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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왕의 이름 |
재위기간 |
기원 전 연대 |
프사메티크스 I |
54년 |
664-610 |
느고 II |
15년 |
610-595 |
프사메티크스 II |
6년 |
595-589 |
호브라 |
19년 |
589-570 |
아마시스 |
44년 |
570-526 |
프사메티크스 III |
1년 |
526-555 |
캄비세스 왕에 의한 이집트 정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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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년5월/6월 |
신바빌로니아 왕조 시대의 이집트에 관계하는 사건의 연대는 모두 이집트의 독립적인 연대 기록과 일치하며, 베로수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기록과 왕조비문 , 상업문서 , 천문학 일지 등으로 확립된 연대들과
1년 정도의 오차(아마도 나라들간의 재임년 계산방식이 다른 이유)만 있을 뿐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워치타워협회의 연대만이 모든 방법으로 확인된 이런 연대들보다 항상 20년이 늦다(공백기간 20년)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고고학자료와 배치되는 워치타워출판물의 기록을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는)
일부 성구에 대한 고집스런 문자적 해석을 통해 마치 성서에 세속연대가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맹신적인 워치타워신봉자들의 특유의 태도입니다.
또한 이집트가 40년간 (워치타워의 주장대로 예루살렘70년 황폐와 같이 왕권과 국민이 없는 상태) 황폐되었다는 말도 역사적으로 전혀 고증되지 않습니다. 상세한 점은 다음 아포님 글 후에 다루겠습니다.
40년이 흐른 후인, 기원전 548년에 이르러서야 이집트의 황폐는 끝이 났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는 "이집트인들의 포로된 무리를 돌아가게 하되, ... 비천한 왕국" 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실상 세속 연대기 또한 바빌론 왕 나보니더스가 이집트왕 아마시 2세, 그리고 리디아 제국과 더불어 페르시아에 대적하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예전 세계의 패권국이었던 시절과 비교해서, 이집트는 이제 성서에서 말한 대로, 이전의 적국들과 군사적 동맹을 해야 하는 "비천한 왕국"이 되었습니다. 위에 있는 차트에 따르면, 성서의 연대기는 이 모든 사건들이 일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는 40년간 황폐한 후에 바빌론과 평화 협정을 맺고 포로를 송환할 충분한 시간을 갖었습니다.-->가졌습니다 로 수정해 주십시오.
이집트의 역사를 왜곡하신 것 같습니다. 기원전 547년 이집트의 아마시스 왕 시절 주변나라와 동맹을 맺은 것은 사실이지만 40년간 황폐하였다는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밝혀진 역사에 의하면, 이집트는 기원전 525년에 이르러서야 페르시아 캄비세스2세에 의해 정복됨으로 이집트인에 의한 통치가 종식되어 식민지와 같은 신탁통치를 받았고 기원전 343년 알렉산더에 의해 다시 정복되어 프톨레마이오스왕가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식민지배중에도 나라는 존속되어 로마시대에까지 속국으로 존재하였습니다.
이집트가 언제 멸망되었는가에 대한 기준은 역사학자마다 약간씩 틀리겠지만, 정치적 멸망은 이집트인의 통치력이 사라진 기원전525년이고 민족적 멸망은 로마시대라고 보는 것이 중론입니다.중요한 점은,(워치타워의 주장처럼)기원전 525년 이전에 이집트가 황폐되었다거나 멸망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빌론의 Neb왕이 자신의 재위37년에 이집트를 공격하였을 때는 말 그대로 공격과 약탈을 당했지만 나라가 황폐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얼마의 포로도 있었겠고 조공을 바치는 정도의 속국개념의 약소국으로 전락하였지만,엄연히 주권과 권력이 존재하는 나라였고 위 연대기에서 나오듯이 왕들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40년 황폐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이는 전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수 차례 아포님에게 질문하였지만, 회피하는 듯 대답이 없었습니다)
