럼 구불구불한 길의 흙은 부드럽고 폭신하다. 일행은 햇빛과 그늘을 번갈아 맞으면서 지난날의 산행을 추억한다.
지난여름 어느 날, 김천 달봉산에서 구화산을 거쳐 문암봉까지 완주 계획으로 등산길에 올랐다. 산행 코스는 블로그에 올라온 산행 지도와 경험담을 보고 고문인 내가 의견을 내었다. 모두에게 초행길이다. 동네 산책길보다 조금 긴 코스로 알려진 산인지라 하산 후 맛집을 찾아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가볍게 산행을 시작한다. 산 대장은 저녁 무렵에 우천 예보가 있다며 설레발놓고 앞장선다. 여름 속의 가을바람이 시원스럽게 발길을 이끈다.
구화산 정상에는 문암봉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없다. 다행히 한 젊은 남성이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한다. 조금 미심쩍기는 했지만 걷다 보면 이정표가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걸음을 옮긴다.
참나무와 소나무, 잡목들이 어수선하게 늘어서 있다. 길을 따라 걷고는 있지만 길인지 풀숲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여름 장마가 키운 잡풀들이 허리춤을 기웃거린다. 붉고 하얀 꽃을 곧추세운 미국자리공이 더부룩한 모습으로 길을 막기도 한다. 적막이 감도는 숲속에는 바위를 치는 스틱 소리와 조잘조잘한 일상의 나눔만이 흐트러진다. 그럴듯한 풍경도 인적도 없는 먹먹한 길목에 나부끼는 낡은 시그널이 희망의 빛기둥이 되기도 한다.
“어머나! 이것 좀 보세요. 영지버섯 맞지요?” 새내기의 말에 “으응, 맞네. 영지버섯.” 내가 맞장구친다. 참나무 그루터기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영지버섯 가족이 산객들의 시선을 모은다. 앞서가던 산 대장이 자연산 영지는 처음 본다면서 환호한다. 산행의 피로감이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에 나타난 귀물에 우리는 두 눈을 번쩍이며 환희한다.
삿갓이 단단하면서도 윤이 반짝반짝 나는 영지버섯은 항암효과가 뛰어나 불로초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손바닥만 한 영지들이 갈잎들 사이에서 바위틈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관광지에 줄지어 선 식당에서 호객하는 아주머니처럼 나그네의 발걸음을 붙든다. 버섯을 따는 네 여인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 가슴은 벌렁벌렁, 얼굴은 불그스레 신이 났다.
버섯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에 길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발길을 멈추고 사위를 살핀다. 산 대장의 낯빛이 새하얗게 변하여 왔던 길로 다시 뛰어 내려간다. 산 대장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마음이 무거워진 듯하다. 기실은 버섯 따는 일의 솔선자도 산 대장이었다.
길눈이 밝은 산 대장은 빛의 속도로 길을 찾는다. 오르고 또 올라도 산 넘어 산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라고.’ 드디어 정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가쁜 숨을 가라앉히지만 준비해 간 물과 간식은 이미 동났고, 일행의 원기도 바닥을 친다. 간식이 빈 가방은 몸값 비싼 귀물로 배불뚝이가 되었지만, 그들이 허기를 채워주지는 않는다. 해는 중천에서 떨어지고 있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아쉬움을 남긴 채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하산길이 낯설다, 숲을 이루고 있던 자리공도 보이지 않고, 올라갈 때 깔판을 잊고 떠난 벤치도 보지 못했다. 가슴까지 오는 풀대들과 잡목 어린 가지들이 길을 막고 서서 애간장을 태운다. 찬란한 빛이 되는 이정표도 시그널도 길손을 피해간다. 피로곤비한 총무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걸음발이 주춤거린다. 산 대장은 그의 옆을 지키며 어둠이 스며들까 노심초사하는 표정으로 길을 재촉한다.
산중을 헤맨 지 일고여덟 시간, 벼랑 끝에 앉은 비닐하우스 일부분이 시야에 닿는다. 벼랑을 오가면서 내려갈 만한 곳을 찾아보지만 오리무중이다. 앞서가던 새내기가 소리를 지른다.
“거기 누구 안 계셔요. 아저씨~!” 새내기의 애절한 목소리에 중노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벼랑 쪽으로 다가온다.
“길을 잃었는데 내려갈 수가 없어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그이가 가져다준 사다리에 몸을 의지하여 안도의 숨을 돌리며 조심스럽게 발을 내려놓는다. 우리의 지친 몰골에 놀란 중노인은 급히 생수병을 내놓으며 “밥은 안 되고. 라면이라도 끓여야겠네요.” 하고는 냄비를 찾는다. 우리는 괜찮다며 힘찬 손사랫짓을 하고는 시원한 생수 한 병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비운다. 힘겨운 발길을 멈추게 해준 비닐하우스 포도농장은 목적지의 정반대 쪽이었다. 귀인의 정성에 고마워하면서 트럭에 몸을 싣는다. 한줄기의 소나기가 차창을 신나게 두드리고 지나간다. 자연이 키우고 산이 내어준 귀물과 길손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 귀인의 따뜻한 가슴이 산객의 고난스러웠던 시간을 경이롭게 한다.
추억 여행에서 벗어나 깊은 생각의 꼬리를 멈추고 몸을 바로 세운다. 언제 왔는지 산비탈 위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긴 계단이 근엄한 표정으로 엎드려 있다. ‘정상을 그냥 내어 줄 리가 없지.’ 머리카락을 더펄거리며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른다. 발목에 힘이 빠질 지경에 이르러서야 발아래의 포근한 흙내를 느낀다.
고개를 드니 파란 가을하늘이 상수리나무의 우듬지 위로 삐주룩이 얼굴을 내민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본다. 돌아본 풍경에 묻어나는 고난의 시간들을 음미한다. 떠나지 않았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삶의 진리를 깨닫는다. 맛있는 인생은 이정표와 상관없이 무위한 자연과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속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따뜻한 햇볕을 안고 의연한 자태로 웃고 있는 정상 표석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이 등산길처럼 고난도 겪고 기쁨도 나누면서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지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자연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