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
오래 전 일입니다. 한의원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의사를 몇 번 만났더니 선생님께서 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입을 여실까? 내일은 여실까? 목사님들은 오시자마자 예수님
믿으라는 얘기부터 하는데 신부님은 몇 일이 지났는데도 예수님에 대해선 한 말씀도
하시지 않네요. 역시 신부님과 목사님들은 다르긴 다르네요”.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2티모4,2) 하고 권고합니다. 로마서10장 17절에서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막상 입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물론 삶의 모범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하지만 제가 소극적인가 봅니다.
그래도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고 하신 말씀에 위안을 받습니다. 어느 날 남모르게 미사참례하여 강론을 들어보겠다고 하시니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가장 큰 일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승이 하신 일이요, 참된 제자라면 그 일을 이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구애 없이
복음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포하는 자는 듣는 쪽의 반응에 얽매이지 않고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로마1,16).
따라서 우리도 “예수천국”, “불신지옥” 하면서 요란을 떨지 못하더라도
이웃에게 주보를 보내준다든지 전화를 한다든지 하는 좀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 기억하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06년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공부하던 중 성 이냐시오의 동료가 되었고 1541년 동양으로 와 인도와
일본에서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이냐시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기도를
가르치느라 성무일도를 보거나 식사하거나 휴식을 취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과 자신이 얻은 지식을 잘 쓰면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당신은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에나 저를 보내 주십시오. 인도까지라도”하고 고백할 많은 이들이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삶 자체가 선교가 안 된다면 무의미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자신이 먼저 복음화됨으로써 전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코린1,25).
삶으로 말하게 하소서. 아멘. 사랑합니다.
첫댓글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