Chart: 587년에 근거한 세속 연대기에 따른 이집트의 40년간 황폐
어떻게 연도들이 성서의 예언들과 충돌하는지 보십시오. 그리고 성서와 세속 역사기록(이집트왕 아미스 2세와 그의 바빌론과의 군사동맹) 사이에 새로운 추가적 모순들이 발생하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위에 있는 차트가 보여주듯이, 587년에 근거한 연대기에 따르면 이집트의 황폐는 총체적 난관에 부딪칩니다. 그들의 연대기에 따르면, (에스겔이 이집트에 대한 마지막 예언을 한 때) 에스겔이 유배된지 27년째는 기원전 570년이 됩니다. 다시 말해, 세속 기록들에 따르면, 이로 부터 2년후인 기원전 568년에, 느부갓레살이 자신의 재위 37년에 이집트를 공격했을 것 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십다. 그러나 단지 21년 후에 이집트는 바빌론과 평화 협정을 맺었었다고 세속 기록은 말합니다! 설상 가상으로, 세속기록에 따르면, 키루스는 그때로 부터 8년 후에 바빌론을 정복했다고 말합니다. 성서는 그가 정복햇을 때 모든 포로들을 풀어줬다고 말합니다. 그가 모든 포로들을 풀어주고 고토로 돌아갈 때, 이집트만 예외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까? 성서는 이에 대해 어떠한 종류의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세속 연대기, 즉 이집트가 바빌론의 마직막 왕과 맺은 평화 조약에 따르면, 이집트의 황폐는 단지 21년가 지속된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기록을 버리고, (바빌론의 멸망되고 키루스에 의해 해방된 것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단지 29년이 될 뿐입니다. 따라서 이집트의 40년간 황폐 예언은 실패한 것이 됩니다. 우리가 587년에 근거한 연대기를 믿는다면,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이집트에 대하여 한 광범위한 예언들은 무참한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587년에 근거한 연대기에 따른다면,) 이집트는 40년간 "여러 땅들 가운데 흩어지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 도시들은 "(거민이 없는) 황무지"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집트의 왕은 메데-페르시아에 대항하여 바빌론과 리디아와 함께 동맹을 맺을 정도로 강력한 통치를 하였습니다. 40년간 황폐하리라는 예언은 완전히 낭폐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그저 농담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그 나라는 바빌론의 정복당한 후에도 페르시아로부터 독립된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최소한 버림받고 황폐할 것이라는 40년중 상당부분은 그러하였다는 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은 부록 G에서 다루겠습니다.
반대로, 예루살렘이 멸망된 연도가 607년이라는 성서 내부적 연대기를 받아드린다면- 이집트가 40년가 황무지가 된다는 것은 완벽하게 들어 맞게 됩니다. 607년 연도에 의하면, 이집트는 바빌론, 그리고 리디아와 군사적 동맹을 맺고, 고토로 돌아와서 왕권을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메데-페르시아야로 부터 14년간 독립을 유지할 정도로 강력할 수 있었습니다. (세속 연대기 또한 이렇게 진술합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집트의 40년 황폐를 문자적으로 보자면 워치타워의 607년에 근거한 연대기도,(Neb재위37년인 568년부터 페르샤의 정복이 있던 525년까지의) 568-525연대기도 다 틀린 것이 됩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워치타워 외에는 아무도 이집트 40년 황폐를 문자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전제를 만들어 놓고 상대는 틀렸다고 말하는 결례는 마십시오.
성서를 이해하는 데에는 문자적인 방법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워치타워도 성서의 숫자를 때때로 상징적이거나 축소확대 해석합니다. 만약, 이집트의 40년 황폐를 상징적인 숫자 즉 - 예수의 40년 금식, 이스라엘의 40년 광야방황과 같이 - 1)고난의 시기를 의미하거나 (Neb재위37년인 568년부터 페르샤의 정복이 있던 525년까지의) 2) 43년간의 이집트의 어려운(나라의 정서가 황폐되었던)시기를 황폐될 40년이라고 대략적으로 표현했다고 유연하게 해석한다면 역사와 성서와의 괴리는 없어지며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게 될 것입니다.
