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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함께 가진 시간들이 참 따뜻했다 | ||||||||||||
[최은숙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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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영 선배님은 곰순이를 닮았다고들 한다. 송선배님네 놀러가면 선배님이 (옛날 식 표현으로) 버선발로 뛰어나오신다. 반가워서라기보다 마당에 묶인 곰순이와 나 사이를 막아서기 위해서다. 곰순이가 반갑다고 목줄을 끌며 마구 달려들면 나는 뒤로 넘어갈 것 만 같다. 아무리 봐도 곰순이는 곰이지 개는 아니다. 덩치가 산만 하고 털이고 눈이고 혓바닥까지 시커먼 곰순이를 내 친구 수노아는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쓰다듬으면서 콧소리로 ‘아가~~앙’하고 부른다. 마루에 앉아 멀찍이서 곰순이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곰순이가 참 온순하구나, 선배님을 닮았구나, 하고 생각한다. 감자 하나를 먹고 봐도, 미숫가루를 한 그릇 마시고 다시 봐도 여전히 처음 마당에 누웠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붙어 있다. 면벽한 스님처럼 꼼짝 않고 누워있는 곰순이 등허리 위로 겨울엔 눈이 소복소복 쌓인다고 한다. 송성영 선배님의 아내인 정해정 선생님은 감자 하나 먹는 동안에도 서너 번씩은 순간이동을 하는 분이다. 칼국수를 해먹자고 한 다음 순간 어느 틈에 물이 끓고 있고 선배님과 몇 마디 주고받고 있는 사이에 밀가루 반죽이 끝나 다다다다 도마소리가 나면서 칼 밑으로 국수가닥이 결도 고르게 밀려 나오고 있다. 두 분이 바닷가 마을에 조그만 집을 짓고 민박을 하면서 살려고 땅을 찾고 있을 때 정해정 선생님은 벌써 민박집의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다. 선배님네가 드디어 고흥에 땅을 구했다고 한다. 생각했던 대로 논밭이 있고 산이 있고 바다가 보이는 땅이라고 한다. 땅값을 치른 돈 삼천 사십만 원은 부부가,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내인 정해정 선생님이 남편도 모르게 십 년 동안 알뜰하게 모은 것이다. 선배님이 한 달에 한 번 방송국 다큐작가를 해서 버는 돈, 제초제 안 쓰고 농약 안 뿌리고 정성껏 농사지은 채소를 꾸러미로 만들어 아는 사람들에게 배달하여 버는 돈, 정해정 선생님이 아이들 몇 명 모아 그림 가르쳐서 버는 돈, 물방울 같은 그 돈을 모아 세숫대야 물을 만들고 양동이 물을 만들고 드디어 땅을 살 만큼 바닷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곰순이 같은 선배님은 그 돈 아니었으면 땅 고르러 다니느라 고민도 안하고 지금 사는 집처럼 아무데나 빈 집 구해서 고쳐가며 살면 되는데 괜히 목돈 만들어가지고 고민거리 만들었다고 투덜거렸다고 한다. 남편을 헐뜯는 아내의 말에 맞장구를 쳐가며 웃고 있을 때,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밭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아내와 후배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선배님은 얼굴 가득 웃음 지으면서 바라보신다.
선배님의 순한 웃음이 좋고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말이 되어 나오는 정 선생님의 순수함이 좋고 인효와 인상이의 온순함과 속 깊은 마음이 좋고 곰순이는 좀 무섭게 생겼지만 선배님 닮아 좋은 데 식구들이 멀리 이사를 간다니 참 서운하다. 말도 행동이 민첩하지 못한 점에서, 아무래도 나는 선배님 쪽의 기질을 가진 게 아닌가 싶은데도 정 선생님이 편안하고 따뜻한 건 내가 그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집이라 생각하고 아무 때나 언제든지 오이소.” “그 때 자고 일어나서 냉장고 열어보니까 먹을 게 없긴 없드라.” “우리 같이 명상센터를 하면 어떨까? 석장리 유적지에 있는 짚 풀 움막 딱 보니까 그게 퍼뜩 생각나대.” 내가 보기에 골치 아픈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해주는 건 선생님이다. 사람 발소리에 놀라 느닷없이 숲으로 튀어 들어가는 고라니도 만나고 돌무더기 위로 스르르 기어가는 뱀을 만나 놀라기도 하고 키가 넘는 들깨가 천사백 평이나 심어져 있는 깻잎바다를 헤쳐 나가기도 하면서 우리는 꿈을 꾸었다. 송성영 /1960년 대전에서 태어난 송성영은 대학 졸업 후 한동안 도(道)를 공부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산 생활을 하기도 하고 잡지사 일을 하기도 했다. 돈 버느라 행복할 시간이 없던 그는 덜 벌고 행복하게 살자는 생각에 고단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 생활을 전혀 모르는 아내와 갓난쟁이 아이 둘과 함께 계룡산 갑사 부근의 시골 마을로 내려간다. 뒤에는 대나무 숲이 있고, 옆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널찍한 마당이 있는 빈 농가를 200만 원에 구입해서.. 시골에서 생활한 지 10년 넘었고, 두 아들 인효와 인상이는 대나무 숲에서 아빠에게 경당도 배우고, 개울에서 가재를 잡고, 마당에 그림을 그리며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아내는 외양간을 개조한 화실에서 그림도 그리고 시골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송성영은 텃밭을 일구며 틈틈이 다큐멘터리 방송원고를 쓰며 생활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