워치타워의 607년 예루살렘 멸망 주장에 대한 칼.O.존슨의 다음과 같은 비평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워치타워 협회가 주장하는 연대가 올바르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제가 필요할 것일까. 먼저 베로수스가 실수를 무릅써 신바빌로니아 왕조의 계속기간을 20년 짧게 기록한, 그것을 400년 후의 프톨레마이오스가 독립에 같은 실수를 무릅써 같은 연대기록에 이르렀다, 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혹은 이 두 명은 같은 20년분의 실수가 포함되는 바빌로니아 연대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나보니두스(나보니더스) 왕과 동시대의 서기가, 스스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건을 어떻게 해서 20년간 다르게 기록하는 것일까. 그것과 동시에 나보니더스왕의 어머니는 자신의 생애를 20년만큼 짧게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완전히 다른 땅에 살면서 다른 기록을 남기고간 이집트의 서기들도, 일제히 신바빌로니아 왕조 시대에 해당하는 기간에 20년간의 실수를 무릅쓰지 않으면 안 된다. 천문학일지의 왕의 기록은, 워치타워 협회가 주장하듯이 후세에 있어 왕의 이름과 치세의 해를 고쳐 써, 정확히 모두가 20년간 늦도록 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난처한 것은, 수천점이 출토된 신바빌로니아 시대의 상업 문서로, 모든 왕의 모든 치세의 해와 일자의 것이 출토되고 있는데 , 워치타워의 연대 계산에 필요한 「공백의 20년」의 부분만큼이 모두 출토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많은 다른 시대와 장소로부터 나오는 기록이 , 일제히 20년간 차이가 난다고 한다는 것이, 워치타워 협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가능성은 다음의 어느 한쪽일 것이다. 당시에, 수백 년에 걸쳐서 국제적으로 이 20년간을 역사로부터 제거하여 무시하기로 「공모」를 하고 그 결과 , 몇만 몇천개나 있는 어떤 사료를 봐도 이 20년은 나오지 않는 경우, 혹은 실제로 이 「공백의 20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 전자의 가능성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망상으로 불가능한 일일까를 보면 , 워치타워 협회의 연대 계산은 의심의 여지를 남기는 일 없이 20년간만 잘못되어 있다. 즉 예루살렘의 멸망은 기원 전 607년이 아니고, 기원 전 587년 또는 586년에 일어났다는 것이 누구의 눈에도 밝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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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밑의 글 보니 이분은 수천년전 역사를 어떻게 확정하냐고 하는군요..
이런식으로 생각하니까 역사를 우습게 보는거였군요..
역사전공자들은 그럼 헛질하러 전공하고 그 고생하나...정말 답안나오는 근본주의 종교인들...
브레이빅이 어떻게 존재했겠습니까..다 저런식이지...ㅉ.ㅉ..
그리고 아포님..이글 보시면..느부갓네살의 공격을 가지고 이집트의 황폐를 논하는게 얼마나 그 예언의 격을 떨어뜨리는건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느부갓네살의 공격은 거의 타격을 입히지 못했습니다.
블스님이 그 황폐함을 질문하는건 괜히 하는게 아니라..실제 황폐함이나 유수와는 아주 거리가 먼 역사이기때문에 그런겁니다.
에스겔의 예언중 이집트의 성 신(Sin)을 공격한 왕이 누구인지 한번 조사해보시죠..
그 예언자체가 그렇게 지적하니 그 부분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맞지않습니까?
그 예언자체만 봐도 느부갓네살은 해당되지않습니다.
일부 주석들은 호브라의 후계자 아마시스(아모세) 2세의 재위 기간을 40년 이상 대단한 번영을 누린 기간으로 언급하지만, 그것은 100여 년 후에 이집트를 방문한 헤로도토스의 증언을 주된 근거로 삼은 것이다. ... 제사장들이 외국의 멍에를 짊어지게 된 국가의 수치를 숨기려고 애쓰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봐야..협회서적(통찰)의 설명..피의자가 자기변호해봐야 누가 알아주나요?
느부갓네살의 공격이 확실한 폐허를 만들지 못했다는 뜻이죠.
아포님,...답변이 참 궁색합니다.
"무릅써" "무릅쓰지" 가 아니라 "무릎쓰고" "무릎쓰지" 입니다.
"페르샤의 정복이 있었던 625년까지의" 아니라 "525년까지의" 가 아닌가요?
(뭐 그냥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블루님도 친절하게 지적해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말씀드립니다.)
ㅎㅎ 애써 봐주시니 감사. 독해는 하시는군요. 숫자틀린 건 수정했구요.
무릎쓰다가 아니라 무릅쓰다 가 맞습니다요.사전 다시 보세요. 정말 나이가 많으신 분인가 봐요. (어리둥절~~)-- ^^ 우스개 소리로 들어주십시오.
그나저나 반론은 하셔야죠. 그간 못다한 답변을.
뭐 반론이야 그 동안 한 내용의 반복아니겠습니까?
어노님의 주장은 이집트의 40년 예언과 느부갓레살의 황폐는 다른 예언이다는 논지이고,
블루님은 양시론적으로 568년부터 525년까지 이거나, 다른 예언이거나 어느 것이든 워치타워만 틀르면 된다는 주장이시고,
성서의 주석가들은 에스겔 29장을 동일한 예언으로 보고, 성서의 예언이 분명하다면, 느부갓레살 37년부터 40년간 이집트는 침략을 받고 조공을 바치는 위치였다는 것이 성서적인 견해다라는 의견의 반복아니겠습니까?
주석가들 이야기로요..이집트에 대한 예언들이되..40년의 성취는 페르시아일것이다..이래요..주석서라는걸 좀 보기는 하나요?
올로프 존슨 이전부터 페르시아의 40년 이야기 해왔어요..
동일함과 다름의 주관조차 아포님의 개성이 따로 있군요. 하여튼 개성적이시네요.
'주석가들이 그런데'..이것도 혹시 협회책보고 그러시는거 아닌가요? 동아줄이라고 잡은게 '주석가들' 그건가요?
아포님~뭔가 .,..애매한 답변을 하시는군요. 속국이나., 이런 위치는 됩니다만, 황폐라는 기존의 님의 주장에 대해서는 철회를 하는듯한 느낌, 이군요. ...알겠습니다. 님의 답변은 그것으로 족합니다. 양시론이란 ...이럴때 쓰는 단어가 아닌데요... 저는 님의 해석이 옳다는 얘길 하는게 아니에요. 그 외 다른 해석들이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아시죠?
아포님 잔챙이처럼 끼어 들어서 죄송하지만, 저는 너무 궁금해서 그럽니다.^^
언제 온다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때가 과연 올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숫자계산에 열을 올리시는 이유는 어느정도 '언제 올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시는 거잖아요... 아니 최소한 그쪽으로 기울여지는건 사실이잖아요.
올것인가에 대한 확신? 이건 예수그리스도가 온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건 이렇게 복잡한 년대계산 필요한건 아니잖아요.
연대계산을한다는건 = 곧 '언제' 와 관련이 되어 있잖아요.
그럼 아포님 개인적인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는 1914년 이후 최소 언제까지는 와야한다는 기준을 가자고 계시냐고 묻는 겁니다.
정말 솔직하고 인간적인 답변을 기대합니다. 뭉뚱그려 '때와 시기는 언제올지 모른다.' 이런대답은 벌써 이중적인 대답입니다. 연도 계산까지하면서 때와시기는 모른다? 아니 때와시기를 예견하지 않는다?? 이건 인간적으로 아니잖아요.
그냥 개인적으로 언제까지는 오는게 맞는 것 같다 정도로 대답해주세요. 아포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너무 궁금하고.. 솔찍하게 대답하지 않으실 경우에는 계속 물어볼겁니다 ^^
정말 인간하나 불쌍하다 생각하고 최대한 진실되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도 전 아포님 맨트 하나가 소중합니다..증인들 연구중이라..
' 역사적 연대는 과학가설처럼 입증되는게 아닙니다' 맨트..이거 정말 멋진 소스 하나 남겨주셨어요..
이 한마디로 증인들의 역사의식이 단번에 설명이 되네요..
감사드립니다.
저희 아버지도 연대문제중 증인과 안맞는 연대 있으면...
'그건 세속역사가들이 하는 말이고...'
'그건 연대측정법으로도 정확히 알수가 없다.'
'세속연대와 성경연대가 차이가 나면 성경 연대가 우선이다'
더러는 아주 심각하게 모순적인 말씀.
'협회에서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이 다 조사해보고 하는건데.. 그걸 니가 뭘 안다고 그러는거니? 나는 협회를 신뢰한다.'
그럼 저는 묻습니다.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인건, 그 세속역사가들이라는 사람들 아니면 뭘로 증명할 건데요?'
여하간, 이번기회에 워치타워의 황당한 [이집트황폐 40년주장] 에 대한 반박문을 완성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오히려...아포님에게 감사해야 겠습니다. 카페자료실에 자료를 하나 추가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